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 대통령의 다음 공약은?!’ 한국 대표 미들블로커 신영석을 말하다
- 매거진 / 서영욱 / 2021-06-24 21:50:25
‘이토록 완벽한 미들블로커가 있나.’ <더스파이크> 2018년 1월호에 실렸던 신영석 인터뷰의 제목이었다. 이 말은 약 3년이 조금 더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여전히 한국 최고의 미들블로커가 누군지, 한국을 대표하는 미들블로커가 누군지 묻는다면 아마 열에 아홉 아니 열은 신영석을 언급할 것이다. 그사이 새롭게 추가된 이야기들이 있다.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신영석을 다시 찾았다. (인터뷰는 5월에 진행됐습니다.)
트레이드 후 첫시즌 PO 탈락
“약속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시즌이 끝나고 시간이 좀 지난 시점, 조금 늦게나마 한국전력에서 첫 시즌을 돌아본 신영석 이야기에는 아쉬움이 많이 묻어났다. 트레이드로 김광국, 신영석, 황동일이 차례로 합류한 한국전력은 연승을 달리기 시작했고 포스트시즌 경쟁에 합류했다. 7연패로 시작한 팀 성적은 5할 승률 이상까지 올라왔다. 오랜만에 봄 배구 진출도 바라볼 수 있는 위치로 올라섰고 실제로 꽤 유리한 상황이었다. 한국전력은 하지만 해피엔딩에는 이르지 못했다.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승점 1점만 확보했다면 준플레이오프에 오를 수 있었지만 그 1점이 모자라 봄 배구를 치르지 못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정말 죄송하게 생각했어요. 제가 한 인터뷰에서 플레이오프에 올라갈 확률이 얼마나 되는 것 같냐는 질문에 100%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제 말을 지키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자신에게 많이 실망했죠. 1승도 아니고 승점 1점 때문에 못 올라갔잖아요. 그 점이 지금도 많이 아쉬워요. 그래서 다음 시즌이 더 중요할 것 같아요.”
“현대캐피탈에서도 물론 1승, 1승이 소중했죠. 한국전력에 왔을 때 팀이 7연패 중이었어요. 정말 1승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시즌이 아니었나 싶어요. 더 간절하기도 했고요. 트레이드되면서 저에게 오는 기대감이라든지 제가 해야 할 역할들도 생각하게 됐고 ‘아직 신영석은 건재하다’라는 것도 보여줘야 했고요. 저한테는 복합적으로 많은 게 느껴진 시즌이었어요. 그래서 더 보여주고 싶었고 제가 있으면서 팀이 더 단단해질 수 있다는 것도 증명하고 싶었죠. 이런 내용을 모아서 화룡점정을 찍어야 할 타이밍에 포스트시즌에 아쉽게 떨어지면서 다 물거품이 됐죠.”
잠시 시계바늘을 뒤로 돌렸다. 2020년 11월 13일, 배구계를 깜짝 놀라게 한 트레이드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전력과 현대캐피탈이 트레이드를 단행했고 한국전력으로 향하는 선수 중 신영석 이름이 끼어있었다. 많은 배구 팬이 놀랐다. 문성민과 함께 현대캐피탈 간판이자 대표선수였고 2020-2021시즌 현대캐피탈 주장까지 맡은 신영석이었기에 시즌 초에 이뤄진 이 트레이드는 많은 팬에게 충분히 충격적으로 다가올 만했다.
신영석에게는 커리어 두 번째 트레이드였다. 앞선 트레이드 역시 신영석에게 쉽지 않은 경험이었다. 2015년 3월, 당시 상무(국군체육부대)에서 복무하던 신영석이 현대캐피탈로 트레이드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정확히는 트레이드 자체는 2014년 7월 이뤄졌고 해당 사실이 알려진 게 2015년 3월이다). 규정과 여러 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혔던 이 트레이드는 최초 소식이 전해지고 완료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6월 말에야 현대캐피탈행이 최종 확정됐다. 군인 신분으로 상무에 있었기에 신영석에게는 더욱 힘든 시간이었다.
