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잡이 MB부터 33cm의 신장 차까지, 뼈저리게 깨달은 경험의 중요성 [현장 리뷰]
- 국제대회 / 마나마/김희수 / 2023-05-19 06:00:16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상황이 대한항공 선수들을 괴롭혔다.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이 왜 계속 경험을 강조했는지 알 수 있었다.
2023 아시아배구연맹(AVC) 남자 클럽 배구선수권에 참가하는 대한항공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의 목적은 명확했다. 선수들이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도록,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그는 대회 전 인터뷰에서 “젊은 선수들에게 많은 경험과 기회, 성장의 발판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라며 이번 대회의 키워드가 ‘경험’임을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한항공은 대회를 치르면서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느끼게 됐다. 다만 그 방식이 너무나 뼈아팠다. 대한항공은 18일(이하 현지 시간) 이사 스포츠 시티에서 열린 상위 라운드 E조 경기에서 산토리 선버즈(일본)에 세트스코어 0-3(21-25, 19-25, 19-25)으로 완패했다. 28개의 범실을 저지르며 하고 싶은 배구를 해보지도 못한 채 무너졌다. 틸리카이넨 감독 역시 실망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이 경기에서 대한항공은 생경한 경험을 여러 차례 해야 했다. 이날 선발로 나선 산토리의 미들블로커 사토 켄지가 때리는 속공에 대한항공의 블로커들은 대응책을 찾지 못했다. 사토가 왼손잡이 미들블로커였기 때문이다. V-리그에서는 만날 일이 거의 없는 왼손잡이의 속공은 대한항공 블로커들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경험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낀 순간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3세트 2-6 상황, 유광우의 경기 운영이 계속 흔들리자 틸리카이넨 감독은 세터를 정진혁으로 교체했다. 이 교체가 이뤄지기 전 이미 날개 공격수 조합도 정한용-이준으로 바뀐 상황, 대한항공의 코트 위에 30대 이상의 선수는 진지위(1993년생)가 유일했다.
여기에 V-리그에서는 단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압도적인 신장 차도 경험해봤다. 2세트부터 코트를 밟은 이준은 로테이션 상 드미트리 무셜스키(러시아)와 전위에서 맞물리는 상황이 많았다. 대회 프로필 상 이준의 신장은 185cm, 무셜스키의 신장은 218cm였다.
두 선수의 신장은 무려 33cm나 차이가 났다. 무셜스키가 전위에서 공격을 시도할 때 이준의 블로킹 타이밍은 분명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무셜스키는 이준의 블로킹보다 한참 높은 곳에서 공을 내리 꽂았다. 사실상 블로킹을 뜨는 것이 의미가 없는 수준이었다. 만약 이런 신장 차를 극복해야 하는 순간이 다음번에도 찾아온다면 이번 경험을 계기로 블로킹을 아예 포기하고 수비에 가담하는 등 다른 방법을 강구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대한항공은 앞으로 더 나은 배구를 하기 위해 한 번쯤 경험해봐야 할 것들을 이번 대회를 통해 많이 경험하고 있다. 다만 그 방식이 너무 쓰라린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아직 대회는 끝나지 않았다. 이는 곧 경험할 수 있는 것들 역시 아직 남아있다는 의미다. 다음 시즌을 잘 치르기 위해, 나아가 다음 클럽 배구선수권에서는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끝까지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알뜰살뜰하게 챙겨가야 하는 대한항공이다.
사진_한국배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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