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V-리그를 위한 발전 방향
- 매거진 / 이보미 / 2024-04-12 16:11:38
2005년 출범된 V-리그의 2023-24시즌도 마지막 봄배구 꽃을 피우기 위해 달려가고 있다. 흔히 말하는 강산이 두 번 변할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향후 더 탄탄한 V-리그를 위해서는 어떠한 것들이 필요할까. V-리그 발전 방향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김민철 KBSN 스포츠 해설위원과 정다워 스포츠서울 기자, 남정훈 세계일보 기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2005년 출범된 V-리그의 스무번째 시즌이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먼저 V-리그 외국인 선수 제도는 남자부 2005-06시즌, 여자부 2006-07시즌부터 시작됐다. 2015년부터는 자유계약으로 인한 부작용을 막고자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 제도를 도입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007년에는 세계 최초로 V-리그에서 비디오 판독을 도입했다. 이후 국제배구연맹(FIVB)을 비롯해 해외에서도 비디오 판독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2018-19시즌부터는 여자부 경기 시간이 변경됐다. 평일 오후 5시가 아닌 남자부와 동일하게 7시에 진행된 것. 관중 동원 등 마케팅 측면에서 긍정적인 기대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남자부 6개팀과 여자부 5개팀으로 출발한 V-리그는 2021년 여자부 ‘막내구단’ 페퍼저축은행이 창단되면서 남자부 7개팀과 여자부 7개팀이 완성됐다.
2023년에는 처음으로 아시아쿼터 제도가 도입됐다. 아시아쿼터 선수들이 팀 키플레이어가 됐고, 리그 판도를 요동치게 만들기도 했다. 약 20년 동안 걸어온 시간들을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Q. 더 나은 V-리그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김민철 해설위원 : V-리그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V-리그의 수준 높은 경기력을 바탕으로 산업적 측면에서 가치를 가진 스포츠콘텐츠로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 우수한 유소년 배구선수들이 육성되지 못하면서 V-리그는 기존 선수들로 리그와 국가대표를 운영해 왔고,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듯이 V-리그 선수들을 주축으로 한 남자 및 여자대표팀 모두 아시아권에서도 상위권에 진입하지 못했다. 이는 결국 V-리그의 관중 및 시청률 감소로 이어졌고, 대한민국 겨울 스포츠를 책임지던 V-리그의 위상도 예전과 다르게 변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지속가능한 V-리그의 운영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반드시 국내 우수한 신인선수들을 리그에 공급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대한배구협회와 한국배구연맹(KOVO)의 유기적인 협력체계확립과 전문가들의 중장기적인 발전계획 수립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남정훈 기자 : 외국인 선수 선발 제도가 트라이아웃 제도이다 보니 외국인 선수의 기량이 고만고만하다. 그렇다 보니 국내 선수 뎁스에 따라 성적이 갈리는 모습인데, 국내 선수들은 받는 돈에 비해 기량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구단들은 FA 선수들을 비싼 돈을 주고 사와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국내 선수 뎁스가 약한 팀도 성적을 낼 수 있고, V-리그의 질적 향상을 위해선 적어도 외국인 선수 선발은 자유계약으로 다시 돌려야 각 구단 프런트 역량이 드러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정다워 기자 : 전문성과 집중도. 선수 실력, 기량뿐 아니라 지도자와 구단 사무국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시대다. 이제 선수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도자의 역량, 사무국의 방향성 등이 중요하다. 선수 재능에 의존하는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이보미 기자 : 현재 V-리그에서 가장 필요한 한 가지만 골라야 한다면 ‘2군리그’다. 모두가 2군리그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돼있지만 2군리그를 도입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매년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선수를 선발하지만, 이들이 뛸 무대가 없다. 이 선수들이 육성될 시간, 기회조차 없는 셈이다. 각 팀들은 매년 정해진 정원에 맞춰 선수를 내보내야 한다. 출전 기회가 적은 신인 선수들이 1년 만에 프로팀을 떠나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국배구연맹은 각 팀 사무국장이 참가하는 실무위원회, 단장이 참석하는 이사회를 거쳐 팀 정원을 확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웜업존에 있는 선수들을 활용할 가능성은 낮다. 대부분의 팀들이 주전 멤버들로만 리그를 운영한다. 정원을 늘리면서 선수단 규모가 확대됐지만 웜업존에 있는 선수들이 출전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물론 현재 주전 선수들의 기량을 뛰어 넘을 만한 자원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꿈나무 육성과 동시에 프로에 입문한 이 자원들에 대한 투자도 필요하다. 그렇지 않는다면 베테랑 선수들의 연봉 인플레이션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Q. 외국인 선수, FA, 2군리그, 유스클럽팀 운영 등 제도적 보완 혹은 도입 위해 필요한 것은?
