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터뷰] 넝쿨째 굴러온 복덩이 ‘미스 KGC인삼공사’ 알레나

매거진 / 정고은 / 2016-12-21 09: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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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실패로 돌아가는 듯 했다. 그녀를 부르는 구단은 없었다. 그렇게 좌절되는 줄 알았던 한국행. 기회는 우연치 않게 찾아왔다. 우여곡절 끝에 KGC인삼공사에 합류했다. 물음표는 있었다. ‘7번째’ 선수였고 호흡을 맞출 시간도 부족했다. 그러나 경기를 거듭할수록 자신에게 향한 의문부호를 느낌표로 바꾼 그녀다. 이제는 그가 없는 팀을 상상할 수 없게 만든 주인공, 그녀는 바로 ‘미스 KGC인삼공사’ 알레나 버그스마(26)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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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함이 이끈 2전 3기
2015~2016시즌을 앞두고 KOVO는 처음으로 여자부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제를 시행했다. 29명 참가자가 도전장을 내밀었고 알레나도 한국행에 대한 부푼 마음을 안고 트라이아웃장을 찾았다.


“할아버지께서 미군으로 한국에 2년 정도 주둔하셨어요. 한국에 대해서 좋은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특히 한국인들은 매우 열정적이라고 하셨죠. 그리고 한국이 수준 높은 배구를 한다고 알려져 있어서 한국에 오고 싶었어요.” 한국행을 결심하게 된 이유다.


여기에 하나 더, 니콜 포셋(전 도로공사) 이야기도 한 몫 했다. “니콜 포셋 선수가 한국에서 경험한 것들은 전부 좋은 기억 밖에 없다고 얘기하더라고요. 한국 음식도 맛있었다고 하고(웃음) 훈련은 힘들지만 자신을 더 나은 선수로 만들어 준다고 했어요. 팀이 가족이 된다는 얘기도 했고요. 한국에서 배구를 즐겁게 했다고 했어요.”



기다리던 드래프트 당일, 단상에 올라선 감독들이 선수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기 시작했다. 마지막 6순위 지명권을 가진 한국도로공사가 시크라를 호명하며 6개 구단 모두 선택을 마쳤다. 그러나 알레나는 끝내 불리지 않았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그녀가 원했던 한국행은 그렇게 ‘실패’로 끝이 났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 중국 리그 윈난성 팀과 인도네시아 리그 그레식 팀에서 뛰며 아시아권에서 경험을 쌓아갔다. V-리그에 대한 꿈이 다시금 얼굴을 내밀었다. 다시 찾아온 기회를 이번에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주저 없이 2016~2017 여자부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 재도전했다.



지난 4월 30일, 운명을 결정지을 드래프트 아침이 밝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자리에 착석한 알레나는 자신 이름이 호명되기만을 기다렸다. 사만다 미들본을 시작으로 메디슨 리쉘까지. 어김없이 6명 이름이 불렸다. 이번에도 그녀를 선택한 구단은 없었다. 두 번 도전은 그렇게 모두 실패로 돌아왔다.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로부터 4개월 후, 생각지도 않던 기회가 찾아왔다. KGC인삼공사가 부득이하게 외국인선수를 교체하게 된 것. 그렇게 한국행이 갑작스럽게 결정됐다. “KGC인삼공사에 합류하게 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기뻤어요. 지명을 받지 못했을 때 실망하기도 했지만 제가 한국에 올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 수 있는 기회가 온 거잖아요. V-리그에서 뛸 기회가 주어진 만큼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어요.” 그토록 원했던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알레나는 설레는 마음과 함께 지난 8월 23일 KGC인삼공사 일원이 됐다.


그러나 그녀 활약에 기대를 거는 이는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알레나는 7번째 선수였다. 서남원 감독 역시도 “알레나 영입을 결정하면서 솔직히 기대를 전혀 안 했다. 자기 역할만 해주길 바랐다”라고 털어놨다.



알레나가 합류하고 딱 한 달 뒤인 9월 23일. 청주에서 KOVO컵이 개최됐다. 이번 대회는 앞선 대회들과 달리 외국인선수 참가가 허용됐다. KGC인삼공사도 알레나와 함께 KOVO컵 무대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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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상대는 디펜딩 챔피언이자 지난 시즌 리그 준우승에 빛나는 IBK기업은행이었다. 결과는 1-3 패배. 상대 외국인 선수 리쉘이 30득점으로 맹활약한 가운데 박정아와 김희진이 각 15점과 14점으로 뒤를 받친 결과였다. 반면 알레나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야 했다. 1, 2, 4세트에 교체 출전해 2득점을 올린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단 한 경기 만에 자신을 보는 시선을 완전히 뒤집어놓았다.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였던 9월 30일 도로공사전이었다. 내리 두 세트를 내주며 벼랑 끝에 내몰린 KGC인삼공사. 알레나도 1, 2세트 통합 8점에 머물렀다. 패배의 그림자가 엄습해오던 그 때, KGC인삼공사 반격이 시작됐다. 알레나가 선봉에 섰다. 3세트에만 11득점을 올렸다. 이에 힘입어 KGC인삼공사는 3세트를 25-21로 가져오며 가까스로 한 세트를 만회하는 데 성공했다. 4세트에도 알레나가 8득점을 앞세워 KGC인삼공사를 이끌었고 결국 승부는 5세트로 이어졌다.



