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우가 세트한 작은 공 [강예진의 세트플레이]
- 매거진 / 강예진 / 2022-01-26 08:46:57
[세트 플레이] ‘하나의 플레이가 이뤄지기 위해 정해진 틀 안에서 약속된 패턴에 따라 계획적으로 펼쳐지는 전술.’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세터. ‘세터 놀음’이라는 말은 배구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다. 세터가 어떻게 볼을 세트하냐에 따라 경기 흐름이 바뀐다. 더 나아가 경기 결과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도 비슷하다. 어떻게 삶을 설계하고 계획하냐에 따라 인생의 종착지는 달라지기 마련이다. 프로배구 선수를 꿈꾸면서 달려온 인생. 하지만 다른 삶을 살기 위한 새로운 계획을 ‘세트’할 수도 있다. 새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세트 플레이. <강예진의 세트플레이> 첫 번째 주인공은 윤봉우다.
윤봉우는 서울 서초구 반포에 ‘이츠발리(It’s Volley)‘라는 배구 트레이닝 센터를 차렸다. 지난해 일본에서의 생활을 끝낸 뒤 한국으로 온 그.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배구는 쉽다, 재밌다”라는 인식을 심어주고자 다짐했다. 27년간 나를 위해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이제는 배구를 위해 쏟아붓고자 한다.
chapter1. 일본에서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일본 V.리그에서 보냈다. 윤봉우는 2020-2021시즌을 나고야 울프독스에서 1년을 보낸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1년이라는 시간. 윤봉우에게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일본은 감독을 포함 코치까지 외국인 지도자가 10명 이상이다. 그래서 팀마다 컬러가 다 다르다.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특색있는 팀들이 많다. 우리나라도 변화를 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리그도 3부까지 있다. 3부가 우리나라로 치면 동호회라고 보면 된다. 3부 리그 중계까지 해준다”라고 설명했다.
훈련 체계도 다르다. 윤봉우는 “체력운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웨이트트레이닝에 집중한다. 나는 일본에 가서 러닝을 한 번도 뛰지 않았다. 그렇게 뛸 시간에 차라리 배구를 하라고 하더라. 보통 우리나라는 운동하지 않고 3일 이상 쉬면 러닝을 뛰고, 웨이트트레이닝 무게를 많이 친다. 내가 있던 팀에서는 코트 3개를 썼고, 미니 경기를 한다. 2~3명이 코트 전체를 커버해야 하니까 더 힘들었지만, 훨씬 도움이 많이 됐다”라고 이야기했다.
“우리나라 사람이 일본 프로팀이 훈련하는 걸 보면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다. 훈련할 때만 집중하고, 그 이후에는 자기 인생을 즐긴다”라고 덧붙였다.
선수로서 배구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면, 그 외적으로 보고 들은 것도 많다. 배구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일본에 진출했던 그지만, 한국을 벗어나 지냈던 일본은 배구에 대한 시스템 자체가 한국과 달랐다.
배구 외적으로 많은 걸 보고 배웠다. 선수 풀이 좁다는 이야기가 잦은 한국과 달리 일본은 체계적인 시스템 속 넓은 선수 풀을 지니고 있었다. 유소년 시스템이 자체가 체계적이었다.
윤봉우는 “흔히들 어린 선수가 없다고들 이야기한다. 풀이 작다고. 물론 우리도 프로팀 산하에 유소년팀이 있긴 하지만 나고야는 프로팀 코치가 오후 운동이 끝나면 저녁에는 유소년팀 감독으로서 선수 지도를 하더라. 유니폼도 프로 선수와 같은 옷을 입고, 경기할 때는 볼보이를 하고, 무엇보다도 너무 재밌게 배구를 하고 있더라”라고 했다.
“일본은 생활체육처럼 재밌게, 즐기면서 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참고 이겨내야 하는 것, 힘들어하고 압박감을 이겨내라고만 한다. 우리도 충분히 즐기면서 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을 바꿔봤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이런 생각들이 윤봉우의 두 번째 세트플레이를 만들어 냈다.
chapter2. 은퇴 그 후
1년을 일본에서 보낸 뒤 다시 한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윤봉우는 27년간의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2005년 프로배구 원년시절부터 자리를 지켜온 그는 꾸준함의 대명사였다. 16시즌 동안 블로킹 907개를 잡아냈고, 후배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는 선배였다.
이제는 선수로서가 아닌, 배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배구 발전에 도움이 되고픈 마음이 컸다. 일본에서 깨달은 것들을 한국에서 보여주고픈 마음도 있었다. 그 마음이 윤봉우가 배구 트레이닝 센터를 차릴 수 있도록 인도했다.
은퇴 후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은퇴 후 약 1년은 배구 트레이닝 센터 준비로 바빴다. 윤봉우는 “일본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센터 개업 생각은 하고 있었다. ‘유소년은 저렇게 가르치면 되겠다’라는 걸 일본에서 깨달았다. 한국에 와서 다른 종목 교실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본격적으로 알아봤다. 강남 쪽에는 농구 교실만 20여개가 넘더라. 배구는 2~3개뿐이다. 주변에서 ‘뭐하고 사냐’라고 물어볼 때면 ‘놀아요~’라고 하면서 열심히 돌아다녔다”라며 말했다.
