신인 황택의-지민경의 좌충우돌 프로 적응기

매거진 / 정고은 최원영 / 2016-12-27 11: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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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택의와 지민경이 프로무대에 당차게 뛰어들었다. 현재까지는 남녀 신인 중 가장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들. 그러나 새로운 것 투성이다. ‘프로’라는 이름이 주는 어색함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형, 언니들과의 만남도 낯설기만 하다. 그들의 좌충우돌 프로 적응기를 살펴본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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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손해보험 황택의 “긍정이 체질”


황택의(20). 배구 좀 아는 독자라면 이미 이 이름을 자주 들어봤을 것이다. 성균관대 주전 세터였던 그는 2016~2017시즌 남자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호명되며 KB손해보험에 둥지를 틀었다. 이내 그는 세터로서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10월 24일, 드래프트 당일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바로 팀에 합류했다. “프로 팀에서 운동한다는 게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됐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처음 일주일간은 팀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 시간을 썼다. 보름 정도 지나니 적응이 다 됐다고 한다.


가장 힘든 것은 역시 훈련이었다. “대학리그 끝나고 드래프트 전까지 개인 운동을 열심히 했다. 그런데도 프로에 오니 훈련 프로그램을 따라가는 게 쉽지 않았다. ‘내가 지금껏 쉬다 온 건가?’하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라며 해맑게 웃는다. KB손해보험 막내 황택의는 그렇게 어리둥절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대학 때와 다른 것은 또 있었다. 선배들과 나이 차이가 컸다. 성균관대 시절에는 기껏해야 3~4살 차이였지만 KB손해보험에는 권영민(36) 이선규(35) 하현용(34) 등 띠 동갑을 넘어서는 선배들이 많았다. 스무 살, 이제 갓 20대에 들어선 황택의에게는 멀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나이 장벽은 금세 허물어졌다.


“처음에는 대하기 정말 어려웠다. 형들이 먼저 와서 말을 걸어줬다. 영민이 형이 삼촌이라고 부르라고 해서 ‘영민 삼촌’ 하고 불렀는데 지금은 다시 형이라고 한다. 내가 어색해하지 않게 장난을 많이 쳐주셔서 감사하다. 형들이 1순위로 들어왔다고 나를 예뻐해 준다. 형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형들과 친해진 거 같아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황택의가 상기된 표정으로 자랑을 늘어놨다.


이선규와는 룸메이트가 됐다. 무려 열 다섯 살이나 차이 나는 선배와 한 방을 쓰게 된 속마음은 어땠을까. “내가 원래 좀 무뚝뚝한 편이다. 그래서 말도 못 붙이고 있었는데 선규 형이 먼저 친근하게 다가와줬다. 정말 감사했다. 내가 눈치보지 않고 말할 수 있게 잘해주신다. 형과 대화를 많이 할 수 있어서 기쁘다”라며 미소 지었다.


입단 동기들과도 두루 잘 지내고 있다. 신해성(홍익대), 백민규 박민범(이하 한양대) 모두 대학은 달랐으나 KB손해보험 소속이 된 뒤로 더욱 돈독해졌다. 황택의는 “신입생들은 뭐든지 다같이 한다. 신인 오리엔테이션부터 시작해서 배구공 챙기는 것, 운동하는 것 등 항상 함께 다닌다. 그러다 보니 금방 친해진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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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손해보험에 완벽히 녹아 든 모습이었다. 그는 “팀 분위기 자체가 밝다. 형들이 긍정적이다. 실수 하나를 하더라도 다같이 가서 괜찮다고 해주고 웃어준다. 그리고 여기 밥이 맛있다. 특히 요구르트가 많아서 좋다”라며 막내다운 답변을 이어갔다.


황택의는 아마추어 때부터 강한 스파이크 서브로 눈길을 끌었다. 웬만한 공격수보다 매서운 서브는 무척 위력적이었다. 때문에 KB손해보험 강성형 감독은 드래프트 직후 첫 경기였던 OK저축은행 전(10월 27일)부터 바로 황택의를 원 포인트 서버로 기용했다.


