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화의 세트는 현재진행형 [강예진의 세트플레이]

매거진 / 강예진 / 2022-02-10 13: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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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플레이] ‘하나의 플레이가 이뤄지기 위해 정해진 틀 안에서 약속된 패턴에 따라 계획적으로 펼쳐지는 전술.’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세터. ‘세터 놀음’이라는 말은 배구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다. 세터가 어떻게 볼을 세트하냐에 따라 경기 흐름이 바뀐다. 더 나아가 경기 결과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도 비슷하다. 어떻게 삶을 설계하고 계획하냐에 따라 인생의 종착지는 달라지기 마련이다. 프로배구 선수를 꿈꾸면서 달려온 인생. 하지만 다른 삶을 살기 위한 새로운 계획을 ‘세트’할 수도 있다. 새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세트 플레이. <강예진의 세트플레이> 두 번째 주인공은 백목화다.

 


‘백목화’하면 떠오르는 말이 있다. ‘다재다능’이다. 한 인생을 살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고 있다. 프로선수를 시작으로 바리스타, 해설위원, 육아 그리고 다시 배구선수까지. 자기 인생을 주도적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도전이 거침없다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백목화는 어떤 세트를 계획 중일까.

A퀵 해설위원으로서 한 달
배구에서 A퀵은 상대 허를 찌를 때 나오는 기술이다. 흔히 ‘속공’이라고도 불린다. 세터와 미들블로커의 합이 잘 맞아야 한다. 한 경기에서 A퀵의 빈도는 다른 공격보다 현저히 낮다. 쉽게 쓸 수도, 함부로 쓸 수도 없다. 타이밍이 잘 맞아떨어져야 한다.

백목화에게도 쉽게 할 수 없는, 새로운 일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2021년 11월 23일.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스포츠 전문 채널 SPOTV 해설위원을 맡게 된 것. 출산 후 육아로 시간을 보내왔던 백목화는 해설 제안을 받고 잠시 망설였다. 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잘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에 사로잡혔다.

의구심도 잠시, 해보고 후회하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렇게 ‘배구 여제’ 김연경 소속팀의 2021-2022 중국 여자배구리그 경기를 생중계하게 됐다.


백목화는 “해보고 싶은 생각은 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해설을 해보지 않겠냐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신랑과 의논을 먼저 해보겠다고 답했다. 그러고 배구를 보면서 중계 소리를 끄고 신랑과 연습을 했는데 어렵더라. PD님께 다시 연락해서 한번 해보고 결정해도 되냐고 여쭤봤다. 리그 개막까지 일주일밖에 시간이 없었기에 빠르게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일단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보겠다고 했다. 연습을 정말 많이 했던 거 같다”라고 털어놨다.

선수 입장을 해설에 녹였다. 캐스터가 경기 표면적인 이야기를 한다면, 백목화는 선수 시절 느꼈던 부분,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등에 대한 목소리를 냈다. 선수를 그만둔 지 불과 2년 채 되지 않았다. 그 장점을 해설에 녹이고자 했다.

백목화는 “다른 해설위원들과 달리, 선수 생활을 최근에 그만뒀다. 일단 내가 아는 대로 선수 입장에서 이야기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코트에서 일어난 상황에 대해, 어떤 점이 어려웠는지 등을 말이다. 시청자들은 코트에서 보이는 것 외에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경험을 빌려 선수 입장을 대변하듯 깊은 이야기를 전달하려 노력했다”라고 했다.

첫 생방송은 잊을 수 없다. 백목화는 “정말 많이 떨었다. 캐스터분이 오프닝만 하면 괜찮아 질 거라 나를 다독였다. 그 말이 맞았다. 오프닝 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카메라를 보고 이야기해야 하는 부분이라 그런지 오프닝은 끝날 때까지도 적응이 안 되더라. 오프닝이 끝나고 막상 중계할 때는 긴장감을 잊었다. 경기에 빠져서 해설했던 거 같다”라고 털어놨다.

