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만 다녀오면 실력이 오른다고? 상무 배구단의 기분 좋은 미스터리
- 매거진 / 김희수 / 2023-02-05 12:00:33
최근 국군체육부대(상무) 배구단 출신 선수들의 활약이 심상치 않다. OK금융그룹 상승세의 주역 전진선은 물론 현대캐피탈과 삼성화재의 이시우, 최익제는 올 시즌 전역 후 팀에 합류하자마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지난 시즌 도중 전역해 V-리그로 돌아온 김지한과 한국민도 이번 시즌 한층 성숙한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현대캐피탈 허수봉도 조기 입대와 상무 배구단의 육성이 만든 최고의 성공사례 가운데 하나다. 과연 상무 배구단에 다녀온 선수들의 상승세에는 어떤 비결이 있을까. 상무 배구단의 기분 좋은 미스터리를 석진욱 OK금융그룹 감독, 박삼용 상무 감독, 상무에서 복무 중인 김동영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파헤쳐봤다.
군인임과 동시에 배구 선수일 수 있도록
상무 배구단은 배구 선수들에게 사회와 군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배구를 쉬지 않고 계속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사회와 다르지 않지만, 군인답게 일정과 규칙에 엄격하게 통제되는 생활을 해야 한다. 지금 복무 중인 김동영도 “운동하는 방식은 프로와 상무에 차이가 없다. 점호나 식사가 규칙적으로 진행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김동영의 이야기에 따르면 상무는 선수들의 자율적인 야간 훈련 시간도 보장해줄 정도로 선수들이 군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생업인 배구와 멀어지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다.
박삼용 감독 역시 선수들이 배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그는 “군이라는 특성상 다양한 제약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최대한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게 테두리 안에서는 내가 최선을 다해 돕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고 힘줘 말했다. 덧붙여 박 감독은 “군대를 다녀와야 한다는 것은 누구라도 기분 좋게 여기기 힘든 일이지만, 선수들에게 상무는 사회와 군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곳이니 스스럼없이 지원해줬으면 한다”며 입영 대상 선수들의 상무 지원을 독려했다. 외부와 적당히 차단된 상무의 환경은 선수들의 정신적인 성장에도 크게 기여한다.
규칙적인 군의 생활을 따르다 보면 외부의 유혹에 흔들리거나 미래에 대한 불안에 시달릴 일이 없다. 또한 전우를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군인정신을 마음 깊이 새기게 된다. 석진욱 감독은 “상무에서의 군 복무가 선수들에게 주는 큰 효과 중 하나는 불확실성을 지워준다는 것이다. 선수들이 잡생각을 버리고 안정된 마음을 가지고 나온다. 또한 입대 전의 젊은 선수들은 자신의 기록과 성적에만 집중하는 좁은 시야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상무에서 팀원들과 함께 하는 방식과 희생정신을 배우면서 정신적으로 성장한다”며 상무의 순기능을 칭찬했다. 이시우가 상무 전역 이후 서브의 범실이 눈에 띄게 줄어든 이유도 어떤 상황에서건 흔들리지 않는 강인하고 성숙한 마음을 키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12년차 상무의 수장’
박삼용 감독의 철학이 뿌리내리다
2012년 상무의 감독으로 부임한 박삼용 감독은 올해로 어느덧 12년 차를 맞이했다. 많은 선수가 상무를 거쳐 가는 동안 그 자리를 묵묵히 지켜온 박 감독의 교육 철학도 점점 더 확고해졌다. 박 감독의 철학은 이제 온전히 상무에 뿌리내렸고, 그 결실을 맺고 있다.
박 감독이 선수들의 운동 과정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몸 관리, 다른 하나는 기회였다. 박 감독은 “12년도에 부임한 이후 훈련의 강도를 크게 늘리지는 않았다. 부상을 안고 상무에 오는 선수들도 많기 때문이다. 가급적이면 선수들의 부상을 최소화시키려고 애를 썼다. 선수들의 몸 상태에 맞게 운동량을 조절해줬고, 스스로 관리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회복해서 나가는 선수들도 있다. 또한 상무에 지원하는 선수들은 주전급이 아닌 경우도 많다. 그래서 뛸 기회를 얻는 것 자체로 선수에게 플러스가 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성적에 대한 부담이 큰 팀은 아니니, 선수들에게 최대한 기회를 많이 주려고 배려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박 감독이 선수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배구뿐만이 아니었다. 선수들의 인성 함양도 중요시했다. 그는 “감독이기 이전에 배구 선배의 입장에서 어떤 자세를 갖춰야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지를 들려주려고 한다. 예의, 배려, 희생 같은 것은 배구를 할 때는 물론이고 살아가면서 평생 필요한 것들이다. 선배로서 내가 지나온 길을 돌아봐도 그런 것들이 결여 됐을 때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그런 부분들을 강조하게 된다”며 선수들에게 배구 외적인 조언도 아끼지 않음을 밝혔다.