김민철 해설위원 : 현재 V-리그에서 외국인 선수들의 공격 점유율은 평균적으로 35~40%에 이르고 있으며, 중요한 경기에서는 50%가 넘는 외국인 공격수의 점유율도 심심치 않게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더욱 암울한 것은 앞으로도 이러한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며, 아시아쿼터의 확대는 국내 선수들의 입지를 더욱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리그에서 경쟁력 있는 신인선수들의 공급이 주춤하면서 기존 선수들을 중심으로 FA 고액연봉자들이 속출하고 있으며, 이는 구단운영과 리그에도 상당히 부담이 되고 있다.
특히 다수의 선수들이 팀을 자주 이적하면서 한 구단에서 오랜 시간 뛰는 프랜차이즈 스타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따라서 KOVO에서도 이러한 점을 보완할 수 있는 FA 제도 개선, 샐러리캡 안에서 고액연봉자의 연봉상한비율 조정, 연고도시와의 매칭펀드 조성을 통한 2군팀 운영 등의 논의를 시급히 시작해야 한다.
남정훈 기자 : 외국인 선수 제도는 상술했으니 차치하고, 아시아쿼터 외국인 선수 제도도 개선이 필요하다. 아시아쿼터 선수들이 팀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연봉이 적다. 일본도 아시아쿼터 제도를 운영 중이다 보니 양질의 아시아 국적 선수들을 일본에 빼앗긴다는 소리도 들린다. 아시아쿼터 선수들의 연봉을 대폭 인상시켜야 한다. 아울러 아시아쿼터 2명 보유 1명 출전 등의 제도를 통해 국내 선수들이 안주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선 피나는 노력을 할 수 있는 채찍이 필요하다고 본다.
국내 선수들의 발전을 위해선 2군 리그 도입이 필수적이다. 다른 종목들은 2군 리그 운영을 통해 후보 선수들이 2군에서 어떤 성적을 내는지 데이터를 다 볼 수 있다. 반면 V-리그는 2군리그가 없어 백업급 선수들이 어느 정도의 기량을 가졌는지 알 수가 없다. 2군 리그 운영이 어렵다면 동의하는 구단들에 한해서 ‘체이서 매치’를 갖고, 이를 기록화하는 작업이라도 해서 새로운 스타 발굴을 위해 힘써야 한다고 본다.
정다워 기자 : 발전을 위한 본질을 개선하려면 유소년 제도부터 손을 대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단이 직접 유스팀을 운영해 키우는 방향으로 가야 지금의 인플레이션도 해결이 가능하다. 외국인 선수, 아시아쿼터 등은 결국 본질이 아니다. 우리나라 선수를 키워야 하는데 지금 학원 배구에 맡기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구단이 전문성을 갖추고 키워야 한다. 2군 리그의 경우 선수를 더 뽑아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오히려 구단에 부담되는 역효과가 발생한다.
