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니맨이라 쓰고 황동일이라 읽는다, 황동일이 맞이한 7번째 팀

매거진 / 김하림 기자 / 2022-11-20 08: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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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리그 일곱 팀 모두에 몸담았다. 팀을 옮길 때마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유니폼을 갈아입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원클럽맨과는 정반대의 우여곡절이 많은 커리어지만, 황동일은 자부심을 가졌다. “내가 처음으로 만든 커리어잖아요.” 새로운 팀, OK금융그룹 연습체육관에서 만난 그의 말에는 자신감과 책임감이 넘쳐났다.
 


저니맨 황동일?
배구 선수였기에 가능했던 수식어


지난 9월 15일, OK금융그룹과 한국전력이 트레이드를 실시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OK금융그룹은 세터 황동일을 받고, 미들블로커 정성환을 교환하는 트레이드를 한국전력과 합의했다. 그렇게 해서 황동일은 처음으로 7개 팀 유니폼을 모두 입게 된 선수가 됐다.

드림식스(현 우리카드),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 대한항공, 삼성화재, 현대캐피탈, 한국전력까지. 2008-2009시즌 데뷔 이후부터 2021-2022시즌까지 무려 6개 구단을 돌았다. 그리고 2022-2023시즌을 앞두고 마지막 남았던 OK금융그룹까지. 여러 번의 트레이드를 겪었기에 이번에도 무덤덤하게 넘어갈 것 같았으나 ‘최초’라는 수식어를 보고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그는 “처음에는 이제 또 다른 팀으로 간다고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최초’로 7개 팀 모두를 경험해봤다는 수식어를 보고 무게감, 책임감이 느껴졌다”고 털어놨다.


뿌듯함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V-리그에 한 역사를 썼다고 생각해요. 개인 기록, 개인상이 아닌 V-리그에서 모든 팀을 소화했다는 것에. 한 평생 배구를 했지만, 열심히 한 것에 인정받는 부분들이 있어 개인적으로 뿌듯한 마음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저니맨’이라는 이미지가 컸지만, 모든 구단을 돌고난 이후부턴 이적생 이미지보다는 배구선수로 후배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후배들이 나를 보고 포기하지 않고 더 선수 생활을 오래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계기도 됐어요.”

마지막처럼 절실하게
놓지 않은 배구공

 

황동일은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처럼 절실하게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한국전력에서 마지막 선수 생활을 할 줄 알았기에 포기하지 않고 아파도 참고, 개인적으로 리듬이 좋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경기장에서 코트를 오래 밟고 싶었다”라고 힘줘 말하며 “은퇴할 시기에 많은 시간 동안 코트장을 누볐는데, 내 삶이 지난 두 시즌 동안 100세트라는 세트를 뛸 수 있게 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한국전력에서의 생활을 되돌아봤다.


황동일은 지난 시즌을 준비하면서 승리의 여신 니케를 오른쪽 팔에 새겼다. 그만큼 승리를 향한 의지가 강했다. 그는 “한국전력에서 두 번째 시즌이었고, FA가 걸려있었기에 어느 해보다 중요했다. 그리고 계속 이기고 싶었기에 승리의 여신을 몸에 새겨봤지만 아무 의미는 없었다”라고 웃었다.


한국전력에 있는 동안 주전세터로 활약하면서 많은 출전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2021-2022시즌 후반부터는 코트보단 웜업존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한국전력이 6전 7기 끝에 우리카드를 준플레이오프에서 꺾고 창단 첫 플레이오프에 올라갔을 때 기쁜 감정도 있었지만 아쉬운 감정까지 만감이 교차했다.

 

선수 생활의 끝을 함께할 줄 알았던 팀에서 또다시 옮기게 됐다. 이미 여러 번 겪었던 트레이드지만 항상 이별은 어려운 법이다. 황동일은 “짧은 시간 동안 선수들하고 정이 많이 들었는데 떠난다고 하니 힘들었다”라고 털어놨다. 정든 한국전력을 떠날 때, 박철우, 신영석, 김광국이 눈에 밟혔다. 특히 박철우는 황동일이 프로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절반 이상을 같이 생활했고, 신영석은 현대캐피탈에서 한국전력으로 함께 넘어왔던 만큼 각별했다.


