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더 이상 들러리가 아니다, 무섭게 성장하는 동남아시아 배구

매거진 / 류한준 / 2017-09-19 00: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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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배구연맹(FIVB)은 2000년대 들어 배구 국제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4대 구기 종목 가운데 가장 국제화에 성공한 종목은 축구다. 축구의 뒤를 이어 미국프로농구(NBA)와 메이저리그(MLB)가 자국시장 규모와 경쟁력을 바탕으로 국제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배구는 상대적으로 시장 규모가 크지 않다. 리그 활성화 측면을 따져봐도 축구 농구 야구 등에 밀리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FIVB는 유럽, 북중미, 남미, 동아시아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 배구 보급 및 기량 향상을 위한 투자와 지원을 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가 대표적이다. 여자배구 태국의 경우는 이미 성공 모델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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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철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한국남자배구대표팀이 올 시즌 국제대회 일정에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김호철호’는 지난 시즌 V-리그가 끝난 뒤 소집됐다. 4월에 처음 닻을 올린 뒤 FIVB 주최 월드리그 2그룹 대륙간 라운드를 시작으로 아시아배구연맹(AVC) 주최 제19회 아시아남자배구선수권대회 그리고 FIVB 주최 2018 세계남자배구선수권대회 아시아지역예선을 연달아 치렀다.



‘김호철호’는 출발이 좋았다. 월드리그 대륙간라운드에서 5승 4패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지난 1995년 6강 진출 후 대륙간 라운드에서 거둔 가장 좋은 성적이다.



그러나 ‘김호철호’는 김 감독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아지역예선에서 빈 손에 그쳤다. 8월 6일부터 이란에서 열린 예선전에서 한국은 1승 3패를 거뒀다. 첫 상대 카타르에게 두 세트를 연달아 따낸 뒤 내리 세 세트를 내줘 역전패를 당한 것이 뼈아프다. 한국은 아시아 최강 이란에 이어 중국에게도 덜미를 잡혔다.



예선전 마지막 상대 카자흐스탄을 맞아 아시아선수권 4강전 패배를 설욕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긴 했지만 당초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세계선수권 본선 티켓을 손에 넣지 못했다.



아시아선수권 이변의 주인공 인도네시아



한국은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복병’ 카자흐스탄에게 덜미를 잡혔다. 세계선수권 지역 예선전 카타르전처럼 아시아선수권 결승 길목에서 카자흐스탄 반격에 고개를 숙였다. 8강 플레이오프에서 3-1로 한 차례 이긴 상대였고 준결승에서도 1, 2세트를 먼저 따내 낙승이 예상됐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한국을 울린 카자흐스탄은 7회 대회인 지난 1993년 이후 24년 만에 다시 한 번 결승에 올라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올해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이변의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개최국 인도네시아다. 아시아 배구는 오랜 기간 한국 중국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3개국이 주도했다. 2000년대 초반 이란을 중심으로 중동지역이 한 · 중 · 일 3개국이 쌓아놓은 아성을 위협했고 2010년 이후 높이와 스피드를 겸비한 이란이 명실상부한 아시아남자배구 최강자 자리를 꿰찼다.



AVC 소속 국가들 중 호주가 이란에 유일한 대항마로 꼽힐 정도가 됐다. 그런데 지금까지 아시아배구에서 ‘변방’ 취급을 받던 동남아지역 국가들도 힘을 내고 있다.



이번 대회는 동아시아와 중동을 제외하고 동남아 지역에서 열린 5번째 아시아선수권이다. 앞서 태국이 두 차례(1993, 2005년) 필리핀에서 한 차례(2009년) 대회를 개최했다. 인도네시아는 지난 2005년 자카르타 이후 12년 만에 다시 한 번 대회를 유치했다. 안방에서 아시아선수권 참가 사상 가장 좋은 4위를 차지했다.



인도네시아는 한국과 만난 3~4위전에서 세트 스코어 0-3으로 완패했다. 그러나 1세트 초반 한국은 인도네시아에게 끌려갔다. 한국 수비와 리시브가 흔들리는 틈을 치고 나가 3~4점 차 리드를 잡았다.



