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의 마음 훔친 오세연 X 차세대 미들블로커 김민재
- 매거진 / 박혜성 / 2022-12-08 12:00:50
요즘 배구인들과 방송사 해설위원, 각 팀 관계자들 사이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이름이 있다. 신인드래프트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혜성처럼 등장해 팀의 주전으로 자라 잡은 이들이다. 공교롭게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용감하게 프로 무대에 뛰어들었던 젊은 선수들이다. 아직은 성급한 얘기지만 한국배구의 미래이자 차세대 국가대표 후보로도 주목받는다. GS칼텍스 오세연과 대한항공 김민재가 주인공이다. 각각 3번째, 2번째 프로 시즌을 보내고 있는 젊은 청춘들은 도드람 2022-2023 V-리그 초반부터 감독과 팬들에게 확실히 눈도장을 찍었다. 배구 전문가뿐만 아니라 팬들의 마음마저 훔친 두 선수의 이야기를 <더스파이크>가 담아봤다.
인생을 바꾼 리우 올림픽
2016년, 또래 중에 키가 큰 편에 속했던 여학생은 우연히 제31회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배구 경기를 보게 됐다. 이후 배구에 관심이 생겼고 V-리그까지 챙겨보다 직접 배구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GS칼텍스 미들블로커 오세연의 이야기다. “리우 올림픽을 보고 배구를 알게 됐어요. 너무 재밌게 봤거든요. 이후에 V-리그까지 챙겨보다가 배구를 직접 하고 싶은 마음에 부모님께 배구를 시켜달라고 말씀드렸어요”라며 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를 털어놓았다.
원래 육상을 했지만 고1 때 진로를 변경했다. 배구를 좋아하는 마음에 시작은 했지만, 남들보다 늦은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배구를 시작한 동기들과 비교하면 여러 면에서 뒤처진 상태에서 따라가야 했다. 힘들고 어려웠던 점들 투성이었다. “배구를 시작한 뒤 아무리 노력해도 기본기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기본기는 정말 쉽게 늘지 않더라고요. 지금도 프로에 있지만 기본기의 부족함을 느끼고 많은 연습을 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180cm의 신장인 오세연은 2020-2021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6순위로 GS칼텍스 유니폼을 입었다. 배구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프로선수가 된 순간이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해서 꿈을 이룬 결과는 만족스럽지만 프로팀 지명으로 해피엔딩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때부터 진정한 직업 배구선수로서의 힘든 삶이 기다렸다. 누구나 겪어야 할 힘든 루키 시절. 꿈에 그리던 프로무대에 입성한 오세연은 하루빨리 코트에 나서고 싶었지만, 당시 GS칼텍스는 여자부 최초로 트레블을 달성할 만큼 좋은 전력의 팀이었다. 기본기마저 제대로 갖추지 못한 신인이 코트에 나서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결국 첫 시즌에는 한 세트도 출전하지 못하고 시즌을 마감했다.
두 번째 시즌도 크게 다를 건 없었다. 같은 포지션(미들블로커)에는 한수지, 문명화, 김유리, 권민지 등이 버티고 있었다. 기량이나 경험치, 신장 등 어느 것 하나 그들보다 앞서는 것이 없었다. 데뷔 시즌과 마찬가지로 가뭄에 콩 나듯 출전 기회가 생겼다. 2경기 2세트에 출전해 단 2득점을 기록하며 프로에서 두 번째 시즌을 보냈다. 보통의 선수였다면 여기서 포기하고 다른 길을 알아봤을 수도 있었다. 선택받지 못한 서러움을 안고 조용히 프로무대를 떠난 선수들도 많았다.
그러나 오세연은 달랐다. 일단 포기하지 않았다. 두 시즌 동안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웜업존에서 보냈지만 기다리면서 눈으로 보고 배운 것도 많았다. “비록 웜업존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았지만 거기서도 배우는 게 많았어요. 언니들이 상황에 맞게 움직이는 거나 네트 플레이하는 걸 보고 훈련 때 따라 하곤 했어요. 경기에 들어가진 못했어도 지난 두 시즌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묵묵히 버텨내는 오세연을 위해 언니들도 적극적으로 조언을 해줬다. “수지 언니나 유리 언니는 내가 블로킹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고 있으면 바로 피드백을 해주세요. 그뿐만 아니라 많은 조언을 해주셔서 정말 많은 도움이 돼요”라며 감사함을 전했다.
