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하고 냉정하게, 이정철 위원이 경험한 V-리그

매거진 / 강예진 기자 / 2021-04-23 23:38:43
“내가 해설을? 상상도 못했죠”

새로운 삶은 언제나 설렌다. 나이 60세가 되어 경험한 분야라면 떨릴지도 모른다. 이정철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근 30년간 해온 지도자 생활에서 벗어나 방송 해설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는 때론 직설적이게, 때론 따뜻한 말 한 마디와 솔직한 입담으로 배구 팬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해설계에 ‘정철 스타일’이 생겼다. 자신만의 확고한 스타일로 새로운 길을 개척 중인 이정철 위원을 만났다.

 

 

직설적이면서도

칭찬은 화끈하게

 

Q__해설위원으로 바쁜 시즌을 마무리했습니다. 되돌아 보면 어떤가요.

30년 동안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코트 안에만 있었지, 다른 업무는 해보지 않았잖아요. 해설은 사실 전혀 상상도 못 했죠. ‘내가 해설을?’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했어요. 해설만의 매력이 있어요. 방향은 다르겠지만 제가 지금껏 해오던 ‘배구’라는 같은 선상에 있는 거잖아요. 제 머릿속에 정보라든지, 선수와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로 알고 있기 때문에 적응에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물론 준비를 잘해야 했지만 시청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기술적인 부분을 전달해야 하는 부분에선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어려웠던 건 옆 사람과 호흡 맞추는 거였어요. 언제 멘트가 들어가고, 빠지는지 이야기를 들어도 막연했죠. 시간이 정해진 게 아니라 순간적인 판단하에 어떤 방향으로 중계가 흘러가는지 알아야 하고, 캐스터가 묻는 말에 답도 해야 하니까요. 머릿속으론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떤 타이밍에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다가 버벅댄 적이 있었어요. 

 

Q__해설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면요.

우선은 배구가 하고 싶었어요. 감독직을 내려와서 1년은 정말 편하게 쉬었죠. 쉬는 동안 그런 여유를 가져본 적이 처음이었거든요. 여행도 가고, 골프도 치러 다녔어요. 몇 달 쉬니까 지겹더라고요. 그러던 와중에 해설 제안이 들어왔고, 고민하다가 주위에 물어보니 반반이었어요. 누구는 해봐라, 누구는 진짜 할 거냐고(웃음). 해보지 않았던 거니까 해보고 싶어서 도전했죠. 지금 돌이켜보면 실패는 아닌 것 같아요. 장소연, 이숙자, 한유미 해설위원한테 밥 사주면서 이것저것 배웠어요. 재밌더라고요. 나름대로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범주 내에 있는 거라서 그런 것 같아요.

 

Q__코트 안이 아닌 밖에서 지켜보는 경쟁, 어땠나요.

일단 마음이 편했죠. 스트레스가 없었어요. 감독을 할 땐 나름대로 성적은 좋아서 타팀에 비해서 스트레스는 덜 받았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그 자리에 있을 때 가중되는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하거든요. 거기서 벗어나니까 몸부터 달라지더라고요. 

제가 몸 관리를 잘하는 편이거든요. 사실 팀에 있을 땐 짧은 거리도 차 타고 다니고, 개인 운동 할 시간이 얼마 없잖아요. 그러다가 쉬면서 산도 오르고 생활운동을 하니까 속에 차 있던 스트레스성 가스가 없어졌어요. 즐기다 보니 건강이 훨씬 좋아졌죠. 


Q__첫 해설, 기억나나요. 떨렸을 것 같아요.

첫 현장 중계가 대전에서 열린 KGC인삼공사와 IBK기업은행 경기였어요. 현장 중계 전에 컵대회 때 옵튜브(OFF-TUBE)를 했거든요. 그때 스튜디오에서 했던 게 도움이 많이 됐어요. 현장에서는 약간의 긴장감만 있었지 전혀 떨리지 않더라고요. 말을 조금 버벅댈지언정 떨어서 못할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제가 쉬는 동안에 지난 시즌 중계를 한 차례도 빼놓지 않고 봤던 것도 도움 많이 됐죠. 

 

Q__해설할 때 본인만의 색깔을 만드는 게 중요하잖아요. 위원님 스타일은 어떤가요.