현대캐피탈에 있을 때 다시 뭉쳤던 경기대 3총사(문성민, 신영석, 황동일) 역시 이젠 각각 다른 팀으로 흩어졌다. 함께 우승하고 같이 은퇴하자는 목표는 가슴 한쪽에 묻어두게 됐다.


“현대캐피탈에서 나왔을 때 성민이를 혼자 두고 나온다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셋이서 했던 추억들도 떠올랐고, 마지막까지 셋이 함께 피날레를 하고, 함께 우승하고 은퇴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죠. 이번엔 영석이를 두고 왔잖아요. 언젠가 셋이 만났을 때 ‘인생 자체가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어요. 이젠 각자 팀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잘하고,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처럼 한 번 더 만나자고 했죠.”


“이제 셋이 만날 수 있을까요”라며 아쉬움이 가득 담긴 채 그는 “서로 있는 팀에서 마흔까지 선수를 하게 되면 충분히 박수 쳐줄 일이다. 영석이랑 성민이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다(웃음). 나도 OK금융그룹에서 마흔까지 선수 생활을 하는 게 목표다”라고 다짐했다.


트레이드 당한 선수의 입장에서 보면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 것. 황동일 역시 “프로의 세계가 그렇듯, 쓸모가 있으면 남아있고 팀에 필요가 없으면 버려진다. 그래도 내가 아직 필요하기 때문에 OK금융그룹에서 새로운 기회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힘듦 반, 좋음 반이 교차했다”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트레이드를 겪는 모든 후배들을 향해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황동일은 “내가 은퇴하더라도 프로의 세계엔 트레이드라는 게 계속 있을 거다. 그 상황에 주어진 선수들은 항상 자신이 필요하기 때문에 간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졌으면 좋겠다. 새로운 팀에 들어갔을 때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들을 빨리 파악하고, 문화에 빨리 적응했으면 좋겠다”라고 힘줘 말했다.
 


모든 트레이드는
나에게 터닝포인트
“돌아간다면 더 열정적으로 하겠죠?”

 

여러 팀을 오가면서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평생 잡았던 배구공을 손에서 놓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버티고 또 버텼다. 그는 “어떻게 보면 결국 내 삶이었다. 신인상을 받은 이후 겸손하지 못해 도태되고 바닥까지 찍었다. ‘그때 당시 내가 더 노력할걸’이라는 후회도 했고, 떨어진 실력을 다시 올리기까지 노력도 열심히 했다. 후회가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내가 버티고 이겨내면서 더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라고 이야기했다.


후회 가득한 과거의 한순간으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황동일은 대학교 2학년 때로 돌아가고자 한다. “학창 시절 때는 프로라는 꿈과 함께 국가대표에도 들어가고 싶었다. 대학교 2학년 때 국가대표로 뽑히고 안일한 생각을 했다. ‘그때 더 노력했으면 어땠을까’하는 후회가 계속 있었다. 그래서 다시 돌아간다면 더 빨리 정신 차리고 배구를 더 열정적으로 할 거다”라고 이유를 말했다.

 

OK금융그룹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열정을 다른 선수들에게 전달해 주는 것. 석진욱 감독 역시 황동일에게 ‘선수들에게 열정과 파이팅을 전달해달라’고 했다.

 

“어떻게 감독님이 추구하는 배구를, 문화를 우리 선수들과 더 열정적으로 코트에서 보여주는 게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이죠. 또 많은 경기를 뛸 수 있는 기회가 올 수 있도록 끊임없이 준비해야죠.”


“OK금융그룹에 처음 왔을 때보다 지금 선수들이 코트에서 보여주는 열정이 많이 올라왔어요. 내가 코트에서 더 뛰고 격려해주면서 질책도 하고 있어요. 따끔하게 한마디 할 수도 있고 내가 정신 못 차릴 때는 얘들이 나에게 따끔한 한마디를 하고, 서로 피드백을 하고 이야기를 한 게 쌓이고 쌓이다 보면 코트에서 큰 힘이 되거든요. 또 내가 할 수 있는 걸 100%, 120% 더해야죠. 최대한 보여줄 수 있고 할 수 있는 부분들을 더 하려고 해요. 후배들이 ‘황동일이라는 선수가 왜 아직까지 코트에 남아 있는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부용찬, 지태환에 이어 레오나르도 레이바 마르티네스(등록명 레오)까지 과거 함께 했던 동료들도 오랜만에 만났다. 황동일은 “모두가 반가웠다”라고 웃으며 레오와의 호흡을 기대했다. “최고의 외인과 다시 해볼 수 있는 게 내 인생의 또 다른 기회다. 앞으로 레오와 함께 우리 팀 최고의 퍼포먼스를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다.”
 


