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순간을 합작한 황승빈X허수봉, 또 한 번의 마지막 순간을 바라보며 [CH2]
- 남자프로배구 / 천안/김희수 / 2025-04-03 23:48:40
반드시 끝내야 하는 순간, 황승빈과 허수봉의 눈이 맞았다.
배구계에서 유명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모든 걸 걸고 1점을 올려야만 하는 순간, 세터는 본능적으로 가장 믿는 사람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기의 최대 클러치 상황에서 세터가 누굴 선택하는지를 보면 그의 신뢰가 향하는 방향도 알 수 있게 된다.
현대캐피탈과 대한항공의 도드람 2024-2025 V-리그 남자부 챔피언결정전 2차전 경기가 끝나기 직전, 4세트 24-23 매치포인트에서 현대캐피탈은 경기를 끝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수많은 것이 걸린 순간, 황승빈은 허수봉을 선택했다. 레오나르도 레이바 마르티네스(등록명 레오)가 임성하에게 후위를 맡기고 밖으로 나가 있는 상황에서, 황승빈의 믿음이 향한 쪽은 허수봉 쪽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허수봉은 완벽하게 기대에 부응했다. 손끝을 보고 밀어치는 공격을 성공시키며 팀의 3-1(25-22, 29-31, 25-19, 25-23) 승리를 완성시켰다.
신뢰가 돋보이는 한 방으로 승리를 합작한 두 선수는 경기 종료 후 함께 인터뷰실에 들어왔다. 허수봉은 “천안에서 2승을 거둬 기쁘다. 하지만 오늘(3일)까지만 기뻐하고, 내일부터는 다시 준비 잘해서 3차전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도록 하겠다”는 소감을, 황승빈은 “1-2차전은 매 세트가 힘든 박빙 승부였다. 그럼에도 결과가 모두 승리였기 때문에 우리가 한 단계 더 성장한 것 같다. 3차전에는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드리겠다”는 소감을 차례로 전했다.
두 선수와 마지막 1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을 수 없었다. 먼저 황승빈은 “레오가 없었기 때문에 앞-뒤-속공 정도만 생각할 수 있었다. 상황 상 (허)수봉이를 줄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구질만 곱게 올려보자고 생각했다”고 상황을 설명했고, 허수봉은 “3세트부터 공격이 좀 막히면서 감각이 좀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4세트부터 (황)승빈이 형한테 계속 올려달라는 눈빛을 보냈는데, 형이 잘 올려줬다. 경기 내내 상대 수비 시스템이 나를 상대로 잘 맞아 들어간 것 같아서, 코트보다는 손가락을 보고 밀어 때리자고 생각을 바꿨는데 그게 통했다”고 공격 상황을 돌아봤다.
황승빈은 앞선 포스트시즌 미디어데이에서 챔피언십 포인트 상황이 온다면 허수봉을 선택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만큼 허수봉에 대한 신뢰가 있는 것. 황승빈은 “그때도 말했지만, 아마 감독님은 수봉이에게 가면 안 되는 상황에서 억지로 수봉이에게 가는 건 원치 않으실 것이다. 하지만 확률적으로 수봉이에게 가는 게 괜찮은 상황이라면 언제든 자신있게 줄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허수봉도 “형이 억지로 줘도 점수를 내보겠다(웃음). 힘든 상황에서 올라왔을 때 내가 점수를 못 내면 형이 많이 힘들 것 같다. 어떤 공이 올라오든 최선을 다해 좋은 공격 선택지를 골라보겠다”고 화답했다.
두 선수 각자의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었다. 먼저 전 소속팀 대한항공을 상대로, 또 국내 최고의 세터들인 유광우와 한선수를 상대로 연달아 승리를 챙긴 황승빈에게 소감을 물었다. 그러자 황승빈은 “챔피언결정전을 준비하면서 상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그런 것들은 최대한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다. 이번 경기에서도 별다른 감정은 없었다. 그래도 아직은 황승빈이 한선수, 유광우에게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선수로 거듭나고 싶다”고 덤덤한 목소리를 냈다.
그런가하면 허수봉은 이날 리시브에서 나름 견고하게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을 소개했다. 그는 “1차전 때 리시브 점유율이 거의 50%를 찍었다. 경기가 끝난 다음날 감독님 방에 불려가서 그날 받았던 모든 리시브를 다 복기하는 미팅 시간을 가졌다. 이번 경기에서는 리시브를 잘해보자는 생각으로 발을 많이 움직였다. 미팅의 효과가 나타난 듯하다”며 활짝 웃어보였다.
끝으로 두 선수는 이날 홈팬들의 야유를 오히려 독려하고 경기 종료 후에는 “야유를 들으러 돌아오겠다”고 밝힌 적장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에 대해서도 각자의 생각을 짧게 전했다. 황승빈은 “틸리카이넨 감독님은 항상 도발로 심리전에서 이득을 보려고 하는 스타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런 이야기는 크게 와 닿지 않는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고, 허수봉은 “다음 시즌에 들으러 오시라”고 유쾌하게 응수했다.
사진_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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