해설한다고 했을 때 호불호가 분명할 거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어요. 모두까기? 이런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죠. 감독할 때와 마찬가지겠지만 선수의 결정에 관해서는 뭐라고 안 해요. 해설할 때도 같아요. 예를 들어 A팀 공격 플레이가 좋아서 득점이 나잖아요? 수비가 공격보다는 우선 순위에서 뒤지니까 공격에 대한 칭찬을 하죠. 만약 B팀이 공격을 했는데 득점 날 상황이 아닌데 A팀 수비 범실로 득점이 나면 공격을 칭찬하기보다는 수비하지 못한 부분을 짚어내요. 충분히 수비할 수 있는 걸 하지 못한 거잖아요. 시청자들에게 설명해 줄 필요가 있어요. 이런 식으로 해설 방향을 잡아가고 있어요. 

 

Q__해설 전 특별히 준비했던 게 있나요.

직전 경기 기록을 가장 기본적으로 준비해요. 그날 컨디션에 따라 경기력이 달라지잖아요. 직전 경기 컨디션이 당일 경기 몸 상태를 예측할 수 있는 기반이 되거든요. 다음으로는 누적기록, 특히 공격 성공률을 봐요. 그리고 항목별 팀 순위, 개인 순위 등을 참고하죠.

 

 

꾸밈없는 모습을 담은 ‘정철TV’

“살아있는 그대로를 원하니까요”

 

Q__‘이정철 위원’ 하면 ‘정철TV’이야길 안 할 수 없는데요.

어휴… 처음에 제안받았을 때 ‘이거 누가 보겠나’하고 생각했죠. 제가 스타플레이어 출신도, 유명한 사람도 아니잖아요. 민폐 끼칠까 걱정 많이 했죠. 생각보다 반응이 괜찮다고 생각하니까 안심도 되고, 자신감도 생기더라고요. 살아있는 그대로를 원하더라고요. 준비하다 보니 요령도 생기고, 재밌게 하고 있어요. 여태껏 하지 않았던 콘텐츠라 그런지 담당자들도 되게 좋아하고, 흡족했어요. 촬영하면서 느낀 건 기술자는 정말 기술자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실제로 편집해서 나온 결과물을 보면 정말 매끄럽잖아요. 프로그램 컨셉에 맞게끔 만들어 주는 게 참 대단하더라고요. 다 차려놓은 밥상 위에 제 숟가락만 올린 느낌이에요. 고생하는 스태프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Q__이정철 위원만의 솔직한 입담이 사랑을 받았습니다.

제 나름의 판단과 사고가 있잖아요. 잘못한 게 아닌 주관적인 판단 하에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방송에서도 이야기하지만 실명이 오갈 때 항상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곤 해요. 좋은 이야기만 할 순 없잖아요. 그럼 무슨 재미로 봐요(웃음). 실제로 분명하게 할 건 하고, 냉정하게 판단해서 말하는 게 맞죠. 짜인 것처럼 연출하고 싶진 않았어요.

 

Q__선수들과 에피소드가 더욱 이목을 모았는데요.

‘이런 이야길 해야지’하고 미리 준비하는 건 아니에요. 이야기하다가 툭 튀어나와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거죠. 예정됐던 게 나오는 건 하나도 없어요. 타이밍이 신기한 게, 최근 (김)유리가 엄청 핫하잖아요. 제가 일부러 이야기한 게 아니고 사실 그대로를 말한 건데 화제가 되더라고요. 감독으로 있을 때 유리가 체육관 적응 훈련을 올 때면 간식을 바리바리 싸서 가져와요. 고구마 말린 간식 같은 거요. 그런 건 돈으로 살 수 없잖아요. 고마웠죠. 최근에 또 같이 인터뷰를 하게 됐어요. 분량이 많진 않지만 재밌는 추억거리로 남을 것 같아요.

 

Q__‘가가멜’이라는 별칭을 들으면 어떤가요.

정확히 어떤 의미인 줄은 몰랐거든요. 크게 생각을 하거나 거부반응이 있진 않아요. 찾아보니까 스머프를 괴롭히고, 국 끓여서 잡아먹는 캐릭터더라고요. 제가 가가멜이면 선수들이 스머프라는 건데… 전 선수한테 당하진 않았습니다(웃음). 양념으로 활용하는 것까진 괜찮아요.

