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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여! 나를 넘어라’ 여오현, 그 이름이 주는 위대함
12월 1일 대한항공전 출전 시 V-리그 역대 최초 500경기 출전
서영욱(seoyw92@hanmail.net)
기사작성일 : 2019-11-30 23:08
‘여오현’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주는 무게감은 분명 남다르다. 만 41세, V-리그 최고령으로 지금껏 쌓은 업적도 굉장하다. V-리그 출범 멤버인 그는 열다섯 시즌 동안 삼성화재와 현대캐티탈 유니폼을 입고 아홉 개의 챔피언 반지를 꼈다. 개인 기록에서도 후배들을 압도하는 누적 기록으로 절대적인 위치에 올라있다. 12월 1일 대한항공전까지 출전하면 V-리그 남녀부 통틀어 최초로 통산 500경기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추가한다. 올 시즌이 개막하기 전 진행한 여오현과의 이야기를 풀어본다. 

“현대캐피탈과 다시 시작해서 정말 좋았죠”
여오현은 2018~2019시즌을 마치고 자유계약선수(FA) 신분을 다시 얻었다. 선택은 어렵지 않았다. 현대캐피탈은 2018~2019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 주역인 여오현에게 3년 계약을 제시했고, 여오현도 이를 받아들였다. 여오현은 다시 한번 현대캐피탈 소속으로 비시즌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Q__2018~2019시즌이 끝나고 네 번째 FA도 맞았습니다. 계약 당시에는 어땠나요.
처음 협상할 때부터 감독님이 워낙 잘해주셨어요. 계약 연수도 3년이었고요. 저야 “감사합니다”하고 사인했죠. ‘더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좋은 팀에서 더 뛸 수 있다는 점에 행복했죠.

Q__3년이란 계약 연수는 ‘45세 프로젝트’ 때문일까요.
그런 것도 있지 않을까요(웃음). 구단이나 감독님이나 워낙 협상 때부터 많이 배려해주셔서 감사했죠.

Q__V-리그 원년, 그 전인 2000년부터 선수 생활 중입니다. 매해 비시즌을 지내면서 이전과는 다르다고 느끼는 점도 있을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신체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죠. 훈련 이후 피로감이나 회복력이 전보다는 조금씩 떨어진다고 봐야겠죠. 웨이트 트레이닝을 꾸준히 하면서 유지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Q__나이와 관련해서, 생일 초가 늘어날 때마다 슬퍼진다는 말도 했는데요.
9월 2일이 생일이었거든요. 다른 선수들이 케이크 준비하고 초를 꽂는 데 오래 걸리더라고요. 초 꽂기 힘들다고 하길래 다음부터는 숫자로 된 초로 준비하라고 했죠.

Q__일반적으로 베테랑들이 더 철저하게 비시즌 준비에 임한다고 하는데, 더 신경 쓰는 부분이 있을까요.
어린 선수든 베테랑이든 비시즌 준비 과정에서 중요한 건 부상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에요. 잘 준비하다가도 경기 전에 부상을 입어 많이 못 뛰는 경우도 많거든요. 체력적으로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부상 방지를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이나 유연성 보강 훈련을 더 철저히 해야 하죠. 훈련 중에도 신경을 예민하게 해야 부상 방지에 도움이 돼요.

Q__필라테스도 하시면서 유연성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강조하셨는데요. 두 요소가 그만큼 몸 관리에서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까요.
두 가지 모두 정말 중요하죠. 운동선수는 몸이 생명이잖아요. 그만큼 관리가 중요하고요. 몸이 안 따라주면 기술이 좋아도 발휘할 수 없어요. 비시즌 몸 관리에 그만큼 투자해야 정규시즌에 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죠.

Q__팀 차원에서 더 도움을 주는 면도 있을까요.
비시즌에는 필라테스를 주 2회, 많게는 3회까지 해요. 식단 조절도 도와주고 트레이너들이 항상 체크해주죠. 제가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뭔가를 요구하기보다는 제 루틴을 믿어주는 편이에요. ‘이렇게 하면 좋겠다’ 정도로 이야기해주죠. 그만큼 저를 믿어주는 것 같아서 좋아요.


