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고 굳게 자라날 새싹, 정관장 전다빈

매거진 / 송현일 기자 / 2025-08-18 13:3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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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 정관장의 코트 위에는 명랑한 새싹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연이은 주전들의 부상으로 그림자가 드리우는 듯했던 정관장. 그러나 새싹의 싱그러운 웃음은 정관장의 코트 위에 다시 빛을 비췄다. 이제 팬들은 이 새싹이 얼마나 굳게 뿌리를 내리고 단단히 줄기를 뻗어갈지 기대하고 있다. 새싹은 그 기대의 무게가 전혀 무겁지 않다. 계속해서 성장할 정관장의 미래, 전다빈에 관한 이야기다.

 

 

운명처럼 들려온 배구공 소리,

‘배구선수 전다빈’의 시작을 알리다

 

복도에서 들려온 불규칙적이지만 흥미로운 소리. 그 소리에 홀린 듯 따라가 문을 열었다. 그렇게 초등학교 5학년 전다빈은 처음으로 배구와 마주했다.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시작된 길. 돌이켜보면 참 운명 같은 시작이었다.

 

배구를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내가 음악을 하길 바라셨다. 그래서 초등학교 4학년 땐 1년 정도 가야금을 배웠다. 하지만 겨울쯤 도저히 못 하겠어서 가야금을 연습하다 말고 뛰쳐나갔다. 그런데 그때 복도에서 처음 듣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공 튀기는 소리인 줄도 모르고 무작정 따라가 문을 열었더니 체육관이더라. 또래 친구들이 배구를 하고 있는 게 참 재밌어 보였다. 어린 나이에 그게 꼭 하고 싶다고 부모님께 한참이나 떼를 쓴 끝에 배구를 시작하게 됐다.

 

배구를 진지하게 하고 싶어진 순간은 따로 있다고.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그전까지는 별생각 없이 배구를 해왔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 경기 중 득점을 하고 느낀 희열감이 순간적으로 너무 크게 와닿았다. 그 순간, 배구의 매력에 빠졌다. 그때부터 제대로 마음먹고 배구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한국 여자배구 레전드였던 장윤희 감독을 만났는데.

중학교 시절 은사님과 성격이나 가르치시는 스타일이 비슷해서 더 정이 갔다. 장 쌤을 따라가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쉽지 않았다. 역시 레전드는 레전드인 이유가 있다(웃음). 장 쌤은 디테일한 부분을 많이 잡아주셨다. 예를 들어 서브 리시브할 때 상체를 들지 않도록 지도하시는 등 사소하지만 기본이 되는 부분을 짚어주셨다. 키가 작은 공격수에게 필요한 기술도 많이 전수해 주셨다.

 

청소년 대표팀에도 꾸준히 합류했다.

아시아권 대회에는 여러 번 참가했다. 은사님들의 지도 덕분에 배구에 더 마음을 붙일 수 있었고, 대표팀 경험이 큰 동기부여가 됐다. 다른 나라 선수들과 부딪히며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세계선수권도 기대된다. 아시아권보다 신체 조건도 좋고, 디테일이나 기술적인 부분도 뛰어난 선수들을 상대하게 될 테니까. 그들에게 배울 건 배우고, 내 부족한 점도 채워가는 대회가 되도록 하겠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세계선수권에 출전할 기회가 있었지만 무산됐는데.

당시 경기 중 팔꿈치 부상을 입었다. 그땐 그렇게 큰 부상일 줄 몰랐다. 무엇보다 배구가 너무 하고 싶었기 때문에, 테이핑을 두껍게 감고 진통제 여섯 알씩 먹으며 버텼다.

그때가 마침 2023 국제배구연맹(FIVB) 세계여자 U19 선수권대회를 앞둔 시점이었다. 첫 세계 대회라 절대 빠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대표팀 훈련 중 강하게 스파이크를 하나 때렸는데 팔꿈치 통증이 심하게 왔다. 평소엔 아프다는 말도 잘 안 하는 편인데, 장 쌤께 울면서 말씀드릴 정도였다. 병원에 가보니 팔꿈치에는 실금이 있었고, 주변 인대와 근육도 거의 다 손상된 상태였다. 진료실에서 진단을 듣자마자 펑펑 울었다. 의사 선생님이 ‘대표팀은 어렵겠다’고 말하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기억이 이번 세계선수권에 영향을 주고 있나.

