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연령별 대표팀이 경험하고 확인하고 온 아시아 무대
- 매거진 / 김하림 기자 / 2022-08-03 00:00:08
오랜만에 한국 여자배구의 미래를 책임질 유망주들이 국제무대에 나섰다. 여자18세이하유스대표팀(이하 U18대표팀)과 여자20세이하청소년대표팀(이하 U20대표팀)이 아시아선수권대회에 다녀왔다. 이들이 아시아 무대에서 무엇을 보여줬고, 얻은 건 무엇인지 알아본다.
오랜만에 국제무대에
출전한 한국 배구 씨앗들
U18대표팀은 태국에서 열린 제14회 아시아배구연맹(AVC) 여자U18배구선수권대회에서 3위를 차지했다. 이 성과로 4개 팀에 주는 세계선수권 진출 티켓을 따냈다. 대회는 내년에 열린다.
U18 대표팀에 뽑힌 모든 선수는 연령별 대표팀 무대가 처음이었다.세터 서채현, 아웃사이드 히터 곽선옥-전다빈, 미들블로커 김세빈-이지윤, 아포짓 신은지, 리베로 유가람을 중심으로 경기에 나섰다. 상황과 흐름에 따라 다양한 선수들을 기용하면서 경기를 풀어나갔다. U18 대표팀의 12명 모든 선수가 아시아선수권대회 코트를 밟으며 경험을 쌓았다. 특히 이지윤은 대표팀의 유일한 중학생이지만 주전으로 나섰고, 중앙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이어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제21회 아시아청소년여자U20선수권대회에서 U20대표팀은 4위를 차지했다. 준결승에서 일본에 패하며 세계선수권 티켓을 따내지 못했다. 태국과 조별예선에서 풀세트 접전 끝에 승리했기에 다시 태국과 맞이한 3위 결정전을 기대했다.
하지만 5세트 마지막 집중력이 아쉬웠다. 국제무대의 벽을 절실하게 느꼈다.
U20 대표팀은 세터 김사랑, 아웃사이드 히터 김세인-양유경, 미들블로커 이지수-김보빈, 아포짓 김세빈, 리베로 정예원이 나섰다. 경기 중간에 김사랑은 박은지, 윙스파이커 자리는 박수연이 자주 교체되어 경기를 풀어나갔다. U20 대표팀은 대회를 앞두고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당초 엔트리에 포함됐던 페퍼저축은행 박은서와 흥국생명 정윤주가 부상으로 훈련도 참가하지 못한 채 태극마크를 내려놨다. 이후 세화여고 김서윤, 선명여고 이민서가 합류했지만, 김서윤마저 대회 직전에 중앙여고 공은서와 교체됐다.
순조롭게 올라간 4강,
하지만 결승의 벽은 높았다
두 대표팀 모두 본선에 오르기까진 성공했지만, 결승 문턱을 넘진 못했다. U18대표팀은 중국, U20대표팀은 일본을 준결승에서 각각 만나 셧아웃으로 패했다. U18대표팀은 중국의 피지컬에 고전했다. 프로필 신장으로 180cm 이상이 김세빈(188cm)과 이지윤(188cm) 두 명이었던 한국에 비해 190cm이 훌쩍 넘는 중국 선수들을 상대하기란 힘들었다. 중국의 오른쪽 날개에는 지난 시즌 김연경과 함께 상하이 유베스트에서 활약한 왕인디가 자리했다. 조별 예선까지 주 공격수로 활약했던 김세빈의 공격도 자주 막히며 뚜렷한 공격 활로를 찾지 못했다.
U18대표팀을 이끈 중앙여고 장윤희 감독 역시 “강팀을 만나다 보니 얼굴이 경직되면서 순간적으로 겁을 먹은 게 보였다. 나 역시 아이들에게 칭찬보단 다그칠 수밖에 없었다. 달래보기도 하고 야단도 치면서 분위기를 빨리 바꿔보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고 안타깝다”라고 경기를 복기했다.
U20 대표팀은 일본의 기본기에 고전했다. 두 팀은 신장은 비슷했다. 대회 MVP를 수상한 일본의 아웃사이드 히터 우에무라 안나는 168cm로 한국의 공격수보다 키가 작았다. 미들블로커로 뛰었던 후카사와 츠구미도 176cm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보다 훨씬 빠른 플레이를 한 일본은 특유의 조직력으로 경기를 잘 풀어나갔다. 태국도 일본과 비슷하게 빠른 공격 템포를 자랑했다. 유기적이면서 여러 공격수가 공격에 가담하는 플레이를 펼치자, 우리의 블로커들이 쉽게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보였다.
U18대표팀과 U20대표팀은 공통점이 있었다. 일본, 중국, 태국, 한국 4개국만 본선에 올랐고, 결승은 일본과 중국이 올라갔다. 또한 두 대회 모두 우승컵은 일본이 들어 올렸다.