 

Q__‘정철TV’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콘텐츠가 있다면요.

제 아들이 나왔을 때요. 상상도 못 했어요. 이순철 야구 해설위원이랑 ‘모두까기’ 컨셉으로 진행한 콘텐츠였는데 마지막에 이순철 위원 아들이 영상으로 나오더라고요. 프로야구 선수거든요. 그걸 보면서 ‘어? 나도 나올 텐데 누가 나오려나…’하고 생각했어요. 제 아들도 축구선수긴 하지만 K3리그에 있거든요. 거기까지 가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죠. 그냥 ‘선수 중 한 명이겠지’라고 생각은 했는데, 지금 시즌 중이잖아요. 어떤 선수를 하건 요청하기 쉽지 않단 말이죠. 그리고 시기적으로 요청을 하면 안 되고요. 영상을 보는데 아들이 나오더라고요. 작가들이 찾아냈어요. 제가 모르는 사이 아들 번호를 입수해서 연락했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거짓말인 줄 알았죠. 깜짝 놀랐어요 정말(웃음).

 

Q__아드님이 말을 잘하더라고요. 유전인가요?

그러게요(웃음). 사실 아들이 축구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배구를 권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 병원에 가서 성장판을 찍었는데 예상 신장이 184~185cm더라고요. 그래서 배구는 못 시켰죠. 본인이 축구를 하겠다고 하니까 허락했는데, 지금 키가 190cm가 넘어요. 훨씬 커버렸죠(웃음). 지금 골키퍼예요.


Q__‘정철TV’ 댓글 보신 적 있나요.

전혀 몰랐는데, 한 번 반응이 좋다고 이야기하길래 어디서 보는지 물어보니까 유튜브에서 본다고 하더라고요. 2~3번 정도 봤는데 (댓글) 내용이 되게 좋더라고요. 놀랄 정도였어요. ‘전문적이다’, ‘도움 많이 된다’ 등 기술적인 측면에서 자세하게 이야기해줘서 고맙다고 할 때면 정말 흐뭇하죠.

 

“열심히 했다는 사람으로 기억되고파”


Q__가장 기억에 남는 시즌은 언제인가요.

감독할 때로 생각해보면, IBK기업은행 창단 후 2년만에 통합우승한 것도 기억이 나지만 오히려 2015-2016시즌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맥마흔이 있을 땐데, 손가락이 골절됐고, 김희진도 부상이었거든요. 정규리그 우승은 물 건너간 게 사실이었는데, 우승했죠. 제가 별 3개를 달았을 때도 안 울었는데, 그땐 선수들한테 감동받아서 눈물을 흘렸죠.

 

Q__‘이정철’ 하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열심히 했던 사람이요. 정말 저 사람은 배구에 대해서는 지독할 정도로 열심히 했고, 준비했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배구 외에 한눈 판 적이 없거든요. 지도자 생활도 떳떳하게 해왔어요.  그런 부분에서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저만의 것을 잘 찾는 사람으로 남고 싶네요.

 


Q__앞으로 목표가 궁금하네요.

크게 정해 놓진 않았어요. 하루하루 이렇게 지내는 거죠. 저 아직 젊어요(웃음). 다시 지도할  기회가 오면 또 한번 해보고 싶고, 아니면 그만이고요. 해설도 다음 시즌엔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편안하게 흘러가는 대로 하고 싶어요. 어떤 걸 무조건 하겠다는 큰 욕심보다는 물 흐르듯이 기회가 되면 하는 거고… 그런 생각이에요.


Q__마지막으로 배구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릴게요.

해설위원을 했지만 감독시절 이미지가 여전히 남아있어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제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이런 부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유연해 보이지 못하고 선수들한테 지적만 하는 이미지가 굳어져 있는데 그렇게만 봐주시지 않으셨으면 해요. 최근에는 해설하면서 제가 봐도 일부분은 유연해진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서 나름대로 더 노력할 거에요. 해설할 때 배구 팬들, 시청자분들에게 유익한 정보, 좋은 메시지를 줄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 할 듯하네요. 

 

글. 강예진 기자   

사진. 문복주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4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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