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들은 젊은 선수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쌓을 기회를 주고 싶어 한다. 그러나 매 경기 치열한 순위 싸움이 벌어지는 V-리그에서 젊은 선수들의 성장을 위해 경험치를 쌓아주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대한항공의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은 2000년생의 젊은 리베로 송민근을 새로운 것들이 무궁무진한 슬로베니아 무대로 떠나보냈다. 낯선 환경 속에서도 한 달간 열심히 훈련을 소화한 송민근은 슬로베니아 리그 ACH 발리 류블랴나에 임대로 공식 합류하게 됐다.그에게 슬로베니아에서 보낸 한 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송민근이 지난해 11월 3일에 처음 슬로베니아로 향했을 때는 이적에 관한 사항은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었다. 오히려 일종의 단기 유학이나 연수에 가까운 형태였다.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 역시 송민근에게 “네가 누군지, 또 어떤 기술들을 가졌는지 보여줘라. 그리고 많은 경험을 통해 더 강해져서 돌아와라”라는 말을 남기며 경험을 쌓고 돌아오는 정도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는 짧은 시간 안에 류블랴나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고, 류블랴나는 그에게 정식 임대 계약을 제안했다. 그렇게 송민근은 유럽 리그에 정식으로 발을 들이게 됐다.

이제 공식적으로 류블랴나의 선수가 된 송민근은 필요한 비자 준비와 짐 정리 등을 위해 지난해 12월 17일에 잠시 한국으로 돌아왔고. 인천공항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먼저 “한 달 만에 돌아오게 될까봐 걱정도 했는데, 임대 계약이 좋은 쪽으로 잘 진행돼서 좋다. 소중한 경험이 될 것 같다”며 류블랴나에 임대로 입단하게 된 소감을 전했다. 임대 소식이 전해진 뒤 어떤 사람들에게 연락을 많이 받았냐는 질문에는 “대한항공 형들한테 연락이 많이 왔다. (오)은렬이 형, (조)재영이 형, (정)성민이 형 등등 많은 형들이 연락을 하셨다”는 대답을 내놨다.

정식 계약을 맺지 않은 상태로 팀 훈련에 합류했지만, 송민근은 훈련 과정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다면 정식 선수로 합류할 수 있을 거라는 나름의 기대와 욕심을 갖고 있었다. 송민근의 스승인 대한항공 블레어 벤 코치 역시 “송민근이 슬로베니아에 배우고 성장하기 위해 갔다는 것을 그 곳에서의 첫 순간부터 보여줬으면 한다. 또한 자신의 발전뿐만 아니라 류블랴나라는 팀도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밀어붙였으면 한다. 그가 대한항공에서 그간 훈련받은 것이 무엇인지 류블랴나에서 보여줬으면 좋겠다”며 그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이 기대들은 현실이 됐다.

훈련 세션을 소화하면서 ‘어쩌면 내가 이 팀에 남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가진 순간들이 있었는지 묻자 송민근은 그런 순간이 있었음을 솔직히 인정했다. 그는 “아무래도 주전 리베로인 야니 코바치치 선수가 리시브가 워낙 좋은 선수다보니, 나는 훈련 초반에는 리시브보다는 수비 위주의 역할을 담당했다. 그런데 그냥 공에 손을 갖다 대면 위로 잘 뜨더라. 뭔가 느낌이 좋아서, 잘하면 계약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방심하지 않고 끝까지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훈련에 임했다”며 자신이 느꼈던 긍정적인 직감을 소개했다.

송민근과 긍정적인 직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이름이 언급된 리베로 야니 코바치치는 류블랴나와 슬로베니아 국가대표팀의 붙박이 주전으로,. 2023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베스트 리시버·2020-2021 이탈리아 세리에 A1 베스트 리시버로 선정된 월드 클래스 리베로다. 마찬가지로 세계구급 리베로 출신인 블레어 코치가 “코바치치는 매우 경험이 많고, 유럽 최고 수준의 리그에서 뛰면서 국제전에서도 계속 좋은 성적을 내는 뛰어난 리베로다. 송민근이 코바치치의 플레이를 보면서 그에게 많은 질문을 했으면 좋겠다. 물론 코바치치도 송민근이 잘하고 있는 점을 잘 짚어줄 것이다. 두 선수가 류블랴나에서 좋은 리베로 듀오가 될 것”이라며 긍정적인 영향력을 주고받을 것이라고 기대했을 정도다.

