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을 위한 도전’ 얼리 드래프티 인하대 리베로 박경민
- 매거진 / 강예진 / 2020-10-01 12:01:49
‘리시브’는 배구 선수들이 까다로워하는 기술 중 하나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자주 언급하는 말이 “리시브가 흔들려서”다. 리시브에는 그만큼 정교함이 필요하고 많은 훈련을 요한다. 리베로는 그런 리시브를 가장 많이 해야 하는 포지션이다. 팀 수비의 ‘핵’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인하대 리베로 박경민은 대학배구 최고의 리베로란 평가를 듣는다. 그는 2020-2021 V-리그 남자부 신인 드래프트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의 마음은 이미 프로코트로 향했다.
얼리 드래프티로 내민 도전장
박경민은 현재 인하대 3학년이다. 일찌감치 프로 무대에 뛰어들어 기량을 향상시키겠다는 의지로 얼리 드래프트를 신청했다. 그는 이미 대학 무대에서 최고를 경험했다. 2019 KUSF 대학배구 U-리그 리시브 1위(47.95%), 2019 현대캐피탈배 전국대학배구 인제대회 리시브 1위(57.14%), 2020 bbq배 전국대학배구 고성대회 디그 1위(세트당 2.467)를 기록했다.
Q__얼리 드래프티로 도전장을 내밀었는데, 어떤 마음인가요.
감독님께 죄송해요. 팀에 선수가 몇 없는데 제가 빠져버리면 팀이 힘들어지잖아요. 이해는 해주셨어요. 우선 제 인생이기도 하고 선택은 제가 하는 거니까요. 대학 무대보다는 프로를 경험해야 제 실력도 성장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일찍 도전장을 내밀게 됐죠.
Q__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되거나 그러진 않나요.
프로 감독들이 보시고 계시니까 긴장되긴 해요. 그래도 대회뿐 아니라 그 전에 제가 보여준 부분이 있기에 자신 있어요. 그래서 오히려 더 편하게 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__이번 드래프트 최대어라는 소리가 나오는데요.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어떤가요.
그냥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웃음) 그래도 일찍 뽑히면 좋은거니까… 그런 말들 신경 안 쓰고 제 할 것만 열심히 하려고요.
Q__장점을 어필할 수 있는 시간을 드릴게요.
솔직히 리베로로서 키가 크진 않아요(그의 신장은 170cm이다). 그런 건 제가 몇 발 더 뛰면 극복할 수 있기에 문제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경기 리듬을 잘 파악하고 잡는 편이에요. 어떤 볼을 어떻게 받아야 할지를 빠르게 판단할 수 있는 것도 제가 가진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Q__롤모델이 이상욱(우리카드) 선수라고 밝힌 바 있는데, 이유가 있을까요.
실력도 굉장히 좋잖아요. 초등학교 때부터 같이 생활하고 가까이 지내왔던 형이라 그런지 더 눈이 가요. 옆에 있던 형이었는데 프로에 가서도 잘하고 계시고, 베스트7 리베로 상도 받으셨잖아요. 자랑스럽기도 하고 저도 그렇게 되고 싶어요.
Q__고성대회 끝나고 어떻게 지냈나요.
운동을 더 한다기보다는 휴식을 취하고 있었어요. 지난 대회에서 부족한 점이 뭔지를 되돌아봤죠. 감독님, 코치님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요. 그 과정에서 우리가 보완해야 할 점을 찾았어요.
Q__어떤 점을 보완하려 했나요.
실력이 문제가 아니었어요. 경기에 임하는 마음가짐에서 뭔가 어긋났던 것 같아요. 그런 점들을 고치려고 하는 중이에요.
Q__예선 전승(4승)으로 4강에 진출했던 만큼 분위기는 정말 좋았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일단 토너먼트에서 지면 바로 탈락하는 거잖아요. 단판 승부여서 그런지 거기서 오는 위압감과 부담이 컸어요. 예선 때는 한 번 져도 나머지 경기를 잘 풀어가면 승산이 있으니까 마음 편하게 했어요. 즐겼죠. 1학년들도 토너먼트가 주는 위압감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어요.
Q__박경민 선수도 많이 긴장했나 봐요.
이겨내야 하는 부담감이 컸어요. 예선전 때처럼 신나는 분위기로 뛰어다녀야 실력이 나오는데 4강전에서는 그게 잘 안됐어요. 경기가 잘 안 풀리면서 감독님, 코치님 그리고 선수들 모두가 예민했어요. 잘 풀어가야하는데 말을 아꼈던 게 악영향이 됐던 것 같아요.
