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함이 승패를 가른다’ 두 번의 실점으로 살펴보는 페퍼저축은행의 오답 노트
- 여자프로배구 / 김희수 / 2024-02-06 06:00:02
단순한 3단 처리부터 리시브 범위 설정과 첫 스텝까지, 아주 사소해 보이는 부분에서 얼마든지 승패가 갈릴 수 있다. 페퍼저축은행이 연패 탈출을 위해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페퍼저축은행이 6일 광주 페퍼스타디움에서 GS칼텍스와 도드람 2023-2024 V-리그 여자부 5라운드 경기를 치른다. 이 경기는 페퍼저축은행으로서는 상당한 부담감을 안고 치르게 되는 경기다. 이 경기에서 패하면 20연패를 기록하게 되고, 이는 V-리그 여자부 최다 연패 타이 기록이기 때문이다(2012-2013시즌 KGC인삼공사와 동률).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페퍼저축은행은 문제점을 찾고 그것을 고쳐나가는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야 한다. 현재 성적이 워낙 좋지 않은 만큼 밖에서 볼 때도 눈에 띄는 커다란 문제점들이 물론 많겠지만,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넘어갈 수도 있는 자잘한 문제점들도 있다. 이것이 흔히 배구인들이 말하는 ‘보이지 않는 범실’이다.
이런 사소해 보이는 부분들부터 조금씩 개선해나간다면, 더 큰 문제들도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3일 광주 페퍼스타디움에서 열렸던 한국도로공사와의 5라운드 맞대결 2세트에 나온 두 번의 실점 과정을 분석해보면서 페퍼저축은행의 플레이 속 보이지 않는 범실들을 찾아봤다.
① 2세트 13-13 첫 번째 수비 상황 – 나에게는 쉬운 플레이도, 상대에게는 어렵게
2세트 13-13에서 타나차 쑥솟(등록명 타나차)의 공격을 이한비가 디그했다. 그런데 이 디그가 다소 짧게 떨어지면서 제대로 된 두 번째 터치는 이뤄질 수 없었고, 결국 이한비가 다시 볼을 상대 코트로 넘겨줘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됐다. 어차피 공격을 할 수 없으니 그냥 공을 넘겨주고 다음을 준비하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과정에서도 디테일한 플레이가 필요하다.
이한비가 3단 처리를 하기 직전 한국도로공사의 코트를 살펴보면, 후위에는 두 명의 선수가 있었다. 5번 자리에는 임명옥이, 1번과 6번 사이 자리에는 반야 부키리치(등록명 부키리치)가 있었다. 만약 수비 센스가 좋은 임명옥 쪽(사진 상 파란색 선)보다는 수비에 익숙하지 않고 발이 그리 빠르지 않은 부키리치 쪽(초록색 선)으로 3단 처리를 넘겼다면 작게는 부키리치의 공격 가담 방해, 크게는 부키리치의 실수로 인한 행운의 득점을 노려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한비의 3단 처리는 5번 자리의 임명옥을 향했다. 다소 아쉬운 판단이었다. 결국 임명옥은 안정적으로 첫 터치를 가져갔고 이는 수비 없이 공격을 바로 준비한 부키리치의 중앙 백어택으로 연결됐다. 다행히 곧바로 실점으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열어주지 않을 수도 있었던 공격 옵션을 열어준 셈이었다. 단순한 3단 처리 하나를 하더라도 상대를 최대한 어렵게 만들 수 있어야 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② 2세트 13-13 두 번째 수비 상황 – 주지 않아도 될 점수는 최대한 틀어막기
위의 상황에서 바로 이어진 상황이다. 부키리치의 중앙 백어택을 박정아가 디그했지만, 볼이 사이드라인 밖으로 튀었고 이한비가 몸을 던져 겨우 공을 살려냈다. 또 한 번의 3단 처리를 맡게 된 선수는 오지영이었다. 공격 옵션이 될 수 있는 이한비가 넘어져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오지영으로서는 최대한 코트 위를 정비할 시간을 벌 수 있는 안정적인 3단 처리를 해야 했다. 그러나 오지영의 3단 처리는 과정과 결과 모두 좋지 못했다. 우선 방향이 좋지 않았다. 앞선 이한비의 3단 처리 때와 마찬가지로 가장 첫 터치를 잘 가져가는 임명옥 쪽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네트와의 거리도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볼이 향했기 때문에 첫 터치의 정확도에 따라 자칫하면 2단 공격이나 패스 페인트를 허용할 수도 있었다. 심지어 이 볼이 사이드라인을 한참 벗어난 곳에 떨어지면서, 페퍼저축은행은 두 번의 수비 성공이 무의미해지는 허탈한 실점을 하고 말았다. 그야말로 주지 않아도 될 점수였다. 다만 오지영이 한 달만의 선발 복귀전을 치른 경기였다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 이런 부분은 실전 감각이 올라오면서 자연스럽게 나아질 수도 있는 부분이다.