생활 패턴 자체가 바뀌었다. 선수 시절, 정해진 시간에 맞춰 움직였던 패턴은 이제 볼 수 없다. 윤봉우는 “선수 생활을 할 때는 매일이 다 똑같았다. 그게 루틴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지금은 모든 스케줄을 내가 유동적으로 짜야 한다. 이것도 하나의 사업이니까 돈도 신경 써야 하고, 코치들 스케줄도 짜야 하고, 외부로 센터 홍보도 직접 해야 한다. 가끔 ‘현타’가 올 때도 있다”라며 웃었다.
수업은 평일반과 주말반이 있다. 센터 위치상 초등학생들이 주를 이룬다. 윤봉우는 “처음부터 유소년을 택한 건 아니었지만 위치도 위치고, 배구 인기가 많아져서 초등학생 수강생이 늘었다. 연령대별 반이 있지만 유소년 수업이 반 이상이다”라고 말했다.
배구를 직접 하는 것과 가르치는 건 천지차이. 우선 말을 하면서 몸소 시범을 보여야 하고, 어린아이들과 함께 호흡해야 한다. 묵묵히 배구만 했던 그동안의 세월과는 달랐다.
윤봉우는 “사실 힘들다. 그래서인지 살은 찌지 않아서 다행이다”라고 웃으며 “아이들이 배구를 처음 접해봐서 그런지 배구공과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하더라. 성인도 두 달 정도 하니까 자체 경기가 된다. 하는 사람이 재밌어하니, 가르치는 사람도 재밌다. 힘들긴 하지만 좋다”라고 털어놨다.
수업 방식에 대해서 고민도 많이 했다. 윤봉우는 “부모가 원하는 것과 아이들의 니즈가 다르다. 애들은 공 가지고 뛰어노는 걸 좋아하는데, 엄마들은 키를 크게 하려고 시키는 경우가 많다”라고 했다.
적당한 즐거움이 필요하다. 윤봉우는 “무조건 재미있게만 하면 안 된다. 기술, 실력도 필요하기에 재미와 기술 그 사이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 기술만 가르치다 보면 애들이 재미없어하고, 지루하면 그만둔다. 그렇다고 너무 재밌게만 하면 수업이 안 된다”라고 했다.
‘배구’라는 종목은 축구나 농구 등 생활 스포츠로 활성화되어 있는 종목과 비교해 다소 생소하다. 윤봉우는 “처음에 학부모들이 센터에 와서 ‘배구하면 뭐가 좋냐’라고 물어보면 ‘타 종목에 비해 점프 운동이 많고, 네트를 사이에 둔 운동이라 부상 위험이 적다’라고 답한다. 그러다 보니 여학생들도 꽤 된다”라고 했다.
배구 트레이팅 센터가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윤봉우는 “잠재적인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고 싶은 것보다는 하나부터 움직이자는 마음이 크다. 축구, 농구는 센터가 많다. 배구가 시청률이 높다고 한들 기본 베이스 풀은 그 종목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키 큰 친구들은 대부분 농구로 넘어가고, 재능이 있으면 엘리트 코치들이 데려간다. 그런 걸 보면서 배구도 1~2명만 와도 너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라고 바랐다.
chapter3. 후배들아, 무엇이든
어릴 때부터 함께 해온 걸 내려놓는 건 쉽지 않다. 한편으로는 미래에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부터 막막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윤봉우도 27년간 해온 배구를 내려놓고 새 출발선 앞에 섰다.
새로운 시작이다. 볼 세팅을 다시 하는 출발선 앞에 섰다. 하루하루 배움의 연속이지만 그 속에서 즐거움도 크다고 한 윤봉우. 그가 패스한 볼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까. 그리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게 될까.
봉우가 전하는 메시지
과거의 봉우야 “조금만 더 버티면 할 만큼 했다는 시기가 올 거야. 그때까지만 참고하자.”
현재의 봉우야 “할 만큼 했으니, 이제는 너 하고 싶은 대로 하자.”
미래의 봉우야 “지금의 네가 힘들었으니, 네가 있을 수 있는 거야.”
TO. 후배들에게
이게 다는 아닐 수 있지만, 은퇴 후에 할 수 있는 건 정말 많아요. 배구뿐 아니라 다른 종목 스포츠 선수들도 마찬가지고요. 지도자를 생각하면서 프로에만 가려고, 그게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잖아요. 물론 돈에 대한 문제를 배제할 순 없지만, 우리가 배운 걸 연계해서 찾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배구는 다른 종목보다 더 개척해야 하지만, 반대로 보면 블루오션을 마련하는 거잖아요. 배구를 했던 사람이 지도를 하고, 본인만의 배구관과 철학을 가질 수 있어야 해요. 처음부터 생기진 않지만, 현장에 있다 보면 생각이 바뀌기 마련이거든요. 그런 걸 찾아갈 수 있는 선수가 많이 생겼으면 해요. 금전과 명예도 좋지만, 너무 좁게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요.
글. 강예진 기자
사진. 문복주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1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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