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진에게 OPP는 '딱 맞는 옷'이었다
- 여자프로배구 / 화성/이정원 / 2021-12-24 07:10:59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희진이는 아포짓이 더 맞는 것 같아요." 최고의 리베로 도로공사 임명옥이 김희진을 상대한 후 남긴 말이다.
여러 논란 속에 시즌 초반을 보내야 했던 IBK기업은행은 최근 김호철 감독을 선임하며 분위기 수습에 나섰다. 여기에 공격 해결 능력이 타팀 외인에 비해 떨어졌던 레베카 라셈(등록명 라셈)이 떠나고 달리 산타나(등록명 산타나)가 왔다.
그러면서 팀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산타나는 아포짓과 윙스파이커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선수. 김호철 감독은 산타나를 윙스파이커로 기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김희진이 아포짓 스파이커로 이동했다.
대표팀 주전 아포짓 스파이커로 2020 도쿄올림픽 등 국제 대회에서 큰 활약을 펼쳤던 김희진이지만, 최근 소속팀에서는 미들블로커로 기용됐다. 김호철 감독은 "희진이가 대표팀에서는 아포짓 스파이커로 뛰지 않았나. 자기 자리에서 안정감을 찾을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18일 김호철 감독의 데뷔전이 열린 흥국생명전. 김희진은 선발 아포짓으로 출전해 팀 내 최다인 17점에 공격 성공률 45%를 기록했다. 팀은 0-3으로 패했지만 김희진의 활약은 빛났던 경기였다. 미들블로커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치는 김희진이지만, 아포짓에서도 분명 외인 못지않은 활약을 펼칠 수 있다는 걸 또 한 번 증명했다. 김호철 감독도 "자기 자리를 찾으니 안정감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23일 화성에서 열린 도로공사와 IBK기업은행전. 경기 전 도로공사 김종민 감독은 김희진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이런 말을 남겼다. "미들블로커보다는 아포짓 스파이커가 낫다. 공의 타점이나 파워가 분명 있다. 그 자리에서는 위치 선정도 좋다. 장점은 아포짓 스파이커에 있다."
적장의 칭찬, 경계 속에서 김희진은 이날도 매서운 화력을 보여줬다. 출전 시간이 적었던 산타나를 대신해 팀 공격을 진두지휘했다. 전, 후위 위치는 상관없었다. 블로킹(2개)과 서브(1개) 득점도 올렸다. 상대 블로커 라인의 벽이 두터워도 김희진은 특유의 힘으로 그 벽을 뚫어냈다. 김희진은 현재 무릎이 좋지 않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강한 정신력, 투혼을 발휘해 어떻게 해서든 득점을 올리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IBK기업은행은 1, 2세트를 따내고도 내리 세 세트를 내주며 아쉬운 대역전패를 안아야 했지만, 김희진의 맹활약은 눈부셨다. 32점, 공격 성공률 37%를 기록했다. 팀 내 최다 득점이고 상대 외인 켈시 페인(등록명 켈시)이 올린 38점과 맞먹는 수준이다.
산타나의 컨디션이 정상이 아닌 상황에서 사실상 외인 역할을 한 김희진이다. 올 시즌 최다 득점 경신은 물론이고 프로에 와서 30점 이상을 기록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2015년 2월 2일 도로공사전 35점, 2016년 1월 25일 흥국생명전 32점)이다. 그만큼 많은 득점을 올렸다는 증거다.
김희진의 활약을 상대 코트에서 바라본 도로공사 임명옥은 "우리가 졌던 세트를 보면 희진이가 공격을 잘 해줬다. 블로커를 뚫고 또 터치아웃이 많았다. 그래서 3세트부터는 희진이가 후위 공격 할 때는 블로커 한 명만 서자고 했다. 다른 공격수 대비도 중요했지만 희진이를 막는 게 첫 번째였다"라고 말했다.
말을 이어간 임명옥은 "희진이는 아포짓 스파이커가 잘 맞다. 미들블로커에서는 득점을 내는 데 한계가 있다. 전 경기만 봐도 큰 공격이 강한 선수다. 파괴력이 있다. 많이 때리면 때릴수록 자신감도 많이 생기는 것 같더라. 요즘 더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라고 칭찬했다.
적장과 최고의 리베로의 칭찬, 김희진이 아포짓에서 얼마나 존재감이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김희진은 역대 여자부 서브 2위답게 예리한 서브를 가진 소유자이며 후위 공격, 개인 시간차, 퀵오픈, 속공 등 대부분의 공격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어렵게 올라온 공도 과감하게 처리한다. 이날도 퀵오픈, 시간차, 후위, 오픈 등 다양한 방법으로 득점을 해결했다.
김희진이 부상 없이 지금과 같은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산타나가 빠르게 컨디션을 끌어올린다면 IBK기업은행은 더욱 무서운 팀으로 변모할 수 있다. 세터 김하경도 경기를 치르면 치를수록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고, 김호철 감독 부임 후 선수들의 표정과 플레이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보인다.
김호철 감독도 "선수들이 열심히 해줬다. 하고자 하는 표정들이 많이 변했다. 최근 우리 소득이 아닌가"라고 했고, 김종민 감독도 "앞으로 IBK기업은행이 좋아질 것 같다. 공격도 있고 높이도 있다. 준비를 철저히 해야 될 것 같다"라고 경계했다.
김희진은 OPP라는 제 옷을 입었다. OPP에서의 활약이 더욱 기대되는 김희진. 창단 후 최대 위기를 겪었던 IBK기업은행을 꽃길로 인도할 수 있을까.
김호철 감독 체제에서 아직 승리를 기록하지 못한 IBK기업은행은 26일 수원에서 현대건설과 경기를 갖는다. 4연패 탈출 및 김호철 감독 체제 첫 승에 도전한다.
사진_화성/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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