Q__작년 신입생들에 이어 올해 신입생들이 잘해주고 있네요. 선배가 볼 땐 어떤가요.
(인하대는 지난해 바야르사이한(198cm, 2학년, MB)과 신인왕을 거머쥔 신호진(190cm, 2학년, WS)에 이어 올해 신입생 홍동선(200cm, 1학년, WS), 최여름(190cm, 1학년, WS)이 많은 출전시간을 소화하고 있다.)
아직 고쳐야 할 게 많긴 하지만 잘해주고 있어요. 좀 더 부탁하고 싶은 건 코트 안에서 파이팅을 해주는 거예요. 막내들이 즐거워야 형들도 신나기 마련이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조금 더 힘을 내주면 좋겠어요.
Q__작년과 올해 어떤 점이 좀 다른 것 같나요.
작년에는 (신)호진이, 바야르사이한과 같이 입학했던 신입생들이 배구를 그만뒀어요. 서너명이 한 번에 나가다 보니 팀 분위기가 처졌어요. 그런 상황에서 우승하긴 했지만 되돌아보면 아쉽죠. 올해는 신입생들이 의지가 넘치고, 다들 열심히 해주니까 분위기가 좋아요. 성적이 안 나도 분위기만큼은 훨씬 좋아졌어요.
Q__선수가 많이 없잖아요. 특히나 리베로는 혼자 책임져야 하는데 힘들진 않나요.
(인하대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소수정예(10명) 멤버로 시즌을 치러야 한다.)
성격상 피해 보는 거면 차라리 제가 보는 게 낫다는 마인드예요. 제가 희생해서 피해를 봐야 다른 선수들이 홀가분하게 경기에 임할 수 있잖아요. 힘들진 않아요. 다른 애들을 편하게 만들어주고 싶어요.
Q__3학년이지만 주장인 홍기선과 함께 팀을 이끌어야 하는 위치잖아요. 리더십은 있는 편인가요.
기선이는 주장으로서 앞에서 후배들을 이끌려고 하는 편이고 저는 뒤에서 받쳐주는 느낌인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가 직접 득점을 낼 수 있는 포지션이 아니기도 하고, 애들 속마음도 모르고 괜히 말했다가 피해 줄 것 같아서 묵묵히 지켜봐요(웃음).
Q__코트 안과 밖 성격 차이가 있는지요.
저는 좀 달라요. 일단 코트 안에서는 비교적 조용한 편이에요. 소심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요. 코트 밖에서는 장난도 많고 활발해요. 감독님께서 항상 운동이 끝나면 코트 안에서도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세요. 안과 밖 성격이 바뀌어야 하는데… 훈련 끝나면 장난꾸러기로 바뀌는 것 같아요.
Q__왜 코트 안에서는 조용한 편인가요.
음… 저도 왜 그런지 잘 모르겠어요. 뭔가 코트 안에서는 잘 못하겠어요. 다른 사람들이 보는 시선도 그렇고 제가 직접 득점을 내는 포지션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막 신나는 포인트가 없는 것 같아요. 또 리시브를 할 때면 진지하게 마음을 다잡고 심호흡도 해야 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Q__후배들에겐 어떤 선배인가요.
다가오기 편한 선배? 장난도 많이 치고, 기선이는 주장이다 보니 그 자리를 지켜야 하고 제가 그나마 뒤에서 애들이랑 이야기를 많이 해요. 고 후배들도 저한테 장난도 많이 치면서 다가오는 편이에요.
Q__인하대만의 팀 컬러는 어떤 건가요.
선수가 많이 없어요. 그래서 그런지 선수 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책임감이 큰 것 같아요. ‘나 아니면 안된다’라는 마음을 지니고 있어요. 감독님께서도 가끔 그런 말씀하시곤 하세요. ‘미루지 말고 무조건 내가 해결해야 한다’라는 마인드예요.
Q__수훈선수 인터뷰 때면 항상 자신의 플레이에 점수를 박하게 주던데 이유가 있나요.
저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것 같아요. 코트 안에서는 완벽주의자예요. 정말 잡지 못하는 공을 놓치는 건 괜찮은데 잡을 수 있는 공을 못 잡으면 저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해요. 다른 사람 기준이 아닌 제 기준으로 판단했을 때 그런 것 같아요. 저만 알 수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는 ‘어차피 못 잡을 공’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제가 볼 땐 분명 제가 처리할 수 있던 공인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저 자신한테만큼은 박해져요.