어느덧 스무 번째 시즌 “숫자는 생각 안 하려고요.”
여오현은 현재 V-리그 최고령 선수이다. 물론 여오현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을 증명하듯, 여전히 V-리그에서 손꼽히는 리베로로 활약 중이다. 실업 시절까지 포함하면 스무 번째 시즌, 여오현은 지금까지 시간을 어떻게 돌아봤을까.

Q__V-리그 최고령 선수이면서 실업 시절까지 포함하면 20년째 선수 생활 중입니다. ‘20년’이라는 시간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내가 그렇게 오래 했어? 벌써 그렇게 됐어?’라는 생각이 들죠. 그런데 따로 나이나 숫자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그냥 무덤덤하게 선수 생활 중인 것 같아요. 아직 운동하는 데 무리가 있다거나 힘들다는 느낌은 없어요.

Q__20년, 정말 긴 시간입니다. 데뷔할 때 이렇게 오래 선수 생활을 하리라 예상했나요.
제가 데뷔할 당시를 돌이켜 보면, 선배들이 빠르면 30대 초반, 조금 더하면 30대 중반 정도에 은퇴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저는 조금은 오랫동안 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어요. 시대가 바뀌고 시간이 흐르면서 더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팀에서 관리해준 덕분에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한 게 아닌가 싶어요.

Q__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바로 선수로 함께한 최태웅 감독과 ‘감독-선수’로 만난 것일 텐데요. 최태웅 감독과는 두 살 차이입니다.
처음 감독님이 현대캐피탈에 부임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정말 놀랐죠. 갑자기 그렇게 됐으니까요. ‘어제까지만 해도 형이었는데 이제 감독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이런 생각도 들었고요. 뭐랄까, 좀 당황스러운 느낌이었죠.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최태웅 감독님이 오셨기 때문에 저도 지금까지 선수로 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감사하죠. 감독님 선수 시절에도 따라다니면서 많이 배웠어요. 인성이라든가 운동, 정신력까지 여러 방면으로요. 그만큼 좋아하는 선배였고 의지도 많이 되고, 또 도움도 많이 받았죠.



Q__팀에 스무 살 차이 나는 후배(현대캐피탈 허수봉과 딱 스무 살 차이다)도 들어옵니다. 다른 선수들이 후배를 받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일 것 같은데요.
그 후배들은 제가 배구할 때 세상에 없던 거잖아요. 후배들도 저와 함께 뛴다는 게 신기할 것 같아요. 지금 고등학생 선수면 제가 아버지뻘이기도 하니까요. 저도 나이차 많이 나는 후배들을 보면 동기부여가 돼요. 저 선수들과 함께 코트에서 뛸 수 있다는 걸 되새기고, 그 선수들에게 떳떳하도록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후배들이 보기에 “저 선배는 나이만 먹고 운동을 설렁설렁한다”라고 느끼는 선배가 되는 건 싫거든요. 그래서 제가 더 파이팅하려하고 어울리려고 하죠. 눈치도 많이 보여요. 후배들도 눈치를 보겠지만, 후배들은 제 눈치만 보면 되는데 저는 워낙 후배가 많아서 그 선수들 눈치를 다 봐야 하거든요(웃음). 저도 눈치 많이 보면서 훈련합니다. 

Q__확실히 그래서인지 코트에서 웬만한 젊은 선수들보다 파이팅 넘친다는 평가도 많습니다.
아무래도 동기부여 측면도 있고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플레이로 나오는 것 같아요. 

Q__이와 관련해서 지난 시즌 대한항공과 6라운드 경기에서 최태웅 감독이 여오현 선수를 콕 집으며 파이팅하는 거 안 보이냐며 작전타임 때 말하기도 했는데요. 
그때는 좀 민망했죠. 앞에서 그렇게 이야기하시니까요. 당시 상황이 좀 그렇긴 했어요. 선수들이 좀 처져있었어요. 저라도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소리 지르고 했는데, 그게 감독님이 원하는 부분이어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아요.

Q__앞서 더 어울리려고 한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세대 차이가 느껴질 때도 있을 듯합니다.
요즘 줄임말을 많이 쓰잖아요. 가끔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못 알아들을 때가 있어요. 이런 걸 제외하면 생활 측면에서는 부딪힐 일이 없어요. 다만 운동할 때도 세대 차이를 느낄 때가 있어요. 저 때는 크게 ‘으아, 아자’ 소리치면서 했는데 지금은 좀 조용해요. 내면으로는 화가 난 건지 모르겠는데 표정 변화나 순간의 감정 변화가 확 드러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좀 더 무덤덤한 것 같다고 할까요.