“상무에 있을 때는 핸드폰도 없고 어디 연락할 방법도 없어서 감독님, 코치님한테 듣는 수밖에 없었어요. 처음에 들었을 때는 거짓말인 줄 알았어요. 장난치지 말라고 했는데 핸드폰으로 기사를 보면서 ‘아, 진짜구나’ 했죠. 그러고 잡음이 많았잖아요. 제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랐어요. 섣불리 결정할 수도 없었고요. 여러 가지 이야기도 들었고 힘들었죠. 당시 상황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던 것 같아요. 그때 제가 상병이었거든요. 전역까지 8개월 정도 남았던 거로 기억해요. 시간이 조금 남았기 때문에 다행이었어요. 아마 바로 이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2020년 겪은 두 번째 트레이드. 2020-2021시즌을 앞두고도 신영석 트레이드 루머가 없던 건 아니었다. 비시즌은 트레이드 없이 흘러갔지만 시즌이 개막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행된 트레이드. 신영석은 마음의 준비도 하고 있었다고 돌아봤다.
“저도 나이를 먹으면서 언젠가는 팀을 옮길 수도 있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었어요. 트레이드 루머가 제 귀에도 들렸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죠. 그런데 시즌이 진행되고 주장이 되면서 이번 시즌은 아니겠구나 생각했죠. 그런데 트레이드 소식이 나왔고요. ‘이제 이 팀을 떠나는구나’라고 덤덤하게 받아들인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너무 많은 사랑을 받고 떠나서 사랑만 받고 떠난다는 생각에 죄송하기도 했고 주장으로서 팀을 좀 더 안정적인 상태로 만들고 떠났으면 마음이 무겁지 않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고요. 1라운드 성적도 안 좋았고 2라운드 첫 경기였던 대한항공전도 아무것도 못 해보고 0-3으로 진 다음에 트레이드됐거든요. 그렇게 떠나는 바람에 후배들과 팀에 미안했죠.”
신영석에게 현대캐피탈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올 만한 팀이었다. 선수로서 누릴 수 있는 거의 모든 영광을 함께 누린 팀이 현대캐피탈이었다. 정규리그 우승, 챔피언결정전 우승도 각각 두 차례 차지했고 남자부 미들블로커 최초 정규리그 MVP도 수상했다. 그래서인지 한국전력 이적 후 첫 천안 원정길에 나섰던 신영석의 마음가짐도 남달랐다. 당시 경기 승리 후 수훈선수 인터뷰를 위해 인터뷰실을 찾은 신영석은 익숙한 의자에 앉는다는 말에 “추억이 많은 곳”이라고 답하며 현대캐피탈 시절을 회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다시 한번, 그에게 현대캐피탈은 어떤 의미였는지 물었다.
“다시 한번 ‘신영석’을 만들어준 팀이죠. 우리카드에서는 유망주로서, 신생팀에서 가능성 있는 선수였다면 현대캐피탈은 저를 다시 한번 더 높은 곳으로 올려준 팀이라고 할까요? 우승도 정규리그 두 번, 챔피언결정전 두 번 했고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미들블로커 MVP도 차지했고요. 저 다음에 미들블로커 MVP가 나올 수 있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만큼 힘들고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게 해준 게 현대캐피탈이고요. 아마 제가 선수 은퇴하고 몇십 년이 지나도 잊지 못할 팀인 것 같아요.”
리시브 가담하는 미들블로커
새로운 방식이자 새로운 도전
현재 한국 최고 미들블로커가 누구냐고 했을 때 신영석이라고 답한다면 반론을 제기할 사람이 있을까. 속공이면 속공, 블로킹이면 블로킹 무엇 하나 빠지지 않고 뿐만 아니라 이단 연결과 서브, 2020-2021시즌에 추가된 리시브까지 거의 모든 항목을 다 갖춘 만능 미들블로커가 바로 신영석이다. 각종 누적 기록, 개인 타이틀 역시 둘째라면 서러울 정도다. 시즌 초반 ‘신영석답지 않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블로킹 순위가 처졌지만 시즌이 끝났을 때 1위 자리에는 돌고 돌아 신영석이 자리했다.
