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손해보험에 후인정 감독 시대 개막 "재밌게 열심히 하자, 나를 믿고 따르라"
- 매거진 / 강예진 / 2021-06-26 22:35:26
아버지가 뛰던 그곳에서, 아들이 감독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KB손해보험 새 사령탑 후인정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후인정 감독은 귀화 선수로서 태극마크를 단 유일한 선수였다. 1996년 현대자동차서비스에 입단, 당시 독주하던 삼성화재를 꺾고 2005-2006시즌 통합우승을 차지하는 데 일조했다. 2013-2014시즌엔 남녀부 통틀어 40대 최고령 선수로 V-리그에서 맹활약했다. 은퇴 후 한국전력 코치, 경기대 코치와 감독 그리고 다시 프로로 돌아와 감독까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온 후인정 감독은 <더스파이크>와 인터뷰하는 내내 ‘소통과 자율’을 강조하며 차기 시즌을 기대케 했다.
아버지가 뛰던 그곳에서
생각보다 이르게 찾아온 기회
Q__감독 부임 후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선수들 휴가 복귀 후 지난 10일부터 본격적으로 훈련을 시작했어요. 선수들이 휴가기간 동안 4주 이상을 쉬었기에 첫 주는 스트레칭을 통해 회복 훈련을 우선으로 하고 있답니다. 몸 근육을 풀어주면서 코어, 가벼운 웨이트트레이닝 정도로요. 오늘은 선수들이 볼을 차고 싶다고 해서 실내보다는 햇빛을 쐴 수 있는 경기대 풋살장에서 축구를 하려고 합니다.
Q__감독직을 제의받았을 때 어땠나요.
일단 솔직히 정말 놀랐어요. 그러고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기뻤고요. 구단에서 저를 좋게 평가해주셨어요. 저도 프로 감독직 생각은 있었지만 대학 감독 3~4년 정도 더 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일찍 오게 됐어요. 몇 년이 될진 모르겠지만 선수들한테 ‘너네와 얼마나 함께할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같이 하는 동안은 즐겁게 웃으면서 분위기 만들어 보자’라고 이야기했어요. 경기는 선수들이 하는 거지만, 승패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고요. 감독인 내가 책임진다고도 했어요.
Q__제의를 받았을 때, 망설여지진 않았나요.
아니요. 그런 건 없었어요. 구단에서 워낙 적극적으로 나섰거든요. 구단에서 제의가 오고 난 바로 다음 날 결정했어요. 경기대 쪽에도 통보하고, 일 처리를 했고요.
Q__아버지가 뛰었던 팀에 지도자로 오게 됐어요. 기분이 남다를 것 같아요(아버지 후국기 씨는 1976년 금성통신 배구단 창단 멤버다. 금성통신은 LG화재-LIG손해보험을 거쳐 KB손해보험으로 이어졌다).
뭐라고 해야 할까... 대학교도 마찬가지였어요. 아버지께서 나오신 대학에 제가 지도자로 들어갔고, 프로 생활을 했던 팀에 또 지도자로 오니까 새로웠어요. 감회도 남달랐고, 영광스러웠죠. 아버지께서도 제가 감독으로 간다는 이야길 듣고 나서 많이 좋아하셨어요. 여담이지만, 구단에서 저를 좋게 평가하고 뽑으신 것도 아버지가 프로 때 하셨던 명예로운 선수 생활 덕분이라고 하더라고요. 아버지한테 감사할 따름이죠.
Q__아버지께서 따로 조언도 해주시던가요.
제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자식은 자식이더라고요. 아버님이 걱정 많이 하셨어요. 처음에는 안정적인 대학에서 지도자를 좀 더 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제가 결정한 일이니 가서 후회 없이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주셨어요.
Q__한국전력 코치 이후 4년 만에 프로에 돌아오셨습니다. 그때와 분위기 자체가 많이 다르죠.
확실히 달라졌어요. 물론 4년 전에도 선수 모두가 열심히 했지만, 지금은 선수들 본인이 어떻게 뭘 해야 할지를 잘 알고 있어요. 지도자가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지 않아도 스스로 열심히 하거든요. 운동 환경도 업그레이드됐죠. 최적의 환경에 분위기도 자율적이고요. 앞으로도 계속 바뀌어 갈 것으로 생각해요. 저번 인터뷰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감독이나 코치, 트레이너, 구단, 사무국은 조연이고, 환경이나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역할뿐이에요. 주인공은 선수들이죠. 선수들이 잘해서 성적을 내주면 그 친구들도 좋지만, 옆에 있는 우리도 같이 빛날 수 있거든요. 강요하지 않고 분위기를 잘 만들어 준다면 좋은 성적 날 것이라 자부할 수 있습니다.
