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차 이후로 처음이네요” 세 시즌만의 홀로서기 나선 오은렬, 위기를 기회로 만들다
- 남자프로배구 / 수원/김희수 / 2024-02-12 06:00:25
늘 짐을 나눠지던 동료의 부상으로 인해, 오은렬이 홀로서기에 나섰다. 그의 홀로서기는 성공적이었다.
대한항공은 리시브 전담 리베로와 수비 전담 리베로를 따로 두는 이른바 투 리베로 체제를 가동하는 팀 중 하나다. 리시브 상황에서는 오은렬이, 수비 상황에서는 정성민이 코트를 밟는다. 서브권이 바뀔 때마다 두 선수는 하이파이브를 하며 한 사람은 코트 안으로, 한 사람은 코트 밖으로 향한다.
그러나 11일 수원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전력과 대한항공의 도드람 2023-2024 V-리그 5라운드 경기에서 대한항공은 투 리베로 시스템을 가동할 수 없었다. 수비를 담당하는 정성민이 훈련 도중 발목에 통증을 느끼며 이날 엔트리에서 제외됐기 때문.
자칫하면 톱니바퀴가 어긋난 기계처럼 팀의 시스템이 무너질 우려가 있었지만, 오랜만에 수비 상황에도 방패로 나선 오은렬이 단단하게 후방을 지키면서 이런 우려를 불식시켰다. 이날 오은렬은 리시브 효율 56.25%를 기록했고, 디그 역시 9개를 시도해 7개를 성공시켰다. 그 중 세터의 머리 위로 정확하게 배달된 엑셀런트 디그는 4개였다.
경기 내내 코트를 지키며 팀의 세트스코어 3-0(25-16, 25-19, 25-17) 승리를 견인한 오은렬은 경기 종료 후 인터뷰실을 찾았다. 그는 “우리의 목표는 통합 우승이다. 1위 자리를 다시 찾아오기 위해 다들 엄청난 노력을 했다. 생각보다는 빠르게 1위로 복귀한 것 같아서 기쁘다”고 승리와 74일만의 1위 복귀 소감을 전했다.
가장 먼저 오은렬에게 수비 상황까지 혼자 맡게 된 상황에 대해 물었다. “수비 상황에도 나선 것은 2년차 때가 마지막이었다”고 밝힌 오은렬은 “그래서 어제(10일) 밤에 잠들기 전까지 긴장도 됐고, 설레기도 했다”며 경기 전날 밤의 감정을 전달했다. 그는 실제로 경기를 홀로 소화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는 “(정)성민이 형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했다. 스스로는 만족하는데, 팀에서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다”며 웃음을 지었다.
오은렬에게 투 리베로 체제에서 뛰는 것과, 혼자서 경기를 소화하는 것의 차이를 조금 더 자세히 물었다. “(투 리베로 체제로 인해) 코트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다 보면 몸이 좀 굳고, 리듬도 깨진다고 말하는 리베로들이 많다. 나도 그렇게 느꼈다. 오히려 이번처럼 리시브와 수비를 모두 하면 오히려 몸이 잘 풀리면서 리시브에서 더 자신감이 붙는 것 같기도 하다”며 혼자서 경기를 뛸 때의 장점을 소개했다.
이날 오은렬의 맞은편에서 뛴 상대 리베로는 시즌 내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료헤이 이가(등록명 료헤이)였다. 이날 오은렬이 수비 상황에도 코트에 나서게 되면서, 료헤이와 맞대결을 펼치는 시간도 평소보다 길었다. 오은렬은 “료헤이는 워낙 잘하는 선수다. 상황마다 료헤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많이 지켜보는 편이고, 그러면서 배우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경기를 치를 때는 료헤이를 의식하기 보다는 내 할 일을 잘 하는 데만 집중했다”고 료헤이를 상대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후 오은렬과 대한항공에서 리베로로 뛰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우리 팀에는 잘하는 아웃사이드 히터들이 있다. 그런 형들 덕분에 내가 커버해야 하는 리시브 범위가 좁아지는 것도 있고, 내 플레이를 더 잘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있다. 대한항공에서 그런 형들과 함께 배구를 할 수 있는 게 감사한 일”이라며 자신의 위치에 대한 만족감과 감사함을 표했다.
대한항공에는 아웃사이드 히터뿐만 아니라 리베로들을 도울 수 있는 또 하나의 소중한 존재들이 있다. 바로 국내외 최고의 리베로 출신 최부식 코치와 블레어 벤 코치다. 두 코치와 함께 하는 느낌을 묻는 질문에 오은렬은 “최 코치님은 처음 대한항공에 들어왔을 때부터 나를 가르쳐주신 분이라 나를 너무 잘 아신다. 그렇다보니 요즘은 굳이 많은 말씀을 하시기보다는 저를 믿으면서 이끌어주려고 하신다. 블레어는 항상 긍정적인 사람이다. 뭔가를 지적하고 싶을 때도 항상 칭찬을 먼저 하는 사람”이라고 두 코치의 스타일을 소개했다.
오은렬은 “연휴 기간에도 경기장을 찾아와서 응원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에게 정말 감사드린다”며 대한항공의 원정 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며 인터뷰실을 빠져나갔다. 3년여만의 홀로서기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팬들을 기쁘게 한 오은렬의 얼굴에는 수줍음과 뿌듯함이 묻어나오는 엷은 미소가 번져 있었다.
사진_수원/김희수 기자, 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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