이번 대회를 더 벼르고 있는 이유가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다(웃음). 당시에는 많이 좌절했지만, 거기서 끝낼 순 없었다. 재활에 집중했고, 덕분에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이번엔 정말 고등학교 2학년 전다빈의 몫까지 코트 위에서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프로, 이런 거구나.” 벅차고 설레던 그날의 기억


“중앙여고, 전다빈 선수를 지명하겠습니다.” 1라운드 끝 무렵 불린 이름에 한 선수가 환히 웃었다. 

자신의 강점이 ‘잘 웃는 것’이라 말한 그는, 같은 해 치러진 데뷔전에서도 밝은 미소로 자신을 드러냈다. 


1라운드 지명을 예상했나.

전혀 예상 못 했다. 사실 1라운드가 끝나갈 때까지 이름이 불리지 않아서 자포자기 상태였다. 그런데 그 순간 고희진 감독님이 올라오시더니 내 이름을 부르셨다. 사실 드래프트장에서 단상 위로 올라가던 몇 명이 넘어지는 걸 보고, ‘나는 안 그러겠지’ 싶었는데, 막상 일어나려니까 다리가 풀리더라. 창피를 당하지 않으려고 계단을 보면서 잘 올라가는 데 온 신경을 집중했다. 부모님도 1라운드는 포기하고 계셨는데 막판에 이름이 불려서 정말 기뻐하셨다. 게다가 원래 오고 싶었던 정관장에 지명돼 더 행복했다. 이건 립서비스가 아니라 진심이다(웃음).

 

지난 시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역시 데뷔전이다. 12월 21일 GS칼텍스와의 경기에서 교체로 출전했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전위로 투입됐는데 (이)지수 언니가 이단 볼을 올려줬다. 그냥 자신 있게, 내 모든 패기를 실어 크로스로 때렸는데 터치 아웃이 됐다. 그 순간 코트 안팎의 언니들부터 감독님, 스태프, 코치님들까지 모두 함께 기뻐해주셨다. 그리고 고등학생 때와는 달리 관중석이 팬들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그때 ‘이게 프로구나’라는 걸 가장 생생하게 느꼈다.


전다빈의 등장으로 희망을 찾았던 정관장은 결국 시즌을 2위로 마무리했다.

몸이 안 좋음에도 끝까지 자기 몫을 해낸 언니들의 모습을 보며 정말 많은 걸 배웠다.

메가왓티, 부키리치 언니뿐만 아니라 모든 언니들이 그랬다. 웜업존에서 우리 팀을 지켜보며 ‘진짜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정신적으로 많이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였다.


팀 동료들과는 잘 어울리고 있나.

모든 선수들과 다 친해졌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건 (김)채나 언니, (박)혜민 언니, (최)효서 언니다. 특히 효서 언니와는 개그 코드가 맞아서 친해졌다. 서로 티격태격해서 팀 안에서는 효서 언니가 ‘티격’, 내가 ‘태격’이다. 태현 코치님도 훈련할 때마다 “티격이, 태격이 그만 티격태격해!”라고 하신다(웃음).


지난 시즌 자신의 활약에 점수를 매긴다면?

원래는 100점 만점에 40점을 줬는데, 지금은 살짝 올리고 싶다. 많이는 아니고… 40.9점 정도(웃음). 고등학생에서 성인이 되는 시기를 통째로 담아낸 시즌이었다. 정신적으로도 혼란스러울 수 있는 시기였는데, 그걸 버텨내고 자신 있게 해낸 나를 조금 더 칭찬해주고 싶다.


이번 시즌 영플레이어상을 노리고 있나.

물론이다. 꼭 타고 싶다. 상을 받으려면 코트에 들어갈 때마다 많은 득점을 해야겠지만, 꼭 그게 아니더라도 팀 분위기를 끌어올릴 수 있도록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아직 신인급 아닌가. 밝게 웃으며 분위기를 올리고 무조건 자신 있게 할 거다.


영플레이어상 외에 탐나는 상이 있나.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베스트7 아웃사이드 히터 부문 상을 받고 싶다. 수상하게 된다면, “이 상을 받기 위해 오래전부터 노력해왔는데, 인터뷰로만 말하던 상을 이제야 받는다”고 말하지 않을까. 물론 상상일 뿐이고, 막상 무대에 올라가면 또 드래프트장에서처럼 다리가 떨려서 말도 제대로 못 할지도 모르겠다(웃음).


앞으로 어떤 선수가 되고 싶은지.

지금은 자라나는 새싹일 뿐이지만 나중엔 정관장의 든든한 뿌리가 되고 싶다. 그렇지만 아마 몇 년이 지나도 나는 계속 ‘성장 중인 선수’일 거다. 성장을 멈추고 싶지 않다. 선수 생활이 끝날 때까지도 계속해서 뿌리를 뻗어나가며 성장하고 싶다.


