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현대건설 야스민 교체 결정, 몬타뇨 영입의 막전 막후 이야기
- 여자프로배구 / 김종건 / 2023-02-08 10:31:32
거침없이 선두를 질주하던 현대건설에게 문제가 생겼다.
외국인 선수 야스민 베다르트가 탈이 났다. 12월 18일 페퍼저축은행과의 경기를 마친 뒤 허리에 이상이 생겼다. 그는 1라운드 막판 어깨 이상으로 2라운드 첫 경기를 결장했다. 이번에는 부상 부위가 달랐다. 정밀 검사를 받았다. 결과가 좋지 못했다. 디스크에 문제가 생겼다. 현대건설은 12월 25일 KGC인삼공사와의 경기를 앞두고 이 사실을 공개했다. 그날 현대건설은 개막 이후 이어오던 연승기록이 15에서 멈췄다. 크리스마스의 악몽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현대건설은 야스민의 조기 복귀에 더 많은 희망을 걸었다. 코칭스태프는 일단 토종 선수들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며 시간을 최대한 벌어보자고 했다. 그만큼 야스민이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 궁합이 잘 맞는 그를 대체할 선수를 쉽게 찾기 어렵다는 현실도 고려했다. 다행히 베테랑 황연주가 야스민의 공백을 잘 메워줬다. 야스민이 빠진 뒤 2연패에 빠졌지만, 다시 4연승을 기록했다. 이러는 가운데 야스민의 부상은 허리 디스크의 일부가 터진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았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심상치 않았다.
기대했던 야스민의 출전은 5라운드였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목표였다. 야스민은 일반인 디스크 환자가 아니라 점프가 필수인 프로배구 선수였다. 허리에 큰 부담을 주는 동작과 90kg의 체중을 고려한다면 훨씬 더 건강한 허리가 필요했다. 시즌 내 복귀는 사실상 기적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코칭스태프도 그 사실을 알았다. 다만 외부에 공개할 수는 없었다. 설 연휴에 접어들면서 최종적으로 야스민과 함께 할 수 없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야스민으로서는 땅을 치고 통곡할만한 결과였다.
지난 시즌 V-리그에 데뷔해 이제 막 선수 생활을 정점을 찍으려던 순간이었다. 필리핀, 크로어티아, 그리스 리그에서 기량을 가다듬은 뒤 마침내 현대건설에서 화려한 꽃을 막 피우려던 이제 26세의 선수였다. 배구 변방의 나라 리그에서 뛰는 여자배구 선수의 삶은 빡빡했다. 샐러리맨 수준의 연봉을 받으며 이 나라 저 나라의 리그를 옮겨 다녀야 했다. 우리 V-리그처럼 집과 승용차, 언제든지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음식에 통역까지 붙여주는 리그는 아니었다. 팬들의 뜨거운 성원과 멋진 경기장 시설 등은 야스민에게 행복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팀도 두 시즌 연속해서 1위를 달리던 터였다. 야스민에게 V-리그와 현대건설은 선수로서의 성공을 의미했고 도약의 발판으로 여겨졌다.
야스민은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성실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힘든 체중 감량을 해가며 지난 시즌 V-리그 득점 4위, 공격 종합 2위를 기록했다. 그 성과 덕분에 현대건설과 2년째 계약도 맺었다. 연봉도 30만 달러로 훌쩍 뛰었다. 유럽 빅리그의 주전선수도 쉽게 받지 못하는 거액이었다. 야스민은 동료들은 물론이고 팀과의 호흡도 좋았다. 승리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은 그를 모두가 좋아했다. 결국 그 성실함과 팀을 위한 헌신이 발목을 잡았다. 허리 부상을 앞두고 경고의 신호등은 계속 울렸다. 2라운드 후반 팀이 3경기 연속 5세트 혈투를 벌일 때 야스민의 공격 점유율은 치솟았다. 11월 30일부터 12월 8일 사이에 15세트를 뛰는 동안 각각 64~70~75차례의 공격을 했다. 공격 점유율은 38.3~40.7~44.1%였다.
결정타는 3라운드 초반 양효진이 부상으로 빠졌을 때였다.
야스민은 12월 15일 GS칼텍스전에서 공격점유율 43.48%를 기록한 뒤 사흘 뒤 AI페퍼스를 상대로 점유율 49.53%를 찍었다. 이번 시즌 13경기 47세트에 출전해 653번의 공격을 했다.
