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자리가 여기니까...’ 배구와 함께 잠에 드는 현대의 멀티 플레이어
- 남자프로배구 / 대전/김희수 / 2023-02-16 07:00:13
두 가지 포지션을 오가는 일이 힘들 만도 하지만, 허수봉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고된 훈련을 끝내고 잠에 드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며 하루를 마쳤다.
현대캐피탈의 토종 에이스 허수봉은 지난 4라운드부터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았다. 바로 미들블로커로 경기에 나서는 것이다. 최태웅 감독은 허수봉을 미들블로커로 투입하고 홍동선을 아포짓으로 투입하면서 공격력과 서브를 강화하고 상대방 블로커와 수비를 교란시키는 전술을 구상했다.
이 변칙 전술은 지난 4라운드 OK금융그룹과의 경기부터 가동됐다. 성과는 유의미했다. 허수봉을 미들블로커로 투입한 4경기에서 3승 1패를 거두며 호성적을 거뒀다. 이 중에는 시즌 내내 한 번도 이기지 못했던 1위 대한항공을 꺾은 경기도 있었다. 허수봉 역시 자신의 역할을 무난히 수행했고, 남자부에서는 보기 드문 이동공격까지 성공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최태웅 감독은 15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리는 삼성화재와의 도드람 2022-2023 V-리그 남자부 5라운드 경기를 앞두고 원래대로 허수봉을 아포짓으로 복귀시킬 것을 밝혔다. 공격력 강화와 사이드 블로킹 보강을 위한 선택이었다.
경기 후 인터뷰실을 찾은 허수봉은 “1위와 승점 차가 크지 않아서, 최대한 많은 승리를 거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승리해서 기분이 좋다”는 짧은 소감을 먼저 밝혔다.
미들블로커와 아포짓을 오가는 것이 어렵지 않냐는 질문에 허수봉은 “큰 어려움은 없다. 경기 전날에 경기에서 내가 서야 할 포지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면서 잠에 든다”는 답변을 들려줬다. 그야말로 자나 깨나 배구 생각뿐이었다. 허수봉은 “어느 자리에서든 팀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씩씩한 포부도 함께 전했다.
허수봉은 이날 경기에서 출발이 좋지 못했다. 1세트 공격 성공률이 20%에 그치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2세트부터는 눈에 띄게 공격력이 좋아진 모습이었다. 이에 대해 허수봉은 “(이)현승이와의 호흡이 1세트에 조금 흔들렸다. 그래도 현승이를 믿고 있었다. 2세트부터는 현승이가 좋은 토스를 올려줘서 좋은 공격을 할 수 있었다”며 이현승에게 공을 돌렸다.
이날 허수봉은 삼성화재 선수들과의 전위 심리전에서 완승을 거뒀다. 공격을 할 때는 삼성화재 블로커들을 역이용하며 손쉽게 점수를 올렸고, 블로킹을 뜰 때는 직선 코스를 확실히 방어하며 삼성화재 선수들의 공격을 무력화시켰다.
허수봉은 “4라운드 삼성화재전 때 내가 있는 쪽에서 공격을 많이 허용했다. 그 경기를 복기하면서 직선 코스를 최대한 잘 지켜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공격을 할 때는 상대 블로킹을 끝까지 보려고 노력했다. 또 어려운 공들을 억지로 상대 코트에 집어넣으려고 하면 블로킹에 걸리는 경우가 많아서 최대한 터치아웃을 노렸다”고 전위에서의 플레이를 돌아봤다.
현대캐피탈의 향후 일정은 그리 쉽지 않다. 18일에 의정부 원정을 떠나 KB손해보험을 상대한 뒤, 21일과 24일에 우리카드와 연전을 갖는다. 휴식일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허수봉은 자신감을 드러냈다.
“감독님이 경기 후에 컨디션 관리를 잘 해주고 계신다. 선수들 스스로도 몸 관리를 열심히 하고 있다. 큰 걱정은 없다”고 밝힌 허수봉은 “우리는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하면서 팬 여러분들에게 좋은 경기를 보여드려야 한다. 감독님 말씀처럼, 우리에게 우승의 기회는 반드시 온다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의 플레이를 하면서 남은 경기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며 투지 실린 답변을 내놨다.
잠에 드는 순간까지도 자신이 해야 할 것들을 생각하며 배구에 열중하는 허수봉의 모습은 현대캐피탈의 현재 순위와 이날의 경기 결과를 납득하게 만들었다. 허수봉이 다음 경기에서는 어느 포지션으로 나설지,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배구 팬들의 기대감은 점점 커져 간다.
사진_대전/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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