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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 가빈 슈미트가 전하는 #베테랑 #배구 #종착지
서영욱(seoyw92@hanmail.net)
기사작성일 : 2019-12-21 00:58
2009년부터 2012년까지 V-리그를 폭격했던 가빈 슈미트(등록명 가빈)는 7년 만에 V-리그로 돌아와 다시 한국 팬들 앞에 섰다. 20대 초반의 풋풋했던 청년은 이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 되어 돌아왔다. 시간이 흐른 만큼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돌아온 가빈을 만나기 위해 경기도 의왕 한국전력 연습체육관을 찾았다. 일찍이 인성으로 높은 평가를 받던 가빈은, 인터뷰 중에도 그 깊이와 ‘프로페셔널’을 느낄 수 있게 해줬다.


그때 청년이 베테랑 되어 돌아왔네

가빈은 한국 배구팬들에게 ‘절대 거포’로 인식되어 왔다. 그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삼성화재 소속으로 V-리그에서 뛰었다. 가빈은 삼성화재가 아닌 한국전력에서 네 번째 V-리그를 맞았다. 한국전력 상황은 이전 삼성화재와 많이 다르다. 가빈이 한국에서 처음 몸담았던 삼성화재는 앞선 V-리그 다섯 시즌 동안 세 차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했고, 당시 현대캐피탈과 리그를 양분한 절대양강이었다. 반면 한국전력은 2018~2019시즌 4승에 그치며 최하위에 머무른 팀이다. 2019~2020시즌도 상위권보다는 하위권에 가깝다. 

그래도 다시 한국을 찾은 그의 소감에서 기쁨이 느껴졌다. “돌아와서 정말 좋습니다. 한국의 사람들을 포함해 모든 걸 좋아했거든요. 물론 삼성화재 시절과 상황이 다르긴 합니다. 팀도 다르니까요. 하지만 생활 자체는 정말 좋아요.” 

시즌 초반 한국전력의 상황에 대해서는 “여전히 해결책을 찾아내려고 노력 중이다”라고 운을 뗀 후 “이전에 제가 겪은 팀과는 분명 환경이 다르다”라고 말했다. 가빈은 “그간 제가 지나온 팀들은 대부분 상위권이거나 챔피언십을 위해 경쟁하는 팀이었다. 이제 새로운 환경 속에 어떻게 지금 상황을 해결하고 다뤄야 하는지 알아가는 중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과거 삼성화재에서 뛸 때와 현재 V-리그의 차이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가빈이 짚은 과거와 현재 리그의 차이점은 선수들의 스타일이다. “선수들의 스타일이 그때와는 달라진 것 같아요. 과거에는 기술적으로 뛰어나거나 완성된 선수들이 많았어요. 최근에는 좀 더 신체적으로 뛰어나고 운동능력이 좋은 선수들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신장도 전반적으로 커졌고 점프도 높고요. 그런 식으로 선수들 스타일이 바뀌고 있는 것 같네요.”

물론 달라진 건 리그 특징뿐만이 아니다. 가빈은 이제 33살 노장이다. 과거 한 시즌 전체 공격 점유율 50%도 넘겼던 가빈도 이제는 그 정도로 엄청난 ‘몰빵’을 매 경기 하기는 힘든 나이가 됐다. 가빈 역시 여러모로 나이를 먹었다는 걸 느낀다고 돌아봤다. 

“젊은 시절에는 훈련 때도 자신을 더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었죠. 훈련 시간 자체도 더 길게 가져갈 수 있었고요. 그렇게 훈련해도 피로도 지금보다 덜했고 회복 시간도 짧았죠. 지금은 몸 관리에 시간이 더 필요하죠. 전체적인 컨디션 관리도 그렇고요. 해야 하는 역할도 조금 늘었죠. 다른 선수들을 더 도와주고 누군가의 롤 모델이 되도록 모범을 보여야 하죠. 확실히 예전과는 다릅니다.”

