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망주 소년이 누군가의 롤모델로 성장하기까지' 현대캐피탈 허수봉
- 매거진 / 김하림 기자 / 2021-12-07 09:00:26
‘허다르’라는 별명 세 글자가 그의 활약을 대변해 준다. 유망주로 평가받던 당시 외국인 선수 뺨치는 활약을 보여주며 팀을 챔피언 결정전으로 이끌었고, 그해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년 뒤, 한 층 더 성장한 실력으로 유망주를 넘어 코트 한자리를 완벽하게 꿰찼다. 이젠 현대캐피탈에서 없으면 안 될 존재로 자리매김한 허수봉. 그를 만나러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외인이 없다고 쉽게 지진 않습니다"
코트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허수봉. 첫 경기부터 주전으로 나서며 시즌을 소화하고 있다. 그는 “작년에는 중간에 합류하다 보니 손발을 맞출 시간이 많이 없었다. 복귀 이후 경기를 뛸 때 타이밍도 안 맞았다. 지금은 비시즌에 많은 연습을 했고 시즌 처음부터 뛰다 보니 호흡이 잘 맞는다”라면서 “한 경기 한 경기 이기려고 많은 준비를 하고 있다. 선수들이 다 이기려고 하는 마음도 크기 때문에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이번 시즌 현대캐피탈의 출발은 좋지 못했다.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보이다르 뷰세비치(세르비아)를 지명했지만 리그 개막을 앞두고 교체를 결정했다. 대체 외국인 선수로 로날드 히메네즈(등록명 히메네즈, 콜롬비아)를 데리고 왔다. 하지만 히메네즈가 자가격리 도중 부상으로 3개월가량 재활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받았다. 외국인 선수 없이 국내 선수들끼리 시즌 초반을 풀어가야 했다.
우려와는 다르게 현대캐피탈은 국내 선수들로 하늘길을 순조롭게 걸었다. 1라운드에서 4승 2패, 승점 12점을 챙기며 2위로 마무리했다. 당초 최태웅 감독이 목표 승점으로 잡았던 7점보다 훨씬 많은 승점을 획득했다. 그 중심에는 허수봉이 있었고 외국인 선수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메웠다.
“예전에도 외국인 선수 없이 국내 선수로만 많이 했다. 그래서 외국인 선수가 없다고 질 것 같다는 생각은 전혀 안 했다. 각자 역할이 있기 때문에 나는 공격에 집중하고, (김)선호랑 (박)경민이가 뒤에서 잘 받쳐준다. 자기 역할을 다 잘하고 있기에 지금 좋은 경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허다르의 탄생
“인생의 터닝 포인트 경기였어요”
유독 그에게 ‘크리스티안 허수봉’, ‘허다르’, ‘허수봉스키’ 등 외국인 선수 이름과 결합된 별명이 많다. 그만큼 외인 뺨치는 활약을 보여줬단 의미다. “한 경기할 때마다 계속 다른 별명이 붙으니 신선하다”라고 말한 허수봉에게 가장 애착이 가는 별명은 역시 ‘허다르’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외국인 선수를 대신해 경기를 치르는 건 이번 시즌이 처음은 아니다. 2018-2019시즌 외국인 선수였던 크리스티안 파다르(헝가리)가 플레이오프 2차전을 앞두고 허리 통증으로 결장했다. 팀이 챔피언 결정전으로 가기까지 1승만을 남겨 놓은 중요한 순간이었다.
파다르 자리에 허수봉이 들어갔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물음표를 던졌다. 하지만 경기 이후 물음표는 느낌표로 바뀌어 있었다. 장충체육관은 ‘허수봉’ 이름을 외치는 함성 소리로 가득 찼다. 서브 4개, 블로킹 1개를 포함해 팀 내 최다 득점인 20점을 퍼부었고 공격 성공률은 62.5%에 달했다. 그의 맹활약을 앞세워 셧아웃으로 완승을 거두며 챔피언 결정전으로 향했고 이날 ‘허다르’라는 별명이 탄생했다.
허수봉도 이 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배구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을 이 경기와 이후 우승할 때라고 할 정도로 그의 배구 인생에 크게 자리 잡았다. 그는 “모든 선수들이 그렇겠지만 봄에 가면 몸이 뜨는 느낌이 있다. 파다르가 다쳤다는 걸 알고 경기에 뛰어야 된다 했을 때 긴장을 정말 많이 했다. 그래도 형들이 무조건 때리라고 이야기해 주셨고, 형들 믿고 했었다”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 경기였어요. 이 경기를 통해 정말 많은 성장을 했어요. 그 경기를 잘하고 나서 계속 기량이 많이 오를 수 있었습니다” 2019년 3월 18일, 허수봉에게 잊지 못할 날로 자리 잡았다.
‘역대 최초 1라운드 지명 고교생’ 신인은
6년 뒤 새로운 신인의 ‘롤모델’로 성장했다
경북사대부고 졸업반 선수였던 19살에 참가한 2016-2017시즌 남자부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3순위로 지명받으며 ‘역대 최초 1라운드 지명 고교생’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 당시 생각이 궁금했다. 허수봉은 “고등학교 코치님이 적극적으로 밀어주셨다. 그리고 (박)철우 형을 보면서 ‘나도 커보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나오게 됐다”라고 했다.
