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은 왜 배구와 삶의 가치를 결부시켰나[이보미의 WHY]

매거진 / 이보미 / 2025-05-10 11:2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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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가톨릭 교회 수장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4월 21일 향년 88세의 나이로 선종했다. 2013년부터 12년간 전 세계 가톨릭 신자를 이끌어온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심각한 폐렴으로 입원했다가 회복한 뒤 활동을 재개하고 있었지만 선종 소식이 전해졌다. ‘축구광’으로도 알려진 프란치스코 교황은 스포츠계에도 적잖은 영향력을 끼쳤다. 배구와 삶의 가치를 결부시키며 의미 있는 메시지는 전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축구광’ 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은 193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 가정의 첫째 아들이었다. 축구를 좋아한 평범한 10대였다. 가족과 함께 아르헨티나의 산로렌소 축구팀을 열렬히 응원하기도 했다.

2013년 교황으로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 그레고리오 3세 이후 1,282년 만에 즉위한 비유럽권 출신 교황이었다. 그는 검소함과 겸손함을 드러냈고, 가난한 사람들과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아버지’라고 불린 이유다. 또 “역대 교황 중 가장 진보적이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특히 스포츠에 대해서는 인종, 언어, 문화의 가치를 이어주는 소통 수단으로 여겼다. 2014 브라질 월드컵 당시에는 “승리를 위해서는 개인주의, 이기심, 인종차별주의, 비관용, 속임수를 극복해야 한다. 삶에서와 같이 탐욕은 극복해야할 장애물이다. 누구도 사회와 격리돼 소외감을 느껴서도 안된다. 분리와 인종차별로 가서는 안된다”면서 “추구를 통해 평화와 결속, 골을 넣기 위한 고된 훈련과 연습, 페어플레이 정신과 팀워크,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 등 여러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스포츠는 엔터테인먼트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소중한 가치를 소통할 수 있는 통로이자 평화 사회 구현의 도구이다”며 월드컵의 의미를 되새겼다.

뿐만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람들이 스포츠 경기의 결과를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면 스포츠와 인류에게 슬픈 일일 것이다”며 공정한 스포츠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강조하기도 했다.
세계 체육계 수장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스포츠가 돈과 승리만을 좇으면 핵심 가치인 단합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스포츠 상업화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며 당부의 메시지를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이 알려진 뒤에는 전 세계에서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7일 동안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고,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는 향년 88세를 상징하는 88번의 종소리가 울렸다. 아울러 파리는 애도의 뜻으로 에펠탑 조명을 껐다. 이탈리아 로마는 22일까지 예정된 모든 공공 행사를 취소했고,

축구 클럽팀들의 추모도 이어지고 있다. 21일 펼쳐질 예정이었던 이탈리아 세리에A 4경기도 연기됐다. AS로마는 “우리 도시와 전 세계에 깊은 슬픔을 안겨주는 아픔이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화와 연대에 대한 유산은 영원한 본보기로 남을 것이다”고 전했다.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은 훈련에 앞서 교황의 영면을 바라며 1년간 묵념을 했다.



이탈리아 배구대표팀 만난 교황
“코트 안팎서 우정·연대·평화 가치를 널리 알리길”

배구계에서도 추모의 물결이 일고 있다. 이탈리아배구연맹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에서 이탈리아 배구 국가대표팀을 만난 날은 2023년 1월 30일이었다. 교황은 이탈리아 대표팀과 이탈리아 배구 전체에 잊지 못할 연설을 했다”며 “그 잊지 못할 추억과 우리에게 남겨진 수많은 가르침에 대해 큰 감사를 표한다”고 밝혔다. 동시에 4월 27일까지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모든 배구 경기에서 묵념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탈리아 세리에A 남자, 여자배구 리그에서도 동참했다. 세리에A 여자배구리그 회장인 마우로 파브리스는 “2023년 1월 배구계에 쏟았던 애정과 관심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스포츠라는 언어를 통해 우리에게 삶의 책임감 있는 주인공이 되라고 하셨다. 겸손하게 듣는 법을 훈련하고, 봉사와 연대의 정신으로 팀으로 뛰라고 말하셨다. 모든 지름길을 거부하고 벽에 뛰어들 듯이 높이 뛰어올라 진정성과 아름다움을 지키라고 하셨다. 그의 말은 경기장 안팎에서 매일 실천해야할 귀중한 유산이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을 기렸다.

모데나 발리는 “신앙과 겸손, 대화를 통해 모든 이들의 마음에 다가갈 줄 알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서거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임 기간에 가장 소외되고 취약한 이들을 향한 깊은 연대와 지지를 보여주셨을 뿐만 아니라, 스포츠와 그가 구현하는 형제애의 가치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여주셨다”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그도 그럴 것이 2023년 1월 바티칸 클레멘티나홀에서의 프란치스코 교황과 이탈리아 배구대표팀과의 만남은 의미가 깊다. 이탈리아배구연맹은 “이탈리아 배구계에서 기억해야할 또 다른 날이다”고도 했다.

