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시간과의 싸움을 선택했던 현대캐피탈, 해피엔딩이 다가온다
- 남자프로배구 / 김종건 / 2023-02-27 08:01:20
현대캐피탈이 21일 우리카드를 꺾고 2022-2023시즌 처음으로 리그 선두에 올랐다. 22일 대한항공이 OK금융그룹을 꺾으면서 하루 천하에 그쳤지만, 24일 또 우리카드를 잡고 선두에 올라서는 등 시즌 마지막까지 선두 경쟁을 예고했다. 두 팀 모두 5경기를 남겨둔 27일 현재 대한항공이 22승9패 승점65로 1위, 현대캐피탈은 21승10패 승점64로 2위다.
2020-2021시즌 시즌 도중에 리빌딩을 선언하고 어두운 터널에 들어선 현대캐피탈에게는 끝이 보인다. 한 때는 ‘과연 이 길이 맞는 것일까’ 의심도 했겠지만, 올바른 방향이었음을 점점 확인하고 있다. 물론 아직도 리빌딩은 진행형이다. 최종 목표는 챔피언결정전 우승이다. 최태웅 감독은 “연속으로 리그를 제패하는 팀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현대캐피탈에게 최근 3년은 팀의 색깔을 바꾸는 시간이었다. 변화의 계기가 있었다. 지금과 같은 선수단 구성과 배구로는 우승을 할 수 없다는 절박감이 컸다. 2016-2017시즌부터 3년간 현대캐피탈은 챔피언결정전에서 대한항공을 만나 2승 1패를 기록했다. 하지만 점점 경쟁팀을 뿌리치기가 힘들었다. 2019~2020시즌 도중 최태웅 감독은 “지금의 팀이라면 봄 배구는 간다. 그런데 3등이 우리의 목표는 아니다”라고 털어놓았다. 시즌 중반이었는데 뭔가 비장했다.
또 다른 변수가 생겼다. 샐러리 캡의 공개였다. 현대캐피탈은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옵셥으로 좋은 선수들을 잡아둘 수 있었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2023-2024시즌부터는 연봉과 옵션 등 모든 것을 공개해야 한다. 고민했다. 현대캐피탈은 선제 대응을 선택했다. 3년의 준비기간 동안 선수단의 체질을 바꾸기로 했다. 지금 팀의 주축인 비싼 선수를 팔고 그 빈 자리를 젊은 선수들로 채워서 육성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이뤄진 2020년 11월 3일의 신영석 트레이드였다. 여러 구단을 상대로 오랫동안 협상을 시도했지만, 결국 2020-2021시즌 초반에서야 빅딜이 성사됐다.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신영석과 한국전력의 세터 김명관이 중심이 된 3-3 트레이드라고 생각했다. 현대캐피탈의 생각은 달랐다. 10억 원 가까운 신영석의 몸값이 빠지면 그 돈으로 젊은 선수 5명을 육성할 기회가 생긴다고 봤다. 대신 신영석이 빠진 몇 년간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야 했다. 그렇더라도 시간은 현대캐피탈의 편이라고 믿었다. 신영석이 계속 정점의 기량을 보여주겠지만 영원할 수는 없고 젊은 유망주들은 분명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를 위한 정지작업도 열심히 했다. 신인드래프트에서 유망주를 잡을 기회를 만들었다. KB손해보험에 김재휘를 넘겨주면서 얻은 전체 1순위 지명권으로 2020년 김선호를 뽑았다. 운까지 따랐다. 시즌 3위를 하고도 전체 4번째 순번으로 박경민을 잡았다. 2021년에는 신영석의 트레이드 때 얻은 지명권으로 전체 1순위 홍동선을 뽑았다. 2순위로 정태준도 잡았다. 2년 전 현대캐피탈은 신인드래프트 지명 순번이 앞선 몇몇 팀에게 은밀한 제안도 했다. 어느 선수를 지명하지만 않으면 그 대가로 상대 팀에 필요한 선수를 주겠다고 했다. 3개 팀 가운데 2개 팀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OK금융그룹 석진욱 감독은 거부했다. 그 바람에 성사되지 않았다.
현대캐피탈이 원했던 그 선수는 당시 한양대 1학년 세터 이현승이었다. 구상이 무산되자 이현승은 한양대에 남았다. 일찍 무릎 수술을 받았다. 그는 2년 뒤 현대캐피탈이 드래프트 2번째 순번을 잡자 얼리 드래프티로 나왔다. 1순위는 OK금융그룹이었고 3순위는 삼성화재였다. 돌다리도 두들겨가며 건너고 싶었던 현대캐피탈은 3순위 삼성화재에 또 제안을 했다. 만일 앞 순번을 잡더라도 이현승을 포기한다면 반대급부로 필요한 선수를 주겠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현대캐피탈이 앞 순번을 차지하는 바람에 두 구단의 비밀 약속은 원천무효가 됐다. 그렇게 해서 현대캐피탈은 이현승을, 삼성화재는 김준우를 뽑았다.
현대캐피탈은 팀에 꼭 필요한 유망주를 데려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찾아냈고 성공했다. 이런 유능한 프런트 덕분에 리빌딩의 기초공사를 탄탄하게 했다. 아무리 리빌딩을 원해도 결국에는 유망주라는 좋은 재료가 있어야 성공은 보장된다. 현대캐피탈의 일 처리는 우리 감독이 경기에 어떤 선수를 쓰는지에 관심을 두고, 경기 결과와 로테이션, 선수교체 타이밍을 놓고 뒤에서 흉만 보는 몇몇 구단과는 비교가 됐다.
