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금방 다시 타올랐고 일어섰다” 이고은이 발견한 희망
- 여자프로배구 / 용인/김희수 / 2023-02-28 15:00:57
4승 27패, 승점 11점. 누군가는 초라한 성적이라고 손가락질 할지 모르지만, 이고은은 그 속에서 희망을 찾았다. 그는 동료들에게서 앞으로의 밝은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열정과 투지를 봤다.
도드람 2022-2023 V-리그 개막을 앞두고 자유계약선수(FA)가 된 이고은은 페퍼저축은행으로의 이적을 선택했다. 페퍼저축은행은 팀의 중심을 잡아줄 베테랑 세터를 얻었고, 이고은은 꾸준히 주전으로 나설 수 있는 기회를 보장받게 됐다.
어느 정도 예상은 됐지만, 페퍼저축은행의 시즌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페퍼저축은행은 개막 후 17연패를 당하기도 했고, 6라운드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도 페퍼저축은행의 순위는 7위다. 그러나 어려움 속에서도 이고은의 존재감은 분명했다. 특유의 뛰어난 운동능력으로 코트 곳곳을 누비며 팀을 이끌었다. 공격수들과의 호흡도 경기가 거듭될수록 점점 좋아졌다. 이고은의 꾸준한 활약에 힘입어 페퍼저축은행의 성적과 경기력도 시즌이 진행되면서 꾸준히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처럼 페퍼저축은행에서의 첫 시즌을 나름 잘 마무리해가고 있는 이고은을 용인에 있는 페퍼저축은행 훈련장에서 만났다. 이번 시즌은 어떤 시즌이었는지 묻는 질문에 이고은은 “힘들기도 했지만, 많은 것을 배운 시즌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경기에 임해야 할지도 깨달았고, 힘들었던 만큼 발전하는 느낌과 보람도 느꼈다. 앞으로의 기대감도 커졌다. 여러 감정이 든 시즌이었던 것 같다”고 이번 시즌을 돌아봤다.
올해로 리그 10시즌 째를 맞는 베테랑이지만, 페퍼저축은행에서의 경험은 이고은에게도 힘든 부분이 많았다. 이고은은 “아무래도 선수층도 얇고, 경험도 부족하다보니 경기할 때는 이런 부분이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특히 시즌 초중반에는 연패가 너무 길어지면서 힘들기도 했다. 연습 과정에서도 어려움이 있었다. 연습도 솔직히 경기를 이겨야 흥이 나고 잘 되는 게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1승을 거두기 전까지는 많이 힘들었고, 끌고 가야 한다는 부담감도 컸다. 훈련하다가 힘들어서 조용히 운 적도 있었다”고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러나 이고은과 동료들은 강했다.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이고은은 “이경수 코치님이 감독대행이 된 시점쯤부터는 여러 좋은 말씀들을 해주신 덕분에 부담감을 내려놓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또 선수들이 젊어서, 쉽게 꺾이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분위기도 금방 다시 타올랐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섰다. 굉장히 긍정적이었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서 이고은은 “힘들었던 것도, 눈물을 흘렸던 것도 돌아보니 아무나 할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잘 이겨냈다고 생각한다”고 웃으며 덧붙였다.
한편 이고은은 5라운드 현대건설전에서 엄청난 배짱을 선보이기도 했다. 5세트 12-12 상황에서 과감한 패스 페인트로 팀에 리드를 안겼다. 이고은의 이번 시즌 경기들 중 단연 하이라이트로 꼽을 만한 장면이었다. 이고은에게 당시가 기억나는지 묻자 “확실하게 기억난다. 만약 점수가 안 나면 바로 역적이 되는 상황이었다(웃음). 사실 상대 코트를 완벽하게 보고 한 건 아니었다. 느낌 상 거기가 비어 있을 것 같아서 시도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점수가 났다. 정말 기뻤지만, 당시에는 내가 흥분하면 그게 경기력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까봐 차분하게 하자고 끝까지 되뇌었다”고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고은의 과감함은 상대뿐만 아니라 동료들도 속였다. 이고은은 “팀원들이 그 때 자기들도 전부 다 속았다더라(웃음). 누구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경기장에 있는 모두가 속았을 거라고 나에게 말해줬다”고 말하며 뿌듯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이고은은 팀의 주포인 니아 리드와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고은은 “니아 리드와는 초반보다 호흡적인 부분에서 많이 나아졌다. 니아가 어떤 공을 좋아하는지, 어떤 공을 주면 안 되는지에 대한 판단이 점점 서고 있다. 우리는 경기가 끝나면 특정한 상황에서 어떤 공을 올려주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대화를 많이 나눈다. 5라운드 KGC인삼공사전 이후에도 모든 팀들과 한 경기씩만 남았으니 우리 서로 더 책임감 있게 잘해보자고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페퍼저축은행의 다음 경기는 2일 홈에서 펼쳐지는 흥국생명전이다. 이고은은 “어떻게 보면 1위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흥국생명이 이 경기를 우리보다 더 부담스럽게 느낄 수도 있다. 내가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고, 니아 리드가 큰 공격을 잘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니아 리드의 공격을 살리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다른 선수들의 공격도 함께 끌어올려보겠다”고 경기에 임하는 각오를 밝혔다.
이제 페퍼저축은행과 이고은의 이번 시즌은 다섯 경기 밖에 남지 않았다. 이고은의 각오가 궁금했다. 이고은은 “남은 시즌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 우선 아무도 다치지 않는 것이 먼저다. 그리고 아직 못 이겨본 팀들이 있다. 그 팀들은 꼭 이기고 시즌을 끝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매 경기가 끝나고 나서 후회가 남지 않는 경기를 하고 싶다. 그러면 결과는 따라올 거라고 생각한다. 팬 여러분들의 응원 덕에 항상 힘이 난다. 남은 시즌도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다. 경기장 많이 찾아와주셨으면 좋겠다”는 당찬 포부와 진심어린 감사 인사를 함께 전했다.
어렵고 불안하게 출발한 시즌이었지만, 이고은은 팀과 함께 점점 단단해지고 든든해졌다. 남은 다섯 경기 동안 이고은과 페퍼저축은행은 또 얼마나 성장하게 될까. 팬들은 승점과 순위로는 가릴 수 없는 그들의 성장을 지켜볼 준비를 마쳤다.
사진_더스파이크DB(박상혁 기자), 용인/김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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