고3 때 경험한 첫 연령별 대표팀
Q__연령별 대표팀 많이 경험했잖아요. 가장 처음 대표팀 유니폼 입었을 때는 언제였나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 대표팀에 들어갔어요. 아직도 생각나는 게 그때 욕을 좀 많이 먹었어요. 제가 조성찬(OK저축은행) 형 대신 엔트리에 들어갔는데 못했거든요. 저에 대한 기대치가 낮기도 했고 힘들었어요. 그래도 그 이후로 쭉 실력을 보여주지 않았나 생각해요.
Q__그래도 대표팀 처음 승선했을 때는 기뻤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엄청 설렜죠. 국가대표가 되는 건 모든 배구선수의 꿈이니까요.
Q__가장 기억에 남는 국제대회가 있을까요.
아무래도 첫 대회가 아닐까 싶어요. 그때는 첫 대표팀이기도 했고 성적도 좋았거든요. 준우승했어요.
Q__국제무대를 경험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시야가 넓어졌다고들 말하곤 하는데요. 박경민 선수는 어떤가요.
맞아요. 국제대회 자체가 각 나라에서 잘하는 선수들이 모이는 자리잖아요. 솔직히 긴장 안 하는 선수는 없어요. 저도 긴장했는데 이겨내는 법을 거기서 배운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이 저한테 심리적으로 많은 도움이 됐어요.
Q__리베로로서 가장 중요한 점은 어떤 건가요.
실력이 1순위죠. 실력이 밑바탕에 깔려있어야 해요. 두 번째는 선수나 관객을 신나게 할 수 있는 파이팅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__요즘 배구 트렌드가 강서브잖아요. 리베로로서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떤가요.
공이 바뀌고 나서 더 어려워진 것 같아요. 회전이 달라요. 리베로한텐 조금 힘들다고 생각하는데 크게 신경 쓰진 않아요. 버텨내는 건 제 몫이니까요.
Q__리베로라는 포지션이 다른 포지션만큼 주목받긴 힘들잖아요. 그럴 때 섭섭하진 않은가요.
솔직히 섭섭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죠. 엄청 잘해야 그나마 눈에 띠잖아요. 못하면 실수했던 게 바로 티나는 게 리베로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눈에 띄진 않지만 뒤에서 받쳐주는 게 더 멋있어요.
Q__리베로만의 매력은 어떤 건가요.
남들에게 보이지 않지만 뒤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내는 것. 그리고 그걸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매력이 쏠쏠해요.
Q__가장 짜릿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수비를 잘했을 때요. 그리고 관중석에서 환호를 들을 때 제일 짜릿해요. 못 잡을 줄 알았던 공을 잡았을 때 터져 나오는 환호성이 정말 좋아요.
Q__대표팀 갔던 선수들과 많이 친한 걸로 알고 있어요. 프로에 있는 선수들도 있는데 충고해 준 적 있나요.
(최)익제(KB손해보험), (임)동혁(대한항공)이랑 친한데 따로 충고해준 적은 없어요. 놀 수 있을 때 많이 놀아야한다고 하긴해요. 자기들도 아직 프로에서 자리 잡은 상황이 아니라 힘들기도 하잖아요. 만나거나 연락할 때 보통 친구들이랑 하는 일상 이야기를 많이 해요.
세터에서 리베로…배구 인생 전환점
남들보다 일찍 시작한 배구. 하지만 박경민이 리베로로 보낸 시간은 길지 않다. 7년간 세터로 팀을 지휘하다가 문득 생각했다. 작은 신장에 세터로서는 성공할 수 없겠다고. 리베로를 해보지 않겠냐는 권유에 포지션 변경을 변경했다. 그러고 3년 뒤 태극마크까지 달며 인생 전환점을 맞이했다.
Q__배구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초등학교 2학년 때 시작했어요. 형이 6학년이었는데 형 따라 배구장에 갔어요. 조금씩 공을 만져보다가 주변에서 한번 해보지 않겠냐는 말에 재밌어서 덥석 하게 됐죠. 형은 고등학교 때 배구를 그만두고 제가 이렇게 끝까지 하고 있네요.
Q__배구 시작할 때 포지션은 뭐였나요.
중학교 3학년 때까지는 세터였어요.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생각을 했죠. ‘아, 내가 세터로 성공할 수 있을까?’ 하고요. 전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신장이 작기도 하고 세터는 아닌 것 같아서 리베로를 하게 됐어요.
Q__견뎌야 하는 포지션인 만큼 힘든 점은 없었나요.
