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 위 리더’를 꿈꾼다, 제천여고 유가람이 내딛는 발걸음
- 매거진 / 김하림 기자 / 2023-02-21 12:00:56
‘다들 앞만 봐, 등 뒤는 내가 지켜줄게!’
배구 애니메이션 <하이큐>에서 나오는 리베로 니시노야의 울림이 있는 대사다. 함께하는 팀원, 코트까지 지켜주는 리베로를 향해 우리는 리더라는 칭호를 붙인다. 여기, 코트 위 리더를 꿈꾸는 한 소녀가 있다. 제천여고 유가람이 더 높은 곳을 향해 내딛는 발걸음, <더스파이크>도 함께 발을 맞춰봤다.
두 번의 태극마크,
동기부여로 다가오다
Q. <더스파이크>와 인터뷰는 처음입니다. 처음 인터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땠나요.
‘왜 나를?’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웃음). 그래도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더 커요.
Q. 2022년에 두 번의 국제대회를 다녀왔습니다. 첫 번째 무대인 아시아유스선수권대회는 어땠나요.
아시아 무대였지만, 국제 대회에 나가는 건 처음이었어요. 대표팀 생활을 하면서 여기선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팀 분위기를 실감했어요. 아시아 무대였지만 한국에선 볼 수 없는 팀 분위기를 느꼈어요. 모두가 ‘이겨보자, 해보자’라는 생각 속에서 열심히 한 덕분에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Q. 뒤이어 AVC컵 대회에도 다녀왔습니다. 아시아유스선수권대회는 또래인 다른 나라의 국가대표 선수들과 겨뤘다면, AVC컵은 전혀 달랐습니다.
AVC컵은 경험을 쌓는 데 의의를 뒀어요. 성인 대표팀으로 나선 나라들도 많았는데, 경기를 풀어가는 내용이 정말 달랐어요. 어이없는 범실이랑 실수도 거의 없었기에 점수를 따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Q. 두 대회 모두 엔트리 가운데 유일한 리베로였습니다. 어려움은 없었나요.
당연히 있었어요. 내가 잘 안 풀리면 대신 들어가서 해결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게 부담이었어요. 하지만 혼자면 유일하게 리베로 포지션을 책임져야 하잖아요. 많은 출전 시간을 가져서 주전으로 뛸 수 있다는 건 정말 좋은 기회였고,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으로 했습니다(웃음).
Q. 대표팀 경기 중 가장 기억에 남은 경기가 있다면.
U18에서 태국과 겨뤘던 3-4위 결정전이요. 예선에서 만났을 땐 쉽게 이겼어요. 두 팀 모두 메달을 따기 위해 간절하게 한 만큼 5세트까지 갔는데, 정말 힘들게 이겼어요. 아직도 이겼던 순간이 생생해요.
Q. 두 번의 대표팀을 통해 배운 점이 뭘까요.
특히 U18대표팀 경기에서 느낀 게 많아요. 일본과 태국도 신장이 큰 편이 아니었지만, 빠른 플레이와 끈끈한 리시브, 수비를 배웠어요. 그리고 공 하나라도 더 살리려는 집념도 느껴졌어요.
(우리보다 신장이 월등하게 높았던)중국과 할 때는 장윤희 감독님께서 “이미 높은 걸 알고 있으니 기죽지 말고 우리 플레이를 하자”고 격려해주셨어요. 하지만 막상 경기에 들어가니깐 공격이 많이 막히면서 주눅이 든 건 사실이에요. 반면 그 경기를 통해 나중에 다시 높은 신장의 팀을 만나게 됐을 때 맞설 수 있는 전략이랑 자신감을 가졌어요.
Q. 두 번의 태극마크는 본인 스스로에게 어떻게 다가왔나요.
뿌듯했어요. 리베로로 두 번 국제대회를 다녀온 만큼 기회를 주신 선생님들께 감사해요. 조금 더 잘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지만, 대표팀 경기를 경험삼아 더 잘하고 싶은 동기부여가 됐어요.
2022년을 점수로 평가한다면
“70점, 더 높은 곳을 가기 위해서요”
Q. 소속 학교인 제천여고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2022년, 제천여고는 얇은 선수층에도 불구하고 매번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훈련할 때 아픈 사람도 많고 (모두가 정상의 몸으로 모여서)호흡을 맞춘 기억이 많이 없어요. 대회 나갈 때마다 ‘안 풀리겠다’고 걱정했어요. 그런데 경기를 치를수록 성적이 나오고 결승에 갔죠. 선생님께서 승리하는 방법을 알려주신 덕분이에요. 경기와 훈련 중에서도 많은 방법이 모여 결국 좋은 성적이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Q. 이기는 방법을 더 자세하게 말해줄 수 있을까요.
배구가 안 될 때 선수들에게 하나하나 알려주시면서 혼자 해결할 수 있게 기다려주세요. 이겨낼 방법도 알려주세요. 집중할 땐 집중하고, 억지로 하는 게 아닌 즐겁게 배구하고 우리가 스스로 뭉칠 수 있는 걸 알려주신 게 이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Q. 여러 번 결승에 올랐지만 준우승에 그치면서 정상 자리엔 오르지 못했습니다.