가빈은 이 외에도 좀 더 와닿는 이야기도 전했다. 언제 나이를 먹었다는 걸 실감하는지 묻자 그는 “굉장히 많다”라고 답하며 말을 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분명 전날 안 쓴 부위인데 아프기도 해요. 아니면 전날 종일 휴식을 취했는데도 아침에 일어나서 발목이 아프기도 하고요. 그러면 ‘쓴 적이 없는데 왜 발목이 아픈 거야’라는 생각도 들죠. 함께 뛰던 동료들이 코치가 된 걸 보면 또 그렇고요. 물론 나이를 먹는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점진적으로 이런 일들은 더 늘어나겠죠.”

앞서 언급한 베테랑 선수로서 책임감은 현재 한국전력에 대입해서 볼 수 있다. 한국전력 장병철 감독은 트라이아웃에서 가빈을 지명할 때부터 리더 역할을 기대했다. 주 공격수이면서 코트 위의 리더 역할까지 해야 하는 가빈. 다른 언어를 쓴다는 점에서 힘든 점도 있을 법했다. 하지만 가빈은 “크게 어려운 점은 없다”라며 “모든 선수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젊은 선수들에게 여러 이야기도 해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가빈은 “한국은 나이가 많은 선수를 좀 더 존중하는 문화가 있다. 저는 선수들이 저를 좀 더 편하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이야기했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다시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해외 여러 리그를 돌며 젊은 선수들에게 어떤 점을 가장 강조하는지도 물어 보았다. 이에 그는 “그건 정말 매번 다르다(case by case)”라고 답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일반화해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떤 선수는 좀 더 기술적인 조언을 원할 수도 있고 뭔가 특정 동작에 관해 물어볼 수도, 전반적인 걸 물어볼 수도 있죠. 확실한 건 상황에 따라 차이가 크다는 겁니다.”

더불어 가빈은 삼성화재 시절과 비교를 통해 현재 한국전력의 팀 분위기와 문화를 설명했다. 삼성화재는 신치용 감독 시절부터 특유의 문화가 존재했다. 가빈 역시 그 시절을 겪은 선수였기에 할 수 있는 비교였다. 가빈이 말하는 가장 큰 차이는 팀 전체에 퍼져있는 전반적인 부드러움이었다. “삼성화재는 약간 군대 같은 느낌이죠. 약간 딱딱하고(hard) 제한적이었죠. 여기서는 코치님이 좀 더 여유를 주면서 자유와 책임을 함께 느끼도록 하고 있죠. 선수 스스로 발전하도록 말이죠. 삼성화재는 좀 더 통제도 많았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체계가 명확했어요. 감독에서 코치로, 코치에서 베테랑 선수로 말이죠. 한국전력은 각자 위치가 있고 체계는 있지만 좀 더 평등하게 대할 수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좀 더 자유가 있는 셈이죠.”



비시즌 준비 과정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생겼다. 상위권으로 우승을 노리는 팀과 현실적으로 우승보다는 전보다 나은 성적을 노리는 팀에서 뛸 때 차이가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정확한 답은 들을 수 없었지만 환경이 다른 팀에서 뛸 때 마음가짐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었다. 

“삼성화재 시절에는 비시즌마다 캐나다 대표팀 일정 소화를 위해 제대로 비시즌을 팀과 소화해본 적이 없어요. 대표팀과 훈련하고 곧장 시즌에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다만 삼성화재 시절에는 저를 향한 압박이 더 강했죠. 더 잘해야 하고 꼭 이겨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죠. 제가 이전에 해온 게 있고 사람들도 그걸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삼성화재 시절에는 제가 경기에 패한 원인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이기든 지든 압박감이 컸는데 졌을 때 압박감이 좀 더 컸죠. 여기서는 좀 더 ‘오픈 마인드’로 팀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성장하도록 도와야 해요. 아직 많은 경기에서 이기는 팀은 아니니까요.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오도록 해야 하고 그런 과정을 더 이겨나가야 합니다.”


“내겐 너무나 특별했던 무대, V-리그”

올해 봄 얘기다. 2019 KOVO(한국배구연맹) 트라이아웃에 가빈이 신청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 나오면서 가빈의 V-리그 리턴에 많은 배구 팬이 관심을 모았다. 외국인 선수 초청명단에 가빈의 이름이 최종 확인되면서 사람들은 삼성화재를 절대강자로 군림할 수 있게 한 가빈을 한국에서 다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떴다. 