전열을 정비한 한국이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고 경기 흐름을 가져왔다. 그러나 1세트 초반에 보인 인도네시아의 경기력은 눈에 띄었다. 더 이상 한 중 일 3국과 중동세에 밀리는 들러리 신세가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증명했다. 안방에서 열린 대회라 홈팀 어드밴티지를 얻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인도네시아는 선전했다. 1진이 나서지 않았지만 이란을 8강에서 꺾은 것은 우연이 아닌 그만큼 실력이 늘어나고 있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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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배구, 동남아 파워 이미 시작



여자배구는 남자배구와 견줘 한 중 일 3개국이 주도하는 흐름이 여전하다. 종교적인 이유로 중동 지역에서 여성 스포츠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상황이다. 구 소련에 속해있다가 연방 해체 과정에서 독립을 해 AVC에 속한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은 아직 한 중 일 3국을 뛰어넘기에는 역부족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태국을 중심으로 동남아여자배구는 만만치 않은 실력을 갖췄다. 특히 태국이 그렇다. 태국은 일본배구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일본배구협회(JVA)는 1990년대 후반부터 태국 여자배구 육성에 투자를 했다.



태국배구협회도 보조를 맞췄다. 열매를 맺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태국여자배구는 지난 2001년 안방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3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청소년대표팀부터 성인대표팀까지 체계적으로 손발을 꾸준히 맞춘 태국여자배구는 일을 냈다. 2009년 베트남에서 열린 제15회 대회에서 아시아선수권대회 첫 우승을 차지했다. 2013년 자국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다시 한 번 정상에 올랐다. 태국은 두 차례 결승에서 각각 중국과 일본을 꺾었다.



아시아에서 중국과 일본만을 라이벌로 꼽고 있는 한국여자배구는 적어도 지난 18회 대회까지는 아시아선수권 우승과 인연이 없다. 2015년 대회까지 준우승 6회와 3위 9회를 기록하고 있다. 우승 기록만 놓고 본다면 태국은 이미 한국을 제쳤다.



태국여자배구도 ‘황금세대’가 있었다. 청소년대표시절부터 10년 넘게 손발을 맞춘 현 대표팀 정예멤버다. 세월을 붙잡을 수 없기에 전성기에서 내려올 시기가 왔다. 그러나 태국은 여전히 전력을 유지하고 있다. 포스트 황금세대에 대한 대비를 미리 세워두고 있다. 이런 부분은 한국여자배구도 충분히 참고해야 한다.



태국 외에 베트남도 한 중 일 3국을 위협할 수 있는 후보로 꼽힌다. 올해 대회 개최국 필리핀도 잠재력을 충분히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태국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지역 국가는 동아시아 3국과 비교해 선수들 대부분 키가 작다는 핸디캡을 갖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런 부분은 바뀌고 있다.



필리핀의 경우 1996년생으로 신장 196cn 미들블로커 알리샤 산티아고가 대표적인 장신 유망주로 꼽힌다. 필리핀 FIVB 세계랭킹 순위는 8월 7일 기준으로 79위에 머물러 있지만 산티아고를 중심으로 국제대회 경험을 쌓는다면 FIVB 랭킹을 좀 더 많이 끌어올릴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



V-리그도 주목해야 할 동남아시아배구리그



한국배구연맹(KOVO)은 지난 6월 태국 방콕에서 한국-태국 여자배구 올스타 슈퍼매치를 치렀다. V-리그 주관 방송사인 KBS N 스포츠와 KOVO측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져 치른 이벤트성 대회다. 태국여자배구대표팀 일정과 맞아 떨어져 성사됐지만 KOVO가 최근 공을 들이고 있는 외연 확장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 중심에는 동남아권에서도 인기가 많은 김연경(상하이)이 있긴 하지만 V-리그라는 콘텐츠를 널리 알리기 위한 시도라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외연 확장과 새로운 콘텐츠 소비 시장으로서 동남아배구를 접하는 것과 동시에 해당 리그에 대한 관심도 둬야 한다.