미래의 전다빈에게, 지금의 전다빈이 한 마디 전한다면.

그때는 지금보다 많이 컸겠지. 거기까지 가느라 수고했어. 하지만 조금만 더 수고하자. 아직은 부족하니까 더 성장해라(웃음).



“항상 웃음을 주고 싶어요” 명량 소녀의 유쾌한 매력 속으로


인터뷰를 위해 만난 전다빈은 시종일관 밝은 태도로 현장의 모든 사람을 웃게 했다. 

한순간에 분위기의 중심이 된 그, 코트 밖에서는 어떤 사람일까.

 

얼마 전 생일을 맞았다.

대표팀 소집일이었던 7월 8일이 생일이었다. 사실 나는 선수로선 복이 많지만, 생일 복은 없는 편이다. 7월마다 늘 타지에 있거나 대표팀에 들어와 있었다. 이번에도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단양대회가 끝난 뒤 엄마가 숙소로 찾아오셨다. 보온 도시락에 미역국을 담아 오셨더라. 겉으론 내색하지 않았지만 서운한 마음이 있었는데, 오랜만에 부모님께 축하도 받고 따뜻한 집밥도 먹으니 정말 좋았다.


팀에서 별명이 있나.

딱히 별명은 없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그런데 데뷔전을 치르고 나니 ‘명랑 소녀’라는 별명이 생겼다. 잘 웃는 모습 덕분인데, 감독님께서 직접 알려주셨다. 사람들이 내 모습을 보고 지어준 별명이니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평소에도 웃음이 많은 편인지.

내가 웃는다기보다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려고 하는 편이다. 내 유쾌한 행동을 보고 웃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물론 배구할 때를 비롯해 진지해야 할 땐 진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포인트가 나면 너무 좋아서 웃음을 숨길 수가 없다(웃음).


노래방에 가는 걸 좋아한다고.

흥도 많고 목소리도 커서 예전부터 노래방 가는 걸 좋아했다. 애창곡은 안재우의 <웃으며>다. 요즘 내 ‘최애’곡이다. 그 외에도 R&B 발라드나 감성적인 그루브의 음악을 즐겨 듣는다.

컬러링도 따로 설정할 정도로 이런 장르를 좋아한다. 특히 에어팟을 끼고 노이즈 캔슬링을 켠 다음 <웃으며>와 우디의 <새끼손가락 걸고>를 연달아 들으면 잠도 잘 오고 마음이 편해진다.


청소년 대표팀 동료들과 유독 돈독한데.

(이)주아나 (김)다은이 같은 친구들이 잘하는 걸 보면 뿌듯하다. 지금은 성인 대표팀에 소집돼 있는데 연락을 자주 주고받는다. 배구 얘기보단 일본에서 맛있는 걸 사서 돌아오라는 얘기나 앞으로 잘하자는 얘기가 주를 이룬다. 기다리는 입장이라 그런지 친구들을 빨리 보고 싶다.


두 친구는 어떤 존재인가.

대표팀에 셋이 같이 있을 땐 정말 의지가 됐다. 사람들이 주아를 두고 내 라이벌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주아에게 배울 건 배워야 한다. 물론 키가 다르니까 내가 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주아가 타점을 잡고 때리는 모습이나 점프 뜨는 모습은 정말 배우고 싶다. 같은 포지션이다 보니 서로 고충도, 강점도 잘 알고 공유할 수 있는 친구다.

그리고 다은이는 자랑스러운 1라운드 1순위다. 하지만 내겐 그냥 ‘금쪽이’다. 평소엔 “야, 김다은” 이렇게 부르고, 주아에겐 “우리 주주”라고 부른다. 주아랑은 연애 중이고, 다은이랑은 매일 혈투를 벌인다(웃음).


가장 힘이 되는 존재를 꼽자면.

친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역시 가족이다. 우선 아빠는 정말 딸바보다. 항상 나를 보면 “우리 이쁜이”라고 부르신다. 엄마는 내 이름의 한자에서 따온 “빛날 빈”이라고 불러주신다. 엄마 덕분에 내가 이렇게 빛날 수 있는 게 아닌까 싶다. 오빠도 원래는 안 그랬는데 크면서부터 다정하게 부르고 점점 더 잘 챙겨주고 있다.


가족 얘기를 하니 표정이 밝아졌다.