30대 중반을 향해 가는 베테랑이라고 하지만 가빈은 바로 전 시즌까지도 유럽에서 경쟁력을 보여주던 선수였다. 올림피아코스 소속으로 팀을 그리스 리그 1위에 올려놓았고 2017~2018시즌에는 일본 토레이 애로우스를 리그 4위로 이끌었다. 분명 가빈은 V-리그보다 더 수준높은 리그에서 뛸 수 있었다. 그가 한국에 돌아온 이유는 명확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가빈이 정말 V-리그를 향한 애정이 굉장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가 V-리그로 돌아온다고 했을 때 기대감은 상당했다. 그런 반응을 알았는지 묻자 가빈은 “전혀 몰랐다”라고 답했다. 그는 트라이아웃 신청 당시를 돌아봤다. “트라이아웃을 통해서라도 제가 커리어를 마감하기 전에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었어요. 이제 선수로 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신청했습니다. 당시에는 트라이아웃에 무사히 참가해서 잘 마쳐야겠다는 생각이었죠.” 



그는 트라이아웃에서 1순위로 뽑힐 거라는 기대는 크게 하지 않았다고 했다. 당시 그리스 리그 챔피언결정전이 다 끝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가빈은 캐나다에서 열린 트라이아웃 일정에 단 하루만 참가했다. 

가빈은 한국을 두고 “특별한 장소”라고 표현했다. 그는 과거 한국에서 보낸 시간이 모두 특별했다고 말했다. “삼성화재 시절 신치용 감독님과도 특별한 관계였죠. 감독님뿐만 아니라 팬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였죠. 많은 경험이 특별하게 다가왔기 때문에 언젠가는 돌아오고 싶었어요. 제가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팬들을 같은 자리에서 만나고 싶었거든요. 그런 기억이 하나하나 모여서 한국을 특별한 장소로 만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처럼 한국에 대한 애정이 컸기에 돌아온 가빈이지만, 30대 나이에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다. V-리그에서 외국인 선수로 뛸 때 따라오는 고됨을 누구보다 잘 아는 가빈이기 때문이다. 이에 가빈 역시 “사실 쉽지 않은 결정인 건 맞다. 불안함도 있었다”라고 어느 정도 그런 부분을 인정했다. 가빈은 “우선 제가 어느 팀으로 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팀에 내가 필요한 면에 대해서도 말할 수가 없었다. 나이도 먹었고 예전보다 관리도 더 필요한데도 그랬다. 팀에서 저를 어떻게 대해줄지도 확실하지 않았다”라고 불안함을 느낀 원인에 대해서도 전했다. 하지만 가빈은 “우선 저 스스로 제 몸에 더 신경 쓰기로 했죠. 더 열심히 훈련해서 시즌을 끝까지 치르고 싶었어요. 물론 한국은 어려운 리그입니다. 경기 수도 많고 회복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요”라며 책임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한국을 떠날 당시 이야기도 들었다. 가빈은 “한국에서 행복하지 않아서 떠난 건 아니었다”라고 먼저 언급했다. 이어 그는 더 큰 무대로의 도전이 V-리그를 떠나게 된 가장 큰 이유라고 밝혔다. “제가 한국을 떠날 때 26살이었죠. 선수로서 최전성기에 접어들 나이였어요. 러시아, 이탈리아, 브라질, 폴란드처럼 세계 최상위 리그에 저를 시험해보고 싶었어요. 그런 리그를 거치면서 한국에서 좋은 기억도 많았기 때문에 돌아오게 된 거죠. 한국에서 뛸 때 정말 행복했고 V-리그만의 매력도 있었고요.”

