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눈에 알아본 부키리치&타나차의 '특별한 우정'
- 여자프로배구 / 이보미 / 2024-02-11 07:00:31
여자 프로배구 한국도로공사의 새 외국인 선수 반야 부키리치와 타나차 쑥솟이 나란히 한복을 입고 서울 나들이에 나섰다. 영어가 능통한 두 선수다. 언어가 통했고, 마음까지 통했다. 1999년생 부키리치와 2000년생 타나차는 2023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만나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외국인 선수로 타국 생활을 하면서 서로 의지하는 존재가 됐다. 힘들 때 서로 마음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위로해줄 수 있는 특별한 우정을 쌓고 있다.
가장 먼저 한국도로공사 유니폼을 입은 선수는 반야 부키리치(등록명 부키리치)다. 198cm의 아포짓 부키리치는 세르비아 출신으로 2014년부터 4시즌 동안 세르비아의 츠르베나 즈베즈다 소속으로 뛰었고, 이후 미국으로 향했다. 오하이오주립대를 거쳐 2022년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대학배구팀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도시공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까지 받은 선수다. 그만큼 학업에 대한 열정도 가득했다. 2022년 대학원을 다니면서도 28경기 97세트 출전했고, 한 경기 개인 최다 8블로킹을 기록하기도 했다.
부키리치는 세르비아 국가대표로서도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2016년 U19 유럽선수권 준우승 멤버였고, 2017년에도 U23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2021년에는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대표팀에 발탁하기도 했다. 두 살 더 많은 세계적인 아포짓 티야나 보스코비치와도 약 2년 동안 대표팀에서 함께 훈련을 하기도 했다. “보스코비치는 레전드 그 자체다”며 롤모델로 삼고 있다.
태국 출신의 타나차는 180cm 아포짓으로 2019년부터 태국 대표팀에서 활약했고, 직전 시즌에는 일본 V.리그 오카야마 씨글스 소속으로 뛰었다. 2년 동안 일본 리그 무대에 올라 값진 경험을 쌓았다.
타나차는 2023년 비시즌 내내 태국 대표팀에 발탁돼 백업 아포짓으로 여러 국제대회에 출전했고, IBK기업은행 폰푼 게드파르드와 현대건설 위파위 시통과 나란히 항저우아시안게임을 마친 뒤에야 V-리그 소속팀에 합류할 수 있었다.
부키리치와 타나차는 그 해 10월 12일 서울 청담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V-리그 여자부 미디어데이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그렇게 두 선수의 운명적인 인연이 시작됐다.
Q. 한복을 입어보니 어떠한가.
타나차: 한복을 처음 입어봤다. 너무 좋다. 기쁘기도 하고 신기하다.
부키리치: 한복을 입으니 현실에서 벗어나서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오늘은 마치 여왕 역할을 한 것 같다. 재밌다.
타나차: 한 번 정도 반야가 더 예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난 괜찮다.
Q. 궁 나들이는 못가게 됐는데 아쉽지는 않나.
부키리치: 궁에 가지 못해서 아쉽지만 눈이 마법처럼 와서 기분이 좋다.
Q. 한국을 방문한 가족들의 반응도 궁금한데.
타나차: 가족들은 한국에 처음 왔다. 엄마가 한국을 정말 좋아한다. 한국 드라마도 좋아하고, 한국에 엄청 오고 싶어 했다. 한국에도 오셨고, 서울에도 왔다. 엄마가 눈도 처음 보셨다. 그래서 기분이 무척 좋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일본에서 2년 있었는데 한 번도 눈을 보지 못했다. 서울 일정이 잡힌 뒤 날씨를 미리 봤는데 반반 확률이더라. 기차에 내리자마자 눈 오는 것을 봤는데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였다. 아빠는 기뻐서 춤도 추셨다(웃음).
부키리치: 일단 내가 한국에 와서 경험한 것들에 대해 가족한테 얘기를 해서 기대를 했다. 한국은 미래 지향적이고, 우리보다 앞서가는 나라다. 기대했던 것만큼 좋았다. 한국 문화나 빌딩 등도 신기했고, 사람들은 굉장히 예의가 바르고 친절했다.