이보미 기자 : 2군리그에 대해 먼저 살펴보면, 앞에서 언급됐듯 모든 구단의 참가가 어렵다면 의지가 있는 팀들로 먼저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실업팀, 대학팀 등과 연계가 필요하다. 특히 여자부는 실업팀에서 선수를 수혈하고 있다. 사령탑들은 실업 선수들을 영입해 전력을 보강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도로공사 세터 이윤정, IBK기업은행 리베로 김채원 등이 대표적이다.
V-리그의 2군팀과 실업팀, 대학팀 나아가 V-리그가 열리는 기간에 소집할 수 있는 연령별 대표팀 등을 포함해 단기 리그를 진행하는 방법도 있다. 유망주들이 V-리그에서 뛸 자리가 없어 사라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외국인 선수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 이미 해외 곳곳에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올해 1월에는 미국 여자프로배구리그가 새롭게 출범됐다. 외국인 선수는 2명까지 보유할 수 있다. 미국 출신의 선수들 뿐만 아니라 해외 곳곳의 선수, 감독들까지 러브콜을 받고 있다. 트라이아웃 제도를 운영 중인 V-리그에는 위기다. 일본도 2024-25시즌부터 획기적인 변화를 시도한다. 2030년 세계 최고의 리그를 꿈꾸며 외국인 선수 제도를 바꿨다. 한국과 나란히 외국인 선수 1명을 보유하던 일본이 그 수를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세계 정상급 슈퍼스타들을 영입해 리그 활성화를 노린다. 슈퍼스타들을 따라 세계의 눈이 일본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그동안 이탈리아, 튀르키예, 러시아 등 유명한 리그에서 활동한 선수, 감독뿐만 아니라 코칭스태프 등 전반적인 배구 인적 자원들이 미국, 일본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도 외국인 선수 연봉 상한선을 둔 자유계약을 다시 도입해야 한다. 아시아쿼터의 경우 아시아권에서도 국가대표 출신의 유명한 선수들이 V-리그 문을 두드리고 있다. 아시아쿼터 도입으로 V-리그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결론적으로 2군리그 및 그에 준하는 단기리그를 도입하는 동시에 아시아쿼터 1명, 외국인 선수 영입을 자유계약으로 변경해 하향 평준화를 막고 리그의 질을 높여야 한다.
FA 관련해서는 신인 선수들이 첫 FA 자격을 얻기까지 기간이 길다. 대학교 졸업 선수는 5시즌, 고등학교 졸업 선수는 최소 6시즌 동안 출전 수를 충족해야 FA가 된다. 선수들의 자유로운 이동이 어렵다. 이 때문에 구단에서도 선수 수급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선수들의 동기부여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 FA 등급제를 통해 이전보다 이동이 활발해졌지만, 단기간 계약도 필요해보인다.
아울러 현재 각 팀들은 유소년 배구교실을 운영 중이다. 엘리트가 아닌 배구 저변 확대를 위한 투자다. 이탈리아, 튀르키예처럼 연령별 유스팀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초등연맹, 중고연맹과의 연계가 필요하다.
Q 선수와 감독, 심판 역량 강화를 위해서는?
김민철 해설위원 :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 진천선수촌과 같이 국가대표 선수촌이 존재하고 있지만 종목별 거점훈련센터를 별도로 건립·운영함으로써 유소년에서 국가대표선수들까지 경기력 향상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으며, 독일도 각 도시마다 유소년 훈련센터를 운영함으로써 우수한 선수육성에 대한 시스템을 가지고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도 국립 발리볼 트레이닝 센터(가칭)와 같은 배구종목의 거점센터를 건립해야 할 것이다. 국립 발리볼 트레이닝 센터는 유소년, 청소년, 유니버시아드, 성인대표팀의 훈련뿐만 아니라 국제·국내 경기의 개최, 심판 및 지도자 양성과 재교육, 그리고 각종 교육연수에 이르기까지 배구와 관련된 종합적인 싱크탱크로 활용돼야 할 것이다.