가빈은 기량이 우수했던 것과는 별개로 소속팀을 자주 바꿨다. 삼성화재를 떠난 이후 두 시즌 이상 머무른 건 터키 아르카스 스포르 이즈미르(2013~2015)뿐이었다. 그 외에 러시아, 브라질, 폴란드, 일본, 그리스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 시즌만 소화하고 이적했다. 가빈은 잦은 이적이 자신의 의지보다도 환경에 의한 경우가 많았다고 돌아봤다. “러시아에서는 팀이 재정 문제가 있었어요. 터키에서도 정말 좋았지만 재정 문제 때문에 임금이 밀렸죠. 브라질에서는 부상을 겪었고요. 일본에서는 팀에서 변화를 원한다고 말했죠. 대부분 이유는 제 의지보다 다른 쪽에 있었어요.”
리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화두는 자연스럽게 현재 V-리그의 외국인 선수 시스템으로 향했다. 가빈은 현재 V-리그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 중 자유계약 시절과 트라이아웃을 모두 겪은 유일한 선수다.

두 시절을 모두 겪은 가빈이기에 외국인 선수 시스템에 관한 솔직한 견해도 들을 수 있었다. 가빈은 솔직한 견해를 내놓았다. 그는 자유계약이 선수에게나 팀에게나 더 낫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선 선수 입장에서 왜 자유계약이 더 나은지를 먼저 설명했다.



“우선 선수 입장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팀을 고를 수 있다는 점에서 훨씬 낫습니다. 제가 V-리그에서 뛰길 원하고, 그중에서도 한국전력을 원한다면 저는 한국전력 소속으로 뛸 수 있죠. 다른 팀에서 제안이 오더라도 제 의사를 확실히 전달할 수 있고요. 혹은 다른 리그나 팀을 선택할 권리도 가지고 있어요. 선수로서 그런 선택권이 없다는 건 공평하지 않다고 봅니다.”

가빈은 팀 입장에서도 자유계약이 더 나을 수 있는 이유도 설명했다. “팀도 자유계약 체제라면 팀에 더 잘 맞는 선수를 찾아서 영입할 수 있어요. 제한된 20~30명의 선수 중에서 찾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선수를 조사하고 찾아보면서 더 팀에 맞는 선수를 찾을 수 있죠.” 

가빈은 올 시즌 V-리그가 개막하기도 전에 외국인 선수가 대거 교체되는 상황을 언급했다. 실제로 올 시즌은 전례 없이 개막 전부터 많은 외국인 선수가 팀을 떠났다. 부상이라는 불가피한 이유도 있었지만 기량 혹은 팀과의 조화에 대한 문제로 인한 교체도 분명 있었다. 

“올 시즌을 보면 이미 우리카드는 외국인 선수를 두 번 바꿨고 KB손해보험도, 삼성화재도 바꿨어요. 현대캐피탈도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죠(인터뷰 당시에는 아직 다우디 오켈로 영입 소식이 전해지기 전이었다). 일부 선수는 부상이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팀이 자신들의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바꾼 경우도 있습니다. 만약 팀이 처음부터 자신들이 원하는 선수를 데려올 수 있었다면 대체 선수를 찾을 이유도 없고 추가 영입을 하지 않으니 돈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죠. 그래서 저는 자유계약이 더 나은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가빈은 올해는 조금 이른 시기에 트라이아웃이 열리면서 리그 일정이 겹쳐 신청하지 못한 선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올해 트라이아웃은 시기도 빨랐어요. 트라이아웃까지도 리그가 진행 중인 선수가 있었기 때문에 더 좋은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 더 참가할 수 없었죠. 자연스럽게 팀들도 선택지가 좁아졌고요.”

물론 가빈은 팀과 리그 사정에 대해 모두 알지는 못한다. 다만 두 가지 선발 시스템을 모두 겪은 선수의 의견을 통해 생각해볼 만한 요소는 분명 존재했다.


한 시대를 풍미하다, 그때 그 시절의 가빈

배구를 좋아하고 봐온 지 10년 이상 된 팬이라면 과거 가빈이 얼마나 엄청난 선수였는지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 아직 너무 어렸거나, 조금 늦게 배구에 입문한 팬은 삼성화재 시절 가빈의 위엄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할 수도 있다. 이에 당사자와 함께 과거를 추억해보는 시간도 가져봤다. 

