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일본의 세계 최고 리그 출범 선언이 V리그에 미칠 영향은
- 국제대회 / 김종건 / 2023-05-29 08:09:12
일본 배구 리그 기구(이하 일본 V리그)가 최근 흥미로운 선언을 했다.
한국배구연맹(KOVO)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이 단체는 4월 26일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4-2025시즌부터 새로운 리그를 출범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의 일본 V리그보다 상위 단계의 새 리그를 탄생시키고 “최종 목표는 세계 최고의 리그”라는 원대한 계획이다. 단순한 구상만이 아니다. 2030년까지 많은 슈퍼 스타가 참가하는 리그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중간 단계로 가칭 S-V리그를 운영하겠다는 기본 운영 방안도 취재진에게 배포했다.
현재 전 세계의 많은 배구 리그 가운데 최고는 이탈리아나 튀르키예 리그다. 일본은 탄탄한 경제력과 풍부한 배구 인프라를 바탕으로 이들 리그를 뛰어넘으려고 한다. 새 리그 탄생을 위해 현재 리그를 운영하는 주체들과 개혁을 추진하고 새 리그 참가 여부를 선택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기존의 리그 조직을 정비하고 배구 사업을 확장하는 아이디어도 찾고 있다.
일본 배구계는 야구 농구 축구의 경우 다른 리그를 뛰어넘을 수 없겠지만 배구는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고 믿는다. 미카사, 몰텐, 아식스, 미즈노 등으로 상징되는 탄탄한 스포츠용품 산업과 발달한 방송 시스템, 많은 국제 경기를 치른 경험과 훌륭한 경기장 시설, 약 1억 명의 인구 등 리그의 성공을 보장할 기반은 충분하다. 소프트웨어만 추가한다면, 못할 것도 없다.
관건은 리그에서 뛰는 선수 구성이다.
아무리 세계 최고를 지향해도 리그에서 보여주는 플레이가 최고가 아니면 경쟁력은 떨어진다. MLB, NBA, EPL처럼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수준의 플레이를 보여줄 스타 선수들의 경기 장면이 전 세계에 중계된다면, 자연스럽게 리그의 경쟁력은 높아진다. 그래서 리그에는 반드시 슈퍼 스타가 필요하다. 일본은 새로운 구상에 발맞춰 외국인 선수 숫자도 늘리려고 한다. 다가올 시즌부터 팀 당 4명까지 외국인 선수를 뽑으려고 한다. 전 세계의 에이전트도 이 같은 일본의 움직임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도 외국인 선수 출전을 3명까지 늘렸다.
일본과 중국이 외국인 선수를 향해 문호를 넓힐수록 V-리그는 영향을 받는다. 전 세계 리그에서 활약하는 유명 선수의 숫자는 한정돼 있다. 이들이 한곳으로 몰리면 선수 부족 현상이 뒤따를 것이다. 선수와 에이전트는 계약 조건과 리그 환경이 좋은 곳을 찾아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 같은 아시아권 국가지만 한,중,일 리그는 각기 다른 특색이 있다. 중국은 많은 돈을 주지만 내,외부 환경 탓에 외국인 선수들이 꺼린다. 일본은 안정적인 리그 환경이 장점이다. 게다가 장기 계약이 많다. V-리그는 선수들에게 잘해주지만, 혹사의 위험이 크다. 또 선수를 자주 바꿔 계약의 안정성이 떨어진다. 지금 V-리그의 구단은 세계 최고의 리그보다도 돈을 더 쓰지만, 그 만큼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새 리그를 출범하면서 투자한 돈 이상의 사업 적인 성공과 인기를 끌어모아서 세계 최고로 인정을 받으려고 한다.
일본의 새로운 구상은 V-리그의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에도 많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튀르키예 트라이아웃 이후 각 구단의 단장들은 기존 제도의 지속 여부를 놓고 의견을 모으고 있다. “점점 더 팀에 필요한 선수를 찾기 힘들다”며 어떤 식으로든 방식을 바꾸자는 목소리가 커지는 추세다. 지금 어느 정도 이름이 있는 선수들은 V-리그 트라이아웃 참가를 꺼린다. 돈보다는 다른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이들은 경쟁을 거쳐 선택받는 것을 싫어한다. 자유계약 방식 이후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선수들은 V-리그에 발길을 끊었다. 반면 최근 트라이아웃에 참가하는 대다수는 10만 달러 이하 몸값이다. 상대적으로 유명하지 않은 선수들이다. 이들은 지명만 받으면 연봉이 3배 이상으로 뛰어오르기에 KOVO의 트라이아웃에 참가한다.
