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페퍼저축은행 김형실 감독 사퇴의 이면과 그 소문들

여자프로배구 / 김종건 / 2022-12-05 09: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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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창단 감독을 둘러싼 팀 내부 사정과 여러 소문들

페퍼저축은행의 창단 사령탑 김형실 감독이 1129일 물러났다. 2022-2023시즌 V-리그 2라운드가 채 끝나기도 전에, 3년 계약 기간의 절반도 채우지 못한 가운데 내린 사퇴 결정이다.

 

구단은 보도자료에서 김형실 감독이 올 시즌 부진한 성적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 의사를 구단에 전했습니다. AI페퍼스는 심사숙고 끝에 20221129일 자로 김형실 감독의 뜻을 수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국내외에서 차기 감독 후임을 찾기 시작할 것이며, 그때까지는 이경수 코치가 감독대행으로 팀을 이끌 예정입니다. AI페퍼스는 팬들에게 사랑받는 명문 구단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시즌 개막 이후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하며 10연패를 기록한 가운데 베테랑 감독은 팀의 분위기를 쇄신하고 패배에 점점 익숙해지는 선수들에게 충격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마지막 카드를 던졌다. 그는 이 나이에 해볼 것은 다 해봤다. 더 버틸수록 이미지와 명예가 나빠질 듯해서 이쯤에서 물러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팀을 맡았을 때 3년 동안 차근차근 준비해서 튼튼한 집을 지어주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고 했다.

 

27IBK기업은행과의 2라운드에서 1-3으로 패하던 날 그는 결심을 굳혔다. 매튜 장 구단주와도 연락했다. 구단주는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잘 알기에 체면치레의 만류보다는 사퇴 의사를 받아들였다. 페퍼저축은행 선수들은 121일 도로공사와의 홈경기를 앞두고 29일 광주로 출발 준비를 하던 중에 감독으로부터 사퇴 얘기를 들었다.

 

김형실 감독은 여러분 덕분에 2달 만에 처음으로 술을 마셨다고 먼저 운을 뗐다. 애주가 김 감독은 지난 시즌부터 선수단과 시즌 중 금주를 약속해왔고 철저히 지켜왔다. 그가 술을 마셨다는 것의 의미를 스태프들은 처음에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데 이런 분위기가 오래 지속되면 팀에게도 좋지 않고 패배가 습관이 될 수 같아서 결정을 내렸다. 오늘 광주에 함께 내려가지 않겠다. 동요하지 말고 페퍼저축은행의 전통을 잘 세워주길 바란다고 얘기한 뒤 선수단 및 스태프와 일일이 작별의 악수를 했다. 김 감독은 개인 짐을 깔끔히 정리해 숙소에서 나왔다.

 

다만 아직 완전히 페퍼저축은행과의 인연이 끝난 것은 아니다. 구단은 창단 감독 예우 차원에서, 또 여자배구 지도자로 30년 이상 지내 온 그의 빼어난 경륜을 필요로 한다. 지역 유소년 배구 육성과 팀의 미래전략 수립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가 할 일은 있을 것이다. 구단주는 해외 출장을 떠나기 전에 물러난 초대 감독의 새로운 역할에 대한 지시를 구단에 내렸다. 어떤 방식으로 일이 진행될지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여기까지는 드러난 사실들이지만 이제는 사퇴가 결정되기 전에 들리던 무성한 소문에 관한 얘기다. 페퍼저축은행은 시즌에 들어가기 전부터 여러 소문에 휩싸였다. 순천 KOVO컵에서 무기력한 플레이로 예선 탈락한 뒤부터 이 소문은 배구계에 알음알음 퍼졌다. 우선 지역 팬들과 여론 주도층의 반응이 좋지 못했다. 여기저기서 감독교체를 구단에 요구한다는 얘기가 들렸다. 그 소문은 점점 구체적으로 변했다. 새 시즌 2라운드까지 지켜본 뒤 감독을 교체하고 대행 체제로 나머지 시즌을 소화한다고 했다. 소문을 더욱 그럴싸하게 만들듯 구단이 감독을 배제하고 일을 추진하는 모습도 보였다. 결국 소문은 김 감독의 사퇴로 현실이 결국 됐다.

 

사실 페퍼저축은행의 성적 부진은 예견된 것이었다. 시즌을 앞두고 상대 팀과 연습경기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선수가 부상으로 신음 중이었다. 하혜진 이한비 등 팀의 주축 선수들이 대표팀 차출 이후 다쳤다. 하혜진은 선수 생활 재개 여부조차 불투명하다. 팀의 미래가 될 어린 선수들은 아직 다른 팀의 선수들과 기량을 겨루기에는 여러 면에서 부족했다. 이를 예견한 한국배구연맹(KOVO)은 페퍼저축은행이 처음 V리그에 참가하겠다고 할 때 “1년간 차근차근 더 준비해서 다음 시즌에 들어오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까지 했다.