우리 가족이 사이가 좋다.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가족의 전형이다. 오빠와는 두 살 차이인데 어린 시절부터 맞벌이를 하던 부모님을 대신해 많이 챙겨줬다. 늦게 들어올 땐 꼬박꼬박 전화하고 아플 땐 직접 업어서 방에 데려다줄 정도였다. 오빠 자랑을 좀 하자면 피지컬이 정말 좋다. 키가 195cm 정도 돼서 내가 항상 부러워한다. 내가 갖고 싶은 걸 다 가졌다. 부모님도 사이가 정말 좋으시다. 여전히 손을 꼭 잡고 걸어 다니시는데, 그럴 때마다 오빠한테 전화해서 놀린다.


가족들에게 한 마디 전하자면.

항상 힘이 돼줘서 고마워. 앞으로도 또 힘이 돼줄 테니 미리 고마워(웃음). 더 열심히 해서 배구도 잘하고 유명해진 뒤에는 우리 가족들에게 내가 힘이 되고 싶어. 자랑스러운 딸이자 동생이 될게.

 

 

팬 사랑 가득한 ‘미소 천사’

“팬들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죠!”


SNS에 전다빈의 이름을 검색하면 수많은 사진과 영상을 찾을 수 있다. 공통점은 항상 웃는 얼굴이라는 것. 

힘든 경기를 마친 직후에도, 전다빈은 늘 웃는 얼굴로 팬들 앞에 선다. 그의 웃음은 곧 팬들을 향한 마음이다.


인스타그램 소개란에 팬 계정을 걸어뒀다.

처음 경기장에 갔을 때, 누군가 경기가 끝나고 스트레칭 중인 나를 찍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한 번 돌아보다가 민망해서 웃었는데, 그 후로 자주 뵙게 됐다. 항상 예쁘게 찍어주시고, 선물도 많이 주셔서 감사한 마음이다. 그래서 가끔 먼저 인사도 드리게 됐고, 계정에도 링크를 걸었다.


기억에 남는 팬들의 말이 있나.

응원이 담긴 말들은 전부 기억에 남는다. 특히 내가 꿈꿔왔던 말을 들을 때면 감정이 이상해진다. 나는 항상 누군가를 롤모델로 삼기보단 ‘내가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편이다. 그런데 지난 시즌 종종 “언니가 제 롤모델이에요”라는 메시지를 받곤 했다. 사실 아직은 그런 말들이 어색하다. 기분은 좋은데 마음 한편으론 ‘나도 아직 초짜인데’ 싶은 거다. 그래도 뿌듯하고 감사한 마음에 항상 하트를 누르고 답장도 보낸다. 언젠가는 그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선수가 되고 싶다.


퇴근길에도 팬들의 요청에 대부분 응하는 편이라고.

기다려주셨으니 그 정도는 당연히 해드려야지 싶다. 요즘은 퇴근길에서 요청하시는 게 점점 신박해지고 있다. “아 가라고요, 아가라고요”나 “못 지나가요, 모찌 나가요” 같은 것들(웃음). 사실 조금 민망하고 어렵긴 하지만 팬분들이 부탁하시면 뭐든 할 수 있다. 대신 은근히 SNS에 올리지 말라고 얘기하긴 한다. 그런데 막상 숙소에 들어가서 언니들이 보여주는 걸 보면 다 올라가 있더라.


팬들의 반응을 많이 찾아보는 편인가.

커뮤니티든 SNS든 가리지 않고 종종 찾아본다. 이러면 악플 때문에 상처받을까 걱정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놀랍게도 전혀 타격을 받지 않는다. 원래는 멘탈이 약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강해졌다. 나를 비교하거나 지적하는 말을 봐도 ‘못하는데 어쩔까, 노력해도 지금 당장은 안 됐는데 오늘 은퇴식이라도 할까?’하고 넘어가는 편이다. 어차피 익명일 뿐이니까. 물론, 악플이 아닌 응원이 담긴 글을 보면 진짜 감사한 마음이 든다.


다음 시즌 응원가나 등번호를 바꿀지 궁금해하는 팬들이 많다.

응원가를 두고 고민 중이다. 원래 쓰던 도겸의 <Go!>는 드래프트 날 들은 첫 곡이었다. 느낌도 좋고 배구장 분위기랑도 잘 맞아서 쭉 써왔다. 그런데 요즘은 홍진영의 <사랑의 배터리>로 바꿀까 싶다. 배구장은 남녀노소 모두가 찾는 곳 아닌가. 나이가 있는 팬분들도 함께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그래도 결국 응원가의 완성은 팬분들의 목소리다. 다음 시즌에 어떤 노래가 나와도 내 이름을 힘껏 외쳐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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