Q. 타나차 언니가 한복을 입은 어머니에게 ‘대장금(대장금은 MBC에서 2003~2004년 방영한 사극 드라마다)’이라고도 말하던데.
타나차: 사실 언니가 대장금을 본 것은 아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매주 주말에 엄마가 드라마를 챙겨보셨다. 한국 음식도 직접 요리하실 정도로 애정이 깊다.
Q. 한국 음식은 잘 맞나.
부키리치: 김치찌개, 삼겹살, 돈까스 그리고 미디어데이 때 먹은 감자탕도 좋아한다. 한국 음식에 적응하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구단 식당에서도 즐겨먹는 음식들이 많다.
타나차: 구단 식당 음식은 항상 맛있다. 우리 이모가 음식을 잘하신다. 항상 잘 먹게 된다. 난 개인적으로 간장게장을 좋아한다. 태국에서도 파는 곳이 있는데 한국과 맛이 다르다고 하더라. 서울에도 왔으니 한국의 간장게장도 먹으려고 한다.
Q. 한국의 겨울은 어떠한가. 적응이 됐나.
타나차: 얼어 죽을 것 같지만 눈이 오는 것을 보면 또 기분이 좋다.
부키리치: 세르비아도 추운 나라다. 낮은 온도는 상관 없다. 다만 눈이 더 왔으면 좋겠다. 오늘보다도 더 왔으면 한다.
낯선 V-리그
부키리치와 타나차의 성장은 현재 진행형
Q. 한국도로공사는 어떤 팀인 것 같나.
타나차: 우린 각자 역할을 잘 하고 있다. 새로운 팀이라서 리빌딩하는 것도 있지만 항상 열심히 훈련을 한다. 결과가 좋지 않을 때도 있지만 늘 열심히 훈련을 하고 있다. 이 훈련을 통해서 팀으로서 하나가 되는 것 같다.
부키리치: 팀이 작년과는 다르다고 알고 있다. 작년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올해 잘하고 있다. 서로 잘 도와주려고 한다. 좋다.
Q. 김종민 감독은 어떤 지도자인 것 같나.
타나차: 멋있는 것 같다. 잘 생겼다(웃음). 감독님이 말이 없는 편이긴 한데 필요한 말만 해주신다. 내가 힘들어할 때는 먼저 오셔서 조언도 해주신다. 많은 정보를 주시기도 한다. 내가 부담되지 않도록 여유를 주시려고 하는 것 같다.
부키리치: 개인적으로 좋은 것 같다. 감독님이 크게 부담을 주지 않고 자유를 주시려고 한다. 덕분에 부담이 덜 된다.
Q. 한국에 오기 전 생각한 한국 배구 그리고 직접 느낀 한국 배구는 어떠한가.
타나차: 우리가 예상했던 그대로다.
부키리치: 한 경기에 공 100개를 때려야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라운드마다 다른 전략을 갖고 때려야 하기도 하고, 수비도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을 했다.
Q. 한국에서 배구 선수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과 좋은 점이 있다면.
타나차: 가장 좋은 것은 반야랑 같이 한국에서 뛰는 것이다. 우리는 아시아쿼터 그리고 트라이아웃에서 가장 어린 선수다. 어린 선수 두 명이 만나서 서로 의지를 많이 하고 있다. 힘든 점은 가족들과 떨어져 있는 것이다. 또 태국에서 왔기 때문에 추운 날씨가 다소 힘들다.
부키리치: 가장 좋은 점과 힘든 점이 같다. 정규리그 36경기를 뛰는 것이 좋으면서도 힘들다. 36경기를 하면 할수록 다르게 공격을 때려야 하고, 경험이 쌓이면서 성장을 할 수 있어서 좋다. 한편으로는 도전이 되는 것 같다.