2009년부터 2012년에 이른 삼성화재 시절을 돌아본 가빈은 ‘Awesome’했다는 표현을 썼다. 처음 삼성화재 입단할 당시를 돌아본 가빈은 “집에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곳에 간다는 건 언제나 당황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삼성화재 시절은 다시 생각해도 정말 좋은 기억이 많았다”라고 말했다. 

가빈은 V-리그에 처음 도전할 당시, 삼성화재가 아닌 현대캐피탈 소속으로 뛸 수도 있었다. 가빈이 먼저 테스트를 본 팀은 삼성화재가 아니라 현대캐피탈이었다. 가빈은 10년전 기억을 더듬었다. “제가 캐나다 대표팀에 있을 당시에 현대캐피탈이 아직 외국인 선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저를 초청해서 한번 보기를 원했죠. 제 에이전트도 한번 가보자고 했죠.” 

하지만 변수가 있었다. 아포짓 스파이커로 뛰는 가빈에게 원래 포지션이 아닌 리시브도 해야 하는 윙스파이커 포지션으로 오길 원했다는 점이다. 가빈은 “저는 리시브가 안 됐어요. 어떻게 하는 줄도 몰랐어요(웃음). 일단 가보긴 했지만 확실하게 제 기량을 보여주지는 못했죠.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다고 봅니다”라고 회상했다. 가빈의 기억에 의하면 당시 현대캐피탈 코치진은 가빈을 상당히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캐피탈은 결국 좀 더 준비된 선수를 원했다고 가빈은 떠올렸다(현대캐피탈은 2009~2010시즌 전 시즌 함께했던 맷 앤더슨과 재계약했다. 앤더슨은 시즌 중 당시 마흔이었던 오스발도 헤르난데스와 교체됐다). 



가빈은 V-리그에서 선수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다 누렸다. 3년 연속 득점 1위(20010~2012), 두 번의 정규시즌 MVP(2010, 2012)와 올스타전 MVP(2010, 2011)에 3년 연속 챔피언결정전 MVP(2010~2012)도 차지했다. 지금도 V-리그 남자부 역사상 챔피언결정전 MVP를 세 번 수상한 선수는 가빈이 유일하다. 여자부로 확장해도 김연경(2006~2007, 2009)만이 추가될 정도로 대단한 기록이다. 세 번의 챔피언결정전 우승 중 통합우승(2009, 2012)도 두 차례 있었다. 

가빈은 개인 수상보다도 세 번의 우승이 훨씬 값지다고 말했다. “MVP라는 상은 언제나 좋죠. 그만큼 사람들이 저를 인정한다는 건 언제나 고마운 일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우승이에요. 우승을 못 하면 의미가 없죠. 제가 개인 수상만 하고 우승을 못 한다면 ‘우승 못 한 최고의 선수’라는 수식어가 붙는 건데, 그런 수식어는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는 3연속 챔피언에 대해서는 “3연패는 정말 굉장했다(Awesome). 우승은 스포츠 선수로 뛰는 이유다”라고 언급했다. 

세 번의 우승 중에도 가빈에게 2010년 챔피언결정전에 관해 물었다. 지금과 달리 당시 챔피언결정전은 7전 4선승제였다(2010년과 2011년이 그랬다). 당시 삼성화재는 영원한 라이벌인 현대캐피탈과 최후의 무대에서 만났고 7차전까지 가는 혈투를 펼쳤다. 7차전까지 5세트 승부만 네 번일 정도로 치열했다. 지금도 2010년 챔피언결정전은 남자부 역대 최고의 시리즈 중 하나로 남아있다. 

가빈의 활약은 정말 엄청났다. 당시 가빈의 공격 점유율은 56.52%에 달했다. 가빈은 1차전부터 50점을 터뜨렸고 7차전에도 61.05%의 점유율 속에 다시 한번 50점을 몰아치며 삼성화재에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가빈은 “한국에서 첫 시즌이었고 7차전까지 갔다. 사실 6차전이 끝나고 갈비뼈 쪽에 통증이 있었다. 정말 힘들었고 숨도 거칠었다. 매우 힘든 시리즈였다”라고 돌아봤다. 가빈은 “두 팀 전력이 비슷했고 매 경기 치고받는 접전이었다. 혈투 끝에 이겨서 더 대단한 승리였고 좋은 기억이었다”라고 돌아봤다. 

