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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들블로커를 주목하는 이유, V-리그 판도 바꿀 키 포지션
서영욱(seoyw92@hanmail.net)
기사작성일 : 2019-12-26 23:15
도드람 2019~2020 V-리그 경기가 끝난 뒤 남녀부 13개 팀 감독들에게서 종종 듣는 말이다. 사령탑들이 콕 찍어 얘기한 자리는 바로 미들블로커다. 미들블로커는 배구 포지션 중에서 세터나 윙스파이커, 아포짓 스파이커와 비교해 화려한 조명을 받는 자리는 아니다. 그러나 배구 경기에서 필수 포지션으로 꼽힌다. 최근 스피드 배구와 토털 배구가 화두로 떠오르며 미들블로커의 중요성은 더 강조되고 있다.


MB, 리베로만큼 궂은일 많이 해야 하는 자리

높이가 중요한 배구에서 미들볼로커는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신장이 좋은 선수가 아무래도 유리할 수밖에 없다. 미들블로커는 전위에서 수비 시 상대 공격에 대한 블로킹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공격에서도 할 일이 많다. 윙스파이커나 아포짓 스파이커와 같이 화려한 스파이크를 할 기회는 자주 찾아오지 않지만 주 무기인 속공을 포함해 시간차 공격, 이동 공격 등 다양한 변칙 공격을 해야한다. 배구에 수비 전문 선수인 리베로가 도입된 뒤에는 경기 도중 코트와 벤치를 오가야 한다. 미들블로커가 로테이션에 따라 후위로 갈 때 리베로로 교체되기 때문이다. 후위로 자리할 때 바로 교체되는 것은 아니다. 미들블로커 포지션 선수에게 서브를 넣을 순서가 올 경우에는 서버로 임무를 다해야한다(물론 원포인트 서버로 교체되는 상황도 있다).

이처럼 미들블로커는 궂은일을 많이 한다. 수비(디그)와 리시브를 하는 리베로만큼이나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중요한 일을 한다는 의미다. 배구는 속고 속이는 경기라는 말이 있다. 미들블로커도 상대 세터와 블로커에게 혼란을 줘야한다. 속공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점프를 해 상대 블로커를 한 명이라도 속인다면 성공이다.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공을 패스하는 오픈 공격에서도 미들블로커는 한번 뛰어올라야 한다. 수비에서는 블로킹이 중요하지만 여기에 따른 움직임도 중요하다. 미들블로커들은 가운데 한 자리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왼쪽과 오른쪽 사이드로 계속 움직여야 한다. 상대 미들블로커의 속공 견제 외에도 왼쪽과 오른쪽에서 시도되는 공격에 대한 블로킹에도 참여해야 한다.

현대배구에서 미들블로커에게 요구되는 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움직임이다. 스피드가 처진다면 미들블로커로서 능력에 물음표가 붙는 이유다. 올 시즌 V-리그를 보면 미들블로커 전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팀은 2라운드 현재 하위권에 처져있다. 부진한 성적이 나오는 원인 가운데 공통점이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들블로커가 그렇다.
2017~2018시즌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했고 지난 시즌에도 준우승을 한 한국도로공사는 11월 23일 기준으로 2승 7패로 부진하다. 올 시즌 개막 후 힘겨운 발걸음을 하는 이유로는 외국인 선수 교체 외에도 전 시즌보다 떨어진 미들블로커 전력이 꼽힌다. 무릎 부상으로 재활 중인 배유나가 빠진 자리가 예상보다 크다. 여기에 베테랑 정대영도 100% 정상 컨디션이 아니다.

김종민 도로공사 감독도 “배유나가 빠진 자리가 문제가 되고 있다”라고 얘기했다. 도로공사는 비시즌 유희옥을 영입했지만 아직까지는 뚜렷한 효과는 없다. 또한 정선아와 최민지의 성장세가 더딘 것도 김 감독의 걱정거리다.



남자부에서는 한국전력이 미들블로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국전력은 방신봉(은퇴) 윤봉우, 최석기(이상 우리카드) 등이 뛸 때만 해도 중앙 전력이 처지는 팀으로 꼽히지 않았다. 그러나 선수단 세대 교체 과정에서 베테랑 선수들이 은퇴 또는 이적으로 빠진 뒤 해당 포지션에서 열세를 아직까지는 만회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전력은 전력 보강을 위해 포지션 변경 카드도 꺼냈다. 장병철 한국전력 감독은 장신 아포짓 스파이커 이태호를 미들블로커로 돌렸다. 그러나 단기간에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전력은 결국 시즌 도중 OK저축은행과 트레이드를 통해 팀 공격 한 축을 담당하는 최홍석을 보내는 대신 미들블로커 장준호를 데려왔다.