미들블로커로서 신영석에게 묻고 싶은 바는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2020-2021시즌 모두를 놀라게 한 리시브를 가장 먼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전력은 본래 윙스파이커로 활용하고자 러셀을 외국인 선수로 영입했지만 리시브에 큰 약점을 보였다. 러셀이 공격에 전념하도록 꺼내든 카드가 ‘미들블로커 리시브 가담’이었다. 현대캐피탈 시절에도 한 번씩 4인 리시브 라인 구축을 위해 리시브에 참여하긴 했지만 이번 시즌처럼 고정으로 리시브에 참여한 건 처음이었다. 리시브를 받고 곧장 뛰어들어가 속공을 구사하기도 하는 등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준 신영석이었다. 신영석은 “다시 같은 역할을 부여받는다면 더 잘할 자신 있다. 이번에는 좀 긴박한 상황에 투입됐는데 이런 상황이 또 온다면 더 준비를 잘해야 한다”라고 돌아보며 ‘리시브하는 미들블로커’로서 보낸 한 시즌을 회상했다.
“제가 현대캐피탈에서 (문)성민이랑 같이 4인 리시브를 했는데 그게 아마 우리나라 최초였지 않을까 싶어요. 그때 기억과 경험이 있어서 한국전력에 와서도 한 것 같아요. 현대캐피탈에서도 처음엔 리시브를 받고 속공을 때리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되더라고요. 장병철 감독님께서도 한번 해보자고 하셨을 때 해보겠다고, 할 수 있다고 했고 동료들이나 코칭스태프도 흔쾌히 받아들인 것 같아요. 말도 안 되는 상황이고 다른 누군가 이렇게 한 건 본 적도 없고, 해외 리그에서도 본 적이 없지만 저는 어느 정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죠. 어렸을 때 포지션도 윙스파이커였고 아포짓도 해보고 여러 포지션을 해본 경험 덕분에 실행한 것 같아요.”
“주위에서는 ‘만화배구’가 실현된 것 같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저로서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 거죠. 미들블로커도 리시브를 받고 속공을 때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편견을 깨는 거죠. 나중에 어떤 팀이 이런 방식을 또 쓸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된 거잖아요. 팬들도 이게 가능하다는 걸 보면서 배구를 보는 즐거움이 또 생긴 거고요. 새로운 도전이죠. 그 도전을 제가 이겨냈을 때 성취감이 저에게 많은 걸 가져다준다고 생각해요. 저는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2020-2021시즌 신영석이 겪은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은 상대 팀으로서였다. 대한항공은 외국인 감독인 산틸리 감독을 임명하면서 기존과는 다른 블로킹 시스템을 구축했다. 해외 경기 영상도 많이 챙겨보고 평소에도 배구 공부를 많이 하기로 유명한 신영석이 느낀 바는 어땠을까.
“예전에는 저한테 맨투맨으로 뜨는 블로킹이 되게 많았어요. 올 시즌에는 협력 블로킹이 되게 잘된 것 같아요. 미들블로커 혼자서 막는 게 아니라 협력해서 효율적으로 블로킹을 한다고 할까요? 정지석 선수도 블로킹이 정말 많이 늘었고 곽승석 선수나 임동혁 선수도 마찬가지고요. 시즌 전에 미들블로커가 다소 약점이라고 평가받았잖아요. 그런데 저는 대한항공을 상대할 때 부담감을 느꼈어요. 조금 힘들더라고요. 수비도 그렇고요. 블로킹도 제가 생각한 대로 안 됐고요. 제가 공격할 때 어느 정도는 상대 블로킹을 이용하면서 하는데 협력 블로킹이 오니까 많이 힘들었어요. 윙스파이커들이 거의 중앙까지 와서 미들블로커를 도와주기도 하고요. 원래도 정지석, 곽승석 선수가 하던 플레이긴 했는데 더 정교해진 느낌이었죠. 그 약간의 차이가 배구에서는 엄청나죠.”
지난 1월 21일에는 삼성화재 상대로 미들블로커로는 처음으로 통산 200 서브를 달성했다. “미들블로커 중에는 최초라고 들었다. 200개라고 하니 실감이 안 난다. 서브에는 자부심이 있다. 만족도도 높다”라고 당시 소감을 밝힌 신영석. 구체적이진 않지만 다음도 생각 중인 신영석이다.