 

그러나 페퍼저축은행은 부딪치면서 배우겠다고 했다. 기업의 이름을 일찍 알리고 싶다는 목적에서였다면 V-리그 조기 참가는 성공했다. 페퍼저축은행은 V-리그의 일원이 되면서 회사의 규모가 커졌고 대중들도 기업의 이름을 쉽게 기억할 정도가 됐다. 반면 팀에게는 현명한 결정이 아니었다. 지난 시즌 328패를 기록했고 이번 시즌도 12월 5일 현재 11연패다. 우선 가장 중요한 선수자원이 부족했다. 팀을 탄탄하게 다지는 시간과 경험의 격차가 다른 팀 차이가 났다. 새 감독대행의 지휘 아래 팀이 얼마나 달라질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쉽지는 않다.

 

2011IBK기업은행 출범 때는 우수한 고교졸업생을 모두 모아주고 각 구단에서도 쏠쏠한 선수들을 지원해줬다. 그때와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기존 구단들은 신생팀을 도와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V리그를 제외한 곳에서 데려올 선수자원도 너무나 부족했다. 게다가 실업, 고교 팀과 프로팀의 격차는 상상 이상으로 컸다. 1~2년의 노력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출범 2년째를 맞아 페퍼저축은행은 차근차근 기초를 다져가며 경험을 쌓아가야 할 상황인데 최근의 움직임을 보면 팀의 지향점이 바뀐 것처럼 보인다. FA선수 보강이 그랬다. 선수보강을 위해 투자를 했지만, 팀의 균형이 깨져버렸다. 팀에 4명의 세터가 생겼다. 반면 당장 뛰어줘야 하는 윙 공격수는 절대 숫자가 부족해 아픈 선수들이 참고 뛰고 있다. 지난해 전체 1순위로 뽑았지만, 부상으로 출전 기회가 적었던 세터 김사랑은 여전히 실전경험을 쌓을 기회가 모자라다. 올해 전체 1순위로 뽑은 염어르헝도 최근에 수술을 받았다. 복귀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은 누가 팀을 지휘한다고 크게 달라질 것이 없는 전력이다. 이런 상황에서 구단은 자진사퇴 이유를 성적 부진이라고 했다. 지금 페퍼저축은행은 연패 탈출이 첫 번째 목표인지, 당장 성적을 내겠다는 것인지, 미래를 위해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겠다는 것이지 잘 모르겠다.

 

팀과 관련한 소문은 또 있다. 어느 유명 선수의 영입 얘기다. 그가 현재 소속팀과의 계약이 끝나면 페퍼저축은행으로 간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 그와 친한 선수도 몇 명을 데려가고 새 지도자는 그 선수의 입맛에 맞는 외국인 감독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는 누구도 확인해주지 않고 확인해줄 수도 없다. 최종 결정이 나기 전까지는 계속 소문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페퍼저축은행은 국내외에서 차기 감독 후임을 찾기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시즌 KGC인삼공사는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려다가 막판에 고희진 감독으로 선회했다. 이 선택을 놓고 몇몇 팬들은 구단을 비난했다. V-리그의 팬들은 토종 감독들의 능력을 너무 무시한다. 이들은 외국인 감독이 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다. 사실 지금 페퍼저축은행의 기량이라면 배구의 신이 온들 크게 달라지기가 쉽지 않을 텐데 골방의 자칭 전문가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페퍼저축은행의 차기 감독이 누구일지 흥미롭다.

 

또 다른 소문은 아직 일부만 알려져 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V-리그와 인연을 끊은 이재영 영입에 관련한 내용이다. 페퍼저축은행은 접촉 사실이 뉴스에 보도된 뒤 여론이 좋지 못하자 단순한 관심 차원의 접촉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사자의 얘기를 들어보면 전혀 다르다.

 

이재영의 입장에서는 조용히 지내던 사람에게 함께 하자고 접근해 이런 저런 약속까지 해 놓고 여론을 핑계 삼아 자신들만 뒤로 쏙 빠지고 책임도 지지 못하는 구단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지금은 입을 다물고 있지만 언젠가는 이와 관련해 진실을 밝힐 가능성도 있다. 최초의 접촉 시점부터 시작해 왜 감독을 배제하고 구단이 나서서 일을 추진했는지와 협상 과정에서 어떤 말이 오고 갔는지 등을 소상하게 밝히면 그 뒷감당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무엇보다 페퍼저축은행은 이런저런 구단의 내부기밀이 너무 쉽게 노출된다. 곰곰이 따져보면 내부에서 했던 발언이 문제가 되고 소문을 타고 배구계에 전파되는 모양새다. 신생팀의 한계라고 하기에는 구단의 운영이 미숙하다. 잘해보겠다는 열정은 이해하지만, 시행착오가 너무 많다. 스포츠팀은 정책 방향이 잘못 정해지면 되돌리기까지는 상당히 큰 비용과 시간이 들어간다. 좋은 팀을 만들기는 어려워도 망가뜨리기는 쉽다. 그래서 일류 전문가가 필요하다.

 

사진 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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