Q__오랜 시간 선수 생활을 함에 있어, 비시즌 준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2년차 선수들이 말하길 첫 비시즌 훈련이 정말 힘들다고들 하는데요.
저는 그런 건 있어요. 경험이 있으니까 비시즌과 시즌에 접어들 때의 차이점이나 비시즌에 어떻게 관리하고 시즌에 들어가야 하는지를 알고 있죠. 머릿속에 입력해놓고 체력 관리, 유연성에 중점을 두는 거죠.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비슷한 패턴으로 지내고 있으니까 어느 정도 계획이 짜여 있는 거죠.

Q__그만큼 오랜 경험에서 오는 노하우가 있는 셈이군요.
비시즌에 훈련양이 워낙 많으니까 어린 선수들은 힘들긴 할 거예요. 비주전 선수와 주전 선수의 차이도 있고요. 팀 입장에서는 시즌에 많은 경기를 뛴 주전 선수들은 몸 관리 위주로 하거나 체력을 비축하는 식으로 진행하겠죠. 비주전들은 볼 운동을 많이 하고 기술 훈련이나 연습경기도 많이 하고요. 그래서 힘들다고 하겠지만 그걸 이겨내야 주전으로 뛸 기회를 잡을 수 있어요. 주전은 지금 잡은 기회를 위해 체력 관리를 잘해서 다음 시즌에도 유지하도록 해야 하고요. 결국 자신과 싸움입니다. 정규시즌에도 스트레스는 많이 받겠지만 비시즌에는 육체적인 스트레스와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같이 오거든요. 그걸 이겨내야 성장할 수 있다는 걸 후배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비시즌 훈련을 잘 소화해야 시즌 때도 버틸 수 있고 그걸 잘 이겨내면 더 좋은 선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Q__프로스포츠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단어 중 하나가 ‘세대교체’입니다. 워낙 베테랑인 만큼, 이 단어를 들을 때 다가오는 감정도 다를 것 같습니다. 가끔은 그런 분위기를 강요할 때도 있는데요.
세대교체가 필요한 건 맞아요. 시간이 흘러도 바뀌는 게 없으면 퇴보하니까요. 새로운 선수가 역량만 된다면 세대교체를 하는 게 맞죠. 하지만 실력에서 준비되지 않았는데 그냥 세대교체를 말한다? 그건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베테랑이지만 실력에서 밀린다면 자연스럽게 물러날 수밖에 없어요. 밑에서 새로운 선수들이 계속 올라오니까요. 새롭게 치고 올라오는 잘하는 선수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건 당연해요. 
나이를 먹고 ‘후배들 앞길 막는다’라면서 물러나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어요. 근데 그건 제가 막는 게 아니라 새롭게 올라올 선수가 저를 잡는 게 맞는 거죠. 그 선수가 저를 넘어서지 못하는데 제가 스스로 물러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새 선수가 저를 잡고 일어서야 진정으로 업그레이드된다고 생각해요.

Q__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건 프로는 실력으로 말하는 무대이기 때문일까요.
그렇죠. 실력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해요. 프로에서 살아남으려면 자기 실력과 자신감도 있어야 해요. 그래야 더 오래 버틸 수 있어요.

Q__여오현 선수 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게 ‘45세 프로젝트(45세까지 현역으로 뛴다)’ 인데요. 최태웅 감독이 플레잉 코치로 임명하면서 내린 임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맞아요. 감독님이 갑자기 이야기하시더라고요. “너는 충분히 할 수 있으니 45살까지 한 번 뛰어보자”라고요. 코치진도 많이 도와줄 테니 해보자고 하셨죠. 저로서는 선수로서 인정받는 셈이고 뛸 기회를 주는 거니까 감사했죠. 잘해보려 하고 있습니다. 



Q__실제로 2020~2021시즌까지 뛰면 V-리그 출범 이후 뛴 선수 중 역대 최고령 선수가 됩니다(현재는 방신봉이 한국 나이 기준 43살까지 뛰어 역대 최고령 선수로 남아있다). 
그런 타이틀을 딴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그만큼 오래 선수로 뛰었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낄 것 같아요. 후배들에게 이만큼 오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그래야 후배들도 더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하기 위해 노력할 것 같고요. 제가 더 잘해야죠.

