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각 팀의 봄 농사 결과와 점점 한계가 드러나는 트라이아웃의 미래
- 여자프로배구 / 김종건 / 2023-05-15 07:51:53
2023-2024시즌 농사의 성패를 좌우할 봄 파종을 마쳤다.
봄에 바쁘게 움직인 농부는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기대한다. 4월 6일 흥국생명-도로공사의 챔피언결정전 5차전을 끝으로 2022-2023시즌을 종료한 V-리그는 자유계약(FA)선수 영입과 처음으로 실시한 아시아쿼터 선수 선택,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으로 분주한 4~5월을 보냈다.
다가올 시즌의 기본 구상은 끝났다. 이제 남은 전력 강화는 트레이드와 신인 선수 지명 뿐이다. 신인이 프로 입단 첫해부터 팀의 주전으로 성공한 사례가 많지 않아 기대치는 높지 않다. 그나마 여자부는 최근 몇 년 사이에 가장 눈에 띄는 즉시 전력감 신인이 등장했다. 이들이 어느 정도의 그릇인지는 팀에 와서 적응해봐야 안다. V-리그의 역사가 쌓여가면서 프로 팀과 아마추어 팀과의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고교생과 대학생이 국가대표에 선발되는 사례가 점점 줄어드는 현실이 이를 잘 반영한다.
남자부는 몇몇 팀에서 트레이드 얘기들이 계속 나돌고 있다. 상황은 유동적이다. 16명의 FA 대상자 가운데 나경복을 제외하고는 선수의 이적이 없었다. 외국인 선수도 6개 구단에서 이미 V-리그를 경험한 선수를 다시 뽑았다. 오직 우리카드만이 새 얼굴(마테이 콕,199cm)을 선택했다. 아시아 쿼터 선수들의 활약이 큰 변수지만 대부분 팀이 지난 시즌과 달라진 점이 거의 없다. 팬들에게 뭔가 색다른 기대감을 주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대형 트레이드 등의 변화가 없다면 다가올 시즌 남자부는 이전과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이미 어디서인가 본 듯한 기시감은 남자부가 가장 두려워해야 한다.
여자부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20명의 FA 선수 가운데 5명이 이적했다. 외국인 선수도 4명의 새 얼굴이 등장한다. 당분간은 이들이 새 팀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대감을 높여줄 것이다. 팬들도 이들이 코트에서 실력을 보여줄 때까지 많은 상상을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여자부는 남자부와 비교해 출발부터 유리하다. 남자부와 여자부의 인기 격차는 2배 차이가 나는 지난 시즌 시청률에서도 이미 확인됐다. 갈수록 이 격차는 커질 수도 있다.
13일 끝난 여자부 트라이아웃에서 눈에 띄는 선택을 한 팀은 많았다.
아시아쿼터에 이어 외국인 선수 선발마저도 1순위 행운을 잡은 IBK기업은행은 예상 밖의 선수를 지명했다. 김호철 감독의 최종 선택은 왼손 아포짓 브리트니 아베크롬비(191cm)였다. 지난 시즌 베스트7 아웃사이드 히터 산타나를 포기하면서까지 왼쪽 중심의 불균형한 배구에 근본적인 변화를 주겠다고 결심한 베테랑 감독은 세터와의 호흡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봤다.
IBK기업은행이 아시아쿼터로 선택한 폰푼 게드파르드는 분명 매력적인 선수다. 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패스의 속도와 힘은 현재 V-리그 어느 세터보다 뛰어나다. 주전 경쟁자 김하경도 왼쪽으로 쏴주는 패스만큼은 빠르다. 그가 지난해 국가대표팀에 차출됐을 때였다. 김하경의 낮고 빠른 패스에 대표팀 공격수들이 제대로 때리지 못하자 세자르 감독은 더 높고 느리게 패스하라고 요구할 정도였다. 폰푼은 루마니아 리그에서 기대만큼 성공하지 못했다. 그의 빠른 패스를 발이 느린 팀의 공격수들이 따라가지 못해 애를 먹었다.
김호철 감독은 IBK기업은행에서도 이런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를 해결할 외국인 선수를 원했다. 대한항공이 한선수와 링컨의 조합으로 큰 성과를 거둔 것도 참조했을 것이다. “공격 폭이 넓고 왼손잡이로 가지고 있는 강점이 많다. 이 부분을 높게 봤다. 우리 팀에 잘 맞을 것이다”는 발언에서 선택의 이유가 잘 드러난다. IBK기업은행과 김호철 감독은 용병에게 높게 올려주고 알아서 해결해달라고 하는 뻥 배구 대신 스피드를 선택했다.
KGC인삼공사는 유일하게 아웃사이드 히터를 뽑았다. 아시아쿼터에서 공격력만큼은 가장 눈에 띄었던 아포짓 메가왓티 퍼티위(185cm)를 선발한 덕분이었다. 영상으로만 보고 선택했던 고희진 감독은 실제로 그가 어느 정도의 힘과 높이를 가졌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튀르키예로 떠나기 전에 SEA(동남아시아)게임이 벌어지는 캄보디아 프놈펜을 찾았다. 인도내시아 대표팀의 경기를 보며 고희진 감독은 메가왓티의 포지션을 확정했다.