“아직 구체적인 서브 기록에 관한 목표를 정한 건 없는데 200 서브보다는 300 서브가 수치상 뭔가 더 이뻐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은퇴하기 전에 300 서브는 채우려고요. 200 서브 기준기록상을 받았을 때도 한 생각이긴 하지만 기록을 생각하면서 서브를 때리고 싶진 않아요. 지금 제 서브에 정말 만족하고 있어요. 서브를 때리는 것도 너무 재밌고 미들블로커 포지션에는 제 서브가 유니크한 것 같아요. 미들블로커 중에 스파이크 서브를 때리는 사람이 별로 없잖아요. 제가 더 좋은 모습을 보이면 앞으로 다른 유망주도 스파이크 서브 구사를 생각하지 않을까요.”
신영석은 통산 953블로킹으로 현역 1위를 달리고 있다. 최근 페이스라면 다음 시즌 통산 1,000블로킹 고지 달성은 거의 확실하다. 통산 세트당 블로킹 0.753개로 페이스도 독보적이다(통산 개인 누적 블로킹 상위 10명 중 신영석 다음으로 세트당 블로킹 수치가 높았던 이선규가 0.650개다. 신영석 페이스가 얼마나 빠른지 알 수 있는 대목).
신영석이 말하는 ‘배구 대통령’
“새로운 자극제죠”
이처럼 미들블로커로는 완벽에 가까운 신영석이기에 팬들이 붙여준 별명이 있다. 배구 대통령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대통령’이라는 수식어가 쉽게 붙지 않는다는 걸 고려하면 신영석이 얼마나 대단하게 평가되는지를 별명만으로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이런 수식어가 부담스러웠다고. 아직 자신은 그런 수식어를 받기에 못 미친다는 생각도 들었고 불편하다는 생각도 했다. 신영석은 조금씩 생각을 바꿨다. 그런 주목을 부담스러워하기보다는 정말 그런 수식어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처음에는 ‘내가 그런 선수가 맞나, 내 옷이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되게 불편했거든요. ‘농구 대통령’ 허재가 있다면 이제 ‘배구 대통령’에는 신영석이 있다는 식으로 별명을 지어주신 거잖아요. 얼굴도 닮았으니까요. 저는 배구 대통령도 아니고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죠.”
“이제는 다르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에 걸맞은 선수가 되자고요. 그런 수식어에 맞는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더 노력해야 한다는 쪽으로 생각한 거죠. 제 기본기를 더 가다듬고 이단연결부터 서브, 블로킹, 속공까지 여러 가지를 골고루 잘하면 그런 별명을 지어주신 팬들에게 보답해드리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윙스파이커, 아포짓 스파이커도 경험해봤기 때문에 경험에서 오는 장점이 있어요. 대학교 3학년 때부터 대표팀에 들어가면서 형들 뒤에서 많은 걸 배울 수도 있었고요. 그런 복합적인 요소가 저한테는 많이 작용했고, 저는 되게 운이 좋은 선수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한국 최고 미들블로커’라는 수식어를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타이틀 중 하나가 바로 ‘남자부 미들블로커 최초 정규리그 MVP’다. 다른 미들블로커가 아직 가지 못한 길을 차근차근 개척해보겠다는 신영석. 자신의 다음 목표를 밝히며 과거 자신의 롤모델이었던 이선규도 언급한 그였다.
“처음에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미들블로커들이 못한 게 뭐가 있을까. 라운드 MVP를 제가 두 번 해봤는데 저 이전에 라운드 MVP를 수상한 미들블로커가 없더라고요. 그건 이제 해본 셈이고. 또 트리플크라운을 해볼 수 있을까 생각 중인데, 은퇴하기 전에는 한 번 해보고 싶어요. 또 선규 형이 1,000블로킹 넘게 하고 은퇴했는데 그것도 깨보고 싶고요. 욕심은 정말 많아요. 아직도 정말 목마르고요. 더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저한테 선규 형은 정말 우상을 넘어선 넘어야 할 벽과 같은 존재였죠. 대학생 때 선규 형을 목표로 잡았어요. 배구도 너무 잘하셨고 대표팀에서 금메달도 따면서 국내 미들블로커 1인자로 자리했던 형이니까요. 당연히 목표로 삼을 수밖에 없었죠. 선규 형처럼 되고 싶다고요. 그 형을 뛰어넘어야겠다는 목표를 잡기 시작하면서 제 목표에는 항상 선규 형이 따라다닌 것 같아요.”