Q__감독 발표 후 주위에서 축하를 많이 받았을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연락은 뭔가요.
다들 ‘열심히 해라’라는 축하 연락을 보냈죠. 제가 3월 1일자로 경기대 감독으로 정식 부임했었어요. 그때도 축하한다는 전화 많이 받았거든요. GS칼텍스 차상현 감독님께서 화환도 보내주셨고, 경기대 동문회에서 보내준 화환도 받았어요. 그러고 딱 한 달 뒤에 KB손해보험으로 간다는 기사가 떴잖아요. 동문회 총무가 현대캐피탈 임동규 코치인데, 축하한다는 인사와 함께 화환은 구단 쪽으로 못 보내겠다고 따로 꽃만 떼서 가져가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그 축하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Q__ 케이타와 재계약하긴 했지만, 트라이아웃 현장이 첫 공식 석상이었습니다. 떨리진 않으셨나요.
전혀 떨리지 않았어요. 똑같은 자리는 아니었지만 선수 생활할 때도 비슷한 자리에 참석한 경험이 있었고, 한국전력 코치할 때도 단상에만 올라가지 않았을 뿐 트라이아웃에 참여했거든요.
현 시스템 유지하며 변화 모색
미들블로커진 강화에 좀더 신경
Q__감독님이 추구하는 방향성은 어떻게 되나요. 감독님만의 색깔이 있을 것 같아요.
지금 틀에서 크게 변하는 건 없죠. 비시즌 동안 FA로 보강된 선수도 없고, 트레이드도 당분간은 쉽지 않아요. 기존 선수들로 시즌 준비를 해야 하는데, 올해는 타 팀 외인들 실력이 모두 좋아요. 제가 생각하는 부분은 다른 팀을 만날 때마다 포지션에 조금씩 변화를 주려고 해요. 예를 들어, 케이타를 윙이나 아포짓 등 여러 자리에 오가는 것에 포커스를 맞춰 준비하려고 합니다.
Q__트라이아웃 당시 ‘케이타보다 못하는 선수가 없다’라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만큼 올 시즌, 국내 선수들의 활약이 중요해 보이는데요.
그렇죠. 우리 팀에 좋은 선수는 많아요. 세터 황택의, 미들블로커진 등. 특히 미들블로커 쪽에서 신경을 좀 더 써줘야 해요. (김)재휘도 그렇고 (박)진우, (김)홍정이까지. 잘하고 있지만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하죠. 윙스파이커쪽에선 황두연이 작년에 제대 후 팀에 합류했지만 몸상태가 좋지 못해서 경기 투입이 적었죠. 몸 잘 만들어서 팀에 보탬이 될 선수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Q__현역 선수 시절 미들블로커로도 활약했잖아요. 미들블로커진 활약에 초점을 둔 만큼 비법 전수가 가능해 보이는데요.
솔직히 제가 선수 생활할 때 여러 포지션에서 뛰었지만, 주위에서도 그렇고 제가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블로킹’에 자신이 있었어요. 제가 아는 선에선 선수들에게 뭐든 이야기해줄 거고, 그렇게 하게끔 만드는 게 제 역할이죠. 노력해야 할 듯해요.
Q__차기 시즌 KB손해보험 경기를 보고 난 후 주위에서 꼭 듣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예를 들어 ‘KB손해보험이 이 부분에선 정말 달라졌다’라는 말이요.
‘진짜 재밌게 열심히 한다’라는 이야기요. 어느 팀이든 그런 소리를 듣고, 선수들이 그렇게 하는 게 쉽지 않죠. 경기서 지거나 분위기가 좋지 않을 때 그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것조차 쉽지 않잖아요. 그래도 선수들에게 항상 ‘열심히 해서, 지더라도 팬들이 봤을 땐 정말 열심히 했구나’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끔 하라고 말해요. 지고 나서 책임은 제가 진다고요. 졌다고 고개 숙이지 말고, 코트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며 미소 짓고 나올 수 있게끔 하라고요.
Q__활기찬 부분을 강조하신다는 거죠.
당연한 이야기지만 프로선수라면 공과 사는 확실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코트 안에선 프로선수답게 운동하고, 밖에선 일반인처럼 놀아야지 그 둘을 혼동한다? 안되죠. 구분할 줄 알아야 멋있는 선수고, 진정한 프로니까요.
무엇이든 정확하게 하는 스타일
플레이오프 진출이 1차 목표
Q__기간이 길진 않지만, 4일간 지내본 KB손해보험은 생각했던 분위기 그대로인가요.