블레어 코치의 기대대로 송민근은 코바치치로부터 긍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었다. 송민근이 전해준 훈련장에서의 사진 속에서도 두 선수가 밝은 표정으로 나란히 붙어 있는 사진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는 “같이 공을 받아보니 확실히 경험이 풍부하고 안정적인 선수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며 코바치치의 옆에서 많은 걸 느끼고 배웠음을 전했다. 송민근은 이제 정식 선수가 된 만큼, 단순히 보고 배우는 것을 넘어 코바치치의 짐을 덜어주는 역할도 수행할 참이다. 그는 “리시브는 코바치치가 담당할 테니, 나는 수비에서 힘을 보탤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수비가 너무 잘 돼서 계약을 직감했던 것 외에도, 송민근이 들려주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 속에서는 그의 타고난 적응력과 자신감이 느껴졌다. “첫 1주일 정도는 꽤 힘들었다”고 슬로베니아에서의 적응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 송민근은 “그런데 그 이후부터는 괜찮았다. 우선 음식이 입에 맞았다. 점심에도 피자를 먹을 수 있고, 저녁에도 피자를 먹을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았다. 팀 훈련 방식도 편하게 스며들 수 있는 방식인데다 분위기도 밝고 재밌어서 좋았다. 훈련 스케줄도 오히려 한국보다 쉬는 날이 좀 더 많아서, 자유 시간이 많았다. 자유 시간에는 여기저기 구경도 좀 다녔는데 되게 좋았다”며 해맑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왜 틸리카이넨 감독이 송민근과의 통화에서 “네가 거기서 잘 지낼 거라는 건 충분히 예상했기 때문에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했는지 대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아무리 적응력이 뛰어나고 자신감이 넘쳐도 생전 처음 가보는 곳에서의 한 달 살이에 어려움이 없을 수는 없었다. 송민근을 괴롭힌 것은 이동 수단과 슬로베니아의 ‘조용한 주말’이었다. 송민근은 “구단에서 차를 받지 못해서, 같이 지내는 친구들이랑 함께 차를 타고 다녀야 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이 가끔 나를 두고 자기들끼리 운동을 하러 가버릴 때가 있는데 그러면 내가 탈 차가 없어서 이동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친구들이랑 꼭 스케줄을 맞춰서 같이 다녀야했다”며 이동에서의 어려움을 먼저 소개했다. 

‘조용한 주말’에 대해서는 “가끔 매운 음식이 먹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럴까봐 한국에서 라면을 좀 가져갔었는데, 그걸 다 먹어버린 뒤에는 한식당과 한국 마트를 찾아다녔다. 한식당은 한두 곳 정도가 있었고, 한국 마트는 딱 하나가 있었다. 그런데 슬로베니아는 주말에는 마트 같은 편의 시설이 전부 문을 닫아버린다. 그래서 무조건 평일에 시간을 내야 했다”는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송민근의 소속팀 류블랴나는 2024 유럽배구연맹(CEV) 챔피언스리그에도 출전한다. 트렌티노·루베·피아첸차(이상 이탈리아), 할크방크·지랏 방크(이상 튀르키예), 작사 코즐레(폴란드) 등 세계적인 강팀들이 출전하는 큰 대회인 만큼 송민근에게는 월드 클래스 배구를 직접 경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는 실제로 훈련 기간 중 트렌티노 원정길에 동행해서 알레산드로 미켈레토(이탈리아), 마르코 포드라스카닌(세르비아) 등 최정상급 선수들의 플레이를 관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송민근은 송민근답게 월드 클래스들 앞에서도 오히려 자신감을 찾았다. 그는 “예전에는 이탈리아나 폴란드의 배구를 보면서 저건 절대 닿을 수 없는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번에 CEV 챔피언스리그를 보면서 리베로로서는 내가 열심히만 하면 해외 리그에서도 충분히 활약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느꼈다”고 씩씩한 이야기를 꺼냈다.

송민근에게 이번 임대 이적을 계기로 아예 해외 리그에서 커리어를 더 길게 쌓고 싶은 생각이 있는지도 물었다. 그는 “처음 나갈 때는 걱정이 좀 많았지만 막상 나가보니 다양한 경험들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뛰면서 그 곳에 참가하는 다른 팀들에도 내 이름을 알릴 것”이라며 욕심이 없지 않음을 밝혔다.

그는 끝으로 “조금은 갑작스럽게 진행된 임대 이적인데도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셨다. 덕분에 좋은 기회를 얻었다. 꾸준히 좋은 모습 보여드리면서 한국 배구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겠다”는 당찬 포부를 전하며 그리웠던 대한항공의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글. 김희수 기자

사진. 선수 제공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1월호에 게재됐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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