과거 자신의 배구 인생을 “인생의 전부”라고 표현한 신영석. 그 열정은 지금도 유효하다. 지난 4월 시상식에서 베스트7 미들블로커 부문을 다시 한번 수상한 이후 신영석은 “이 상을 받을 때면 축하문자 내용이 반반이다. 진짜 축하한다는 것과 그만 좀 해 먹으라는 내용이다. 앞으로 딱 세 번만 더 받겠다”라고 재치있는 소감을 남겼다. 하지만 그의 속마음은 조금 달랐다.
“인생의 전부라는 건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지금도 코트에 있으면 너무 행복해요. 너무 재밌고 더 오래 하고 싶어요. 후배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더 잘하고 싶어요. 시상식 때 우스갯소리로 후배들을 위해서 세 번만 더 받고 그만하겠다고 했는데, 그것도 말하고 나서 좀 미안하더라고요. 근데 전 정말 욕심이 많아요. 세 번이 아니라 10번 정도 더 받고 싶어요.”
지금은 수많은 후배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아마추어 선수들을 취재하면서 미들블로커들에게 롤모델이 누군지 물으면 열에 아홉은 신영석을 말한다. 이를 들은 신영석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아까 언급한 이야기와 비슷한 내용일 것 같아요. 처음에는 ‘다른 선수도 많은데’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저를 롤모델로 삼은 선수들을 위해 그 정도 위치까지 가고 싶어요. 레전드가 되고 싶죠. 그러기 위해서는 행동도 올바르게 해야 하고요. 미리 나와서 서브를 때리거나 하는 워밍업도 귀감이 됐을 것 같아요. 물론 이건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더 잘할 방법을 찾다가 한 거지만요. 저를 롤모델로 삼는 선수들을 위해 저도 더 이끌어주고 싶습니다.”
신영석이 오랜 시간에 걸쳐 최고로 자리 잡고 있는 데는 그의 배구 열정이 한몫했다. 평소에도 배구 영상을 많이 보기로 유명한 신영석은 해외 경기까지 다수 챙겨볼 정도로 배구에 진심이다. 오전 이른 시간 훈련도 마다하지 않고 후배들을 위한 노하우 전수까지 선수로서 한시도 멈추지 않고 정진한다. 그의 이러한 학구열은 배구계 전반에 걸쳐서도 잘 알려져 있고 배구계 관계자 대부분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에 대해 신영석은 “학구열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손사래를 치면서 말을 이었다.
“학구열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고요(웃음). 너무 좋게 봐주셔서 그런 게 아닐까요. 그냥 제가 배구 보는 걸 좋아해요. 휴가 끝나고 복귀해서 매주 화, 목요일은 비디오실에서 미들블로커 미팅을 해요. 2020-2021시즌 영상을 전력분석관 형이 잘 모아주셔서 보고 있어요. 그걸 보면서 다른 미들블로커는 어떻게 스텝을 밟고 또 속공을 때리는지 토론도 하고 분석해요. 그래서 얻을 건 얻고 뺄 건 빼면서 서로 도와가면서 시즌을 준비하자고 했거든요. 그런 걸 후배들이 좋게 봐준 게 아닌가 싶어요. 저는 그냥 좋아서 하는 건데. 가르쳐 주는 것도 좋아하고 또 거기서 제가 얻는 게 있거든요. 저는 절대 혼자서는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장기를 둘 때도 훈수 두는 사람이 더 잘 보이는 것처럼, 제가 못 보는 걸 주위에서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런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해외 배구 영상도 많이 보는데, 세계적으로 스피드 배구를 하고 있잖아요. 낮고 빠르게 플레이하면서 공격도 정말 잘하더라고요. 그럼 반대편 미들블로커는 그걸 어떻게 따라가는지 생각하면서 많이 배우려고 해요.”
“저는 이란 무사비 선수를 좋아해요. 해외 미들블로커는 키부터 215cm, 217cm 이런 데 무사비는 2m라는 신장으로 그 선수들을 어떻게 상대하나 생각해봐요. 여전히 잘하더라고요. 아시아권 선수들이 어떻게 하면 그런 거인들을 이기는지에 초점을 맞춰서 보고 있어요. 아시아 대회에서 만나면 보고 배우면서도 코트에서 절대 지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임하죠.”
