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터의 고집과 신념 사이, 스베르톨리가 자초한 아찔한 순간
- 국제대회 / 김희수 / 2023-05-02 19:13:15
기선제압을 향해 순조롭게 나아가고 있던 트렌티노의 위기를 자초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세터 스베르톨리였다.
배구에서 세터는 팀을 지휘하는 ‘마에스트로’와 같은 포지션이다. 리시버의 첫 터치 이후 올라온 공을 어디로 보낼지, 어떤 높이로 올릴지는 온전히 세터의 판단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이 판단 과정에서는 주 공격수의 위치·상대 블로커들의 움직임·경기 당일 공격수의 컨디션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된다.
즉 세터에게는 막강한 권한과 막중한 책임이 동시에 부여된다. 자신의 생각대로 경기를 운영할 수 있는 대신,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회피할 수 없다. 특히 자신의 고집과 신념 사이 그 어딘가에 있는 생각대로 경기를 풀어가다가 좋지 않은 결과를 낳게 되면 그 판단은 두고두고 좋지 않은 쪽으로 회자되곤 한다.
현지 시간 1일 이탈리아 트렌토에서 펼쳐진 이타스 트렌티노(이하 트렌티노)와 쿠친 루베 치비타노바(이하 루베)의 2022 이탈리안 슈퍼리가 남자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도 이런 순간이 나왔다. 트렌티노의 세터 리카르도 스베르톨리는 세트스코어 1-0으로 앞선 2세트, 베테랑 아포짓 마테이 카지스키를 중심으로 무난하게 경기를 풀어가며 또 다시 승기를 잡아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18-16에서 스베르톨리의 의아한 경기 운영이 나왔다.
당시 트렌티노의 전위에는 아포짓 카지스키와 미들블로커 마르코 포드라스카닌이 포진해 있었다. 두 선수 모두 이날 컨디션이 좋았다. 후위에도 팀의 주포인 알레산드로 미켈레토가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스베르톨리는 정석적인 옵션들 대신 다니엘레 라비아의 파이프를 선택했고, 라비아의 파이프는 범실이 되며 트렌티노는 한 점 차로 쫓기게 됐다.
그러나 직후 상황에서도 스베르톨리는 또 한 번 라비아의 파이프를 선택했다. 이번에는 아예 호흡조차 맞지 않으며 라비아의 공격이 네트를 넘어가지도 못했다. 점수는 순식간에 18-18 동점이 됐다. 이후 기세를 탄 루베는 역전까지 성공하며 25-23으로 2세트 역전승을 따냈다.
다행히 경기는 트렌티노가 세트스코어 3-1로 승리하면서 2세트 중후반 스베르톨리의 경기 운영은 해프닝으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결과로 무마하기에는 너무 임팩트가 큰 장면이었다. 비록 경기에서는 패했지만 3세트까지 빠르고 정교한 경기 운영을 선보인 루베의 세터 루치아노 데 체코가 오히려 더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세터의 권한은 분명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챔피언결정전과 같은 큰 무대에서는 너무 돌아가는 선택보다는 정석적인 선택을 하는 쪽이 나은 경우도 많다. 5전 3선승제의 챔피언결정전은 이제 1차전이 끝났을 뿐이다. 과연 남은 경기들에서 스베르톨리는 어떤 경기 운영을 펼칠까. 확실한 것은 이날 2세트 18-16에서 보여준 선택은 우승을 위해 반드시 피드백이 필요한 부분이었다는 점이다.
사진_legavolley.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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