이름을 알렸던 코보컵
“나에게는 시작점이죠”
언니들의 기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땀을 흘리고 숨이 멎기 직전까지 힘든 고비를 넘기며 점프를 해온 결과는 KOVO컵에서 찾아왔다. 2021년 의정부 컵대회에서 가능성을 조금 보여줬던 오세연에게 기회의 문이 조금씩 열렸다.
오세연이 본격적으로 배구 팬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2022 순천·도드람컵 프로배구대회 때부터다. 첫 경기부터 선발로 나선 오세연은 예선 두 번째 경기 흥국생명전에서 블로킹 6개 포함 12점을 올리며 맹활약을 펼쳤다. 특히 공격 성공률은 75%를 기록하며 차상현 감독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이날 경기는 오세연이 뽑은 가장 기억에 남는 인생 경기였다. “컵대회에서 흥국생명과 했던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5세트까지 가는 치열한 경기였고 경기 내내 팽팽했거든요. 그래서 더 이기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이겨서 정말 좋았어요”라고 기억했다.
이후 현대건설과 치른 4강전에서 블로킹 4개 포함 10점을 올리며 활약했고 한국도로공사와 결승전에서도 6점을 올리며 팀 우승에 큰 힘을 보탰다. 오세연은 “2022 순천·도드람컵 프로배구대회는 나에게 ‘시작점’인 것 같아요. 컵대회 이후로 기회를 많이 받고 있잖아요. 그리고 그 대회에서 많은 걸 느끼고 훈련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라고 했다.
또래보다 운동신경 좋았던 소년
3년 만에 프로무대로
여자부에 오세연이 있다면 남자부에는 김민재가 있다. 그도 오세연과 마찬가지로 고등학교 1학년이라는 늦은 시기에 배구공을 처음 잡았다. “전문적으로 배구를 시작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입니다. 중학교 때 스포츠클럽으로 여러 운동을 하다가 배구에 흥미를 느꼈고 때마침 인하부고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와서 배구를 시작하게 됐어요” 라고 했다. 그는 또 “중학교 때는 학교에서 열리는 모든 스포츠 클럽 대회는 다 나갔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또래 친구들 중에서 운동 신경은 좋았던 것 같아요(웃음)”라고 털어놓았다.
그저 배구가 좋아서 시작했던 김민재는 고등학생 시절 동안 정말 배구를 즐기면서 했다. “그때는 공격과 블로킹만 할 줄 알았어요. 아무래도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다 보니까 다른 건 많이 미숙했죠. 그래도 3년 동안 정말 생각 없이, 부담 없이 배구를 즐기면서 했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배구를 시작한 지 3년. 짧은 시간이지만 김민재는 뛰어난 운동신경과 가능성을 믿고 프로 무대에 도전했다. 다행히 2021-2022 신인선수 드래프트 현장에서 2라운드 1순위 지명권을 가진 대한항공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은 그를 호명했다. 발표 순간 다른 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왜”라는 표정과 “뭐가 있길래”라는 표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대한항공은 그 선택에 자신이 있었지만 아직 많은 것이 부족한 선수의 가능성만 보고 뽑는 결단에 찬성하지 않는 구단들도 많았다.
다만 당사자인 김민재로서는 만족했다. “정말 너무 좋았어요. 대한항공은 모든 선수들의 워너비 팀이잖아요. 그런 팀에서 불러주니까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어요”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하지만 프로의 세계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도 않은 어린 선수가 바로 도전하기에는 너무 높은 벽이었다. 고등학생 때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배구가 기다렸다. 훈련도 마찬가지였다. 김민재는 “처음 대한항공에 왔을 때 적응하기가 많이 어려웠어요. 프로라는 무대는 고등학생 때 경험했던 배구와는 정말 많이 달랐거든요. 진짜 벽이 있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라고 털어놓았다.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프로 무대에 도전한 것에 “후회는 없다”는 김민재다. “대학교에 가지 않고 프로에 바로 온 게 장점도 많아요. 우선 선수가 가장 중요한 게 부상 당하지 않는 거잖아요. 만약 내가 아프더라도 체계적으로 관리 받을 수 있어요. 그리고 프로는 전력 분석관이나 코치님들이 많이 계시기 때문에 내게 맞는 훈련을 할 수 있어요. 내가 부족한 부분들을 다 알려주시고 그걸 보완할 수 있게 훈련시켜 주세요. 훈련 역시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곳이죠. 그리고 가장 큰 장점은 높은 수준에 있는 형들과 같이 훈련하고 경기하다 보니 내 실력도 덩달아 많이 늘 수 있는 것 같아요”라고 이야기했다.