11월 23일 기준으로 10연패를 당하고 있는 KB손해보험도 미들블로커 전력이 강한 팀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KB손해보험은 오프시즌 우리카드와 트레이드를 통해 박진우, 구도현을 데려왔다. 하지만 현재까지 트레이드 승자는 우리카드다. 우리카드는 베테랑 하현용을 영입하며 가운데 높이를 보강했다. 우리카드는 또한 미들블로커로 신장은 작은 편이나 스피드와 블로킹 타이밍이 좋다는 평가를 받은 이수황을 함께 데려와 짭짤한 효과를 보고 있다.

여자부 현대건설도 미들블로커 덕을 보는 팀 중 하나다. 대표팀에서 부동의 미들블로커 한 자리를 맡고 있는 양효진 외에도 정지윤과 신인 이다현까지 보유하고 있다.


블로커진 든든한 현대캐피탈, 반등할까

V-리그에서 중앙이 강한 팀으로는 남자부 현대캐피탈이 첫 손가락에 꼽힌다. 현대캐피탈은 이선규, 하경민(이상 은퇴) 윤봉우가 오랜 기간 함께 뛰었다. 세 미들블로커는 당시 남자배구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현대캐피탈은 올 시즌 현재 신영석과 최민호가 높이를 책임지고 있다. 

김상우 성균관대 감독 겸 KBSN스포츠 해설위원은 “현대캐피탈이 시즌 초반 다소 부진한 이유는 가운데 쪽 때문이 아니다”라며 “외국인 선수 에르난데스(쿠바)와 문성민이 부상을 당해 빠져있고 기복이 있는 세터들의 플레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김 위원은 “미들블로커 한 포지션만 놓고 보면 현대캐피탈이 여전히 V-리그에서 가장 강하다. 신영석과 최민호를 보조할 수 있는 차영석, 홍민기 등 백업 자원도 많다”라고 설명했다.



현대캐피탈을 상대하는 팀은 신영석과 최민호가 버틴 중앙 라인이 껄끄럽고 부담이 된다. 삼성화재 산탄젤로(이탈리아)는 11월 21일 현대캐피탈과 대전 홈 경기가 끝난 뒤 “현대캐피탈이 아무래도 가장 까다로운 팀인 것 같다”고 했다. 삼성화재는 이날 현대캐피탈에 세트 스코어 3-1로 역전승했고, 산탄젤로는 두 팀 합쳐 가장 많은 28점을 올리며 팀 승리 주역이 됐다. 산탄젤로는 “1라운드에서는 웜업존에서 주로 경기를 지켜봤고 2라운드 들어 코트에 나와 뛰고 있지만 밖에서 볼 때도 현대캐피탈 높이는 상당하다”라고 말했다.

우리카드의 1, 2라운드 상승세를 이끌고 있는 토종 스파이커 나경복도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미들블로커 전력이 좋은 현대캐피탈 블로킹을 상대하기가 가장 까다롭다”고 얘기했다. 석진욱 OK저축은행 감독도 “현대캐피탈 두 미들블로커(신영석, 최민호)가 잘하기 때문에 우리 선수들이 공격할 때 부담을 많이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OK저축은행은 지난 시즌부터 현대캐피탈전 8연패를 당하고 있다. 

미들블로커 덕을 본 팀은 또 있다. 대한항공이 그렇다. 대한항공은 V-리그 출범 때부터 좌우 날개 전력보다 가운데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영택(현 KGC인삼공사 코치) 김형우(현 성균관대 코치) 등이 버티고 있었지만 해당 포지션에 부족한 부분은 있었다.

현역 선수 시절 미들블로커로 뛰었던 박기원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뒤 대한항공은 본격적으로 중앙 보강에 공을 들였다. 진성태를 트레이드를 통해 데려왔고 장신 세터 조재영을 미들블로커로 포지션을 바꿨다. 그리고 자유계약선수(FA)로 김규민을 영입하며 가운데 약점을 메웠다.


스피드 배구·토털 배구 시대에 더 중요해진 MB

미들블로커 포지션에 대한 중요성은 최근 들어 부각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화두가 되고 있는 스피드 배구 또는 토털 배구 때문이다. V-리그 남녀 13개팀 사령탑 대부분은 스피드배구가 대세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면서 미들블로커 포지션이 예전보다 더 중요해졌다고 강조한다.