태국뿐 아니라 국제배구계에서 최근 외연 확장을 하고 있는 동남아리그로는 인도네시아가 첫 손가락에 꼽힌다. 지난 2002년 프로리가(proliga)라는 명칭으로 출범한 인도네시아리그는 조금씩 내실을 다지고 있다. 외국인선수 제도도 도입했다. 다가올 2017~2018시즌 한국도로공사 유니폼을 입고 V-리그 코트를 뛸 이바나 네소비치(세르비아)도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에 앞서 인도네시아리그에서 뛰었다.



해외 에이전트 사이에서는 인도네시아리그는 리그가 제대로 정착된 한국 일본과 견줘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멀지만 가장 활기가 넘치는 아시아리그 중 하나로 꼽힌다.



남자부 6팀과 여자부 5팀 등 모두 11팀이 프로리가 소속으로 있다. 팀마다 차이는 있지만 외국인선수는 1~2명을 보유하고 있다. 이바나에 앞서 2015~2016시즌 여자부 트라이아웃 1순위였던 헤일리 스펠만(미국)도 인도네시아리그에서 뛰었다. 인도네시아리그는 한국선수에게도 관심이 있다.



연봉 수준은 선수 기대만큼 높은 편은 아니지만 남자부 기준으로 국가대표 경력이 있을 경우 6천만~7천만 원 정도는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V-리그에서 뛸 수 있는 선수 숫자는 한정돼있다. 이런 이유로 KOVO 또는 대한배구협회가 인도네시아리그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는 있다.



선수 생활을 타의나 주변 상황에 따라 조기에 마감할 수 밖에 없는 선수들에게 ‘제2의 취업 기회’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리핀의 경우 ‘국기’로 꼽히는 농구와 견줘 배구는 아직은 자국내 관심도에서 밀려있다. 그러나 지난 2004년 샤키스 V리그를 시작해 지국 리그 토대를 마련했다.



출범 초기 대학팀들까지 참가했지만 2011년부터 대학팀들이 리그에서 제외됐고 ‘프리미어 발리볼 리그’(PVL)로 간판을 바꿔 달고 명실상부한 1부리그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PVL은 남자와 여자부 각각 8개 팀씩 모두 16개 팀으로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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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화선수 영입 대신, 장신화 이룬 동남아배구



‘김호철호’가 이번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아지역예선에서 통한의 패배를 당한 카타르는 귀화선수가 주축이 됐다. 브라질을 포함해 보스니아·마케도니아·몬테네그로 등 구 유고 연방 소속 국가 선수들을 대거 영입했다.



중동지역답게 ‘오일 달러’를 앞세운 물량 공세 영향이 크다, 또한 상대적으로 이중국적을 얻기 쉬운 행정적인 편의성도 귀화선수가 늘어난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카타르가 귀화선수 만들기에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 중 하나는 장신화에 있다.



동남아시아에 속한 태국은 카타르와는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장신화라는 목표는 같지만 방법은 다르다. 태국남자배구대표팀은 여자대표팀과 견줘 아직까지는 전력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키사다 닐사와이, 칸타펏 쿤미 두 선수는 대표팀에서 ‘높이’를 책임질 주역으로 꼽힌다. 닐사와이와 쿤미는 각각 1992, 1998년생으로 현재보다 미래가 더 기대되는 유망주다. 두 선수 모두 신장이 204cm다.



2m 대 선수가 대표팀 로스터에 단 한 명도 없는 한국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또한 태국에는 FIVB 등록선수 중 최장신 선수도 있다. 우티차이 수크사라가 그 주인공으로 지난해 해외 여러 매체를 통해서도 소개가 돼 화제를 모았다. 그는 신장 222cm로 올해로 19세가 됐다. 태국의 장신화 움직임을 가볍게 볼 수는 없다.



글/ 류한준 조이뉴스24 기자
사진/ FIVB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9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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