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컨트롤부터 뻔뻔함까지, 신영철 감독이 알려주는 좋은 세터가 갖춰야 할 자질

남자프로배구 / 김희수 / 2024-03-11 18: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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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에서 세터가 갖는 중요도가 엄청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V-리그의 감독들도 인터뷰에서 세터 이야기를 빼놓는 법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팬들이 좋은 세터를 알아보기는 어렵다. 플레이를 직관적으로 평가하기도, 기록을 참고하기도 여의치 않다. 과연 어떤 자질을 갖춘, 또 어떤 플레이를 하는 세터가 좋은 세터인지 궁금해 하는 팬들을 위해 <더스파이크>가 국내 최고의 세터 전문가 신영철 감독을 찾아갔다.

Q. 팬 여러분들에게 과연 좋은 세터란 어떤 걸 가졌고, 어떤 플레이를 하는 세터인지 소개하려고 합니다.
좋은 세터를 찾고 또 만드는 요령만큼은 우리나라에서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합니다(웃음). 어떤 질문이든 환영입니다.

Q. 가장 먼저 드래프트에서 세터를 뽑을 때 눈여겨보는 것들은 무엇인가요?
기술적으로 봤을 때는 일단 기본적인 볼 컨트롤 능력을 제일 많이 보죠. 그 다음은 수비 상황에서의 움직임과 서브 능력을 봐야 합니다. 또 이왕이면 키가 큰 선수가 좋고요. 이런 것들을 따져서 손익 계산을 해본 뒤 신인 세터를 뽑습니다.

Q. 볼 컨트롤이란 어떤 것인가요?
쉽게 표현하면 구질을 만드는 요령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세터가 쏜 패스가 공격수에게 날아갈 때 얼마나 부드럽고 때리기 좋은 회전을 보이는지를 보는 거죠. 이 구질에 따라서 공격수가 구사할 수 있는 공격의 가짓수가 달라집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있는 세터들 중에서는 볼 끝이 죽는 패스를 올리는 세터들이 매우 많은데, 이게 바로 구질의 문제예요. 구질을 만드는 능력은 생각보다 후천적으로 다듬기가 쉽지 않아요. 왜냐면 어릴 때부터 쌓이는 습관에 좌지우지되는 부분이거든요. 물론 노력에 따라 달라질 여지도 있습니다.

Q. 어느 정도의 볼 컨트롤 능력 말고도 기본적으로 꼭 갖춰야 할 요소들이 있나요?
기본적인 자세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손의 높이가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세터들에게 ‘너 패스 자세 취해봐’라고 하면, 손이 이마보다 조금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갑니다. 그런데 그 자세가 나오면 안돼요. 기본적으로 손은 정수리보다 위에 올라가 있어야 합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정수리 위까지 손이 올라가야 팔의 각도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패스 시작을 이마 앞에서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백패스를 쏘기 위해 허리를 과하게 꺾거나 팔을 뒤로 넘기면서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해야 돼요. 그런데 정수리 위에서 시작하면 빠르게 손목과 팔을 써서 각도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상대 블로커의 시야를 높은 쪽으로 고정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블로커들은 세터의 손과 공의 위치를 눈으로 쫓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세터가 높은 위치에서 손을 쓰면, 상대 블로커들이 전방의 우리 코트를 자유롭게 체크할 수 없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곧 장신 세터가 유리한 이유, 또 점프 패스를 습관화해야 하는 이유와도 연결됩니다.

