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정한용이 도달한 정상궤도(定常軌道), 그리고 도전할 정상(頂上)

매거진 / 김하림 기자 / 2023-03-30 12: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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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연속 통합우승’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비행하는 대한항공 2022-2023편에 신형 엔진을 달았다. 정한용이다. 탄탄한 기본기, 강한 서브와 공격, 많은 우승 경험으로 다져진 역량은 새로운 추진력을 팀에 선물했다. 정한용을 왼쪽 날개에 장착한 새 항공기는 이륙하기까지 시행착오도 겪었다.모두의 기대만큼 빠른 속도로 활주로를 박차고 오르지는 못했지만, 안정적인 비행을 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한용의 가세로 5라운드의 난기류를 뚫고 정상궤도에 올라선 대한항공은 정규리그 1위라는 경유지를 무사히 통과했다. 이제 마지막 목적지를 향해 날아간다. 고공비행의 끝이 보인다.
 


“찾아온 기회, 잘 해내야죠”

도드람 2022-2023 V-리그 5라운드, 시즌 시작부터 1위 자리를 지키던 대한항공이 난기류를 만났다. 모든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져 힘들어 했다. 베테랑이 많은 팀이 항상 이때쯤이면 겪던 위기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곽승석이 종아리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게 됐다. 그는 오랫동안 대한항공의 왼쪽 엔진 역할을 해왔다. 결국 2년 차 정한용은 프로 13년 차의 베테랑을 대신해 코트를 밟았다. 새 엔진은 5라운드 삼성화재와의 경기에서 데뷔 이후 첫 선발로 나섰다. 개인기록은 좋았다. 한 경기 개인 최다 18점에 48.65%의 리시브 효율로 공수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팀은 3연패에 빠졌다. 이후에도 기회를 얻었지만, 승리와 쉽게 인연이 닿지 않았다. 기다림 끝에 행운은 찾아왔다. 4연패의 늪에서 치른 KB손해보험 경기에서도 선발로 나섰다. 그날 정한용은 연패에서 팀을 구해냈고, 자신의 가능성도 한껏 보여줬다. 대한항공이 자랑하는 두 명의 국가대표 아웃사이드 히터, 곽승석과 정지석의 뒤를 이을, 정한용이 마침내 팀의 새로운 왼쪽 날개로 떠올랐다. 그야말로 오랜 기다림 끝에 등장했다.


5라운드는 팀에게는 어려운 순간이었지만, 선수에겐 의미 있는 순간들이었다. 정한용은 “연패하는 동안 당연히 아쉬웠다. 그래도 나에겐 경험이 중요했기 때문에 승패에 상관없이 경기를 뛰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뒀다”라고 긍정적으로 이야기했다. 특히 홈에서 지긋지긋했던 연패를 끊어낸 날, 정한용은 방송사 수훈 선수 인터뷰뿐만 아니라 언론사 인터뷰까지 했다.

 

의미 깊은 날이었지만 선수 스스로는 사뭇 아쉬웠다. “더 잘한 날 인터뷰를 하고 싶었는데, 스스로 돌아보면 만족스러운 경기력은 아니었어요. 아쉬웠지만, 연패도 끊을 수 있었고 형들이 물세례로 축하해줘서 좋았습니다(웃음).”

 

6라운드에도 정한용에게 기회의 문은 열렸고, 활약은 계속됐다. 그는 “우리 팀의 아웃사이드 히터가 강해서 나를 보여줄 시간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 시즌 시작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렇게 기회가 올지 몰랐다. 찾아온 기회를 어떻게든 잘 살려보려고 했다. 기회를 잡은 덕분에 내 활약을 보여줄 수 있었고, 인터뷰도 하는 것 같아 기쁘다”라고 웃었다.