찬찬히 과거 이야기를 이어가던 가빈은 삼성화재 시절이 이후 해외리그를 뛸 때도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특히 가빈이 도움이 됐다고 느낀 부분은 리더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에이스로서 팀을 이끄는 방법 등 정신적인 부분이었다. 가빈은 “만약 한국에 오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선수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라고 운을 뗐다. 그는 한국에서 정말 많은 걸 배웠고 기술적으로도 발전했지만 정신적인 면에서 많은 걸 얻었다고 말을 이었다. 이와 함께 가빈과 함께하는 과거 여행도 막을 내렸다. 


종착역 향하는 베테랑 가빈의 다음 목표

가빈은 30대 중반을 향해 간다. 선수로서 뛸 날이 많이 남지 않았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 각종 부상을 달고 다녔다. 선수 생활 이후에 대해 신경 쓸 시기가 온 셈이다. 

전성기 시절과 현역 황혼기에 접어든 가빈의 목표는 달랐을까. 가빈이 이를 설명했다. “선수라면 목표는 언제나 우승입니다. 최대한 많은 경기에서 이기는 거죠. 물론 한국전력에서 우승을 노리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삼성화재 시절만큼 결과를 내긴 어렵겠죠. 팀의 상황이 많이 다르잖아요. 삼성화재는 제가 오기 전에도 위닝 팀이었지만 한국전력은 리빌딩 과정에 있고 젊은 선수들의 발전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가빈은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제가 이곳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항상 생각하며 어떻게 도움을 줘야 하는지도 고민하고 있어요. 그만큼 저를 향한 기대도 다르겠죠. 물론 최우선 목표는 최대한 많은 경기에 이기는 겁니다.” 

그의 말에는 단순 농담보다도 그만큼 프로로서 느끼는 책임감이 느껴졌다.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잖아요. 최대한 많이 이기고 우승이라는 목표에 가까이 가도록 해봐야죠. 불가능한 건 없으니까요.(Nothing is Impossible)”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기까지 더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일까. 이에 가빈은 한 번도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고 싶다는 말과 함께 이내 ‘행복’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그는 선수로서 남은 시간을 좋은 기억으로 채우고 싶다고 말했다. “솔직히 이 정도까지 오고 나니까 행복하고 싶어요. 어느 팀에 있든, 제가 배구를 플레이하는 마지막 순간까지요. 그간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어요. 자신의 의지가 아닌 다른 이유로 선수를 그만두는 경우도 많았어요. 부상 혹은 다른 이유로 은퇴하게 되는 거죠. 운이 좋게도 저는 13시즌이라는 오랜 시간 커리어를 이어오고 있어요. 아직 선수로 뛸 시간도 더 남았고요. 제가 어디에 있든 남은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면서 마지막까지 좋은 기억으로 채워보고 싶네요.”

인터뷰 막바지, 자신이 특별하게 여기는 한국 팬들에게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지 물었다. 이에 가빈은 “어려운 질문이다”라고 답하며 자신의 생각을 풀어갔다. “저는 그저 저 자신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제가 누군가를 친절하게 대했다면 그 사람은 절 그런 사람으로 기억해주겠죠. 팀을 위해 열심히 경쟁하는 모습을 봤다면 그렇게 기억할 거고요. 항상 열심히 하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동시에 제가 해왔던 그대로 말이죠. 거기서 더 나가거나 덜 하고 싶지 않아요.” 

가빈이 끝인사를 전했다. “돌아온 저를 이렇게 환영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모든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올 시즌 비록 조금 힘들지만 지금의 상황이 달라지도록 더 노력할 겁니다. 언제나 힘이 돼주시는 팬들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조금이나마 알았다. 왜 가빈을 지도하고 거친 지도자들이 그의 인성을 그렇게 높게 평가하는지. 


글/ 서영욱 기자   
사진/ 문복주 기자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12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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