Q. 그렇다면 상대를 속이는 손기술-상대 코트를 읽는 시야-우리 공격수의 입맛을 맞추는 능력 중에서는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한가요?
셋 다 중요하죠. 다만 속임수나 입맛에 맞는 패스를 올리는 능력은 세터로 뛸 자격이 있는 선수라면 누구나 갖출 수 있는 능력인 것 같습니다. 특히 속임수는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어요. 차라리 속공 패스를 빠르게 쏠 줄 아는 게 더 중요합니다. 그게 되면 기술로 속이는 것보다 속도로 따돌리는 것이 더 쉽다는 걸 깨닫게 되거든요. 이 부분 때문에 프로 레벨에서 속공 패스의 중요도는 가히 압도적입니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저 셋 중에 고르자면 코트를 읽는 시야, 즉 판단력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걸 갖춘 세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Q. 윙 패스와 속공 패스를 올릴 때 다르게 신경 써야 할 점이 있다면요?
생각보다 크게 다를 게 없습니다. 마지막 순간의 미세한 힘 조절 정도를 빼고는 속공 패스든 윙 패스든 오히려 큰 차이 없이 밀어주는 세터가 더 좋은 세터예요. 근데 자꾸 세터들이 윙 패스를 쏠 때 속공 패스보다 높이를 억지로 더 띄워주려고 하니까 문제가 되는 거죠. 하이 볼 상황만 빼고는 안테나 끝과 네트 상단 사이의 80cm 공간 안에서 모든 패스가 이뤄지게 하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그 공간 안에서 공격수의 특성과 상황의 차이에 맞게 볼을 컨트롤할 수 있는 세터가 바로 좋은 세터인거죠.

Q. 공격수의 특성과 상황의 차이에 맞는 조절이라 하시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우리 팀의 (이)승원이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승원이는 앞C보다 백C를 더 자신 있게 쏘는 편입니다. 하지만 로테이션상 오른쪽에서 공격을 때려야 할 선수가 (송)명근이나 (한)성정이처럼 왼쪽 공격을 더 선호하는 선수라면, 아무 때나 백C를 쏘면 안 됩니다. 그건 내가 자신 있는 것만 하겠다는 면피성 플레이죠. 공격수의 특성과 상황을 고려한다면 백C의 비중은 잇세이 오타케(등록명 잇세이)가 오른쪽으로 오는 로테이션일 때 늘리는 게 맞습니다.

Q. 외국인 선수의 점유율을 너무 높게 가져가는 세터와 패스 페인트를 지나치게 자주 쓰는 세터는 팬들의 지탄을 받곤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외국인 선수 관련해서 중요한 건 얼마나 많이 올리냐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올리냐 하는 거죠. 하이 볼 상황에서는 당연히 외국인 선수를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하지만 리시브가 깔끔하게 된 상황에서는 외인 쪽으로 블로커들을 모아놓은 뒤 역으로 가는 선택도 쉽게 해내야 좋은 세터입니다. 패스 페인트는 어쩌다 한 번, 그것도 끝까지 상대 블로커를 보고 난 뒤 어택 라인 안쪽에 빠르게 떨굴 수 있을 때만 쓰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쓰지 말라는 건 아닌데, 이걸 남발하는 건 좋지 않아요. 평범한 상황에서 패스보다 페인트를 먼저 생각한다면 이미 세터로서의 자질은 없는 선수라고 봅니다.

Q. 좋은 세터라면 어떤 멘탈을 갖춰야 할까요?
배짱과 뻔뻔함이 필요합니다. 실수했다고 고개를 숙이면 안 됩니다. 또 내가 생각하기에는 완벽한 패스를 올렸는데 공격수가 놓쳤다고 느껴질 때는 혼자 답답해하지 말고 거칠게 의견을 표출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이걸 못하는 세터들은 경기 도중에 내가 지금 흔들리고 있다는 걸 상대에게 그대로 노출하게 되고 이건 치명적인 약점이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세터로서의 강하고 거친 마인드셋을 가장 잘 갖춘 선수는 한선수와 황택의 같습니다. (한)태준이는 아직 어려서 이 부분이 아주 완벽하지는 않고요.

Q. 한태준 선수는 좋은 세터의 기준에 얼마나 부합하고 있나요?
태준이는 처음 팀에 왔을 때에 비해 속공 패스가 훨씬 좋아졌습니다. 처음에는 거의 속공을 못 쓰는 수준이라 블로커들을 따돌리기가 너무 어려웠는데, 지금은 정말 잘해주고 있습니다. 이제는 무릎을 꿇은 채로도 속공과 백C를 자유롭게 밀 수 있을 정도까지 훈련을 해야 합니다. 이게 된다면 태준이는 블로커들을 마음대로 쥐락펴락할 수 있을 겁니다.




글. 김희수 기자
사진. KOVO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3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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