여러 팀을 만나면서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선수가 있는지 물었다. 그는 “경기를 하면서 플로터 서브는 잘 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대캐피탈 최민호 선수의 서브는 달랐다. 플로터임에도 불구하고 엄청 빠르게 느껴지고 꽂히는 느낌이라 고전했다. 지금까지도 두려운 서브 중 하나”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현재 V-리그 서브 1위를 기록한 OK금융그룹 레오의 서브는 어떤지도 궁금했다. “레오의 서브는 ‘펑’하는 소리에 눈뜨면 바로 앞에 공이 있는 느낌이다(웃음). 진짜 서브가 아니라 백어택 공격 같다. 그래서 잘 보낸다는 생각보다는 ‘띄워놓자, 넘기지만 말자’고 스스로 다짐하고 받는다”고 대답했다.
 

본인이 직접 원했던 배구 선수의 길

배구공을 처음 잡았던 그 순간으로 잠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봤다. 정한용은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에 흥미도 없고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느낌이 컸다. 어렸으니깐 더 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운동하는 걸 더 좋아했다. 학교에 배구부도 있었던 만큼 내가 먼저 부모님께 배구하고 싶다고 졸랐다”며 처음 배구공을 잡게 된 계기를 들려줬다.


“동아리로 배구를 시작했어요. 4학년 때 처음 배구 선수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는데 부모님이 공부가 우선이라고 운동은 안 된다고 하셨어요. 계속 배구하고 싶다고 하니 이후에는 시켜주셨죠.”


다행히 배구는 그에게 잘 어울렸다. 소질도 있었다. 저학년 때부터 꾸준히 주전선수로 뛸 기회를 얻었다.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모든 단계에서 우승도 경험했다. 그것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여러 차례 정상에 올랐다. 정한용은 당시를 되돌아보면서 “중학교 때는 아주 미흡했다(웃음). 고등학교 때는 (임)동혁이 형, (임)성진이 형, (조)용석이 형까지 좋은 형들과 함께 한 덕분에 나도 우승도 하면서 좋은 경험을 많이 했다”라고 함께 했던 동료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수많은 결승전 무대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다. 제천산업고 1학년과 3학년 때 경험한 전국체전, 홍익대 1학년 때 출전했던 2020 KUSF 대학배구 U-리그가 머릿속에 오래 남아 있다.


“고등학교 때는 두 번의 전국체전이 가장 기억에 나요. 1학년 때는 우승해서 좋았죠. 3학년 때는 우승을 못 했지만, 재밌는 경기를 해서 만족하고 있습니다. (당시 정한용의 제천산업고는 남성고와의 경기에서 풀세트 접전 끝에 준우승에 그쳤다.) 대학교 때는 1학년으로 우승한 게 제일 크게 다가와요. (이)준이 형이랑 같이 리시브도 많이 하면서 공격했던 만큼 서로 이야기도 많이 하고, 우승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제일 많이 했던 시기였어요. 우승하고 나서 회식 때 형들이랑 샴페인도 터트리면서 정말 기억에 남는 날이었어요(웃음).”


특히 홍익대 1학년 때 우승을 차지하던 경기에서 나온 한 장면은 지금까지 생생하다고 얘기했다. 5세트 12-9로 앞선 상황에서 정한용은 승패에 쐐기포를 박는 공격 득점을 올렸다. 정한용은 포효하면서 박종찬 감독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5세트 때 공격 득점 이후 세레머니를 하고 감독님이랑 하이파이브를 했어요. 세리머니를 크게 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그때는 나도 모르게 나왔어요(웃음). 경기 끝나고 감독님께서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 처음 봤다’고 해주셨던 게 기억에 남아요.”


아마추어 무대를 휩쓴 덕분에 연령별 대표팀에도 꾸준히 뽑혔다. 고등학교 3학년인 2019년에는 U19 대표팀과 U21 대표팀에 나란히 이름을 올리며 세계 무대에서도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대표팀은 좋은 경험으로 남아있다. 국제대회를 다녀온 뒤 학교에서 운동할 때는 더 잘되는 느낌이 나고 책임감도 생겼다”라고 정한용은 되돌아봤다.