Q. 부키리치는 아포짓으로 공격을 많이 시도하는 선수다. 어떻게 스스로 더 발전시키려고 하나.
부키리치: 한국 리그에서 뛰기 전에는 스트레이트, 크로스 등 어떻게 때릴지 플랜을 갖고 들어갔다. 한국에서는 상황에 따라서 상대 블로킹, 수비를 보면서 때린다. 이제는 잘 보이게 됐다. 블로킹도, 수비도 잘 보인다.
Q. 타나차는 한국 V-리그에서 뛰면서 소득이 있다면.
타나차: 아웃사이드 히터로 뛰는 것이 가장 큰 소득이면서 도전이었다. 내 기억에는 4~6년 정도 아웃사이드 히터로 뛰지 않았다. 때리는 자세도 다르고, 각을 내는 것도 다르다. 터치아웃, 하이볼 상황에 따라 다 다르다. 이 부분을 배우고 경험을 하고 있다. 내 배구 인생에 있어서도 아웃사이드 히터, 아포짓 두 포지션을 하는 것은 강점이 될 것이라고 본다. 처음 시도하는 것이 어렵지만 이를 뛰어넘는다면 내게 큰 장점이 될 것 같다.
타나차의 ‘올림픽 꿈’
세계 상위 1%를 꿈꾸는 부키리치
Q. 어떻게 배구 선수가 됐나.
타나차: 아빠를 따라다니면서 배구를 보고 시작했다. 7살 때부터 배구공을 만져봤다. 아빠는 이전에 배구 선수였다. 선수 은퇴를 한 뒤에는 심판이 됐고, 지금도 심판으로 일을 하고 계신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경기하는 날에 따라가서 경기를 관람했다. 그 때 배구를 처음 알게 됐고 관심을 갖게 됐다. 아빠도 ‘배구 해볼래?’라고 물었고, 그렇게 배구를 시작했다.
부키리치: 14살에 배구를 시작했다. 그 전에는 테니스를 했다. 테니스는 비용이 많이 드는 스포츠다. 내가 키도 컸고 해서 배구를 시작하게 됐다.
Q. 배구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타나차: 열정과 팀으로서 하는 스포츠다. 배구는 세 번의 터치로 상대팀 코트로 공을 넘긴다. 리시브, 토스, 공격하는 사람이 같이 잘해야 어려운 상황도 이겨낼 수 있다. 그것이 배구의 매력이다.
부키리치: 배구는 좀 더 지능적으로 해야 한다. 보인다고 때리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 때릴지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농구는 그냥 넣기만 하면 된다(웃음).
타나차: 축구나 농구는 생각할 시간이 좀 더 있다. 축구의 경우 발 앞에서 공이 오래 머물기 때문에 그 시간에 앞을 보면서 생각을 할 수 있다. 배구는 블로킹이 오기 전인 찰나의 순간에 바로 때려야 한다. 이러한 것이 어려우면서도 매력적이다.
부키리치: 배구는 고려할 것들이 많다. 패턴에 따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맞게 대처를 해야 한다.
타나차: 배구는 예술과도 같다. 단순히 키가 크고 빠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키가 작아도 점프가 좋으면 잘할 수도 있다. 단순하지 않은 스포츠다.
Q. 지금까지 배구를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 순간은.
타나차: 배구를 해서 가족들을 돌볼 수 있을 때 그리고 다른 국가에서 경험을 쌓을 때 잘했다고 생각을 한다.
부키리치: 난 배구를 정말 좋아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을 때,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있을 때 나 스스로 기분이 좋아진다.
Q. 반대로 배구를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언제인가.
타나차: 어려웠던 순간이 있었는데 배구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일상에서, 직장에서 힘든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이 오면 ‘그런가 보다. 하나 또 배웠구나’라고 생각하며 넘기는 편이다.
부키리치: 세르비아 프로팀에서 뛰다가 미국대학으로 갔는데 미국대학으로 가기 전에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 때 당시 재계약을 해야하는 시기였는데 나보다 경험이 더 많은 선배들이 들어오는 상황이라 내가 뛸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라 힘들었다. ‘배구를 그만 둘까’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도 배구를 좋아하니 더 해보자고 생각을 했고, 공부를 하면서 배구를 하기로 결정을 했다.