신영석이 여전히 한국 넘버원 미들블로커로 건재한 가운데 남자배구는 고민이 있다. 지금도 대표팀 주전으로 활약 중인 신영석과 최민호를 이을 차세대 미들블로커가 없다는 점이다. V-리그 안으로 시선을 돌려봐도 그들에게 버금갈 만한 젊은 미들블로커가 아직은 없는 게 현실이다.
신영석은 지난 2020년 1월 13일, 도쿄올림픽 아시아예선을 마치고 입국했을 당시 진행한 인터뷰에서 세대교체를 강조했다. “가장 중요한 건 유소년 선수 발굴과 투자다.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야 어린 선수들이 성장할 수 있다”라고 말한 신영석은 “대표팀에 나이 많은 선수들이 많더라. 그 점이 걱정된다. 지금은 잘 못 느끼겠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크게 느껴질 수 있다”라며 다음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간이 조금 흘러, 다시 한번 신영석에게 한국배구의 미래, 특히 미들블로커에 관한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제가 그 인터뷰를 했을 당시에는 미들블로커 유망주가 많이 없었어요. 지금은 많이 나온 것 같아요. OK금융그룹 박창성 선수 서브가 정말 좋더라고요. 공도 빠르고요. 현대캐피탈 박준혁 선수도 있고 김재휘 선수도 제대했고요. 2m가 넘는 선수임에도 움직임이 그렇게 느리지 않아요. 우리 팀에 박태환 선수, 박찬웅 선수도 있고, 최근에는 많아진 것 같아요.”
“남은 건 이제 경험을 많이 해보고, 그 과정에서 실패도 많이 해보는 거예요. 그러면서 다음 올림픽 혹은 아시안게임을 준비해야죠. 제가 만약 다음에도 대표팀에 선발된다면 그게 과연 좋은 일일지 의문이 좀 들어요. 저는 제 세대는 실패했다고 생각해요. 이 실패를 통해 다음 세대 선수들이 제가 없는 자리를 메우면서 계속 실패하고 경험을 쌓고 올라서야 해요. 그래서 제가 다시 대표팀에 뽑힌다면, 그건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아요.”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미들블로커,
그럼 정말 행복하지 않을까요?”
2009년부터 선수 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신영석은 어느덧 30대 중반 베테랑이다. 여전히 기량에 자신이 있고 몸 상태도 건재한 만큼 선수 생활을 더 오랫동안 이어가기에 충분하지만 지금까지 해온 시간보다는 ‘마지막’이 좀 더 가깝다. 신영석에게 선수로서 다음 목표가 무엇인지 물었다. 돌아온 답은 단순하면서도 어쩌면 또 당연한 내용이었다.
“항상 이걸 생각하고 운동하고 있어요. 다른 인터뷰에서도 몇 차례 답했던 내용인데, 사람들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아있는 미들블로커. 그걸 목표로 계속해오고 있어요. 제 마지막 목표일 것 같아요. 선수 생활이 끝났을 때도 사람들이 기억해준다면 정말 행복한 선수이지 않을까요? 마치 마이클 조던처럼요. 그런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신영석 선수도 잘했지’라는 이야기를 지나가면서 들으면 저는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자신이 다시 대표팀에 뽑혔을 때를 언급하며 몇 가지 의문점과 생각할 부분을 남긴 신영석이지만 다시 대표팀의 부름을 받았을 때 목표는 남아있다고 밝혔다. 경기 내적인 부분보다는 외적인 부분의 비중이 컸다.
“다시 대표팀에 들어간다고 하면 그때 목표도 있어요. 제가 선발돼서 경기는 뛰지 않더라도 문화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대표팀 당시엔 아쉬웠던 점이 많이 보였어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주고 제가 나왔을 때 후배들이 그걸 바탕으로 더 발전할 기반을 만들고 싶어요. 대표팀에 뽑혀서 다시 경기에 나선다면 물론 저한테는 영광스럽고 좋은 일이겠지만 유망주들을 생각하면 그건 또 아닌 것 같고요. 그래서 지금 기로에 서 있어요. 대표팀에 뽑혀서 문화를 만들어주고 주장으로서 이끌어주는 건 정말 잘할 자신이 있는데 경기까지 뛰면 후배들이 지금 경험해야 할 소중할 시간을 뺏는 것 같은 느낌이거든요. 그런 점이 고민이에요.”