‘배구쟁이’ 황동일의
배구 인생은 ‘끊임없는 노력’


‘끊임없는 노력.’ 황동일 스스로 생각한 배구 인생이다. “모든 팀을 돌고 돌면서 나의 배구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고, 팀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저니맨’, ‘마지막’은 항상 그에게 달린 수식어다.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는 두 단어는 배구를 계속할 수 있게 해주는 자극제가 됐다. 황동일은 “항상 머릿속에, 가슴에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는 거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나의 부족한 부분이 어딘지 알기 때문에 노력한다. 세터로 팀을 위해 나를 위해 연구를 한다”라고 했다.


우리 나이로 37세. 은퇴를 바라볼 수 있는 나이지만 아직 코트를 밟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 감사하다. “은퇴할 수 있는 나이임에도 구단에서 필요하다고 느꼈기에 새로운 팀에 왔다고 생각한다. 자부심을 느낀다. 한 번 더 기회를 받았고, 배구 인생 중에 또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거고, 새로운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을 거다”라고 기대했다.


유니폼을 벗으며 선수 생활이 끝난 후에도 황동일은 배구공과 함께하려고 한다. “제2의 인생 목표를 이제 준비하고 설계하고 있다. 배구계에 종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든 팀을 돌면서 쌓은 수많은 경험과 배운 지식을 통해 세터 코치를 제대로 해보고 싶다”라고 미래 계획을 언급하며 “한국 배구에서 세터가 부족한 상황이다. 세터를 육성해야 국제 무대에 가서 성적도 나고 배구 발전이 있다고 생각한다. 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지금의 황동일이 있기까지, 가족들의 헌신을 빼놓을 수 없다. 황동일은 “가족이 있기에 지금 이 자리에서 인터뷰를 한다. 수 없이 배구를 그만두고 은퇴를 하고 싶었지만, 결국 가족이 있기에 포기하지 않았다. 가족만큼 위대한 힘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너무 감사하고 고맙다”라고 고마운 마음을 털어놨다.


7번째 팀, OK금융그룹에서 새로운 시즌을 맞이했다. 우승이라는 목표를 위해 개인적인 목표도 세웠다. ‘팀에 보탬이 되는 것.’ 황동일은 “선수로 코트를 많이 누볐으면 좋겠지만, 후배들에게 어떻게 해야 팀에 필요로 하고, 보탬이 될 수 있는지를 알려주고 싶다. 원팀이 되기 위해선 경기를 뛰지 않는 선수들이 해야 할 부분이 있다. 코트에 있는 선수, 웜업존에 있는 선수들이 혼연일체가 돼야 한다.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각인시켜주고 싶다”라고 설명했다.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있다. “은퇴하기 전까지 어떤 선수든 힘들 거예요. 힘들 때마다 포기하지 않으면 분명히 기회는 주어져요. 그 주어진 기회에 본인이 얼마만큼 진심으로 노력한다면 그 기회가 분명히 자신의 것이 돼요.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선 노력 아니면 쉽지 않다는 걸 한 번 더 말해주고 싶어요.”
끝으로 과거의 자신, 그리고 지금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과거 황동일은 너무 겸손하지 않았고 자기 잘난 맛에 살았어요. 그래서 고생이란 고생을 다 했고, 어려움 속에서 다시 한번 인간 황동일이 됐죠. 배구만이 아닌 사람 인성을 배울 수 있었죠. 지금의 나에겐 과거 경험을 토대로 앞으로 내가 뭘 해야 할지 이제는 알기 때문에 또 한 번 목표를 할 수 있게끔 더 달려보고 싶고 싶습니다. 오래오래 코트에 남아 있어야죠(웃음).”

 

 

글. 김하림 기자

사진. 유용우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11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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