몇몇 극성팬은 FA 영입시장에서 KGC인삼공사가 두 손을 놓고만 있었다고 욕했지만, 아니었다. 이소영의 공백을 어떤 식으로건 메우기 위해 열심히 움직였다. FA 보상선수 지명 때 어느 구단과 물밑에서 대형 트레이드를 추진했다. 아웃사이드 히터를 보강하기 위해 깜짝 놀랄 선수와의 교환을 결심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상대 구단이 마지막에 포기했다. 결국 서로에게 도움이 될 트레이드는 무산됐다. 이런 속사정 뒤에 지오바나 밀라나(186cm)를 선택했다. 고희진 감독은 “리시브 능력이 뛰어나고 모든 게 만족스러워 선발 1순위로 생각했다”고 밝혔다. KGC인삼공사의 다가올 시즌 키워드는 리시브라는 것이 새삼 확인됐다. 지난 시즌 득점 1위 엘라자벳을 잃었지만, 공격 루트의 다양화로 새로운 길을 찾으려는 그 선택의 결과가 궁금하다.
FA 보상선수 이고은으로 신인 지명 1순위와 또 다른 보상선수를 데려오는 기적을 만들었던 도로공사 김종민 감독에게는 계속 행운이 따르고 있다. 최하위 순번을 잡고도 팀에 가장 필요한 아포짓 반야 부키리치(198cm)를 선발했다. 높이와 공격력 보강이 급했던 도로공사로서는 안성맞춤이었다. 튀르키예로 출발하기 전 몇몇 감독들은 “GS칼텍스의 차상현 감독이 가장 좋아할 스타일”이라고 부키리치를 언급했다. 젊고 힘 있는 선수를 좋아하는 차 감독의 평소 취향을 모두가 알기에 그의 GS칼텍스 행은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차상현 감독은 6번째 순번에서 24세의 부키리치를 두고 31세의 지젤 실바(191cm)를 선택했다. 그는 아시아쿼터 때는 6순위로 170cm의 아웃사이드 히터 메디 요쿠를 지명했다. 차상현 감독의 키워드는 변화와 서브로 해석됐다. “모마가 못 한 게 아니라 내게 변화가 필요해 다른 선수를 뽑았다. 실바는 해외 경험이 풍부하고, 서브와 2단 공격 능력이 좋다”고 말했다. 두 시즌 동안 신장 184cm의 모마와 함께 많은 것을 이뤘지만, 높이의 한계를 절감했기에 차상현 감독도 새로운 배구의 시도하려고 한다. 그 출발점이 쿠바 출신의 실바다. 그동안 예상을 깨는 용감한 선택을 자주 해왔던 차 감독의 판단 결과도 궁금하다.
이처럼 여자부는 다양한 새 얼굴이 등장하면서 많은 얘기 거리가 생겼다. 외국인 선수의 연봉을 지난 시즌 20만 달러에서 5만 달러 인상한 효과는 분명 있었다. 재계약 선수는 이전과 같은 30만 달러다. 모두 세금 포함이다. 몇몇 선수들이 소속 팀의 경기 일정 사정으로 트라이아웃에 참가하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그런대로 각 팀이 만족할 수준의 선수는 공급됐다. 반면 남자부는 심각하다. 2016-2017시즌부터 시작된 남자부 트라이아웃에서 이렇게 많은 팀에서 V리그 경험자와 재계약을 결정한 것은 처음이다.
중간에 교체된 선수까지 포함해서 V리그 경험자의 숫자는 2017~2018시즌 4명, 2018~2019시즌 5명, 2019~2020시즌 4명, 2020-2021시즌 6명, 2021-2022시즌 7명, 2022-2023시즌 8명 등으로 점점 늘어났다. 2015-2016시즌부터 시작한 여자부는 2016-2017시즌 1명, 2017-2018시즌 3명, 2018-2019시즌 3명, 2019-20202시즌 4명, 2020-2021시즌 3명, 2021-2022시즌 2명, 2022-2023시즌 6명으로 증가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남자부의 경우 “이미 선수 수급의 한계가 드러난 트라이아웃 대신 자유 계약으로 전환하자”고 몇몇 구단은 주장하고 있다. 해외 배구 시장에 정보가 밝은 박기원 태국 대표팀 감독은 지금의 상황을 이렇게 분석했다. “선수들에게 주는 돈은 충분하다. 겉으로 드러난 문제는 혹사지만 이것도 큰 이유는 아니다. 다른 나라 팀들도 우리만큼 훈련을 많이 한다. 더 중요한 것은 너무 잦은 교체다. 외국인 선수들은 시즌 도중에 잘리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V-리그는 참을성이 없다. 걸핏하면 선수를 교체한다. 그런 대우를 받을 바에는 차라리 적은 돈을 받더라도 안정적으로 뛰는 리그를 선택하겠다는 선수들이 많다. 이런 면을 고려하지 않으면 점점 더 트라이아웃에 지원하는 좋은 선수는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과연 트라이아웃은 지속될 수 있을까. 구단들이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눠야 할 때다.
사진 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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