대표팀과 배구선수로서 황혼이라는 중요한 기로에 서기 이전에, 곧 신영석은 한국전력 유니폼을 입고 첫 풀타임 시즌을 보낼 준비를 먼저 해야 한다. 승점 1점 차이로 아쉽게 나가지 못한 봄 배구부터 더 재밌는 팀을 만들고 싶다는 의지까지, 신영석의 확실한 차기 시즌 목표를 마지막으로 들을 수 있었다.
“저는 벌써 설레요. 빨리 시즌을 치르고 싶어서요. 우승을 바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팬들이 좋아하는 우리 팀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또 거기에 봄 배구까지 진출한다면 팬분들에게 더 보답하는 길이겠죠. 물론 봄 배구 진출만이 팬들에게 보답하는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지고 있어도 악착같이 뛰면서 이기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지더라도 무력하게 지는 게 아닌, 정말 최선을 다해서 졌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졌지만 두 팀 모두 정말 재밌는 경기를 했다는 그런 모습이요. 이전에 ‘마리한화’라는 말도 있었잖아요. 우승은 못 했지만 정말 보는 사람들이 재밌어했고 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팬들을 끌어당겼죠. 선수라면 당연히 우승을 목표로 해야겠지만 저는 그런 팀이 되고 싶어요. 우승은 못하더라도 자랑스럽고 응원할 맛 나는 팀이요. 그게 지금 선수로서 제가 잡고 있는 목표에요. 그래서 더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웃음)!”
현대캐피탈 출신 선수들에게 얽힌 기묘한 이야기?!
현대캐피탈 유부남 선수들 사이에는 기묘한 우연(?)이 하나 있다. 딸 없이 아들만 가득하다는 것. 최근 현대캐피탈에서 뛰거나 머물렀던 선수 대부분 아들만 있다고. 참으로 기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둘째도 아들이에요. 아내랑 저 모두 딸을 원했는데 아들이더라고요. 이전에 다른 인터뷰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뭔가 현대캐피탈에 기운이 있는 것 같아요. 100% 뭔가 있어요.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와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뭔가 있는 것 같아요. 장난삼아 제가 성민이한테 이 굴레를 한번 깨보라고 했거든요. 성민이가 자신 있다고 했는데 실패했고요. 그다음에 민호한테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는데 민호가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어요. 그러고 실패했죠. 그 뒤에 광인이, (차)영석 선수 모두 실패했죠. 정말 말이 안 되는 일 같아요.”
후일담 신영석은 2018년 1월호 인터뷰 당시 딸이 태어났을 때를 위해 적금을 들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둘째도 아들인 게 밝혀지면서 적금은 깼다고.
조금 알게 된 부모마음으로 기부에 동참
지난 4월 2일 한국전력 구단 공식 유튜브에 신영석-김혜영 부부의 훈훈한 선행 소식이 전해졌다. 경동원 보육원에 아이들을 위한 각종 선물을 기부한 것. 신영석과 함께 이민규, 정지석, 노재욱, 황택의도 이번 행사에 동참했다. 당시 기부가 두 번째였다고. 자신이 받은 상금 절반은 앞으로도 기부하겠다는 신영석. 선행 역시 넘버원이었다.
“제가 첫째가 생기고 나서 아직은 다 알지 못하지만 부모의 마음을 조금은 알게 됐거든요. TV를 보다가 고아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봤어요. 보면서 너무 마음 아팠죠. 뭔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없을까 싶어서 주변 고아원을 찾아봤는데 10분 거리에 있더라고요. 많이 늦었지만 어린아이들을 위해 도움을 주고자 생각해서 시도한 게 작년이었어요. 하면서 뿌듯함도 있지만 앞으로가 더 중요할 것 같아요. 제가 받은 상금 반은 기부하겠다고 했어요. 제가 배구선수 생활을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겠지만 계속할 예정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뿌듯함도 있을 거고 더 잘해서 상금을 받으면 그걸 아이들에게 전해줘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한 일은 아니지만, 당시에 학교 폭력 문제라든지 좋지 않은 이슈가 있었잖아요. 그래서 분위기를 바꾸고 싶어서 몇몇 선수들을 모아서 함께했죠.”
글. 서영욱 기자
사진. 문복주 기자, 더스파이크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6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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