게다가 V-리그는 원하는 외국인 선수 스타일이 따로 있다. 기량보다는 파워와 타점을 더 높게 친다. 케이타의 성공 사례 때문인지 이번 튀르키예 트라이아웃 때는 아프리카 국적의 점프 좋고 공격 파워가 강한 어린 선수들이 많이 지원했다. 물론 이들은 다른 배구 기술이 떨어져 선택을 받지 못했다. 점점 더 V-리그는 참가 선수와 구단의 눈높이에서 차이가 난다. 이번에 남자부에서 무려 6명의 기존 선수가 계약을 맺은 것은 이런 현실을 잘 보여준다.
조만간 출범할 일본 S V리그는 10월부터 5월까지 열린다. 남녀 최대 16개 팀이 참가하고 승격과 강등제도는 고려하지 않는다. 동서지구로 나눠서 경기하고 팀당 리그 44경기가 목표다. 주말마다 경기하고 점차 주중 경기로 확대한다. 4~5월부터는 각 지구의 4강이 참가하는 8강 플레이오프를 시작으로 챔피언결정전이 벌어진다. 조금 더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리그 기본 구상은 6월에 확정될 것이다.
그동안은 프로페셔널과 실업 배구 사이에서 어중간한 스탠스를 취해왔지만 새로 출범하는 리그는 확실하게 노선을 정할 것이다. 당연히 토종 선수들과의 계약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더 많은 외국인 선수를 찾는 일본 배구계의 생각이다. 정책이 바뀌면 일본 선수가 뛸 공간은 줄어든다. 그래서 V-리그는 단 한 명의 외국인 선수만 뛸 수 있도록 보호 장벽을 높였다. 이런 와중에 리그의 경기력은 점점 떨어지고 토종 선수의 몸값이 터무니없이 높아지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몇몇 구단들은 이를 해소하고 전력 평준화를 위해 외국인 선수 보유와 출전 숫자를 늘리고 싶어 한다. 관건은 부정적인 여론이다. 팬들은 외국인 선수가 늘어나면 토종 선수가 피해를 본다며 보호 장벽을 더 높여주길 원한다.
일본은 반대다. 세계 최고의 리그가 되기 위해서는 외국인 선수와의 경쟁에서 이기는 토종 선수가 필요한데, 스스로 경쟁력을 키워오려고 한다. 일본 남자배구 최초로 이탈리아 리그에 진출한 이시카와 유키(밀라노)는 “내가 지금 팀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와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국제대회에서도 우리 대표팀이 이길 수 없다”는 인터뷰도 했다. 이들의 생각과 행동은 들판으로 내몰아 생존능력을 키워오게 만드는 아프리카의 사자를 연상시킨다.
일본의 새로운 리그도 구체적인 실현 계획 가운데 ‘일본인 선수가 활약하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선수 등록의 기용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무작정 자국 선수를 개방의 물결에 휩쓸리게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해마다 많은 선수가 리그에 등장하고 에이스급 선수들은 해외 리그에 쉼 없이 도전한다. 팀마다 내부 경쟁이 심하다 보니 선수의 회전 사이클이 우리보다 훨씬 짧다. 반면 우리 V-리그는 40대 선수가 여전히 활약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일본 도레이의 이시카와 마유가 이탈리아 리그 피렌체 진출을 발표했다.
그는 도쿄올림픽 한일전에서 5세트 14-12의 리드를 끝내지 못하며 역전패의 책임을 뒤집어썼다. 2022-2023시즌 도레이-NEC의 챔피언결정전에서도 5세트 14-12에서 8개의 공격이 모두 불발되며 우승을 NEC에게 넘겨줬다. 시상식 때 눈물을 쏟았던 그는 자신의 모자람을 알기에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해외 진출을 결정했다. 신장 174cm로 아웃사이드 히터로는 단신이다. 장신 선수들의 틈 바구니에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겠지만, 용감하게 도전했다.
아쉽게도 우리는 그런 도전 정신을 가진 선수를 눈 씻고도 찾을 수 없다. 풍요로움이 만든 아쉬운 현실이다. 지금 V-리그는 특정 팬덤이 사람들이 토종 선수들을 과도하게 보호한다. 구단은 선수가 아니라 연예 기획사의 아이들처럼 대접을 받는 선수들에게 기량 이상의 돈을 퍼준다. 배부른 사자는 절대로 사냥에 나서지 않는다. 이들에게 맹수의 본능을 되찾아주기 위해서 V-리그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사진 FIVB, 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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