SBS SPORTS 장소연 해설위원의 도움도 받았다. 백목화는 “먼저 연락을 주셨다.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하셨다. 방송국에 첫 연습을 다녀온 뒤에 ‘너무 어려웠다’라고 털어놨더니, ‘네가 선수 생활을 했을 때 느낌을 자세히 녹여서 하면 할 말이 자연스럽게 생길 거다’라고 조언해주셨다. 많은 도움이 됐다”라고 했다.

김연경과는 해설을 처음 시작할 때, 그리고 마지막 경기를 끝내고 연락을 주고받았다. 백목화는 “사실 내가 먼저 연락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언니한테는 해설하기로 결정 났을 때 하게 됐으니까 잘 부탁한다고 연락했다. 그 후로는 끝나고 한 게 다다”라고 전했다.

짧으면 짧고, 길면 길었던 한 달이었다. 백목화는 “나한테는 한 달이 엄청 길었다. 다행이었던 건 기록을 볼 수 있어서, 기록에 대한 준비를 해갔다. 사실 육아랑 병행하다 보니 피곤했다. 내가 아침형 인간인데, 해설은 늦게까지 할 때가 많아서 조금 힘들었다. 중계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너무 피곤했다(웃음). 그래도 재밌었다. 임신하고 출산까지 약 1년 가까이 스케줄 없이 살았는데, 생각하지도 못한 부분에서 스케줄을 소화하니까 힘들기도 하면서 뿌듯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오픈 공격 배구선수
한 경기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공격 유형이다. 좌우 공격수를 이용하는 기술이다. A속공이 타이밍과 상대 허를 찌르는 순간에 사용된다면, 오픈 공격은 배구에서 가장 기본적인 공격 기술로, 한방이 공격수가 타점을 살려 공격할 수 있도록 여유롭게 줘야 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공이 잘못 올라 오거나, 호흡이 어긋났을 땐 ‘리바운드’ 플레이로 다시 한번 기회를 노릴 수 있는 공격 중 하나라고도 볼 수 있다.

백목화에게 ‘선수 백목화’는 오픈 공격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선수’로서 보냈고, 코트를 잠시 떠나 있더라도 다시 돌아갈 수 있었던 기회가 차츰 찾아왔기 때문.

2007-2008시즌 2라운드 2순위로 현대건설에 입단했다. 2008-2009시즌 보상선수로 KT&G로 이적, 8시즌을 뛰었다. 이후 두 번째 FA에서 팀을 구하지 못하면서 잠시 프로를 떠났다.

두 번째 기회가 왔다. 2018-2019시즌을 앞두고 IBK기업은행의 적극적인 러브콜에 또 한 번 코트를 밟게 됐다. 마지막으로 배구에 대한 열정을 불태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백목화는 “믿고 불러주셨으니까,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최선을 다하는 거였으니까. 그 부분에 빠져서 했던 거 같다”라면서 “내가 아프지 않는 스타일인데, 다시 배구를 할 때 아프지 않았던 곳이 아프더라. 그런 부분에서 적응하기 어려웠지만, 후에는 괜찮아졌다”라고 이야기했다.

백목화는 그렇게 두 시즌을 치렀고, 다시 정든 코트를 떠났다. 당시 그는 SNS를 통해 “그대로 은퇴했더라면 아쉬운 부분들이 많았다는 걸 다시 복귀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을 거다. 복귀 후 많은 응원을 보내주신 팬분들께 죄송함과 감사한 마음이 교차한다. 많은 응원을 등지고 코트를 걸어 나와 죄송한 마음이 크지만, 그들의 응원에 힘입어 포기하지 않고 볼 하나에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잊지 못할 것 같다”라며 소감을 전했다.

그렇게 ‘선수 백목화’가 막을 내리는 듯했지만, 최근 대구시청에서 연락을 받았다. 같이 배구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백목화는 “KGC인삼공사 시절 때 친했던 친구가 있다. 그 친구도 대구시청에서 배구를 하다가 쌍둥이를 낳고 5년 정도 쉬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배구를 다시 시작했다고 하더라. 대구시청 감독님께서 친구한테 ‘목화는 뭐 하고 있나’라고 하셨다더라. 친구가 ‘같이 해볼래?’라며 연락이 왔다. 친구랑 같이하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에 결정하게 됐다”라고 전했다.

