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적인 운명의 장난’ 전광인은 비명을 질렀고, 서재덕은 고개를 떨궜다
- 남자프로배구 / 천안/김희수 / 2023-03-10 06:00:49
늘 파이팅 넘치고 밝았던 전광인의 입에서 포효가 아닌 비명이 새어나오자, 경기장은 일순간에 차갑게 식었다. ‘절친’ 서재덕의 표정은 죄책감과 안타까움으로 가득했다. 그야말로 비극적인 운명의 장난이었다.
서재덕과 전광인은 배구계를 대표하는 ‘소울메이트’다. 성균관대 2년 선후배 사이인 두 선수는 서재덕이 2011년, 전광인이 2013년에 나란히 KEPCO45(현 한국전력)에 합류하게 되면서 프로에서도 한솥밥을 먹게 됐다. 두 선수는 함께 맹활약을 펼치며 만년 하위권이었던 팀을 경쟁력 있는 팀으로 바꿔갔고, 그들의 우정도 점점 두터워졌다. 2016-2017 V-리그 올스타전에서는 각각 ‘부럽냐 서재덕(전광인)’, ‘안 부럽다 전광인(서재덕)’이라고 적힌 유니폼을 입기도 했을 정도다.
2018년 전광인이 현대캐피탈로 둥지를 옮겼음에도 각자의 인터뷰에서는 늘 서로가 언급될 정도로 서재덕과 전광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한국전력과 현대캐피탈이 맞붙을 때면 두 선수는 늘 경기 전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수다를 떨거나 장난을 주고받는다.
9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펼쳐진 현대캐피탈과 한국전력의 도드람 2022-2023 V-리그 남자부 6라운드 경기를 앞두고도 마찬가지였다. 경기를 앞두고 두 선수는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눴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되자 두 선수는 치열하게 맞섰다. 각각 1위와 3위 탈환을 위해 총력전에 나선 현대캐피탈과 한국전력의 맞대결이었던 만큼, 코트 위의 열기는 무척 뜨거웠다.
흥미진진한 1세트가 진행되던 도중, 불의의 사고가 발생했다. 19-17로 한국전력이 앞선 상황, 서재덕이 라이트 퀵오픈을 구사했고 전광인은 블로킹을 시도했다. 전광인의 손을 맞고 떨어진 공이 아슬아슬하게 조근호에 의해 디그되며 랠리가 이어지나 싶던 순간, 남영수 주심이 급히 손을 들며 리플레이를 선언했다.
이유는 전광인의 부상이었다. 공격 이후 착지 과정에서 중앙선을 살짝 넘어온 서재덕의 오른발을 블로킹 이후 착지하던 전광인이 오른발로 밟으며 발목이 꺾인 것. 전광인은 비명을 지르며 코트에 쓰러졌고, 남영수 주심은 빠르게 의료진을 호출했다.
천안의 팬들은 전광인의 이름을 연호하며 전광인이 일어나길 기다렸지만, 전광인은 계속해서 고통을 호소하며 일어나지 못했고 결국 들것이 코트로 들어왔다. 이를 지켜보는 서재덕의 표정은 죄책감과 안타까움으로 가득했고, 전광인이 계속 고통에 신음하자 서재덕은 머리를 감싸 쥐며 고개를 떨궜다.
잠시 후, 전광인은 들것에 의지하지 않고 동료들의 부축을 받아 일어섰고, 애써 의연한 표정을 지으며 코트를 빠져나갔다. 마지막 순간까지 김명관을 불러 해야 할 말을 전달하는 전광인의 모습에서는 주장의 책임감과 승부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전광인의 자리에 홍동선이 투입되며 경기는 속개됐고, 전광인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코트 위로 돌아오지 못했다. 경기는 한국전력의 3-0(25-21, 25-20, 25-22) 승리로 끝났다. 이날 서재덕은 좋은 활약을 펼쳤다. 68.75%의 공격 성공률로 14점을 올렸고 서브 득점은 3개를 기록했다.
경기 후 양 팀의 감독도 전광인의 부상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최태웅 감독은 “현재로서는 다른 것들보다는 전광인에 대한 걱정이 가장 앞선다. 아직 상태를 보고받지 못했다. 병원에서 MRI 촬영이 진행 중이다”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승장 권영민 감독 역시 “(전)광인이가 부상을 당해서 마음이 쓰인다. (서)재덕이와 광인이가 정말 친한데, 재덕이도 많이 힘들어 하고 있다. 광인이가 빨리 쾌유해서 경기에 임할 수 있길 바란다”는 진심어린 바람을 전했다.
한편 현대캐피탈 구단 관계자는 전광인의 부상 상태 확인에 대해 “시간이 늦었기 때문에, 오늘(9일) 상태 확인에 필요한 모든 검사를 마무리할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다. 검사 마무리와 결과 확인은 내일(10일) 오후는 돼야 가능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제 현대캐피탈에게는 정규시즌 우승이나 연패 탈출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전광인의 쾌유만이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이자 바람이다. 비단 현대캐피탈뿐만 아니라 본 기자를 포함한 모든 배구인들과 팬들의 바람일 것이다. ‘캡틴’ 전광인이 다시 코트로 돌아와서 환하게 웃는 모습을 기다려본다.
사진_천안/박상혁 기자
[ⓒ 더스파이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