최근 배구계는 병역 비리 논란으로 한 차례 홍역을 앓았다. 상무의 수장인 박 감독 역시 다양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병역 비리 소식을 접했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박 감독은 “안타까웠다. 한참 경기를 뛰고 싶을 나이에 국방의 의무를 지게 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그런 부분들도 결국 극복해야 하는 어려움이지,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막상 마무리하고 나면 나라를 지켰다는 뿌듯함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병역의 의무다. 꼭 상무가 아니더라도 당당히 의무에 임하길 바란다”고 담담하게 답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때,
결과는 따라 온다
물론 상무 선수들의 기량 발전이 박삼용 감독 혼자만의 힘으로 이뤄질 수는 없다. 상무에서 복무 중인 선수와, 선수를 상무에 보낸 프로팀 감독 역시 위치는 다르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각자의 노력은 실력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맺었다.
이번 시즌 상무에서 돌아온 선수 가운데 최고의 활약을 펼치는 대표적인 사례는 OK금융그룹의 전진선이다. 그가 합류하기 전까지 하위권을 전전하던 OK금융그룹은 전진선의 맹활약과 동시에 순식간에 중상위권 싸움에 합류했다. 이런 전진선의 활약에는 석진욱 감독의 노력도 한 몫을 했다. 석 감독은 “입대 전 전진선은 블로킹에 약점이 있었다. 입대 이후에도 블로킹이 별로 늘지 않아 걱정이 컸다. 제대를 앞두고 화성시청과의 종별선수권 대회를 직접 가서 봤는데 걱정이 태산이었다”고 당시의 고민을 털어놨다.
석 감독은 곧바로 전진선을 위한 ‘집중 케어’에 들어갔다. 신선호 코치와 함께 외국 미들블로커들의 블로킹 영상을 만들어서 전진선에게 전달했다. 모범자료를 보고 스스로 많은 연구를 해달라는 뜻이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영상분석의 효과가 나타나며 전진선의 블로킹 능력이 크게 개선됐다.
그는 복귀 후 첫 경기였던 2라운드 현대캐피탈전에서 경기를 끝내는 3연속 블로킹을 터뜨렸다. 전진선은 경기 후 수훈선수 인터뷰에서 “군대에서 코치님들이 영상을 보내주시거나 피드백을 많이 해주셨다. 일과 이후 남는 시간 동안 생각도 많이 하고 영상도 정말 많이 봤다. 덕분에 코트를 보는 눈이 넓어진 것 같다”고 밝혔다. 석 감독과 신 코치의 열정에 전진선이 화답한 결과였다.
지금 상무에 있는 선수들 역시 제2의 전진선과 같은 활약을 꿈꾸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상무 선수들에게 좋은 자극제가 되어 선순환을 만들고 있다. 2월 1일 상병으로 진급하는 김동영은 “하루빨리 전역해서 전진선이나 이시우처럼 활약하는 모습을 나도 보여주고 싶다. 기다리는 분들을 위해 기량을 많이 늘리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동영은 “상무에 있으면서 몸 관리를 더 중요시하게 된 것 같다. 바깥에서 있을 때보다 몸 관리나 기술 발전 생각을 스스로 많이 할 수 있는 것이 좋다”며 발전된 모습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도 했다.
김동영은 “상무에 더 바라는 것은 없다. 지금처럼만 배구를 할 수 있어도 충분하다. 이곳에서 더 성장해서 2023-2024 시즌에 발전된 모습으로 돌아오겠다. 응원해주시는 모든 분에게 너무 감사하고 더 행복한 일들이 가득하시길 바란다”는 씩씩한 인사를 전했다. 김동영을 포함한 상무 출신 선수들이 다음 시즌에도 상무의 기분 좋은 미스터리를 이어갈 수 있을지 기대된다.
글_김희수 기자
사진_더스파이크DB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2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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