③ 2세트 13-14 리시브 상황 – 약한 부분이 있다면, 약한 만큼만 보여주는 것이 최선
페퍼저축은행은 6일 경기 시작 전 기준으로 리그 리시브 최하위 팀이다(리시브 효율 27.15%). 박정아, 박은서 등 리시브에 약점이 있는 선수들이 존재하고 최근 오지영마저 한동안 경기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리시브에서의 불안함이 어쩔 수 없는 리스크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리시브 약점은 선수 개개인의 이유로 생기는 만큼만 드러나게 하는 것이 최선이다. 팀적인 시스템 정비나 사소한 움직임 때문에 이 약점이 더 크게 드러나는 것은 막는 편이 좋다.
13-14에서의 리시브 상황을 살펴본다. 한국도로공사의 서버는 배유나였고, 1세트에도 배유나에게 서브 득점을 내줬던 페퍼저축은행은 1번 자리의 야스민 베다르트(등록명 야스민)까지 리시브 라인에 가담시키는 4인 리시브를 가동했다. 앞선 몇 경기에서도 야스민이 리시브 라인에 가담한 적은 있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부분이다. 아포짓인 야스민은 리시브에 익숙하지 않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한 번 4인 리시브를 선택한 페퍼저축은행이었다.
이 선택을 한 이상 나아가야 할 방향성은 명확했다. 야스민은 정확히 본인의 앞으로 오는 최소한의 범위만 커버할 수 있도록 해줘야 했다. 그러나 왜인지 야스민은 1번 자리 전체에 가까운 넓은 범위를 커버하고 있었다. 여기에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했다. 1세트에 배유나가 5번 자리를 향하는 서브로 득점을 올린 것을 의식해서인지, 혹은 박정아의 리시브 커버가 우선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야스민의 왼쪽에 있던 오지영이 첫 번째 스텝을 박정아가 있는 왼쪽으로 밟은 것. 이 순간 야스민은 찰나지만 더욱 넓은 범위를 커버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베테랑 배유나는 야스민을 겨냥하는 정확한 목적타 서브를 날렸고, 왼쪽 스텝을 밟았던 오지영은 뒤늦게 오른쪽으로 몸을 옮기려 했지만 역동작에 걸린 상황이었다. 결국 야스민은 그대로 서브에 노출되며 자신의 몸 왼쪽으로 오는 서브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배유나의 두 번째 서브 득점이 터지는 순간이었다. 꼭 4인 리시브가 필요했는지, 그리고 꼭 해야만 했다면 야스민의 범위를 줄여줄 수는 없었는지 복기를 해볼 만한 장면이었다.
위의 장면들은 그냥 ‘3단 처리를 실수했구나’, ‘리시브를 실수했구나’ 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장면들이었지만 그 속에는 분명 보이지 않는 범실성 플레이들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저런 플레이들로 내주는 1, 2점이 쌓여서 25점이 되면 한 세트를 패하게 된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페퍼저축은행이 다시 앞으로 나아가려면 이런 사소한 부분들까지 확실히 돌아보면서 한 점 한 점을 아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사진_KOVO, 네이버 스포츠 SBS Sports 중계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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