황택의는 “형들이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때리라고 했다. 들어가서 서브 범실을 해도 내 잘못이 아니라며 자신감을 심어줬다. 그래서 더 편하게 서브를 넣을 수 있었다. 범실을 하는 경우가 잦아서 서브 연습량을 늘렸다. 체력만 따라준다면 계속 이렇게 강한 서브를 구사하고 싶다”라고 전했다.


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1라운드 현대캐피탈과 마지막 경기를 치른 KB손해보험. 1세트 선발 출전했던 세터 권영민 대신 2~3세트에는 황택의를 선발로 내세웠다. 상대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던 분위기를 뒤집어보려는 의도였다. “경기 시작 전 대기실에 있는데 감독께서 오늘 세터로 뛸 수도 있으니 준비하라고 귀띔해주셨다. 그래서 몸 풀 때 평소보다 더 열심히 했다. 처음 2세트에 들어갔을 때는 너무 떨려서 형들과 호흡이 잘 안 맞았다. 세트 후반부터는 조금씩 여유가 생겼다. 형들이 잘하려고 하지 말고 내 실력 믿고 편히 하라고 얘기해줬다. 사실 그때 긴장해서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경기를 했는지 잘 모르겠다”라며 기억을 더듬었다.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세터 훈련에 임했다. “프로에 오니 말을 더 많이 하게 됐다. 손발이 안 맞으면 형들과 대화를 통해 풀어가려 했다. 처음엔 우드리스가 너무 키(210cm)가 커서 공을 얼마나 높이 올려야 될지 몰라 헤맸다. 각 프로 팀 체육관에 적응하는 것도 숙제였다.”


강성형 감독은 황택의를 직접 지도하기도 했다. “일단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몸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하셨다. 조급하게 생각지 말고 천천히 하면 된다고 해주셨다. 배구 기술 면에서는 속공 세트플레이를 만들 때 공을 네트와 조금 떨어트리라고 하셨다.속공 세트는 공이 네트에 붙으면 상대 블로킹이 들어와 우리 공격수가 때리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하나하나 부족한 부분들을 보완하고 있다.” 황택의 말이다.


팀 합류 후 한 달 가량 시간이 지나니 서서히 몸이 만들어지는 것을 느꼈단다. 그는 “70%까진 올라왔다. 그래도 아직 부족하다. 팀 내 형들은 이미 100%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나도 빨리 따라가려고 노력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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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손해보험 세터는 황택의와 더불어 권영민, 양준식까지 총 세 명이다(11월 기준). 같은 포지션 선배로서 권영민과 양준식은 어떤 이야기를 해줬는지 물었다. 황택의는 “형들이 정말 세심한 것까지 다 짚어준다. 영민이 형이 내가 공을 올릴 때 발을 모아서 하는 버릇이 있다며 그건 고쳐야 한다고 해줬다. 준식이 형은 항상 나를 격려해준다. 잘하고 있으니 위축되지 말고 자신 있게 하라고 다독여준다”라고 밝혔다.


지난 11월 12일, 삼성화재와 원정경기가 있었다. 황택의가 드디어 경기 선발 라인업에 들었다. 1세트부터 코트에 들어와 공격을 조율했다. 물론 경기 중반 양준식과 교체됐고, 팀도 패했으나 황택의 본인에게는 의미 있는 경기였다. “주전 세터로 나선 것보다는 팀이 진 게 마음에 걸렸다. 내가 잘했으면 더 좋은 결과가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아빠가 문자로 수고했다고 해주셨다”라고 말하지만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세터로서 앞으로 어떤 플레이를 선보이고 싶은지 묻자 목소리가 한층 밝아졌다. “초반에는 많이 떨려서 원래 실력의 반도 못 보여드렸다. 경기를 치르다 보면 점점 나아질 것이다. 긴장하지 않고 준비한 것을 코트에 모두 쏟아 붓고 싶다. 사실 나는 기사에 달린 댓글을 다 읽어보는 편이다.