당시 이탈리아 배구 선수들과 연맹 직원 등 약 200명이 교황청을 방문했다. 대표팀은 교황에게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전달했고, 남자 국가대표팀 주장 시모네 지아넬리는 교황에게 2022년 국제배구연맹(FIVB) 남자배구 세계선수권 우승 트로피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배구 동작을 빗대어 삶의 가치에 대한 의미 있는 메시지는 전달했다. 당시 이탈리아배구연맹의 주세페 만프레디 회장은 “모두에게 평생 기억에 남을 환상적인 날이었다. 이 모든 것이 가까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준다”고 했고, 페르디난도 데 조르지 감독은 “배구의 기본 내용을 스포츠가 만들어낼 수 있는 사회적, 가치적 측면과 연결지은 내용이 좋았다. 우리는 젊은 세대에게 본보기가 되므로 새로운 세대에 대한 특별한 책임감을 느낀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탈리아 남자배구대표팀의 알레산드로 미키엘레토는 “푸른색 저지를 입고 경기장에 나설 때마다 우리는 한 나라, 한 민족 전체를 대표한다는 것을 알기에 더 무거운 무게감을 느낀다”고 했고, 여자배구대표팀의 오펠리아 말리노프는 “우리가 스포츠로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셨다”며 감격스러움을 표했다.

다음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배구의 서브, 리시브, 세트, 공격, 블로킹을 두고 언급한 내용이다.

·서브
경기의 시작인 서브는 삶에서 주도적으로 책임을 지고 참여하는 자세를 상징한다. 교황은 “경기에서도, 일상생활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주도적으로 움직이며 책임을 지고, 참여하라”면서 “스포츠는 연약함을 극복하고 의식을 성숙시키고 주인공이 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존엄성이 모든 스포츠 활동의 목표이자 척도가 된다는 말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리시브
공을 받는 리시브는 겸손과 인내의 자세를 의미한다. 교황은 “공을 받아 정해진 구역으로 보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겸손과 인내심의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또 동기를 부여하고, 넘어졌을 때 일으켜 세워주는 지도자가 없다면 챔피언이 될 수 없다. 확고한 기준점이 되는 사람이 필요하며, 잘 받는 방법을 가르칠 수 있고 선수들의 재능을 파악해 최상의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세트
세트는 팀 동료에게 공을 전달하는 것으로 팀워크와 협력을 상징한다. 교황은 “득점을 마무리하는 파트너에게 전달하는 세트가 있다.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항상 당신을 도울 누군가가 있다. 당신은 개인뿐만 아니라 그룹의 일부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서로를 밀치고, ‘나’가 ‘우리’보다 우선하고, 약한 사람이 버려지는 세상에서 스포츠는 단결과 통합의 설득력 있는 신호가 될 수 있다. 평화와 우정의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공격
득점을 위한 공격은 규칙을 지키며 경쟁하는 건강한 스포츠 정신을 나타낸다. 교황은 “스포츠는 규칙을 어기며 승리하는 유혹에 빠지지 않고 건강한 경쟁을 펼쳐야 한다. 희생, 훈련, 엄격함은 스포츠의 필수적인 요소이지만 도핑 행위는 위험할 뿐만 아니라 경기에서 아름다움과 재미를 빼앗아가고, 거짓으로 얼룩지게 하는 행위다”고 전했다.

·블로킹
상대의 공격을 가로막는 블로킹은 물질주의와 이기심을 넘어서려는 노력을 뜻한다. 교황은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블로킹을 쌓는다. 이 단어는 우리에게 세계 여러 곳에 존재하는 벽을 떠올리게 한다. 벽은 분열과 폐쇄의 표시다. 스스로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오만함을 나타낸다. 그 대신 배구에서는 블로킹을 할 때 상대 선수의 스파이크를 마주하기 위해 높이 점프를 한다. 이 동작은 우리가 이 단어를 긍정적인 의미로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된다. 높게 점프를 한다는 것은 땅에서, 물질주의에서 그리고 스포츠 정신을 훼손하는 모든 논리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돈과 성공이 결코 재미 요소를 손상 시켜서는 안된다. 이러한 이유로 저는 스포츠의 아마추어적 측면을 결코 벗어나지 말라고 강력하게 권한다. 이를 잘 지켜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있어야 당신의 마음도 지키게 되기 때문이다”고 삶의 가치와 관련해 의미하는 바를 설명했다.

끝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많은 아이들이 여러분을 존경하고 응원한다. 그들의 롤모델이다. 아이들을 실망시키지 말아달라. 좋은 경기를 펼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경기장 안팎에서 우정과 연대, 평화의 가치를 전달하기를 바란다”고 당부의 메시지를 전했다.

글. 이보미 기자
사진. 이탈리아배구연맹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5월호에 게재됐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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