작년이랑 달라진 건 없어요. 이상렬 감독님이 계셨을 때와 비슷한 것 같더라고요. 감독 발표가 나고 나서 선수들과 대면식을 할 때 선수들한테 이야기했죠. ‘경기대에서 이상렬 감독님과 오랫동안 생활했고, 스타일도 비슷하기에 크게 달라지는 건 없을 거다. 그렇지만 너희들이 해줘야 할 건 분명하게 해야 한다. 프로선수답게 운동하고, 프로선수답게 생활해야지 어긋나면 제재를 가하겠다’라고요. 그 외적으로는 편하게 하자고 이야기했어요.
Q__후 감독님 선수 시절을 빼놓을 순 없잖아요. 떠올려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시즌은 언제인가요.
여러 해가 있어요. 하나는 귀화해서 태극마크를 처음 달았을 때. 그때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죠. 그리고 현대캐피탈에 있으면서 9년 동안 삼성화재에 매번 챔피언 자리를 내줬잖아요. 아무리 잘하는 선수라도 우승 한 번 못하고 은퇴하는 선수가 많은데, 제가 그렇게 되는 건 아닌가 하고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다행히 운 좋게 우승을 했죠. 우승했던 날이 다음으로 기억에 남네요.
Q__미들블로커뿐 아니라 아포짓, 윙스파이커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왔는데, 힘든 부분은 없었나요.
저는 오히려 재밌었어요. 주로 아포짓에서 뛰다가 윙스파이커, 미들블로커를 했는데, 윙과 아포짓은 크게 차이가 없었어요. 미들블로커는 공격보다 블로킹에 치중하다 보니 스텝을 밟으며 따라다니는 게 어색해서 그렇지 저는 다 재밌게 했던 것 같아요. 포지션마다 장단점이 있고 재미도 다르거든요.
Q__선수로서 어떤 스타일을 선호하셨나요.
저는 뭐든 정확하게 하는 걸 좋아해요. 만약 찬스볼이 넘어왔을 때 어떤 선수는 대충 받아놓고 공격에 바로 들어가는데, 저는 그런 플레이는 별로 반기지 않아요. 정확하게 받아놓고 공격할 시간도 충분한데, 급하게 받고 미리 공격으로 빠지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 부분들을 선수들에게 많이 요구하고, 이야기할 것 같아요.
Q__2013-2014시즌 당시 40대 선수로는 방신봉과 후 감독이 유일했습니다. 그만큼 몸관리를 잘해왔다고 볼 수 있을까요.
나이가 있는 몇몇 선수들은 다 알 거예요. 올해 코치로 합류한 학민이랑도 이야기해보면 다 똑같은 말을 해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힘이 없어 웨이트트레이닝을 안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수록 더 많이 해야 해요. 젊었을 땐 볼 운동을 60~70% 정도 가져간다면 나머지는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나이가 들면 두 비중이 바뀌어야 한다고 봐요. 30대 중후반쯤엔 웨이트트레이닝을 60~70% 정도 가지고, 볼 운동을 해야 하죠. 볼은 며칠만 익히면 연륜이 있어 금방 올라오는데 체력은 아니거든요. 그 부분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죠. 그 덕인 것 같아요.
Q__ 다가오는 컵대회에 감독으로서 팀을 이끌 때를 상상해보셨나요.
상상은 해봤는데, 크게 다를 건 없을 것 같아요. 당일이 되어봐야 알겠지만…지금 상황으로 봤을 땐 떨리거나 긴장되진 않아요. 그래도 정규리그가 시작하면 비디오 판독 등에서 헷갈리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을 것 같은데 잘 해봐야죠. 그 외적으로는 똑같을 것 같아요.
Q__인터뷰를 마무리할 때가 온 것 같네요. 감독으로서 포부를 듣고 싶은데요
어느 감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우승을 하기 위해 프로에 온 거잖아요. 저 또한 그런 마음이고요. 우승은 바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밑에서부터 하나씩 천천히 밟고 올라와야 하죠. 우선 올해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플레이오프 진출을 목표로 세울 겁니다.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면 후엔 더 좋은 성과가 날 수 있다고 봐요. 비시즌 동안 선수들과 잘 화합하고 몸 잘 만들어서 시즌 끝날때까지 부상없이 함께 갈 수 있는 팀을 만들고 싶네요.
Q__마지막으로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요.
그냥 나 믿고 잘 따라와 줬으면 해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프로선수답게 행동하고, 훈련하고, 프로선수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잘 지켜주면 좋겠습니다.
글. 강예진 기자 사진. 문복주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6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더스파이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