Q__‘45세 프로젝트’도 있지만, 그보다는 팀에 보탬이 되는 시기까지 함께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그렇다면 언제까지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일단 제가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구단 사정, 팀 사정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제가 선수로서 실력이 떨어지고 가치가 떨어진다면 구단에서 다른 결정을 내릴 수도 있죠. 제가 나갈 수도 있고요. 일단 제가 선수로서 가치가 있는 동안은 계속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Q__여전히 건재한 기량을 과시하고 있지만, 프로 선수에게 은퇴는 불가피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언젠가는 찾아오는 것인데, ‘은퇴’를 떠올리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많이 공허할 것 같아요. 누군가 은퇴한다는 기사를 보고 가끔 생각해보면 공허할 것 같고, 또 시원섭섭할 것 같아요. 그간 힘들었던 선수 생활을 접고 제2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도 있을 거고요. 하지만 지금 생각하기는 이르다고 봐요. 은퇴는 나중에 때가 됐을 때 생각하려 해요. 지금은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일찍부터 그런 거에 연연하면 안 된다고 봐요. 지금 주어진 시간을 보내는 것도 버겁거든요. 은퇴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는 것 같아요. 


자타공인 한국 최고의 리베로
여오현은 11월 30일 기준 V-리그 통산 출전 경기 수(499경기), 디그 성공(4,955개), 리시브 정확(7,357개)에서 모두 1위에 올라있다. 리시브 정확과 디그 성공은 앞으로 넘어설 선수가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압도적인 기록을 보유 중이다. 기록에서부터 리베로로는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 여오현. ‘리베로 그 자체’로 불릴 수 있을 만한 전설로부터 리베로에 대해 들어보았다.

Q__여오현 선수 하면 빠지지 않는 수식어가 ‘한국 최고의 리베로’입니다. 이런 표현을 들으면 어떤가요.
감사하죠. 어쨌든 ‘최고’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건 선수로서 감사한 일이니까요. 자부심도 느껴지고요. 한편으로는 책임감과 부담감도 느껴져요. 그만큼 저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뜻도 되니까요.

Q__실제로 현재 많은 후배 리베로들이 롤 모델로 여오현 선수를 뽑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뿌듯하죠. 고맙기도 하고요. 지금 대표팀에 뽑힌 이상욱, 정민수 선수도 정말 잘하는 선수들이에요. 그런 선수들이 리베로에서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Q__리베로라는 포지션 자체가 1997년에 생겼습니다. 리베로라는 포지션이 없었다면 실업 리그까지 오기도 힘들었을 거라는 말을 한 적도 있습니다.
아마 그랬을 거예요. 리베로라는 포지션이 생기기 전까지, 대학에서는 윙스파이커였거든요. 이 작은 키로요. 이 신장으로 실업리그에서 윙스파이커로 공격할 수 있었을까요? 그전에 뽑히기는 했을까요. 저는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만약 리베로라는 포지션 없이 대학을 졸업했다면 유소년을 가르치거나 다른 쪽에서 지도자를 하고 있었을 것 같아요. 

Q__리베로라는 포지션이 생기면서 실업, 더 나아가 프로 선수로도 뛰고 있는 만큼 리베로를 향한 애착도 남다를 듯합니다.
그럼요.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였으니까요. 제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인 셈이죠. 제 인생에 정말 값진 선물이었고요. 저는 시기적으로도 그렇고 복이 많았던 것 같아요.

Q__대학에서 처음 리베로 훈련할 때 ‘나한테 딱 맞는 포지션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나요.
처음에는 어색했죠. 새롭게 시작하는 일이 다 그렇잖아요. 그전까지는 공격도 하는 윙스파이커였는데 뒤에서 받기만 하니까 뭔가 어색하고 내가 배구를 하는 건가 싶었죠. 반만 하는 거니까요. 예전에는 받고 때리고 서브도 때렸는데 이젠 뒤에서 받고 구르기만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팬들이 리베로의 가치를 알아주고 저도 알게 되니까 자부심이 생기더라고요. 사실 리베로를 막 시작할 당시에는 공격수만 주목받는 게 질투가 나기도 했어요. 제가 잘 받았고 공격수가 점수를 냈는데 점수 낸 선수만 주목받으니까요. 하지만 요즘은 기사에서도 리베로 활약을 자세히 언급해주잖아요. 그런 부분은 예전보다 좋아진 것 같아요.