이유는 있다. 스피드 배구(토털 배구)에서는 ‘파이프’ 공격(중앙 후위 공격)이 중요해졌다. 김호철 전 남자배구대표팀 감독은 “미들블로커가 강한 팀은 파이프 공격을 시도하기가 수월해진다”라며 “상대 블로커를 한 명이라도 묶어둘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스피드배구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축구에서 ‘토털 사커’ 개념을 떠올리면 된다. 토털 배구와 의미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현대배구는 강한 서브 외에도 목적타로 상대 리시브 라인을 흔든다. 그러다보면 퍼펙트 리셉션(리시브가 매끄럽게 돼 세터에게 연결이 잘 되는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이 나올 횟수는 줄어든다.

리시브가 일단 되면 세터와 리베로를 제외한 코트 안에서 뛰는 선수 모두가 공격을 준비한다. 이때 리시브를 받은 선수도 바로 공격에 참여한다. 세터의 선택지는 더 많아진다. 이럴 때 중앙 후위(파이프) 공격을 준비한다. 세터가 보내는 패스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미들블로커가 중요하다고 강조되는 점은 공격에 참여하는 선수 숫자와 연계되기 때문이다.

스피드 배구는 단순히 세터가 보내는 패스 속도가 아니다. 배구 경기는 연결 플레이로 이뤄진다. 그리고 범위를 좁힌다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블로킹을 서로 속인다. 감독들이나 선수들이 ‘블로킹을 뺀다’ 또는 ‘블로킹을 빼줘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그리고 공격에서 중앙 전력이 떨어질 경우 속공에 참여하는 시도를 자주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블로커(상대팀 센터도 당연히 포함한)들이 공격을 견제하기가 수월해진다. 공격 팀에서는 공격 참여 숫자가 적기 때문에 세터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김 위원도 “공격 숫자를 4명으로 가져가기 위해 미들블로커 전력이 강한 팀은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그는 “신영석(현대캐피탈)이 좋은 미들블로커라고 평가를 받는 이유가 있다”라며 “미들블로커가 신장이 크고 타점이 높으면 유리하다는 것을 바로 보여주는 선수”라고 했다.

퍼펙트 리셉션이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세터는 상대적으로 네트와 멀리 떨어진 곳으로 패스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신영석은 자신이 갖고 있눈 장점을 활용해 속공이 가능하다. 김 위원은 “상대팀 블로커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쪽 공격 옵션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빠른 시간 안에 이 모든 상황이 함께 이뤄지기 때문에 수비를 하는 팀 입장에서는 힘이 들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공격뿐 아니라 수비하는 팀에서도 가운데 전력이 강하면 그만큼 이득을 볼 수 있다. 김 위원은 “방어적인 부분(수비)에서 봤을 때도 마찬가지”라며 “그래서 미들블로커 전력 보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위원은 한 가지를 더 강조했다. 그는 “최근 스피드 배구와 토털 배구가 대세로 떠올랐지만 사실 그전부터 미들블로커 활용에 대한 얘기는 있었다”라며 “배구 흐름에 따라서 유독 주목을 받고 있는 점도 고려해봐야 한다”라고 얘기했다. 

스피드 배구의 창시자로는 브라질 남자배구대표팀에서 코치와 사령탑으로 오랜 기간 활동한 브루노 헤젠지 감독이 꼽힌다. 예전 월드리그 경기를 위해 2007, 2010, 2011년 브라질 남자배구대표팀을 이끌고 한국을 찾았던 헤젠지 감독도 “(스피드 배구에서)중요하지 않는 자리는 없다”면서 “상대 블로커들이 자리를 잡기 전에 공격을 시도하는 것이다. 블로커들을 어떻게 하든 분산을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면 퀵오픈이나 속공 그리고 여기에 필요한 중앙 후위 공격이 따라올 수 있고 그것을 필요로 한다”라고 말했다.

미들블로커 능력이 중요해진 또 하나의 이유는 공격 범위가 더 넓어졌기 때문이다. 완벽한 리시브를 기대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공격을 세팅하는 세터도 커버하는 범위가 넓어졌다. 이에 따라 전위에 자리한 미들블로커에게도 당연히 영향이 간다. 물론 더 빠른 스텝도 요구된다. 예전과 비교해 코트 안에서 할 일이 더 많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글/ 류한준 조이뉴스24 기자   
사진/ 더스파이크, KOVO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12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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