나에 대한 쓴 소리도 많더라. 그런 걸 보면 좋은 자극이 된다. 위축되기 보다는 ‘다음 경기엔 더 잘해야지’하고 각오를 다진다”라며 당차게 답했다.


2016~2017시즌 목표를 들어봤다. “무엇보다 팀이 잘됐으면 한다. 개인적으로는 부상 없이 시즌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 열심히 해서 신인상 받으면 좋겠지만 크게 욕심내진 않으려 한다.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다.”



KGC인삼공사 지민경 “똑 부러지고 야무지게”


지난 9월 7일 17명 소녀들이 ‘프로’라는 새 이름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11주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몇몇 선수들은 코트에 얼굴을 비추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꾸준한 출전기회를 보장받으며 코트에 나서고 있는 선수가 있다. 감독과 거침없이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당찬 신인, 바로 KGC인삼공사 지민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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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6일 대전충무체육관. KGC인삼공사와 흥국생명과 경기가 한창이었다. 1세트를 22­25로 내준 KGC인삼공사는 2세트에도 7­11로 뒤져 있었다.


서남원 감독은 교체 카드를 들었다. 장영은을 대신해 지민경 투입을 결심했다. 지민경이 프로로서 처음으로 코트를 밟는 순간이었다. 기회는 금방 왔다. 이재영이 넣은 서비스를 한수지가 정확히 세터 이재은에게 연결했다. 그리고 그 볼은 지민경에게 향했다. 그러나 지민경은 아쉽게 득점을 올리지 못했다. 오히려 네트 터치로 상대에게 1점을 내주었다.


첫 공격 시도가 범실이라니. 신인으로서 부담이 될 수 있는 상황. 하지만 언니들이 지민경을 격려했다. “언니들이 실수해도 괜찮다고 부담 없이, 자신 있게 하라고 말해줬다. 그래서 더 자신 있게 하려고 했다.”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찾아왔다. 다시 한 번 더 이재은의 세트가 지민경에게 전달됐다. 이번에는 득점으로 연결됐다. 지민경은 이 순간을 “그 당시 너무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아 드디어 점수 냈구나’하는 생각에 기뻤다”라고 회상했다.


첫 출전을 시작으로 현재(11월 16일 기준)까지 매 경기 코트에 나서고 있는 지민경. 이제는 당당히 선발 한 자리를 꿰찼다. 그만큼 팀도 지민경에 대한 믿음이 크다는 것. 서남원 감독도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고 있다.


“블로킹에 많이 걸리니 다르게 때려보려고 한 적이 있다. 그 때 감독께서 ‘네가 때리고 싶은 대로 때려라, 자신 있게 해라’라고 하셨다. 자신감을 많이 심어주신다.” 지민경 말이다.


그러나 프로의 벽은 높았다. 알면 알수록 어려운 것이 배구라는 것을 또 한 번 크게 느낀단다. 프로라는 곳이 결코 쉬운 곳이 아니라는 것을, 많은 노력이 뒤따른 다는 것을 1라운드를 통해 경험했다. “언니들을 보면 신장도 그렇고 볼 다루는 것도 다르다. 고등학교 때는 이 정도로 때리면 득점이 났는데 지금은 웬만큼 때려서는 포인트가 안 난다. 이런 점들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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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지민경. 그는 “공격을 해줘야 하는데 고등학교 때만큼 공격이 안 돼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언니들이랑 맞춰 가면 잘 될 거라고 믿는다”라고 전했다. 언니들이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언니들이 정말 잘 챙겨준다. 부담 갖지 말고 자신 있게, 기죽지 말고 하라고 얘기해준다. 그 덕분에 나도 한결 편하게 경기에 임하고 있다”라며 고마움을 표했다. 특히 김해란은 존재만으로도 지민경의 부담을 덜어준다고. “확실히 언니가 옆에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리시브를 받을 때도 언니가 있어서 든든하다. 해란 언니는 ‘신인인데 어떻게 잘하냐’며 언니들 믿고 열심히 하라고 얘기해주신다.”