Q__여오현 선수 이후에도 많은 단신 선수들이 리베로로서 프로 무대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후배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후배 리베로 중에 같이 경기하면서 저보다 훨씬 잘한다고 느끼는 선수도 많아요. 하지만 단순히 잘하는 걸 넘어서서 자신을 더 보여줄 수 있어야 해요. 실력에 있어서 ‘잘하는 선수’로 끝나면 안 되거든요. 코트에서, 내 구역에서는 나라는 존재를 더 보여줘야 해요. 실력 외에도 파이팅이나 쇼맨십 같은 것도 가끔 필요해요. 공격수들이 득점하고 보여주는 행동, 세리머니를 리베로도 보여줄 수 있잖아요. 내가 잘 받고 득점이 나면 공격수랑 하이파이브도 하고, 관중 호응도 끌어내는 거죠. 그런 면이 필요해요. 그냥 뒤에서 묵묵히 받기만 하면 주목받을 수 없어요. 후배들이 그런 점도 더 챙겼으면 좋겠어요.

Q__리베로가 예전보다는 확실히 주목받는다는 걸 체감할 수 있는 부분에는 뭐가 있을까요. 
당장 올해 신인드래프트만 보더라도, 고졸 리베로인 장지원 선수가 1라운드에 뽑혔잖아요. 이것만 보더라도 공격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수비도 중요하고 그걸 이끄는 리베로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은 거로 생각해요. 

Q__<더스파이크> 2019년 2월호에 실린 ‘리베로의 역할부터 살아가는 법까지’ [리베로 집중탐구]를 통해서도 물어봤지만, 좋은 리베로가 되기 위해 중요한 요소가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신체적으로는 키가 크다고 못 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자기만의 감각은 있어야 하죠. 순발력도 중요하고요. 공격수 특성을 잘 파악하고 계속 연구해야 해요. 그 내용을 머릿속에 넣어놔야죠. 그 이후에 리시브, 디그를 잘하는 방법은 노력하는 수밖에 없어요. 아무리 옆에서 조언해줘도 자기가 깨달아야 해요. 배구라는 종목이 생각보다 예민해서 볼 컨트롤도 좋아야 하고 센스, 감각도 있어야 하거든요. 노력하지 않으면 힘들어요. 그리고 자신감이 정말 중요해요. 내가 범실을 하나 하더라도 다음에는 잘 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과 배포가 있어야 해요. 솔직히 말하면 저도 상대 팀에서 강서브나 까다로운 서브를 구사하는 선수가 나오면 저한테 안 왔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생각해요. 아니면 범실 하길 바란다거나.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내게 오면 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해야 해요. 자신감을 잃는 순간 정말 힘들어요. 당시에 불안감에 대해서도 말한 적이 있는데, 자신과 싸움을 이겨내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Q__과거 김해란 선수가 6,000디그를 달성하고 리베로는 ‘견뎌야 하는 자리’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걸 버티지 못하면 정상에 설 수 없는데, 중간에 포기하는 선수도 여럿 있어 안타깝고, 힘든 길을 걷는 후배들에게 견디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는데요. 같은 베테랑 리베로로서 여오현 선수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맞아요, 정말 힘든 길이에요. 프로에서 뛰는 것도 정말 힘들지만 거기서 살아남는 건 더 힘들어요. 저도 많은 후배 리베로를 겪었는데, 보면서 ‘저 선수는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물론 후배 입장에서 자기 위에 잘하는 선배가 있다면 심적으로 힘든 것도 있겠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겨내지 못하면 결국에는 프로에서 살아남지 못해요. 내 위에 있는 선배를 넘어서야 나도 살아남는다고 생각하고, 그 선배의 장점을 가져와 내 것으로 만들겠다고 생각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어딜 가도 살아남지 못해요. ‘저 선배만 없으면 위로 올라설 수 있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절대 아니거든요. 앞에 장애물이 있다고 한다면, 언제까지 돌아서만 갈 수는 없어요. 장애물은 계속 앞을 가로막으니까요. 지금 내 앞에 있는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새로운 장애물을 만나도 넘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요. 잘하는 선배가 있어서 못 뛸 것 같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신을 보여줘야 해요. 그런 마인드를 후배들이 더 가졌으면 좋겠어요. 저도 처음 실업팀에 들어왔을 때는 마찬가지였어요. 기라성같은 선배들과 함께 있으니 주눅 들 수밖에 없죠. 어떻게 기를 펴고 다니겠어요.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자신에게 마이너스라고 생각하고 선배들과 부딪히고 더 자신 있게 나아가야 해요. 저도 선배들이랑 경기할 때 일부러 더 크게 소리 지르면서 앞에 나가서 볼을 받기도 했거든요. 더 당차야 해요.