마지막에 웃은 건 KGC인삼공사였다. 상대 정대영 시간차 공격이 아웃 되며 전광판 숫자는 15-5를 가리켰다. 이날 알레나는 최고 활약을 펼쳤다. 후위 공격 10개, 서브 3개, 블로킹 3개 포함 32득점을 올리며 두 번째 경기 만에 트리플 크라운을 기록했다.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던 그녀, 결국 팀을 준결승에 이어 결승까지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비록 팀은 우승을 놓쳤지만 알레나는 자신에게 향한 모든 걱정을 불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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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왔다’ V-리그 그리고 득점 1위
서남원 감독조차 “어떤 선수일지 나도 궁금하다. 이렇게 잘하는 거 처음 봤다”라고 놀랐다. KOVO컵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V-리그에서도 그녀 활약은 이어졌다. 팀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올린, 아니 V-리그에서 가장 많이 득점을 올리고 있다. 6경기를 소화하며 177득점을 기록, 득점 부문 1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단지 득점만 많은 것은 아니다. 성공률 부문에서도 3위(41.29%)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11월 15일 기준)


그간 경기 중 26득점이 가장 낮은 득점일 정도로 매서운 득점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비결로 자신감을 언급했다. “득점을 올리는 데는 자신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자신 능력에 대한 자신감과 팀원들과 감독이 제가 득점을 할 것이라고 믿는 점이 큰 도움을 주죠. 또한 키가 큰 것도 엄청난 이점이에요! 득점 1위인 사실은 리그 시작하고 몇 경기를 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는데 높은 득점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요(웃음).”



높은 점유율도 그녀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외국인 선수 점유율이 높다는 점이 제가 한국에 오고 싶게 만든 이유 중에 하나였어요. 많은 양의 스윙을 소화해야 하고 높은 득점을 올려야 한다는 점이 부담을 주기도 하지만 다른 리그에서 저에게 주어진 역할도 똑같았어요. 지금까지는 초반이라 체력이 괜찮지만 시즌 동안 체력을 유지하면 아무 문제 되지 않을 것 같아요.”



그토록 원하던 무대에서 기량을 마음껏 선보이고 있는 알레나. 그가 느낀 V-리그가 궁금했다. “제가 느낀 한국배구는 수준이 높아요. 여러 나라에서 뛰어보았지만 V-리그는 6개 팀에 재능 있는 선수들이 고르게 분배되어 있어요. 때문에 어느 경기에서든 어느 팀도 승리할 수 있죠. 수비도 뛰어나고 볼 연결도 좋아요.” 이어 “한국에는 뛰어난 선수들이 많아요. 국가대표로 뛰었던 현대건설 양효진 선수와 IBK기업은행 김희진, 박정아 선수 그리고 흥국생명 이재영 선수가 인상 깊어요”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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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팀 KGC인삼공사
대체선수로 한국 땅을 밟았지만 이제 그녀 앞에 ‘대체’라는 말은 없다. 그만큼 팀에 잘 녹아 들었다. “팀원들과 호흡은 좋아요. 같이 배구를 하는 것이 정말 즐거워요. 항상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서로를 격려하죠”라며 자랑했다.



밝은 성격도 한 몫 했다. 코트 위에서 가장 큰소리로 팀원들을 격려하고 손뼉 치는 건 언제나 알레나였다. 그녀도 “원래 성격이 밝아요. 저는 매일이 지난날보다 더 나을 수 있다고 믿어요. 동료들에게는 ‘괜찮다, 잘하고 있다. 다음 거를 잡으면 된다’라고 얘기해주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어느새 팀과 함께 한 지도 3개월여란 시간이 흘렀다. 그녀가 보는 KGC인삼공사는 어떤 팀일까? “매우 경쟁력 있는 팀이에요. 1라운드에서는 팀 방향성을 찾아가고 각자 역할을 알아가기 위해서 고심했다고 생각해요. 저희 정말 많은 노력을 하고 있어요. 앞으로는 그 노력이 열매를 맺길 바라고 있죠.”



알레나도 ‘지금’에 머무를 생각은 없다. 자신을 더욱 채찍질했다. “공격과 블로킹으로 득점을 하고 있지만 범실을 줄여야 해요. 서비스 또한 더욱 보강해서 점수에 보탬이 될 수 있어야 하고요. 경기 도중 무언가가 잘 풀리지 않을 때 빨리 바꾸거나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똑같은 실수를 두 번 하지 않아야죠.”



