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세대교체, 일본배구에 배운다

매거진 / 이광준 / 2017-08-17 10: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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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철 감독과 홍성진 감독이 이끄는 남녀대표팀에게 모두 해당하는 한 가지 과제가 있다. 바로 세대교체다. 남자의 경우 한때 ‘미래’로 꼽히던 문성민(현대캐피탈)이 이제는 대표팀 최선참급에 속한다. 수비와 리시브를 든든하게 책임졌던 리베로 여오현(현대캐피탈)은 이미 대표팀을 은퇴한 지 꽤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부용찬(삼성화재) 오재성(한국전력) 등이 ‘포스트 여오현’ 자리를 이어가고 있다.



여자는 주장 자리를 물려받은 ‘주포’ 김연경(상하이)이 건재하지만 세터 자리가 문제다. 이운임(한국배구연맹 경기 감독관) 이도희(현대건설 감독) 뒤를 이어 오랜 기간 한국여자배구 주축 세터로 활약한 이숙자(KBS N 스포츠 배구 해설위원) 김사니(SBS 스포츠 배구 해설위원)는 코트를 떠났다. V-리그 코트에는 여전히 이효희(한국도로공사)가 뛰고 있지만 그도 지난 2016 리우올림픽을 마지막으로 후배에게 대표팀 주전 세터 자리를 넘겼다.




한국보다 급했던 일본, 연착륙에 성공



한국 일본 중국 3개국은 아시아 지역에서 배구 강국으로 군림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한쪽 축이 무너졌다. 일본과 중국이 앞으로 치고 나가고 있는데 한국만 제자리를 지키거나 되려 뒷걸음질하고 있는 모양새다.



인정해야 할 부분이다. 애국심 또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봐야 한다. 한국 일본 중국 3개국 배구는 언제나처럼 세대교체라는 화두를 만났다. 가장 먼저 이 부분에 신경을 쓴 곳은 중국이다. 중국 여자배구는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6 리우올림픽 금메달로 이미 그 사실은 증명됐다. 중국 남자대표팀은 한국 일본과 견줘 장신화에는 이미 성공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아시아 남자배구 최강자로 자리하고 있는 이란과 호적수가 될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있다.



일본은 어쩌면 한국 중국과 비교해 세대교체라는 화두에 더 신경을 썼다. 여자배구는 지난 2012 런던올림픽 이후 그 다음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일본여자배구 아이콘이었던 기무라 사오리 이후를 대비했다는 의미다.



일본 남자배구는 좀 더 급했다. 여자부와 견줘 자국 내에서 인기나 인지도가 낮았던 것도 한 원인이 됐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일본뿐 아니라 국제배구계에서도 나름 인지도가 높았던 나카가이치 뒤를 잇는 대형 스타가 부재했다. 이탈리아리그 등 해외리그로 진출했던 고츠가 있긴 했지만 기량뿐 아니라 대중과 팬이 열광하고 응원을 보낼 수 있는 힘은 모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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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코어’ 일본남녀배구, 국제대회 호성적 밑바탕



일본남자배구는 이번 월드리그에서 한국과 같은 2그룹에 속했다. FIVB가 정한 월드리그 규정대로라면 일본은 올해 3그룹에 참가해야 했다. 그러나 운이 따랐다.



쿠바는 지난해 FIVB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월드리그 핀란드 원정 길에서 일어난 쿠바대표팀 소속 선수들의 불미스러운 일 때문이다. 최대 수혜자는 공교롭게도 일본이 됐다. 3그룹 강등이 유력하던 일본은 쿠바가 페널티를 받자 그 자리를 대신해 2그룹 잔류에 성공했다.



물론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FIVB가 주요 스폰서 중 하나인 일본을 외면할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2그룹에 남은 일본남자배구는 한국보다 높은 순위에 올랐다. 성적은 5승 4패로 같았지만 승점에서 앞서 4위를 차지해 결선 라운드까지 올라갔다.



일본여자배구는 올해 월드그랑프리 1그룹에서 선전했다. 6승 3패 승점 13으로 당당히 6위에 올랐다. 미국 브라질 네덜란드 이탈리아와 승패는 같았다. 승점 때문에 순위가 내려갔다. 풀세트 접전을 유독 많이 치렀던 것도 순위가 아래로 밀린 원인 중 하나다(일본은 이번 대회에서 거둔 6승 중 다섯 차례가 3-2 승리였다).