송산고 때 1, 2, 3학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리베로로 뛰었어요. 그때 리베로가 아마 저밖에 없었을 거예요. 포지션 변경한 지 1년도 안 됐는데 엄청 힘들었죠. 적응이 잘 안됐어요. 그래서 1년 중에 반은 엄청 울었어요. ‘그만둘까?’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계속 버텨서 여기까지 왔어요.
Q__버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뭐였나요.
부모님이죠. 부모님 생각 많이 하면서 버텼어요. 형이 배구를 그만둘 때 좋은 상황은 아니었어요. 그때 부모님도 힘들어하셨는데 저라도 버티자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Q__리베로를 '제2의 세터’라고도 하잖아요. 세터를 했던 경험이 도움이 될 듯해요.
많이 도움 돼요. 연결하는 게 쉬워 보이지만 엄청 어렵거든요. 세터를 했던 게 그런 면에서 남들보다 한 발 더 앞서있다고 생각해요.
Q__배구를 해오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요.
아까도 말했듯이 포지션 바뀌었을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가장 많이 울었던 때가 아닐까 싶어요.
Q__그럼 가장 행복했을 때는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청소년 대표팀 승선했을 때요! 태극마크를 달았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해요(박경민은 2017 한국유스남자대표팀으로 제11회 아시아유스남자선수권대회를 경험했다).
Q__슬럼프가 온 적이 있나요.
포지션을 바꿨을 땐 슬럼프라기보다는 실력에 문제가 있었어요. 슬럼프는 딱 작년에 왔었어요.
Q__인제대회 우승했던 시즌인데 슬럼프가 왔나요.
네. 1차 인제대회 우승하고 2차 해남대회부터 전국체전까지 정말 못했어요. 우승하고 하고 나서 자만했다고 해야 하나? 2019년도 끝까지 슬럼프로 고생했어요.
Q__어떻게 극복하려고 노력했나요.
훈련만이 답이었죠. 비시즌 동안 잠을 줄여가면서 운동했어요. 혼자 체육관 나와서 개인 훈련하고 야간운동까지 했어요. 우승과 슬럼프를 오고 간 잊지 못할 해였어요.
Q__배구 인생 터닝 포인트가 언제인가요.
세터에서 리베로로 포지션을 바꿨을 때인 것 같아요. 계속 세터를 했다면 대표팀은 꿈도 못 꿨겠죠. 그때의 선택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잘한 일인 것 같아요.
Q__경기 중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음… 경기에만 집중해서 에피소드는 딱히 없어요.
Q__가장 고마운 분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부모님이죠.
Q__감사한 마음을 전할 기회를 드릴게요.
제가 이런 말 정말 못하거든요. 우선 친형이 배구를 하다가 그만뒀어요. 어떻게 보면 배구인으로서 실패한 거잖아요. 그래서 부모님이 더 힘드셨을 거예요. 그때 저도 ‘그만둘까?’라는 생각을 잠시 가진 적이 있어요. 제 고향이 대구예요. 배구하러 경기도로 올라왔을 때 외롭기도하고 힘들었어요. 믿어주시고 뒤에서 묵묵히 바라봐주시는 부모님이 없었다면 제가 이렇게 성장하지 못했을 거예요. 9년 동안 항상 저를 지켜봐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Q__최종 목표가 궁금해요.
우선 프로에 진출하는 게 1차 목표예요. 그리고 성인 대표팀에 이름 올리고 싶어요.
Q__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요.
제2의 누군가가 아닌 제1의 박경민이 되고 싶어요.
Q__박경민 선수에게 가장 큰 자극제는 뭔가요.
제가 못했던 경기를 되돌아볼 때 가장 크게 자극돼요. 그런 걸 보면 잠이 안 오더라고요. 무조건 제가 못했던 플레이를 되새겨보는 것. 그게 저한테 동기부여도 되고 가장 큰 자극제예요.
Q__형으로서 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운동할 때 좀 더 열심히 하면 좋겠어요. 다들 성격이 너무 순둥이다 보니 승부욕이 없는 것 같아요. 1차 대회 때 그런 부분을 코트에서 느꼈으니 2차 대회는 잘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Q__본인 스스로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요.
경민아! 2차 무안대회가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는데 인하대 선수로 뛸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어. 이왕이면 잘했으면 좋겠다.
생년월일 1999. 06. 05
신장/체중 170cm/ 68kg
포지션 리베로
출신교 소사중-송산고
주요경력
2017 제11회 아시아유스(U19)남자선수권 2위
2017 국제배구연맹(FIVB) 세계유스남자U19선수권 4위
글/ 강예진 기자
사진/ 유용우 기자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9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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