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를 좋아하는 ‘케냐 소녀’ 박믿음, 배구 국가대표의 꿈을 키우다
- 매거진 / 이보미 / 2025-02-23 12:50:22
케냐에서 태어난 박믿음은 4살이 되던 해 한국 땅을 밟았다. 부모님과 함께 천안에 자리를 잡은 박믿음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농구공을 잡기 시작했다. 그러던 2023년에는 배구 선수로 전향했다. 배구 선수로 뛴 지 2년도 되지 않았다. 천안 봉서중에서 배구 국가대표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높이와 파워가 좋고, 성실한 아이입니다”
2023년부터 배구 코트에 ‘케냐 소녀’가 등장했다. 케냐 국적의 박믿음은 초등학교 5학년부터 농구 선수로 뛰었다. 당시 신장이 173cm였다. 그리고 초등학교 졸업 후 고민 끝에 농구 코트를 떠났다. 2023년 천안봉서중에서 배구 선수로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178cm 미들블로커 박믿음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천안봉서중의 김하나 코치 역시 2023년부터 함께 한 박믿음을 향한 기대감이 크다. 김 코치는 “처음 봤을 때부터 호기심이 생겼다. 우리 배구에서 대단한 선수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를 했다. 물론 아직 부족한 점은 민첩성이다. 그래도 파워가 굉장히 좋다. 농구를 해서 그런지 서전트 점프가 좋다. 러닝 점프는 약한 편이다. 아직 방법을 터득하지 못한 것 같다. 수직으로 뜨는 블로킹이 굉장이 높고, 힘이 좋아서 안 밀린다. 블로킹이 매섭다. 높이와 파워가 남다르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타고난 신체조건 뿐만이 아니다. 성실함까지 갖췄다. 박믿음은 초등학교 시절 농구 선수로 훈련을 받을 때도 집에서 버스로 1시간 거리를 오가며 모든 훈련을 소화했다. 그만큼 열정과 의지를 갖고 임하고 있는 박믿음이다. 김 코치는 “사실 처음에 점프를 뜰 때는 발뒷꿈치만 떨어졌었다. 놀라기도 했지만 성실한 친구다. 아무래도 종목을 바꿔서 왔을 때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던 것 같다. 힘든 훈련도 성실하게 잘 따라온다. 그러다 보니 기본기가 잡혀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믿음은 대한배구협회에서 실시한 ‘2024 미래 국가대표 국제경쟁력 강화 프로젝트’에서 트라이아웃을 통해 최종 14인에 선발되기도 했다. 지난 11월 4박 5일로 일본 배구를 경험하기도 했다. 중등부 중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박믿음에게도 확실한 동기부여가 됐다. 김 코치도 “동기부여가 됐을 것이다. 또 이런 자리에 한 번 다녀온 친구들을 다시 가고 싶어한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도 쟁쟁한 애들을 뽑아서 일본을 갔다. 본인이 스스로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저 친구만큼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고 전했다.
김 코치 역시 선수 출신이다. 봉서중 코치를 맡은 지 15년째다. 그가 직접 눈으로 본 일본 배구는 어땠을까. 김 코치는 “일본 U16 대표팀이 소집돼있었다. 대표팀 인원이 우리보다도 많았다. 20명이 넘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주입식 교육에 가깝지만, 일본은 스스로 훈련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려고 하더라”면서 “환경도 달랐다. 아지노모토 내셔널트레이닝센터가 한국의 선수촌과 같은 곳이다. 시설도 남달랐다. 체육관 크기도 달랐고, 부상을 당했을 때 바로 옆 병원과 연계되는 점, 훈련 기구 등이 달랐다. 또 그곳에서는 유소년 선수들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제자 박믿음에게 바라는 점은 무엇일까. 김 코치는 “요즘 우리나라 선수들을 보고 아쉬운 점은 운동에 임하는 태도다. 마음가짐이 예전같지 않다. 간절함도 많이 떨어지고, 투지도 부족한 편이다. 믿음이는 이를 겸비한 선수가 됐으면 한다. 마음가짐, 투지력, 승부욕을 갖고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실패했을 때 낙심하지 않고 툴툴 털어내고 다음을 위해 도전하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 기술적으로는 기본기가 답이다. 기본기 훈련에 소홀하지 않았으면 한다”며 진심을 전했다. 피부색만 다를 뿐, 한국인이나 다름없는 박믿음을 향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대목이다.