남정훈 기자 : 특정 심판들의 판정 시비가 나온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비디오 판독 오심률 등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심판들도 채찍과 당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정다워 기자 : 선수의 기량을 위해서는 유소년 지도자 육성이 필요하다. 협회에 기대하기 어려운 요소다. 연맹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지도자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구단에서 직접 유소년 육성해야 한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구단에서 좋은 선수를 키우기 위해 유소년 지도자를 키우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져야 한다. 심판의 경우 어느 종목이든 논란이 나온다. 역량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는 있다는 생각한다.
이보미 기자 : 선수, 감독, 심판 모두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결국 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가 있어야 한다. 선수는 2군리그, 유스팀 운영 등으로 꾸준히 육성하며 선수 배출이 가능하다. 감독도 마찬가지다. 유스팀-2군팀-프로팀 또는 연령별 대표팀 등을 경험하며 지도자도 육성하고, 그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한국에 외국인 감독들이 많은 이유 중 하나다. 물론 V-리그에서의 대우, 환경도 높게 평가되고 있지만, 검증된 국내 사령탑들이 적기 때문에 구단들은 외국인 감독에게 눈을 돌리고 있다. 선수, 감독처럼 심판도 그들이 뛸 무대가 있다면 수요는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본다.
Q. 이 모든 것 어디서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하나?
김민철 해설위원 : 대한민국의 배구 생태계에 위기가 온 것은 일차적으로 대한배구협회의 책임이 매우 크다. 대한배구협회는 급격히 변화하는 국내 유소년 배구육성 환경을 예측하지 못했고, 우수한 선수를 발굴·육성하는 일에 재원 투자를 게을리했다. 특히 장기적인 미래비전 없이 일회성 정책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면서 정작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유소년 육성에 대한 명확한 비전은 아직까지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유소년 육성에 초점을 둔 V-유소년 펀드의 조성을 주장하고자 한다. 대한배구협회는 선심성 예산 또는 소모성 예산을 과감히 줄여 V-펀드의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또한 KOVO도 유소년 선수육성이 중장기적 입장에서 V-리그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임을 인지하고 V-유소년 펀드 조성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며, V-유소년 펀드는 대한배구협회가 아닌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전문기관에 위탁운영을 맡겨 투명성과 효과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아울러 V-유소년 펀드는 장신선수의 발굴·육성, 유소년 대표선수들의 국내·외 전지훈련, 유소년 대표선수들의 국제대회 참여, 유소년 육성 통계시스템 구축, 유소년 훈련지도법 개발, 유소년 전문지도자 강습 등에 사용돼야 할 것이다.
남정훈 기자 : 결국 KOVO가 일을 더 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차근차근 일을 해내 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 현재 V-리그는 여자 프로배구의 특정 선수들의 팬덤에 기대는 측면이 크다. 이 인기가 계속 갈 수는 없다. 국제경쟁력 하락이 계속되고 있는 지금, 언제 팬들이 떠날지도 모르는 상황이기에 KOVO가 인프라 구축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정다워 기자 : 연맹에서 아무리 발전, 성장을 이야기해도 지금의 배구단 구조에서는 한계가 뚜렷하다. 구단의 동의, 보조 없이 아무것도 이뤄질 수 없다. 구단도 연맹의 의지에 발맞춰갈 수 있는 시스템과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보미 기자 : V-리그를 경험한 외국인 지도자들은 한국은 최고의 시설과 투자를 하고 있음에도 좋은 레벨의 배구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구단에서도 팀 성적을 위해 선수단에 아낌없는 투자를 하고 있다. 하지만 경쟁 구도가 형성되지 않으면서 경기력이 떨어지고 있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기 위한 투자 그리고 구단의 적극적인 의지가 뒷받침된다면 V-리그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이다.
글/정리. 이보미 기자
사진. KOVO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4월호에 게재됐음을 알립니다.)
[ⓒ 더스파이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