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살이에요”vs“10개 중에 하나 잘했다” 승리 뒤에 오간 사랑의 말
- 남자프로배구 / 인천/박혜성 / 2023-03-06 00:00:43
대한항공의 좋은 분위기는 경기 이후에도 지속됐다.
대한항공은 2022-2023시즌 시작 이후 압도적인 경기력을 펼치며 줄곧 선두 자리를 지켜왔다. 계속해서 연승을 달리며 좋은 흐름을 이어오던 대한항공이기에 3년 연속 통합 우승과 함께 트레블 달성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2023년 들어 대한항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주전 선수들의 연이은 부상과 컨디션 난조로 4연패에 빠지기도 했다. 연패에 빠져있는 동안 2위 현대캐피탈은 승점을 차곡차곡 쌓아 올렸고 턱밑까지 따라붙었다.
실제로 지난달 21일에는 현대캐피탈이 우리카드를 꺾고 승점 3점을 획득하며 1위 자리를 내주기도 했다. 곧바로 다음날 OK금융그룹을 상대로 승리하며 하루 만에 되찾아 오기는 했지만 더 이상 안심할 수 없다고 느낀 대한항공이다.
대한항공은 선두를 지켜내기 위해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갔다. 종아리 부상을 입은 곽승석 대신 아웃사이드 히터 한자리를 맡고 있는 정한용이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고 링컨 윌리엄스(등록명 링컨)도 부진을 씻어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현대캐피탈 역시 6연승을 달리며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그리고 양 팀은 5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2-2023 V-리그 6라운드에서 맞붙었다. 대한항공은 이번 경기에서 승점 3점 헌납 시 선두 자리를 내줄 수 있는 부담 있는 경기였다.
하지만 대한항공에는 한선수와 정지석이 버티고 있었다. 한선수는 현대캐피탈 블로커들을 완벽하게 속이는 토스로 공격수들을 편하게 만들어주며 팀을 진두지휘했다. 정지석 역시 블로킹 2점, 서브 3점 포함 14점을 올리는 맹활약을 펼쳤다. 두 선수의 활약에 힘입어 대한항공은 세트스코어 3-0(25-17, 25-20, 25-22)으로 승리하며 선두 자리를 지켜냈다.
경기 종료 후 인터뷰실에 들어온 두 선수는 기쁜 마음으로 승리 소감을 전했다. 한선수는 “좋은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어서 좋다. 아직 리그가 끝난 게 아니니까 좋은 분위기를 오래 가져갈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뒤이어 정지석은 “모든 선수가 이번 경기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6라운드 정도 되면 상대 분석보다는 정신력으로 버텨야 하는데 우리가 더 간절하지 않았나 싶다”라고 이야기했다.
패하면 선두 자리를 빼앗길 수 있는 중요한 경기에서 상대가 5라운드 자신들에게 패배를 안겼던 현대캐피탈이면 그 부담감은 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주장 한선수는 “현대캐피탈이 아니고 다른 팀과의 경기였어도 똑같이 했을 거다. 현대캐피탈이라 인식을 안 하는 게 중요하다. 현대캐피탈과의 경기뿐만 아니라 모든 경기가 중요하다고 선수들과 얘기했다”라고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에게 전한 말을 알렸다.
정지석에게 이번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팀이 연패하는 동안 형들이 힘들어하는 게 보였다. 옆에 있는 선수 형도 39살이다”라며 갑작스럽게 한선수의 나이를 언급해 인터뷰실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말을 이어간 정지석은 “힘든 시간 동안 나도 기복이 있었다. 그때 ‘나는 왜 코트에 있을까, 형들이 잘할 때 묻혀가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해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각성했던 것 같다”라고 답변을 내놨다.
공격에서 맹활약한 정지석은 2세트 막판 한선수의 자리를 대신하는 모습도 보였다. 24-20에서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은 블로킹 강화를 위해 한선수 대신 임동혁을 투입했다. 그렇게 랠리는 진행됐고 정성민이 수비한 공이 높게 뜨자 정지석이 달려와 임동혁에게 백토스를 해줬다. 임동혁은 정지석의 토스를 받아 득점으로 연결하며 2세트를 마무리 지었다.
정지석은 당시를 떠올리며 “평소에도 훈련한다. 공격, 수비뿐만 아니라 토스까지 하나라도 못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자 한선수는 “10개 중에 하나 잘한 거다”라며 앞선 나이 언급에 대한 복수를 했다.
이번 경기 승리로 대한항공은 2위 현대캐피탈과 승점 차를 5점으로 벌리는 데 성공했지만 방심은 없었다. 한선수는 “많은 분이 9부 능선을 넘었다고 하시는데 아직 반도 안 됐다고 생각한다. 반을 채워야 나머지 반을 채울 수 있는 기회가 온다. 끝까지 집중하고 노력해야 한다”라고 전하며 자리를 떠났다.
사진_인천/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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