유망주들을 끌어모았다고 리빌딩이 성공하지는 않는다. 좋은 구슬을 꿰어줄 리더가 있어야 한다. 2022-2023시즌 현대캐피탈에는 두 명의 좋은 리더 오레올과 전광인이 있었다. 특히 36세의 나이로 다시 V-리그에 도전한 오레올은 최태웅 감독이 구상하는 기본기 배구의 핵심이었다. 최 감독은 오레올의 높은 배구 IQ와 경험, 무엇보다 탁월한 블로킹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
오레올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이번 시즌 현대캐피탈은 7개 구단 가운데 블로킹 1위(세트 평균 2.983개)다. 최근 5년 사이 현대캐피탈이 블로킹 1위였던 때는 파다르가 뛰었고 챔피언결정전 우승까지 차지했던 2018~2019시즌과 신영석이 활약해줬던 2019~20202시즌, 2차례였다. 이번 시즌 블로킹 부문 1위의 특징은 오레올 주변 선수들의 블로킹이 이전 시즌보다 눈에 띄게 늘었다는 점이다.
아웃사이드 히터 오레올은 상대의 주 공격수와 맞물려 돌아간다. 그의 블로킹을 부담스러워하는 상대 팀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오레올을 피해서 공격을 한다. 이 덕분에 오레올의 좌우에서 함께 움직이는 토종 선수들의 블로킹 기회가 늘었다. 시즌 초반에는 박상하가 눈에 띄게 블로킹이 많아졌고 최근에는 최민호 허수봉이 오레올의 혜택을 받고 있다.
오레올은 나이 탓으로 체력부담이 있고 다른 외국인 선수처럼 엄청난 파괴력을 자랑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현대캐피탈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각에 전광인이 있기 때문이다. 전광인과 오레올이 빼어난 배구 센스로 팀에 꼭 필요한 설거지를 잘해주는 덕분에 범실도 눈에 띄게 줄었다. 7개 구단 가운데 딱 중위권이다. 아직 이 부분은 개선의 여지가 있다.
반면 공격은 모든 부분에서 상위권에 있다. 지난 시즌 기록과 비교해 특별히 좋아진 것은 서브다. 전체 3위다. 지난 2시즌 동안 최하위였고 2021-2022시즌에는 세트 평균 0.782개에 불과했지만, 이번 시즌은 1.426개로 거의 2배다. 허수봉을 여러 포지션에 투입하면서 생긴 효과도 많다. 우선 로테이션에서 강한 서브를 넣을 선수 숫자가 늘었다. 백어택이 가능한 미들블로커 덕분에 세터가 사용할 공격 옵션도 다양해졌다. 이번 시즌 현대캐피탈은 특정 선수의 활약에 따라 팀의 승패가 오락가락하는 배구에서 벗어났다. 모두의 힘을 모으는 토털 배구를 하고 있다.
눈여겨볼 것은 속공이다. 지난 시즌 1위였지만 6위로 떨어졌다. 속공은 미들블로커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사실 세터의 패스에 많은 것이 결정된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지난 시즌까지 팀의 주전 세터였던 김명관을 향한 야박한 평가는 분명 달라져야 한다. 그는 좋은 세터다. 이번 시즌에는 그의 자리를 이현승이 이어받았다. 물론 두 사람의 경쟁은 계속 진행 중이다.
이제 V-리그 첫 번째 시즌을 치르는 이현승과 공격수들과의 호흡이 아직 완벽하지 않다. 이는 시간이 해결할 문제다. 대신 속공에서 눈에 띄는 부분도 있다. 현대캐피탈은 지난 몇 년간 하지 않았던 B퀵을 시도하고 있다. 완전하지 않지만 B퀵을 시도하는 전략적인 이유도 있다. B속공이 성공해야 함께 따라오는 C퀵이 편해진다. 파이프 공격의 성공확률도 높아진다.
시즌 초반 현대캐피탈에게도 계산 착오는 있었다. 허수봉의 공격이 기대만큼 터지지 않았다. 오레올의 리시브 약점을 파고들던 상대 팀들에게 고전했던 이유다. 그러나 허수봉은 후반기 들어오면서 정상으로 돌아왔다. 5라운드에 보여준 활약은 무시무시했고 라운드 MVP에 선정됐다. 리빌딩의 끝이 보이는 현대캐피탈은 내일을 바라보는 팀이다. 대한항공은 오늘이 더 중요하다. 지금 주전으로 뛰는 선수들은 나이로 보나 경험치로 봤을 때 기량이 절정에 있다. 대한항공은 자신들의 카드를 모두 내놓고 치는 포커 게임을 하고 있다. 반면 현대캐피탈은 지금 깔아둔 패가 좋지 않아도 아직은 까보지 않은 카드가 있다고 믿는다.
4라운드까지 현대캐피탈은 대한항공과의 맞대결에서 전패했다. 당시 대한항공의 어느 코치는 “우리 선수들이 유난히 현대캐피탈 선수들에게는 자신감이 있다”고 했다. 최태웅 감독은 “비록 지금은 져도 언젠가는 꼭 이길 것”이라고 했다. 결국 5라운드에서 처음으로 이겼다. 물론 그것이 끝은 아니다. 챔피언 타이틀을 놓고 벌이는 힘과 힘의 대결에서 이겨야 진정한 승리라고 할 수 있다. 현대캐피탈은 시간이 지날수록 유리하다고 믿는다. 두 팀은 3월 5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6라운드를 벌인다. 사실상 리그 1위를 판가름하는 경기다.
사진 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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