전통적으로 중국은 장신 선수들을 기용하며 높이를 활용해 경기를 풀어간다. 일본은 신장이 낮음에도 튼튼한 기본기와 빠른 템포로 경기를 하고, 태국 역시 일본과 비슷한 스타일을 추구하고 있다. 일본과 태국이 날개 자원을 활용해 득점을 하지만 한국은 중앙에서 공격을 풀어나갔다. 대부분 경기에서 중앙 속공과 이동 공격으로 득점을 했다. 반면 경쟁 팀과 비교해 날개 공격수의 후위 공격 시도가 적었다는 건 아쉬웠다. 또 중앙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공격 활로를 찾지 못해 상대 블로커에 자주 노출되기도 했다.
숙제와 함께 마주한
희망
아쉬움도 존재하지만 수확도 있었다. 앞으로 한국 여자배구의 미래도 확인했다. 한봄고 김세빈은 유일하게 U18대표팀과 U20대표팀 무대에서 경쟁력을 테스트 받았다. 그는 아시아유스선수권에선 베스트 미들블로커에 뽑히며 아시아 무대에서 이름을 확실히 알렸다.
U18대표팀에 뽑혀야 하는 선수가 그 보다 윗 단계인 청소년대표팀에서도 많은 출전 기회를 잡았다는 건 그만큼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다. 장윤희 여자 유스대표팀 감독과 어창선 여자 청소년대표팀 감독 모두 “키플레이어는 김세빈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역할이 중요했다. 그는 U20 대표팀에선 미들블로커와 아포짓을 오가며 경기를 치렀다. 어창선 감독은 “세빈이가 높이와 파워가 있기에 주 공격수로 활용하고자 아포짓으로 출전시켰다”라고 설명했다.
효과도 있었다. 중앙과 오른쪽 날개 공격이 모두 가능한 김세빈이 전위에 자리하면 오른쪽 측면 공격뿐만 아니라 중앙 속공까지 다양한 패턴 플레이의 공격이 가능해졌다.
프로 신인들의 새로운 발견도 수확이다. 대회 전 “프로 1년 차 선수들의 실전 경기 감각을 끌어올리는 게 급선무다”라고 했던 어창선 감독의 말처럼, 프로 데뷔 이후 출전 기회가 많지 않았던 선수들이 대표팀의 주축으로 잠재된 기량을 뽐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아웃사이드 히터로 활약했던 양유경(IBK기업은행)은 이번 대회 베스트 아포짓 스파이커에 선정되면서 공격력을 인정 받았다. 박수연(흥국생명)과 김세인(한국도로공사)은 윙스파이커로, 이지수(KGC인삼공사)는 미들블로커로 경험을 쌓았다.
U18 대표팀은 강서브를 자랑했다. 특히 아포짓 신은지는 선명여고 1학년 때부터 날카로운 서브구사로 주목받았다. 신은지의 서브는 아시아 무대에서도 통했다. 신은지 뿐만 아니라 대표팀의 여러 선수가 강서브를 구사했다. 조별예선 경기는 모두 서브로 승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신은지와 함께 트윈타워 김세빈-이지윤이 공격 선봉에 자리했다면, 아웃사이드 히터에선 곽선옥과 전다빈이 살림꾼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특히 곽선옥은 장윤희 유스대표팀 감독이 김세빈과 함께 키플레이어로 꼽았다. “선옥이가 수비에서 큰 힘을 준다. 화려한 공격보단 서브 리시브와 수비에서 좋은 활약을 해주는 선수라 뒤에서 중심을 잡아 줬다”라고 칭찬했다.
희망과 함께 숙제를 마주했다. 이미 일본과 태국의 성과를 통해 배구는 신장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몸소 느끼고 왔다. 해를 거듭할수록 유소년 선수들의 신장이 낮아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젠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조직력 있게 배구를 풀어가야 한다. 프로팀이 지명한 신인 선수가 입단하면 다시 기본기부터 배우는 것이 현실이다. 그만큼 어릴 때 기본기를 확실히 다지지 못하고 성장한 꿈나무들이 많다. 유소년 단계에서부터 기본기를 확실하게 가르쳐야 하지만 눈 앞의 성적에 급급해 그 것을 계속 외면하고 있다.
이는 학교에서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일본, 중국, 태국은 국가가 직접 유망주 선수들을 육성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 있다. 일본은 전국 고등학교 배구팀이 엘리트와 클럽팀을 포함해 500개가 넘는다. 탄탄한 인적 인프라 속에서 좋은 선수들이 꾸준히 나오는 것에 비하면 우리의 배구환경은 너무 척박하다. 이 숙제를 해결해야 더 희망찬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
글. 김하림 기자
사진. AVC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8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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