어머니를 따라 ‘머나먼 타국’ 한국에 정착하다
박믿음은 부모님 손을 잡고 4살에 낯선 한국으로 향했다. 타국에서의 삶은 녹록지 않았지만, 주변인들은 박믿음을 한국인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한국어도 유창하다. 또 떡볶이, 마라탕을 좋아하는 14살 소녀다. 어디서든 인기가 많은 활발한 성격의 소유자다.
케냐를 떠나 한국에 오게 된 계기가 있나.
처음에는 엄마가 먼저 공부를 하려고 한국에 오셨다. 그 당시 대학교를 다니셨다. 이후 3개월 뒤에는 아버지와 내가 한국에 오게 됐다.
한국에 왔을 때 기억이 있다면.
그렇게 많은 기억이 있지는 않지만 어린이집을 다녔던 기억이 난다. 한국에 처음 정착한 곳이 이곳 천안이었다.
외국인으로서 타국에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텐데.
어렸을 때는 놀이터에서 또래 애들이 나를 무서워해서 속상했었다. 엄마, 아빠랑 같이 다닐 때도 그랬지만 속상한 티를 내려고 하지는 않았다. 지금도 길을 걸어가다 보면 애기들이 나를 보고 놀라곤 한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덜 한 것 같다. 이미 많이 겪어서 나도 익숙해졌다. 지금은 괜찮다.
처음에 운동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반대하지는 않았나.
부모님은 오히려 운동을 해보라고 하셨다. 농구가 재밌을 것 같으니 잘해보라고 하셨고, 배구를 한다고 했을 때도 열심히 하라고 말해주셨다.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끔 맡겨주시는 편이다.
요즘에는 부모님과 어떤 얘기를 주로 나누나.
엄마, 아빠 두 분 모두 운동을 해도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하신다. 저는 처음에 운동을 하면 운동만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공부도 필요하니깐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최근에는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하신다. 한국 친구들이랑 놀 때 돈을 생각없이 많이 쓰지 말라고 하셨다(웃음).
수업, 훈련이 끝난 뒤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
친구들이랑 수다를 떨기도 하고, 집에서 핸드폰으로 숏폼을 많이 보기도 한다.
좋아하는 음식은.
떡볶이를 좋아한다. 집에서는 케냐 음식을 많이 먹는다. 엄마가 해주셔서 어쩔 수 없이 먹는다(웃음). 주로 케냐식 닭볶음탕을 먹는다.
178cm 미들블로커 박믿음의 야심찬 도전
최근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것 같은데 주변 반응은 어떠한가.
친구들이 멋있다고 했다. 부모님은 똑같이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 부담스럽지 않다. 이러한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
먼저 농구를 시작하게 된 이유가 있었나.
봉서초에 남자 농구부가 있었는데 그 코치님께서 농구하면 잘할 것 같아서 권유를 해주셨다. 처음에는 체험 삼아 몇 번 갔는데 재밌어서 시작을 하게 됐다.
농구와 배구의 매력이 있다면.
농구를 할 때는 몸싸움을 해서 어렵게 득점을 하는 것이 재밌었다. 다만 농구를 할 때는 몸싸움을 하다보니 긁히는 일이 많은데, 배구는 그렇지 않아서 좋다. 또 미들블로커로 뛰면서 짜릿한 순간은 사이드로 가는 볼을 스텝까지 해서 블로킹을 했을 때다.
요즘에는 어떤 훈련을 주로 하나.
기본기 훈련 그리고 수비 연습을 많이 하고 있다. 우리 학교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학교 수업이 끝난 뒤 운동을 한다. 토요일에도 오전 혹은 오전, 오후까지 운동을 하기도 한다.
훈련이 고되지 않나. 어떻게 버티려고 하나.
괜찮다. 나중에 커서 프로 선수가 된다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힘든 것들도 많을 것이라고 본다.
‘2024 미래 국가대표 국제경쟁력 강화 프로젝트’로 트라이아웃을 통해 한국팀으로 선발돼 일본까지 다녀왔는데.