또래 선수들이 캠퍼스 생활을 즐길 때 그는 코트 위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허수봉은 “지금 들어서 생각하는 거지만 한번 경험해 보고 싶다. 대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많이 생긴다고 하고 대학 생활이 그렇게 재밌다고 하는데 그 분위기를 느껴 보고 싶다”라고 털어놨다. 또 “한 번씩 ‘배구 선수를 안 했으면 지금의 나는 뭘 하고 살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근데 뭘 하든 지금보다 성공하지 못했을 것 같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일찍이 프로에 온 만큼 허수봉 이후 입단한 박준혁(1997년생), 함형진(1995년생), 이원중(1995년생) 등 형들이 후배로 들어왔다. 특히 이원중은 팀뿐만 아니라 군대에서도 후배 자리에 있었다. 그는 “내가 군대 갈 때 원중이 형이 훈련소까지 따라와서 엄청 놀렸다. 근데 1년이 지나더니 원중이 형이 내 밑으로 들어와 있더라(웃음). 군대 나와서도 봐야 할 사람이기 때문에 동생 역할을 했다”라고 말했다.
모든 게 빨랐다. 프로 데뷔부터 군 문제 해결까지 마친 그해 나이 만 22세였다. ‘어린 선배’ 시절을 거쳐 이젠 ‘찐 선배’로 거듭났다. 대학을 거쳐 프로 무대에 오는 선수들도 이젠 허수봉 보다 어리다. “지금도 어린 후배들이 많다. 2~3년 전만 해도 신인 선수가 들어와도 다 형이었는데 이젠 다 동생들이다. 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라고 달라진 마음가짐을 내비쳤다.
“어엿한 형님이 되어야 한다.” 최태웅 감독이 허수봉에게 건넨 말이다. 허수봉 역시 이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코트에 들어가면 꼭 한 선수가 경기가 안 풀릴 때가 있다. 그럴 때 잡아주는 역할이 필요한데 예전에는 형들이 다 해줬다. 이제는 코트에 동생들도 많다 보니 감독님이 그 역할을 맡기셨다. 나도 안 풀릴 때도 있지만 동생들이 힘들어할 때 한마디 해주고 다독여주면서 ‘팀을 단단하게 만들어보자’라는 생각으로 임한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시즌 현대캐피탈에 입단한 홍동선이 롤모델로 허수봉을 꼽았다. 본인을 보면서 배구 선수의 꿈을 키워가는 어린 선수들이 있다는 걸 몸소 느꼈다. 허수봉은 “동선이에게 장난으로 ‘내가 왜 롤모델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웃음). 그래도 동선이가 물어볼 때마다 적극적으로 대답해 주고 있다”라고 웃었다.
그러면서 “나도 6년 전에 (문)성민이 형을 롤모델로 뽑으면서 프로에 입단하게 되었다. 동선이 이야기를 듣고 처음 느꼈던 게 ‘프로에 온 지 6년이 지났구나’였다. 그만큼 보여줘야 하는 부담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가짐도 있다”라고 했다.
허수봉 역시 본인의 롤모델인 문성민과 함께 같은 팀에서 생활하면서 어릴 적 꿈을 직접 이뤘다.
“정말 중, 고등학교 때 성민이 형을 보면서 ‘정말 멋있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제 한 팀에서 경기를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성민이 형한테 배울 게 정말 많다. 아직도 존경스러운 선배다.”
배구 인생에 있어 제일 고마운 최태웅 감독님
“지금의 저를 만들어주셨어요”
현대캐피탈의 유망주에서 이젠 핵심 자원으로 자리 잡은 허수봉. 그는 “현대캐피탈은 명문 구단이다. 정말 체계적인 시스템과 함께 좋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다. 선수들이 배구에만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주시는 좋은 팀이다”라고 말했다.
최태웅 감독의 존재도 빼놓을 수 없다. 지금까지 배구를 하면서 가장 고마운 사람이라고 밝히며 본인에게 큰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제가 만약 다른 팀에 가서 훈련을 했다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싶어요. 정말 감독님의 배구 분석을 통해 제가 어떻게 리시브를 했으면 좋겠고, 어떻게 공격을 했으면 하는 것까지 하나하나 알려주세요. 손 교정도 많이 했고요. 지금의 저를 만들어주신 게 다 감독님 덕분이에요”
가족 역시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가 지금의 자리에 있기까지 가장 많은 희생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이 고맙죠. 어릴 때부터 타지 생활을 했는데 뭐든지 챙겨주시려고 하는데 정말 감사하죠.”
이번 시즌 개인적인 목표보다 팀 우승을 먼저 생각했다. 그는 “개인 기록보다는 팀적으로 많이 생각하고 있다. 팀 성적이 좋다면 개인 기록도 따라올 거라 생각하기에 팀 우승하는 거에만 목표를 두고 있다”라고 목표를 드러냈다.
어느덧 한 해가 저물고 있다. 그에게 2021년은 어땠을까. 허수봉은 “비시즌에 정말 많은 훈련을 한 만큼 이걸 실전에서 보여주고 싶다. 오랜 기간 힘든 훈련을 한 만큼 남은 기간 동안 좋은 경기하고 싶다”라고 했다. 또 내년은 또 의미 있는 해다. 범띠의 해로 ‘1998년생 호랑이띠’ 허수봉에게 뜻깊게 다가온다. 그는 “아직 시즌이 많이 남아있다. 시즌 정말 잘 끝내고 휴가 가서 푹 쉬고 싶다”라고 소망을 드러냈다.
끝으로 팬들을 향한 인사도 잊지 않았다. “정말 많은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쭉 좋은 경기 보여드릴 테니까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글. 김하림 기자
사진. 홍기웅 기자
(더 자세한 내용은 <더스파이크> 12월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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