처음부터 아웃사이드 히터로 배구를 시작한 건 아니었다. 중학교 때는 미들블로커였다. 중학교 수준의 배구에서는 팀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에게 미들블로커 역할을 맡긴다. 대신 블로킹은 사이드까지 가담하는 플레이를 주로 한다. 정한용도 그래서 코트 중앙에서 경기를 했다. 고등학교 진학 이후 아웃사이드 히터로 포지션을 굳혔다. 그는 “제천산업고 감독님이랑 코치님이 아웃사이드 히터를 시키려고 리시브와 수비 훈련을 엄청나게 시켰다. 김태원(성균관대)과 함께 신입생으로 들어가서 매일 코트 위를 굴렀다(웃음)”라고 힘들었던 순간을 이제는 웃으면서 얘기했다.

 

지금까지 배구하면서 많은 은사를 만났다. 그중에서도 제천산업고 때 만난 지도자들은 더욱 기억에 남아있다. 정한용은 “나에게는 다 감사한 감독님과 코치님이었다. 특히 선수로 성장하게 해주시고 리시브 능력을 키워주셨던 제천산업고 김광태 감독님과 배규선 코치님이 내 배구 인생에 도움이 많이 됐다”라고 여전히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아웃사이드 히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지금도 내 경기를 보러 찾아와 주시고 경기 끝날 때마다 연락도 주세요. ‘고생했다, 잘했다’ 등을 비롯해서 플레이 피드백까지 보내주세요. 정말 감사하고 그만큼 잘하려고 합니다.”

 


일찍 나선 프로에서 처음 겪은 슬럼프
그럼에도 다시 꽉 맨 신발 끈


아마추어에서 우승과 개인상을 휩쓸었던 만큼 프로 무대에도 일찍이 도전했다. 대학교 2학년 때 당당히 드래프트 신청서를 제출했고, 2021-2022시즌 1라운드 3순위로 대한항공 유니폼을 입었다. 프로에 빨리 오게 된 이유로 그는 “고등학교에서 대학교에 올라왔을 때 대학의 벽을 느꼈다. 그래서 대학교와 프로도 다를 거란 생각에 빨리 경험하고 적응해서 경기에 뛰고 싶었다”고 했다.


드래프트 당시 재밌는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당시 비대면으로 진행됐는데, 뽑히고 나서 소감을 말해야 했어요. 어느 정도 생각을 해놨는데 막상 내 이름이 불리고 앞에 앉으니깐 아무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드래프트 전에 형들과 긴장을 풀려고 구단 이름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게 머릿속에 남았는지, 나도 모르게 대한항공이 아니라 우리카드라고 말해버렸죠. 그 이후론 완전히 백지상태가 돼서 뭐라 떠들었는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당시의 드래프트 영상은 절대 다시 볼 생각이 없어요(웃음). 보내줄 때마다 절대로 다 안 보고 짧게 넘겨요.”


데뷔 시즌 개막전부터 원포인트 서버로 나서 당당하게 데뷔전을 치렀다. 첫 순간은 언제나 오래 기억되는 법. 정한용은 “첫 서브는 범실을 했고, 두 번째는 넣었는데 바로 사이드 아웃돼서 코트 밖으로 나왔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긴장을 안 할 줄 알았는데 코트 안과 밖의 분위기가 달랐다. 막상 코트에 들어가니깐 몸이 안 움직이고 점프도 안 되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신기했다”라고 처음 프로 무대를 밟은 소감을 말했다.


프로 첫해에 팀의 2년 연속 통합우승 역사를 함께했다. “기뻤지만, 나도 얼른 코트 위에서 한 번 같이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제일 컸다. 그래서 비시즌 때 더 이를 갈고 훈련했다”며 기쁨과 함께 자극도 받았음을 고백했다. 겉으로 드러난 행복 뒤에는 남모를 속사정도 있었다.