사실 안 뽑힐 줄 알았다. 다행히 뽑혀서 기분이 좋았다. 선발돼서 일본에 다녀왔는데 일본 배구를 직접 볼 수 있어서 또 좋았다. 일본에서는 훈련할 때 코치님들이 직접 공을 때려주는 것보다 선수들이 알아서 하는 것이 더 많았다. 또 같이 간 한국 선수들은 대부분 초등학교 때부터 배구를 시작해서 기본기가 좋은 것 같았다. 난 중학교 때부터 시작해서 기본기가 부족하다. 그래서 기본기 연습을 좀 더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갈 때는 자신감이 생겼는데 막상 같이 부딪혀보니 한국 선수들도 그렇고 일본 선수들도 잘하는 것을 보고 왔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당시 한국 선발팀의 경우 태극기가 박힌 옷을 입었다고 들었다. 태극기의 무게감이 느껴졌나.
태극기가 달린 옷을 입으니깐 기분이 묘했다. 국가대표로 뛰고 싶다.
한국으로 귀화를 할 생각도 있나.
생각도 하고 있다. 할 수만 있으면 하고 싶다. 다만 귀화를 하게 되면 케냐 국적을 포기해야 한다. 이 때문에 고민이 된다. 부모님과도 계속 얘기를 나누고 있다.
박믿음이 애정하는
조나단, 실바, 김연경, 현대캐피탈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아프리카 출신의 방송인들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방송인이 콩고 출신의 조나단이다. 나아가 조나단의 여동생인 파트리샤까지 조명을 받고 있다. 조나단 가족은 난민 자격으로 한국에 정착한 뒤 유튜버 그리고 방송 출연을 통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남매의 케미가 빛나고 있다. 또 한국 V-리그에서도 활약을 펼치고 있는 쿠바 출신의 GS칼텍스 지젤 실바(등록명 실바), 한국 배구의 스타인 흥국생명 김연경 역시 박믿음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아울러 천안봉서중은 오랜 기간 남자 프로배구 현대캐피탈의 볼 리트리버를 맡고 있다. 박믿음 역시 올 시즌부터 현대캐피탈의 V-리그 홈경기가 있는 날 천안 유관순체육관을 향했다. 코트에서 바라본 남자배구 역시 달랐다.
조나단의 유튜브 콘텐츠를 즐겨본다고 들었는데.
알고리즘에 떠서 조나단 유튜브 영상을 보게 됐다. 같은 아프리카 사람인데 말도 잘하고 재밌고 해서 좋았다(웃음).
V-리그에서 인상적이었던 선수가 있나.
V-리그도 많이 보고 있는데 최근 GS칼텍스 실바 선수가 경기를 하다가 발목을 다치지 않았나. 그 때 다른 선수들은 들것에 실려나갔는데 혼자 부축을 받아서 걸어서 나간 것이 멋있었다. 배구도 엄청 잘한다.
롤모델이 있다면.
김연경 선수다. 배구도 잘하고 성격도 좋으신 것 같다. 그래서 닮고 싶다. 물론 2020 도쿄올림픽 때도 엄청 유명하지 않았나. 배구가 재밌다고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기도 하다. 이후로도 영상을 많이 찾아봤다.
김연경 선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오래오래 배구 해주세요!
현대캐피탈 볼 리트리버를 하면서 생생한 현장을 직접 느낄 수 있을텐데.
1학년 때는 경기를 보기만 했고, 올해부터 볼 리트리버를 하게 됐다. 10월에 리그가 개막하면서 시작하게 됐는데 이제 익숙해졌다. 영상으로 볼 때는 선수들 소리가 안 들리는데 가까이에서 보면 다들 목소리가 엄청 크다. 마이 사인도 크게 하신다. 볼도 엄청 세다. 모든 것이 달랐다. 가장 좋아하는 팀은 현대캐피탈이다.
끝으로 이 자리를 빌려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내 장점은 다른 친구들보다 힘이 좋은 것이다. 그리고 엄마, 아빠에게는 나중에 꼭 배구 선수가 돼서 좋은 선물을 많이 해드리고 싶다. 앞으로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하고, 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다.
글. 이보미 기자
사진. 문복주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1월호에 게재됐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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