알레나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 만큼 서남원 감독 역시 믿음을 키웠다. 알레나는 “감독께서 제게 원하시는 건 제 능력을 꾸준히 보여주는 거예요. 그리고 경기가 어떻게 흘러가든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길 바라시고요. 그래서 저한테 항상 강조하시는 것이 몸 관리예요. 몸 관리에 신경 쓰라고 하세요”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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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녕하쎄요, KOREA’
이미 여러 나라에서 리그를 치르며 ‘문화 차이’를 경험했다. 그녀에게 한국은 어떤 이미지일까? “한국은 지금까지 중 가장 적응하기 쉬운 아시아 국가입니다. 한국 음식을 좋아하고 사람들 또한 친절해요.”



하지만 알레나에게도 적응하기 힘든 것이 있었다. 바로 나이 순에 따른 서열 문화. 누가 먼저 먹는지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인사를 하는 지까지 처음에는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하지만 알레나는 이내 웃으며 “잘 적응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불고기란다.



알레나가 놀랐던(?) 것이 하나 더 있다. 그녀 입에서 연신 “great”라는 말을 내뱉게 한 건 열성적인 응원문화였다. “한국 팬들 정말 멋져요! 응원을 매우 열정적으로 하는데 저는 이 점이 좋아요. 그리고 많은 팬들이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에게 간식이나 선물을 주는데 정말 친절해요.”



짧은 한국생활이지만 그사이 추억도 생겼다. “전주에 놀러 간 적이 있어요. 그 때 대전 지역 학생들을 만났는데 비디오 촬영에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부탁을 하더라고요. 외국인이 전동 성당에 가는 길을 물어 봤을 때 대처하는 방법을 두 가지 버전으로 찍는데 길을 물어보는 외국인 역할을 해달라고 했죠. 첫 번째는 길을 물어봤을 때 친절하게 답변해주며 도움을 주는 장면을 찍었고 두 번째는 길을 물어봤을 때 도움을 주지 않는 장면을 찍었어요. 외국인 관광객에 대한 인식을 홍보하려고 찍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도움을 준 적이 있어요. 아! 그뿐만이 아니라 전주에서 한복을 입어보기도 했어요.”



알레나는 통역 박주희와 주장 한수지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저에게 가장 많은 도움을 주는 건 통역사예요.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전부 다 물어볼 수 있죠. 한수지 선수도 항상 저를 환영해주고 많은 면에서 도움을 주거나 모르는 것을 알려줘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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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를 사랑한 미스 오리건
이미 많은 팬들이 알고 있겠지만 알레나에게는 남다른 이력이 하나 있다. 바로 미인대회 출신이라는 것. 미국 오리건 대학에서 배구 선수로 활약하면서 잠시 외도(?)에 나섰다.



“제 친구 중에 켈시 모어라고 2010년 미스 텍사스인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가 저보고 대회에 참가해보지 않겠냐며 설득했어요. 저도 스포츠 말고 다른 것도 해보고 싶어서 참가를 결심했어요. 미인대회도 경쟁을 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죠. 대학교에서 배구를 하고 있던 도중이라 감독께 말씀 드리니 훈련만 빼먹지 않으면 괜찮다고 허락해주셔서 나가게 됐어요.”


그리고 2012년 당당히 미스 오리건에 뽑히며 미스 USA 선발 대회에도 출전했다. 이후 패션 모델로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 선택은 모델이 아닌 배구선수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배구가 좋았다. “모델을 할 수도 있었지만 배구가 너무 좋아요. 팀 일부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녀에게 배구의 매력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알레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배구를 시작했어요. 부모님께서 제가 키가 클 것으로 생각하고 여러 운동을 해보길 원하셨는데 저는 배구와 금방 사랑에 빠졌어요”라며 “배구가 팀 스포츠라는 점이 좋아요. 이기기 위해 한 사람이 아닌 여러 명이 필요하다는 점이 좋죠.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점도 좋아요. 반격을 해서 이기는 것이 가능하죠. 심지어 저는 점수가 19-24인 상황에서 세트를 따내서 이긴 적도 있어요”라고 전했다.



그녀 나이 26살. 벌써 배구를 한 지도 14년이 지났다. 그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고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일까. 알레나가 꼽은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17,000명 관중 속에서 자신을 응원해준 100명 팬들과 승리를 함께 나누었던 순간이었다.


반대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대학교 마지막 학년 때 NCAA(전미 대학 경기 협회) 전국 선수권에서 졌던 때라고 회상했다.



남편과 가족 그리고 그 동안 거쳐 간 모든 감독들을 비롯해 자신이 배구를 얼마나 잘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를 불어넣는다는 알레나. 이 모든 것들이 그녀가 배구를 하고 있는 원동력이었다. 알레나는 “해마다 그 전년도보다 실력이 늘고 있다고 느낀다면 계속해서 배구를 하는 것이 목표예요”라며 목표를 당차게 전했다.



하지만 그 이전에 그녀에게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지금. 알레나는 “올시즌 목표는 지난 시즌보다 더 많은 경기를 이기는 거예요. 여전히 플레이오프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저는 저희 팀이 계속해서 나아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라며 힘주어 말했다.



글/ 정고은 기자 사진/ 문복주 기자, 본인 제공


* 배구 전문 매거진 <더스파이크>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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