양손 가득 챔피언 반지를 꿈꾸다
여오현은 이미 V-리그 통산 9회 우승으로 이미 V-리그 선수 중 가장 많은 우승 반지를 보유했다. 이미 여러 차례 우승을 겪어봤지만, 여오현은 우승을 말하자 “우승은 언제나 새로워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쁜 일이죠”라며 또 한 번 의욕을 불태웠다. 여오현은 이미 통산 열 번째 V-리그 챔피언결정전 반지를 향한 준비를 마친 것처럼 보였다. 

Q__2019~2020시즌 목표는 역시 우승일까요.
그렇죠. 팀 차원에서는 단연 우승이 목표죠. 개인적으로는 부상 없이 코트에서 재밌는 배구를 보여드리는 거예요. 

Q__2019~2020시즌까지 우승하면 열 번째 우승입니다. 양 손가락을 챔피언 반지로 모두 채우는 셈인데요. ‘10’이라는 숫자가 상징적인 의미도 있는 만큼, 다음 시즌 우승한다면 새로운 기분일까요.
한 번만 더 우승하면 양손을 다 펴는 건데, 이 아홉수를 빨리 털어냈으면 좋겠네요(웃음). 만약 또 우승한다면, 그냥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좋을 것 같다는 말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네요. 생각만 해도 좋은데, 그만큼 잘해야겠죠.

Q__다음 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위해 준비해야 할 사안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아직은 모르겠어요. 감독님이 어떻게 시즌을 운영하려고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죠. 저는 일단 제 준비를 잘하고 있어야 해요. 지난 시즌처럼 리시브 상황과 디그 상황을 분리하는 더블 리베로 체제를 다시 할 수도 있고요.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감독님의 팀 운영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준비하는 게 제 몫이라고 봐요. 항상 몸 상태와 경기력을 잘 갖춰놓는 거죠.



Q__팬들에게 한 마디 먼저 부탁드립니다.
선수들은 비시즌에도 새 시즌을 위해 정말 열심히 훈련하고 땀 흘리고 있습니다. 천안에서 배구하는 건 항상 즐거워요. 우리 선수들도 팬 여러분이 재밌고 즐겁게 체육관에서 배구를 즐길 수 있도록 노력 중입니다. 항상 천안을 가득 채워주셔서 감사하고 다음 시즌에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Q__마지막으로 각오도 부탁드려요.
팀이 좋은 성적을 내도록 노력하는 건 당연하고요. 현대캐피탈만의 즐겁고 신나는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도록 저도 뒤에서 더 열심히 뛰어다닐 겁니다. 팬 여러분이 다음 시즌에도 배구를 재밌게 볼 수 있도록 더 크게 소리치고 열심히 뛰겠습니다. 

여오현
생년월일 1978.09.02
소속 현대캐피탈
신장/체중 175cm/70kg
포지션 리베로
출신교 대전중앙고-홍익대
프로 입단 2000년 삼성화재 입단
주요경력  
2000~2013 삼성화재
2013~ 현대캐피탈
2005, 2005~2006, 2006~2007, 2009~2010 
V-리그 수비상
2014~2015, 2015~2016 V-리그 베스트7 리베로
2002 부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금메달)
2006 도하 아시안게임 국가대표(금메달)
2006 세계남자배구선수권 국가대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동메달)
V-리그 10주년 올스타 리베로 부문 선정


글/ 서영욱 기자   
사진/ 유용우 기자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10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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