코로나19로 시즌이 중단된 2021-2022시즌에는 30경기 113세트에서 1343번의 공격을 기록했다. 시즌 공격 점유율은 32.66%였다. V-리그 2번째 시즌에는 공격 점유율이 더 늘었다. 혹사의 결과는 앞으로의 선수 생활마저 위협하는 허리 디스크 파열이다. 이런 사례는 V-리그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2017~2018시즌 도로공사는 이바나 네소비치 덕분에 창단 이후 첫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팀을 위해 그야말로 뼈를 갈았던 이바나는 다음 시즌 도중에 어깨에 이상이 생겼다. 결국 파토우 듀크로 교체됐다. 이바나는 어깨 부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선수 생활을 조기에 마감했다. 팀을 위해 불꽃처럼 자신의 몸을 불사른 선수들의 슬픈 마무리다. 그만큼 V-리그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들은 혹사를 각오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 보상도 확실하기에 많은 선수가 한국에서 뛰고 싶어 한다. 허리 수술이 불가피한 야스민의 다음 선수 생활을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야스민과의 이별이 결정되자 현대건설은 신속히 움직였다.
새 외국인 선수를 빨리 물색했다. IBK기업은행에서 뛰었던 레베카 라셈, 세르비아의 반야 사비치 등이 후보로 올랐다. 공교롭게도 사비치는 현재 허리 부상 중이어서 영입대상에서 제외됐다. 강성형 감독은 고심 끝에 이보네 몬타뇨를 선택했다. 동시에 야스민과의 계약해지 작업을 조용히 진행했다. 그동안 팀을 위해 봉사했던 선수였기에 섭섭하지 않게 해줬다. 규정상 잔여 연봉은 계약해지 날부터 시작해서 45일분이지만 현대건설은 달랐다. 손이 컸다. 허리 치료 비용까지 부담해줬다.
몬타뇨 영입 작업도 난관이 많았다. 튀르키에 2부리그팀 무라드파사 벨레디예시의 주전선수였기에 쉽지 않았다. 그 팀은 플레이오프 진출을 노리는 중이었다. 팀에는 다른 아포짓 후보 선수도 없었다. 14명으로 조촐하게 선수단을 운영하는 팀에게 시즌 도중에 느닷없이 주전 공격수를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시즌을 포기하라는 뜻과 다름없었다. 현대건설의 공식 제안에 무라드파사는 확실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다. 그렇다고 물러설 현대건설도 아니었다. 바이아웃 금액을 높였다. 통상적으로 시즌 도중 상대 팀에서 선수를 데려올 경우, 바이아웃 금액은 그 선수의 연봉이 기준이다. 이번에는 달랐다. 추가 제안에도 반응이 좋지 못했다.
현대건설은 3번째 방법을 썼다. 이번에는 선수와 직접 접촉했다. V-리그의 좋은 환경과 많은 연봉을 선수가 뿌리치기는 힘들었다. 이미 한 차례 V-리그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던 몬타뇨의 마음이 움직였다. 무라드파사 구단에 “한국에 가고 싶다”면서 이적을 허용해달라고 요구했다. 선수가 가겠다고 하면 구단이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 보내주지 않으면 선수가 태업할 수도 있기에 무라드파사는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이적을 허락했다.
지난 시즌 봄 배구가 사라지면서 챔피언이 될 기회를 놓쳤던 현대건설이었다. 이번 시즌에도 개막 이후 계속 1위를 달려오던 터였다. 물이 들어온 김에 노를 젓겠다는 현대건설은 몬타뇨 영입 작업을 속전속결로 성사시켰다. 의지가 대단했다. 무라드파사의 최종 OK 사인이 나오기 전부터 미리 몬타뇨의 한국행 비행기 표마저 예약해뒀던 현대건설이었다. 최악의 경우 구단이 허락해주지 않아도 일단 선수를 한국에 데려다 놓고 방법을 찾아보려고 했다. 몬타뇨가 하루라도 빨리 취업비자를 받기 위한 행정작업도 서둘렀다. 구단의 신속하면서도 단호한 결정 덕분에 영입 결정 이후 2주도 되기 전에 몬타뇨를 입국시켰다. 현대건설은 10일 AI페퍼스와의 경기 때는 반드시 출전시키려고 한다. 이제 마지막 남은 절차는 콜롬비아 배구협회가 국제배구연맹(FIVB)의 국제 이적 허용 시스템에 접속해 승인 버튼을 눌러주는 것이다. 이 절차가 마무리되면 몬타뇨는 현대건설의 유니폼을 입고 출전할 수 있다.
현대건설은 7일 흥국생명과의 5라운드 맞대결에서 0-3으로 패했다. 현대건설은 21승 5패, 흥국생명은 20승 6패다. 승점60으로 같지만, 승수에서는 현대건설이 앞서 여전히 1위다. 리베로 김연견이 2세트 막판 수비 도중 발목 부상으로 교체돼 앞길이 더욱 힘들어졌다. 몬타뇨가 더 빨리 힘을 내줘야 할 상황이 오고 있다. 현대건설은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겼다. 이제 몬타뇨가 코트에서 기량만 보여주면 된다.
사진 KOVO, 현대건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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