우승에 대한 아쉬움이 엄청 컸어요. 우승해야만 받을 수 있는 개인상이랑 지도상이 있어요. 특히 지도상을 꼭 감독님께 드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너무 아쉬웠어요.
Q. 2022년을 되돌아본다면 100점 만점에 몇 점을 줄 수 있나요.
70점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고등학교 1학년 때는 기회가 없었기에 학교에서 개인 운동도 많이 하고 배우려는 의지가 컸어요. 하지만 2학년 올라와선 많이 없어졌어요. 과거의 나와 비교되는 것도 있었고, 점수가 높을수록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미래의 나에게 100점을 줄 수 있도록 70점을 줬습니다(웃음).
공 하나하나에 진심을
“리베로는 코트 위 리더”
Q. 처음 배구공은 어떻게 잡게 됐나요.
아빠가 육상선수로, 엄마가 배구선수로 활약해서 어릴 때부터 운동을 접하기 쉬웠어요. 그리고 지금 페퍼저축은행에 있는 박연화 언니랑 친해요. 같이 놀다가 언니가 먼저 배구를 시작했고, 그 계기로 따라서 운동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웃음).
Q. 지금까지 배구를 할 수 있는 매력은 뭐라 생각하나요.
분위기를 타면 상황이 정말 많이 달라져요. 모든 스포츠가 그렇지만 점수 하나하나를 가져올 때의 짜릿함과 함께 가져온 분위기가 배구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이것 때문에 배구를 계속하고 싶어요.
Q. 리베로의 매력은 뭐라고 느끼나요.
학교에 있을 땐 세터가 리더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번 대표팀 때 장윤희 감독님께서 “뒤에서 두 코트를 다 볼 수 있는 만큼 밖에 있는 상황을 말해줄 수 있는 리더십을 발휘하고 소리를 질러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나도 리베로가 리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아직도 파이팅이 약하지만 이젠 안 하면 입이 근질근질해요(웃음).
경기 영상을 보면 달라지는 게 보여요. 전에는 찬스볼이나 페인트 연타를 잡아도 주위에 올려놨다면, 이젠 세터 머리에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보였어요. 팀에서 파이팅을 흘러가듯이 했다면, 이제는 간절하게 소리 지르면서 하는 게 느껴졌어요. 왜 리베로가 코트 안에서 리더인지 느낄 수 있었어요.
Q. 롤모델과 좌우명이 있을까요.
롤모델은 현대건설 김연견 선수요. 빠른 발이랑 움직임, 정확한 리시브가 너무 멋있어서 영상을 많이 찾아보고 있어요. 내 스스로를 자극시켜주는 말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그중 하나 기억에 남는 건 ‘하기 싫어도 해라. 감정은 사라지고 결과는 남는다’예요. 가장 많은 자극이 돼요.
Q. 지금까지 배구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적과 기억에 남아있는 순간이 있다면.
고등학교 1학년 때 전국제천 때 마지막 경기에서 수비를 잘 못했을 때요. 그야말로 아쉬운 경기력을 보여줬어요. 그 때 이후로 정말 열심히 훈련했어요. 가장 기억에 남아있는 순간은 아무래도 유스 대표팀에서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해요. 잘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훈련하고 경기했고, 처음으로 다녀온 국제무대였기에 가장 기억에 남아요.
Q. 스스로 생각하는 유가람은 어떤 선수이고 강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보완할 점이 있다면.
많이 웃고 밝아요. 배구할 때는 진지하게 할 수 있는 선수입니다. 강점은 남들보다 더 견딜 수 있는 강한 체력과 리시브 정확도, 빠른 발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점은 이번에 합숙훈련을 하면서 높은 위치에서 공을 잡는다고 지적받았어요. 공 컨트롤이 어려워서 수비하는 중요한 순간 실수가 많아진다고 해서 보완하려고 자세 교정과 훈련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Q. 일반 학생들과는 다른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는데 아쉬운 점은 없나요.
학교 다니면서 공부하고, 하교하면 친구들이랑 집에도 가고, 대학교에 진학하는 평범한 일상을 가지지 못하는 게 아쉽긴 해요. 하지만 다시 태어나더라도 배구선수의 길을 택할 것 같아요(웃음).
Q. 이제 3학년입니다. 신인 드래프트를 앞뒀는데, 남은 1년 목표가 있을까요.
1, 2학년 때는 못 느꼈던 언니들의 심정을 이제 알 것 같아요(웃음).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가요. 하기 싫은 순간이 분명히 올 거예요. 하지만 그런 순간이 와도 절대로 배구를 대하는 태도를 성의 없게 하지 않고 공 하나하나에 진심을 다할 거예요. 드래프트까지 열심히 하고 버틸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Q. 어떤 선수로 성장하고 싶나요.
유가람이라는 이름을 사람들이 이야기할 때 ‘부족한 점이 많다’고 이야기하는 것 보다는, ‘잘한다’, ‘열심히 한다’, ‘믿고 본다’는 말을 들을 수 있게 노력하고 싶습니다.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인터뷰를 많이 할수록 더 늘지 않을까요? 다음 번에 기회가 된다면 더 말을 잘하겠습니다(웃음).
글_김하림 기자
사진_박상혁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2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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