배구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슬럼프에 빠졌다. “프로에 오기 전까지는 주변의 기대에도 큰 부담은 없었어요. 하지만 막상 프로에 들어오고 나서 받는 기대에 급해진 느낌이 들었죠. 팀의 빠른 플레이에 적응을 못 하니깐 스스로에 실망이 컸어요. 초반에는 될까 말까 했는데, 갑자기 한순간에 확 무너진 것 같았어요. 계속 배구하기가 무서웠고 코트에 들어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무서웠어요. 들어가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요.”


하지만 이대로 배구공을 놓을 생각은 없었다. 프로에서 맞이한 첫 비시즌,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다시 신발 끈을 단단히 매고 코트에 들어갔다. 정한용은 “비시즌 때 감독님이 원하는 대로만 해보자고 다짐했다. 안 되더라도 다시 시도하면 감독님도 좋아해 주시고, 주변에서 칭찬도 많이 해줬다. 자연스레 자신감과 하고 싶은 의지도 생기고, 욕심을 많이 냈던 비시즌이었다”면서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던 그 때를 되돌아봤다.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에게 배우는 배구는 지금까지 배운 배구와 전혀 달랐다. “지금까지 배웠던 느낌의 배구는 아니었다. 감독님이 확실하게 원하는 스타일이 있다. 본인의 배구 안에서 다양한 플레이를 하는 걸 좋아하는데, 처음 보는 플레이가 정말 많았다. 일본이나 이탈리아 리그에서 활용되는 기술들도 알려주셨다”라고 설명했다.


극복하는 데는 임동혁의 도움도 컸다. 함께 선수생활을 했던 제천중, 제천산업고 이후 다시 프로에서 한솥밥을 먹으면서 의지하는 존재가 됐다. “프로에서 동혁이 형의 위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었다. 힘들어했을 때 형이 내 이야기도 들어주고 조언도 해주면서 비시즌 때 같이 다녔다”라고 밝혔다.


노력은 기회로 찾아왔다. 2022 KOVO 컵대회에서 드디어 선발 아웃사이드 히터로 코트를 밟았다. 5경기 16세트에 출전해 41점, 40.79%의 공격 성공률과 32.94%의 리시브 효율을 기록했다. 선배들과 똘똘 뭉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실력도 인정받았다. 2022년 여름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그 우승에는 숨겨진 얘기도 있다. “처음에는 정말 자신감이 넘쳤다. 그러다 경기 도중에 교체당해서 경기를 마지막까지 소화하지 못했다. 그 경기 이후 (정)지석 형이 따로 불렀다. ‘네가 못해서 잘린 게 아니다. 다음 경기도 잘해보자’며 자신감을 계속 준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좌우명으로 담배는 피우지 말자,
꿈은 돈 많은 백수?


이야기에 잠시 배구를 내려놨다. 아이스 브레이킹 질문으로 제격인 MBTI를 묻자 “INFJ랑 ISFJ 두 개가 번갈아 가면서 나온다. 확실한 내향형(I)이다. 계획형(J)이기도 하지만 실행은 잘 안한다(웃음). 틀어져도 딱히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라고 대답했다. 계획형인 만큼 루틴도 있다. 정한용은 “많은 루틴이 있는 건 아니지만, 항상 오른쪽 신발 끈부터 맨다”고 했다.


“쉬는 날에는 형들이랑 술 먹거나 놀러 가고, 친구들이랑 연락해서 만나는 게 대부분”이라면서 팀원들과 함께 했던 에피소드도 살짝 들려줬다. “팀원들이랑 놀 때마다 (김)민재의 흑역사가 제일 많아요. 술을 마시면 없던 자신감도 생기잖아요. 노래방에서 노래도 막 불러요. 놀다가 형들 지치면 민재 노는 것 보고 영상 찍고 재밌게 놀아요.”