프로와 실업을 포함하면 세 번째 도전이다. 백목화는 “해설 제의를 받기 전에 이야기가 됐었다. 그전까지는 무료한 삶을 살았다. 그런 삶에 다시 배구를 하게 된다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일 때보다는 지금의 내 마음가짐, 마인드가 바뀌었다”라고 이야기했다.



B퀵? C퀵? 어떤 세트를 만들어갈까?
백목화는 2020년 8월 17일 백년가약을 맺었다. 그리고 2021년 1월 7일 ‘하예’라는 이름을 가진 딸아이가 태어났다. 공교롭게도 인터뷰를 진행했던 2022년 1월 7일, 하예의 첫 돌이었다. 아내 그리고 엄마로서의 삶은 어땠을까.

백목화는 “애기를 키운다는 게 어려우면서도, 그보다 기쁜 일이 더 많은 느낌이었다”라며 운을 뗐다. “사실 내 시간이 없어진 건 맞다.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자유분방한 스타일인 나에게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줬다고 할까?”라며 웃었다.

아이를 가진 엄마가 세상 밖으로 나가면 ‘~엄마, ~맘’이라고 불린다. 백목화는 “누군가의 엄마로 불리는 게 익숙하지 않다. 문화센터에 가면 ‘하예 맘’이라고 불리는데, ‘목화씨’라고 부르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아직 어색하더라”라면서 “그래도 애기가 웃기만 해도 좋다. 웃을 때 가장 이쁘다. 하예는 신랑을 많이 닮았다. 신랑이 나보다 낯가림이 심한데, 하예가 그렇다. 집에 누가 오거나 밖에 나가면 얼어있는 게 눈에 보인다(웃음). 그러다 사람들이 가면 갑자기 활기가 넘친다”라고 말하는 백목화의 눈에는 꿀이 떨어졌다.

프로선수, 바리스타, 프로선수, 부모, 해설위원 그리고 다시 배구선수. 백목화만큼 인생에 굴곡이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그런 그에게 인생의 모토는 뭘까. 백목화는 “사실 나는 도전을 했다기보다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어떤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는 하고 싶은 걸 하는 성격이다. 두려워하지 않는 게 나라는 생각이 든다. ‘즐거우면 됐지’라는 생각이 크고, 하지 않았을 때 후회하는 것보다는 해서 후회하는 쪽으로 방향을 트는 편이다”라고 답했다.

후배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일단 팀에 있을 때는 배구가 전부라는 생각으로 해야 하는 게 맞다고 본다. 후배들은 계속 올라오기 마련이다. 기량이 늘어가는 건 정말 위대한 거다. 상대는 나를 분석할 텐데, 작년 실력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노력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살아남으려면 배구에 집중해서 미쳐야지 성장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배구를 그만두게 되더라도 낙담하지 말고, 주변의 도움을 조금은 받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결정을 할 때는 감정만을 앞세우기보다는 앞뒤를 신중하게 생각해보고 결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목화가 전하는 메시지
과거의 목화야 “사실 ‘많이 놀아라’라고 하고 싶은데…(웃음). 뭐든 즐겨라. 배구할 때도 즐기고, 쉴 때는 쉬는 걸 즐기면서 하자!”

현재의 목화야 “두려워하지 말고 해라. 생각이 많아지는 건 당연한 거야. 애기를 낳고, 잘해야 하는 것도 있고, 다치지 말고 아프지 않은 게 중요해. 넘어져도 괜찮으니까 두려워 말자.”

미래의 목화야 “현재의 두려움이 기대되는 부분이 있다. 나이에 맞게 잘 늙어가고 성장해보자.”

글. 강예진 기자
사진. 유용우 기자, 본인 제공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2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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