Q. 가족들이 만류하지는 않았나.
부키리치: 가족들은 공부하는 것을 더 지지해주긴 했다. 그래도 미국에서는 배구와 공부를 모두 할 수 있고, 졸업 후에는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말해주셨다.
타나차: 부모님이 만류하지는 않았다. 물론 힘든 시기도 있었고, 힘들 때는 나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스타일이다. 생각도 많이 한다. 이럴 때는 부모님이 ‘배구를 안 해도 되니깐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해주신다. (그래도 배구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최근에 내가 얼마나 배구를 사랑하는지 깨달았다. 사람들이 나를 볼 때 얼마나 열정이 크고, 코트 안에서 공이 떨어지지 않게 집중을 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배구 열정이 가득하다. 물론 잘 안될 때도 있지만 말이다.
Q. 배구 선수로서 최종 목표는.
타나차: 태국 여자배구대표팀에 들어가서 올림픽 본선 진출하는 것이 내 꿈이다. 쉽지 않겠지만 열심히 하면 될 것 같다.
부키리치: 완벽할 수는 없지만 늘 의지할 수 있고, 한결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 그리고 세계 상위 1%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 페네르바체, 바키프방크 등 좋은 팀에서 뛰고 싶다.
“네가 있어서 기쁘다”
“이 순간이 소중하다”
Q. 올 시즌 한국에서 처음 만났는데 서로 어떤 선수인 것 같나.
부키리치: 이번에는 내가 먼저 말하겠다. 한국에 두 달 정도 먼저 와서 타나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SNS를 통해 사진을 봤는데 처음에는 무섭게 생겼다고 생각을 했다. 막상 한국에 와서 보니 착하고 친절하고 웃기기도 해서 좋다. 서로 칭찬도 많이 하고, 격려도 하는 사이가 돼서 또 좋다.
타나차: 한국에 오기 전에는 ‘우리 팀이 이 외국인 선수를 뽑았구나’ 정도만 알고 왔다. 미디어데이에 처음 만났는데 10년지기 친구인 것처럼 많은 얘기를 했다. 반야는 활발하고, 난 조용한 성격이다. 좋은 조합인 것 같다. 둘 다 활발한 성격이었으면 난리 났을 것이다(웃음).
Q. 함께 하면서 재밌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부키리치: 매일 있다. 엄청 많다. 훈련을 할 때마다 그리고 매순간 재밌고 좋다. 훈련을 할 때도, 웜업을 할 때도 또 경기 끝나고 영상을 보면서 얘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재밌는 사람들인 것 같다(웃음).
타나차: 반야 엄마가 한국에 오시길 기다렸다. 반야가 했던 것들을 다 얘기해주려고 했다. 반야 엄마도 내가 했던 모든 얘기들을 공감하면서 들어주셨다. 예를 들어 ‘넌 이래’라고 말하면 반야가 ‘난 아니야’라고 했는데 가족들 앞에서는 그냥 ‘흐흐’ 웃고만 말더라.
부키리치: 서로 이 팀에 있는 것이 좋다. 이 순간도 소중하다. 서로에게 솔직하게 말하기 때문에 좋은 것 같다.
Q. 서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타나차: 어제도 비슷한 얘기를 했는데, 앞으로 서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자고 했고, 즐기면서 같이 배구를 하자는 얘기를 했다. 같은 팀에 있어서 정말 좋고, 반야가 팀에서 많은 역할을 해주고 있는데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잘할 것이다. 건강도 잘 챙겼으면 하고, 우리가 힘든 순간도 많이 있었는데 같이 얘기하면서 의지할 수 있는 사이라서 다행이다.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
부키리치: 타나차가 이 팀에 어떻게 왔고, 왜 왔는지 잊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내게 해줬던 얘기들을 너도 잊지 않았으면 하고, 앞으로 한국이든 다른 리그에서든 같이 뛰었으면 좋겠다. 그 때는 스트레스도 덜 받고, 부담도 조금은 내려놓고 즐기면서 함께 뛰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도 즐기면서 잘 관리를 하면 좋겠다.
글. 이보미 기자
사진. 박상혁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2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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