그러나 일본은 리우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중국을 제쳤다. 중국은 5승 4패 승점 13으로 일본 바로 뒤인 7위에 자리했다. 일본은 손발이 잘 맞아 떨어지고 대표팀 선수들 대부분이 전성기 기량에 근접하기 시작한 중국과 비교해 이제 막 시니어대표팀을 출범시킨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 그랑프리 대회만큼은 일본이 중국을 제친 것이다.




체계적인 시스템과 장기 플랜



일본배구협회(JVA)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프로젝트 코어’라는 항목을 볼 수 있다. 바로 남녀배구 유망주 훈련 시스템에 대한 항목이다.
일본은 한국과 견줘 배구 저변이 넓다. 비단 배구 종목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지만 선수와 팀 숫자 모두 비교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많다. 인프라가 이렇게 앞서 있는데다 시스템 또한 잘 잡혀있다.



한국여자배구대표팀에서 지난해까지 전력 분석 업무를 담당했던 이현정 SBS스포츠 배구 전력분석관은 ‘프로젝트 코어’에 대해 “올해 일본 남녀 시니어대표팀에서 절반 이상이 프로젝트 코어를 통해 훈련 받은 선수”라고 말했다.



예비 엔트리 풀을 적극 활용하는데 한국과는 약간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다. 이 분석관은 “우리나라는 예비 엔트리라고 하더라도 전원이 함께 훈련하는 경우가 드물다”라며 “일본은 각급 대표팀(유스, 주니어, 시니어 모두 해당)이 무조건 한 달 이전 소집이 기본이고 예비 엔트리 선수가 전원 한 자리에 와 함께 훈련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세대교체에 따른 엇박자나 역효과를 최대한 줄일 수 있다. 각급 대표팀 주축 멤버가 바뀌거나 빠지더라도 최대한 연착륙 할 수 있는 원동력이 여기에서 나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여자배구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세터 외 다른 포지션에서도 세대교체가 시급하다. 월드그랑프리 2그룹에서 선전이 이런 부분에서 폄하되거나 저평가돼선 안되겠지만 김해란(흥국생명) 이후 리베로 자리도 그렇고 김수지(IBK기업은행) 양효진(현대건설) 뒤를 이을 마땅한 미들블로커 자원이 부족한 것도 한국여자배구가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세대교체 과제 중 하나다. ‘김연경과 황금세대’라는 화려한 수식어에 가려진 민낯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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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자배구가 국제대회에서 어느 정도 성적을 내고 세계랭킹에서 ‘톱10’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씁쓸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선수층이 (일본과 비교해) 두껍지 않다 보니 소집 기간이 짧거나 가용할 수 있는 예비 엔트리 숫자가 부족하더라도 손발이 잘 맞는다고 볼 수 있다. 올해 월드그랑프리에 참가한 ‘홍성진호’는 다른 참가국과 견줘 선수 2명이 모자란 12명으로 대회를 치렀다. 부상 등을 이유로 빠진 선수를 대신할 자원을 보강하지 못했다. 예비 엔트리를 두고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일본남녀배구가 세대교체 등 여러 가지 문제를 두고도 연착륙이 가능한 또 한 가지 원인으로는 장기 플랜이 꼽힌다. 일본은 일찌감치 자국에서 열리는 2020 도쿄올림픽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반면 한국은 늘 올림픽이나 아시아경기대회 등 큰 국제대회가 끝난 뒤 했던 얘기만 반복하는 모양새다. 대표팀 운영과 지원에 대한 얘기가 늘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남녀배구 역시 2020 도쿄올림픽을 바라보고 있다. 여자대표팀은 지난 2012 런던 4강과 2016 리우 8강 이상을 목표로 두고 있다. 남자의 경우 2000년 시드니 대회 이후 20년 만의 올림픽 본선 진출이 목표다. 올해(2017년)도 이미 반이 훌쩍 지났다. 올림픽이 열리는 해는 어차피 실전 모드로 들어가야 할 때다. 남은 기간은 2018년과 2019년 두 해뿐이다.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빠를 수 있고 급할 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다. 일본남녀배구가 갖고 있는 장점을 파악하고 현실적으로 배우고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은 가져와야 한다. 2020 도쿄올림픽만이 전부가 아니다.


글/ 류한준 조이뉴스 24 기자


사진/ FIVB


(이 기사는 더스파이크 8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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