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딸이 될게요!” 중국에서 온 소녀 허다연, 최고의 별이 되다 [CBS배]
- 아마배구 / 인제/김희수 / 2023-08-31 06:00:18
부모님과 함께 중국에서 건너온 초등학생 허다연은 무럭무럭 자라 인제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 됐다. 감개무량한 순간이었다.
대부분의 고교 배구 팀은 3학년이 전력의 중추를 맡는다. 1-2학년들보다 경험도 풍부하고, 신체조건도 더 좋은 선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강릉여자고등학교의 2023년은 과도기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12명의 선수 명단에 3학년은 김민채(175cm, MB) 한 명뿐이고, 나머지 선수들은 모두 1-2학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릉여고의 2023년은 화려했다. 지난 7월 열린 제56회 대통령배 전국중고배구대회(이하 대통령배)에서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30일 인제 원통체육관에서 열린 제34회 CBS배 전국 중·고 배구대회 여고부 결승에서도 목포여자상업고등학교를 세트스코어 3-1(30-28, 23-25, 25-23, 25-20)로 꺾고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이번 CBS배 우승의 중심에는 단연 허다연(1학년, 179cm, MB)이 있었다. 묵직한 공격력을 앞세워 중앙과 날개를 오가며 팀을 이끌었다. 1학년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담력과 책임감도 돋보였다. 허다연은 빼어난 활약을 인정받아 여고부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시상식이 끝난 뒤 <더스파이크>와 만난 허다연은 “대통령배에 이어 우승을 또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너무 기쁘고 좋다. 우승이라는 결과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다 언니들과 선생님 덕분이다. 다들 고맙다”는 우승 소감을 먼저 전했다. 특히 고마운 동료가 있냐는 질문에는 용다정(170cm, S, 2학년)을 꼽으며 “(용)다정 언니가 계속 나를 믿고 많은 패스를 올려줬다. 너무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이날 허다연과 강릉여고의 블로커들은 목포여상의 아웃사이드 히터 사마(170cm, 2학년)가 공격을 할 때 대부분 블록을 뜨지 않았다. 이유를 묻자 허다연은 “감독님의 지시였다. 사마 언니가 때리는 공은 블록을 뜨면 맞고 밖으로 튀는 게 많으니까, 블록을 뜨는 대신 뒤에서 수비 위치를 잡아서 건져 올리자는 전략을 짰다. 네트에 공이 바짝 붙을 때만 블록을 뜨고, 그게 아니면 뜨지 않았다”고 사마를 견제하기 위해 짜온 전략을 소개했다.
허다연은 조금 민망할 수 있는 이야기도 솔직하게 꺼냈다. 그는 “솔직히 1세트를 이기고 2세트 초반에 점수 차를 크게 벌렸을 때, 우리가 이겼다고 생각했다”고 멋쩍은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그러나 강릉여고는 2세트에 7점의 리드를 모두 잃으며 역전패를 당했다. 허다연은 “2세트 역전패를 당하면서 좀 흔들렸지만, 3세트를 잘 풀어가면서 다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2세트 역전패 이후를 돌아봤다.
1-2학년 위주의 선수 구성은 분명 약점이 될 수도 있었지만, 허다연과 강릉여고의 구성원들은 그게 약점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허다연은 “(김)민채 언니가 혼자 3학년이라서 많이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가 언니를 많이 도와주려고 노력했고, 또 우리가 해야 할 것을 열심히 하려고 했다. 감독님도 우리를 많이 도와주셨다”고 이번 시즌 내내 해온 노력을 소개했다.
경기 내에서 중앙과 날개를 자유롭게 오간 허다연은 “현재 공식적인 포지션은 미들블로커지만, 연습 때는 아웃사이드 히터 역할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롤 모델이 있냐는 질문에도 허다연은 아웃사이드 히터인 강소휘(GS칼텍스)를 꼽았다. 그는 “받는 것도 때리는 것도 다 잘 하는 선수라서 멋있다”고 강소휘를 꼽은 이유를 설명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허다연에게 응원해준 가족들을 향한 인사를 부탁했다. 그러자 허다연은 “제가 사실 중국인이다”라는 말로 입을 뗐다. 인터뷰 내내 외국인이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 한국어 실력을 보여줬기에 조금 놀라운 이야기였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중국에서 부모님과 함께 한국으로 왔다. 지금은 한국으로의 귀화를 준비 중”라고 밝혔다.
이후 허다연은 “강릉여고에서 두 번의 우승을 차지할 동안 부모님이 정말 많이 도와주셨다. 앞으로도 좋은 성적을 내서 더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다”고 부모님에게 진심 어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여기에 덧붙여 “귀화가 되고 나면 한국 국가대표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이후 인터뷰를 잘 마친 허다연은 사진 촬영을 부탁하자 긴장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며 다소 굳은 표정을 짓기도 했다. 코트 위에서와는 딴판인, 순수한 17살 학생의 모습이었다.
13살의 나이에 낯선 땅 한국에 들어선 중국인 소녀 허다연은 4년 뒤 강릉여고 배구부의 현재이자 미래가 됐다. 그리고 이제는 한국인 허다연으로서의 새로운 배구와 삶을 준비하고 있다. 허다연이 이번 대회를 통해 인제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 됐듯, 그의 앞으로의 삶과 배구 커리어도 반짝반짝 빛이 나길 기원해본다.
사진_인제/김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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