언젠가 지민경이 블로킹 득점 후 서남원 감독과 하이파이브 하는 모습을 봤다. 그 얘기를 전하자 지민경은 “경기 전날 블로킹 연습을 하고 있었을 때다. 코치님이랑 함께 훈련을 하고 있었는데 블로킹을 잡으니까 감독님한테 가서 하이파이브를 하라고 하셨다(웃음). 경기 때 그 모습이 나도 모르게 나왔던 것 같다”라며 웃었다. 감독과 신인선수. 어려울 법도 하지만 어느새 자연스럽게 그 분위기 안에 녹아 들었다. 지민경은 “우리 팀 분위기가 진짜 좋다(엄지 척). 일단 대화를 많이 하고 감독, 언니들이 많이 알려준다. 감독께서 한 번씩 농담도 해주시고 편하게 해주신다”라며 자랑을 한바탕 늘어놓았다.


처음에는 눈치 아닌 눈치를 본 적도 있다. 아무래도 언니들과의 나이차가 많다보니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1998년생인 지민경은 최고참 김해란(84년생)과 무려 14살 차이가 난다. “서브 캐치를 했는데 제대로 연결이 안 되면 흐름이 깨지다보니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마음적으로 불편했다. 눈치가 보인다기보다 언니들한테 미안했다.”


생활하는 데 있어도 마찬가지. 조심스러웠고 어려웠다. 이 때 룸메이트인 유희옥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처음에는 언니들을 대하는 게 어려웠다. 희옥이 언니랑 방을 같이 썼는데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고 방에서 언니랑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이제는 많이 편해졌다.” 언니들과의 거리는 시간이 해결해줬다. 물론 막내로서의 본분(?)은 잊지 않았다. 아이스박스를 끌고 볼 기압을 재고 냉장고에 홍삼수를 채워 넣는 것 등 연습체육관 안에서 가장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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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지민경에게는 스포트라이트가 따라다녔다. 고모가 1980~90년대 여자배구를 호령했던 지경희 선수였기 때문이다. 늘 잘해야 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 시선들이 어렸을 때는 부담으로 다가왔지만 이제는 고모를 롤 모델 삼아 프로배구에 한 발자국씩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자신이 본 사람 중에 고모만큼 승부근성이 있는 사람은 못 봤다며 길을 가다가도 배구 얘기가 나오면 공격 폼이나 스텝을 밟으면서 걸어 다닌 적도 있었다고 웃어 보였다.

프로생활을 먼저 경험해 본 선배로서 고모가 해준 말은 없냐고 물었다. 그러자 지민경은 “고모랑 연락을 잘 안 해서…”라며 민망한 웃음을 지어보이더니 “엄마를 통해 리시브나 수비는 그런대로 잘 버텨주고 있는데 공격은 좀 더 빨리 때렸으면 좋겠다고 조언해주신 적이 있다”라고 했다.


말을 끝내던 지민경은 갑자기 생각이 난 듯 “몸 관리를 잘하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지민경도 이에 대해서는 느끼는 바가 있었다. 고모가 지금도 자신보다 웨이트를 더 많이 든다며 몸 관리를 정말 열심히 한다고 감탄을 내뱉었다.


고모를 따라다니다 배구를 시작하게 됐다던 지민경은 “고모한테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해서 뿌듯한 조카가 될 수 있게 열심히 하겠다”라며 각오를 다졌다.


프로선수로서 이제 막 발을 뗀 지민경. 그에게 올 시즌 목표를 물었다. “팀이 플레이오프에 올라갈 수 있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다치지 않고 계속 경기에 뛸 수 있었으면 좋겠고 신인상도 타고 싶다.”


글/ 최원영, 정고은 기자 사진/ 유용우, 문복주 기자


* 배구 전문 매거진 <더스파이크>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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