코트가 아닌 책상에서 보낸 학창 시절은 어땠을까. 정한용은 “초등학교 때는 발표하는 걸 싫어했다. ‘쉬는 시간에 뭐 하고 놀지’라는 생각만 했던 학생이었다. 중, 고등학교 때도 비슷했다(웃음). 수업 내내 쉬는 시간마다 누구랑 어디 갈지, 운동 어떻게 하지 고민을 많이 했다”라며 웃었다.


이제 그는 한창 대학교 생활을 즐길 23살이다. 만일 배구를 하지 않는 일반 학생이 됐을 때를 상상해보라고 하자 “체육 관련 전공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워낙 운동하는 걸 좋아해서 초등학교 때의 꿈이 운동선수였다. 배구를 하지 않았더라면 다른 종목을 했을 것 같으니, 대학교에 갔더라도 그쪽으로 갔을 거다”라고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그려봤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도 있다.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니는 걸 좋아한다. ‘먹방’ 영상을 보면서 적어놨다가 친구들이나 가족이랑 같이 간다”라며 자신의 ‘소확행’을 꺼냈다.


사람 정한용으로 생각하는 좌우명과 꿈은 다소 특별했다. 좌우명으로 ‘담배는 피우지 말자’, 꿈은 ‘돈 많은 백수’다. 그는 “담배 냄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피는 것도 당연히 안 좋아해 미래를 위해서라도 안 핀다. 그리고 돈 많은 백수가 최고라고 생각한다(웃음). 진짜 내 인생의 마지막 목표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보고 배울 게 많은 선수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이야기에서 배구를 빼려고 했으나, 배구 선수에게 배구는 떼러야 뗄 수 없는 존재였다. 인생에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언제인지 묻자, 프로 1년 차를 꼽았다. 정한용은 “입단하고 나서 팀이 원하는 플레이를 잘 못했다. ‘나 자신을 더 믿고 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항상 남아있다. 그래서 돌아간다면 더 빨리 받아들이고 실행해보고 싶다”라고 이유를 들었다.

 

그럼에도 배구 선수의 길을 택한 건 후회한 적은 없다. “운동이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고등학교 1학년 때 생각은 한 적이 있다(웃음). 하지만 지금까지 후회 없이 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외유내강.’ 정한용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모습이자 단어였다. 그럼, 지금까지 배구공을 잡으면서 본인이 직접 그린 자신의 프로 선수 모습은 어땠을까. “어릴 때는 공격하는 게 멋있어 보이잖아요. OK금융그룹 레오가 삼성화재에서 뛸 때였어요. 레오의 공격을 보면서 나중에 나도 저런 공격을 많이 때리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점점 크면서 다 잘해야겠다고 느끼면서 팀에 있는 형들을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승석이 형이랑 지석이 형 모두 잘하는 선수인 만큼 보고 배우면서 계속 같은 팀에서 같은 자리를 지키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프로 선수가 된 지금 정한용은 “어렸을 때 목표했던 건 아직 달성 못 했다. 성장 중인 만큼 10~20%만 도달했다”라면서 “10년 뒤에도 코트에서 계속 뛰고 있으면서 보고 배울 게 많은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라며 새로운 목표를 전했다.


앞으로 더 높은 곳을 향해 날아오를 일만 남았다. 팬과 가족을 향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우선 “항상 경기장에서 많은 응원해주시는 팬들에게 감사드린다. 응원에 보답할 수 있도록 매번 좋은 활약 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열심히 노력하겠다”라고 감사의 마음을 남겼다.


“가족이 나를 중심으로 움직였어요. 내 패턴대로 움직이고, 대회 있을 때마다 따라오면서 뒷바라지하는 것에 신경 써주셨어요. 아무래도 나한테 신경이 쏠리니까 누나가 서운해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걸 대학교 때 알았어요.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부모님께 누나를 더 신경 써달라고 이야기했죠. 그만큼 나를 위해서 도와주신 부모님과 누나한테 고마우면서 미안해요. 앞으로도 가족들에게 제일 잘해야죠.”

 

 

글. 김하림 기자

사진. 유용우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4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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