“비시즌 동안 정말 열심히 했어요”
프로 데뷔 첫 시즌이었던 2021-2022시즌, 김민재는 7경기 14세트 28점을 기록했다. 아예 코트를 한 번도 밟지 못한 다른 신인 선수들과 비교하면 긍정적인 수치였다. 물론 김민재는 만족하지 않았다. 프로에서 보내는 첫 번째 비시즌 동안 독한 마음으로 훈련했다.
“비시즌 동안 정말 열심히 했어요. 스텝부터 서브, 공격, 블로킹할 것 없이 뭐든지요. 감독님께서 세세하게 하나하나 다 알려주셨는데 그대로 정말 열심히 했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그리고 알려주시는 것이 이해되지 않거나 궁금한 게 생기면 바로 여쭤봤어요. 그것들을 응용해서 실전 때 사용하려고 했어요”라고 말했다.
비시즌에 김민재가 흘린 땀은 성장으로 돌아왔다. 김민재는 “블로킹이 가장 많이 늘었어요. 고등학생 때는 리딩 블로킹, 맨투맨 블로킹의 개념도 정확하게 몰랐는데 프로에서 많이 훈련하고 노력하면서 성장한 것 같아요”라고 설명했다.
김민재는 자신의 성장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장광균 코치를 말했다. “물론 토미 감독님도 계시지만 장광균 코치님이 많이 도움을 주세요. 프로에 처음 왔을 때 적응하기도 힘들었는데 잘 챙겨주시고 경기가 안 될 때는 내 영상을 보내주시면서 타이밍, 공격, 스텝, 블로킹 다 체크해주시고 알려주세요”라고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대한항공의 우승청부사
김민재
김민재는 유난히 우승 복이 많다. 프로에 입단 후 치른 모든 대회(2021-2022시즌 정규리그, 2021-2022시즌 챔피언 결정전, 2022 순천·도드람컵 프로배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사실 고등학생 때는 우승 경험이 없어요. 매번 예선 탈락만 했었죠(웃음). 하지만 대한항공은 잘하는 형들이 정말 많잖아요. 그래서 우승할 수 있어요. 우승을 많이 하니까 기분이 진짜 좋더라고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김민재는 프로에서 많은 경기를 뛰지 않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 2021-2022시즌 6라운드 삼성화재의 경기를 꼽았다. “당시 (유)광우 형이랑 (조)재영이 형 빼고 신인급 선수들로 나온 경기였어요. 우리끼리 재밌게 웃으면서 했던 경기고 내가 좋은 활약을 했던 경기였고 승리까지 해서 기억에 남습니다”라고 전했다. 이날 경기에서 김민재는 한 경기 최다 득점(18점), 공격 득점(11점), 공격 성공률(64.7%), 서브(4점), 디그(4개)까지 총 5개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아직 시즌 초반이지만 좋은 모습을 꾸준히 보여주는 김민재의 시즌 목표는 BEST 7이다. 당찬 목표이지만 놀라기에는 일렀다. 배구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최종 목표를 묻자 “은퇴하기 전까지 미들블로커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올리고 싶습니다. 득점뿐만 아니라 블로킹도 가장 많이 하고 싶어요”라고 힘줘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감사한 말을 전하고 싶은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 기다렸다는 듯 많은 말들이 줄줄이 터져 나왔다. “팀 형들에게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어요. 규민이 형이랑 재영이 형은 블로킹 스텝이나 공격적인 부분을 많이 알려주세요. 워낙 베테랑이시다 보니 많이 도움 되고 덕분에 실력도 많이 늘 수 있어요. (한)선수 형은 대한항공에 처음 왔을 때 선수 형이 은퇴하기 전까지 같이 뛸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지금 함께 코트에서 뛰고 있으니까 아주 좋아요. 항상 공도 많이 올려주시고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꼭 전하고 싶습니다”
글. 박혜성 기자
사진. 더스파이크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12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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