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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심판은 자긍심 갖고 일할 수 있는 직업” KOVO 최재효 심판
서영욱(seoyw92@hanmail.net)
기사작성일 : 2019-10-01 03:21

V-리그를 구성하는 요소는 많다. 선수들이 관중들의 함성속에 경기를 펼치고 진행요원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경기 운영을 돕는다. 또 하나 프로배구 경기에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심판이다. 

 

<더스파이크>는 새 시즌을 앞두고 KOVO 중견 심판을 만나 V-리그 심판의 세계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다. 주인공은 경력 17년차 최재효 심판(46)이다. KOVO 심판 가운데 판정이 정확하고 경기 운영이 깔끔하기로 정평났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프로배구 심판에 대한 인식과 자격조건, 그리고 심판이 되는 길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8월 초순에 열린 KOVO 심판아카데미 현장에서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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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에서 심판으로…17년차 베테랑 심판

Q__올해로 심판을 하신 지는 얼마나 되었습니까.
제가 2002년부터 심판을 시작했습니다. 올해로 17년 정도 됐네요. 심판 중에서는 중간 정도입니다.


Q__선수 출신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네, 그 전에는 서울시청 선수로 뛰었습니다. 프로가 생기기 전이었죠. 선수 시절에는 세터였어요. 그러다가 선수를 그만두고 이것저것 많이 했습니다. 사업도 하고, 학생들 지도하는 코치도 했고요. 프로배구가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심판 쪽으로 나가게 됐죠.

 

Q__심판이란 직업을 생각하신 계기가 있다면요.
제가 사회생활 할 때 심판은 직업 개념이라기보다는 봉사 개념이었어요. 배구선수 출신들이 대회 장소에 가 심판으로 봉사하는 수준이었죠. 그렇게 몇 번 배구장에 가면서 옛 생각도 많이 났고, 설렘도 느꼈어요. 그 설렘 때문에 심판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프로가 생기면서 전문 심판으로 나섰고요.
이전에 코치도 해봤지만 한 팀이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이 정말 엄청납니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요. 그 외에 학교 행정, 선수관리 등 신경 써야 할 것이 정말 많아요. 반면 심판은 나 혼자와 싸움이죠. 저한테는 이쪽이 성격에 맞았습니다.


Q__코치는 어디에서 하셨던 건가요.
제가 사는 곳이 부산이니까요. 부산 지역 내 학교에서 했습니다. 명륜초등학교, 동래중학교, 경남여중 등이었어요.


Q__심판이란 직업을 향한 인식이 어떻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배구심판은 실질적으로 타 종목에 비해 크게 이슈가 되고 있진 않아요. 그렇지만 심판이라는 직업 자체가 칭찬보단 비난을 많이 받는 직업이죠. 선수에게, 지켜보는 관중에게 말이죠. 제가 선수생활을 할 때도 심판을 향해 속으로 비난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 때는 심판이 훨씬 권위적이기도 했고요. 지금은 권위적인 분위기가 많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인식이 좋지 않아요. 여러 아마추어 현장을 가보면 심판을 하고 싶다고 하는 학생들이 별로 없어요. 요즘에는 전력분석관 쪽에 관심이 많더군요. 심판은 어렸을 때부터 시작해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한데 하려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아쉬운 상황입니다.

 

Q__지원자가 적다는 건 그런 인식 때문일까요.
확실히 인식이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심판은 ‘표적’이 되는 직업이잖아요. 잘 해야 본전이고요. 보통 심판을 두고 ‘가장 좋은 심판은 드러나지 않는 심판’이라고 말을 많이 합니다. 잘 하면 안 드러나고, 못 하면 욕을 먹고 하니 젊은 사람들이 꺼려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Q__그래도 배구심판은 다른 종목과 비교할 때 인식이 괜찮은 편인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그건 맞습니다. 하지만 구조적인 문제는 분명해요. 대부분 운동선수들이 학업을 등한시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제 심판을 하려면 규칙서 공부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익숙한 환경이 아니고 공부를 해야 하니 그 부분을 많이들 어려워해요.
이런 부분을 개선하고자 최근에는 대한민국배구협회 상임심판들이 현장에 자주 나갑니다. 학교에 나가서 규칙도 알려주고, 심판이라는 직업의 장점을 홍보하죠. 최근에 시작한 것인데 좀 더 빨리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KOVO 심판과 협회 상임심판. 그리고 국제심판

Q__상임심판이란 건 무엇인가요. 또 KOVO 심판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궁금합니다.
국가에서 보조하는 심판을 만들자는 취지로 생긴 것입니다. 생긴 지 약 5년 정도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배구에는 13명이 있고 타 종목에 비해 많은 편입니다. 그분들은 아마추어 대회에서 활동하시죠. (상임심판제도는 2014년 9월 시작됐다. 공정성 시비 우려가 높은 배구, 핸드볼, 태권도 등 10개 종목이 그 대상이었다.)
KOVO 심판은 프로배구에서 활동하는 분들이죠. KOVO심판은 1급부터 3급까지 등급이 있습니다. 1급 심판은 아마추어 대회에 나갈 수 없고요, 나머지는 아마추어 무대에 나설 수 있습니다(상임심판만 아마추어 대회에 나서는 건 아니다). 

 

Q__1급이 가장 높은 건가요.
맞습니다. 매년 평가를 통해 급수를 새로 설정합니다. 그 외에도 국제심판 자격이 있다면 급수 상관없이 국제대회에 나설 수 있습니다. (지난 시즌까지는 최재효 심판이 KOVO심판 중 유일한 1급 심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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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__그렇다면 현재 KOVO 심판은 몇 명인가요.
지난 시즌까지 해서 총 24명이 있었습니다. 주·부심 투입 가능한 심판은 그 중 9명이었고요. 지난 2년 동안 결원이 많이 생겨 조금 힘들었는데요, 올해는 주·부심이 1~2명 정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또 이번 심판아카데미를 통해 선심도 더 받을 예정입니다(이번 심판아카데미에는 6명이 선심에 도전했다. 그 중 4명이 다음 시즌 선심으로 활동할 자격을 얻게 됐다).

 

Q__심판 처우에 대해서도 궁금해요.
지난 시즌부터 기본급에 경기별 수당을 주는 식으로 제도가 바뀌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계약 시 급수에 따라 1년 연봉을 책정하고 매달 지급하는 구조였죠. 잘하는 심판들이 더 자주 현장에 나가 임금에 격차를 두자고 생긴 제도입니다. KOVO 심판은 1년에 약 8개월 정도 일을 합니다. 비시즌 4~5개월 정도는 일이 없는 셈이죠. 그 사이 다른 일을 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연봉이 많다고 하기에도, 그렇다고 적다고만 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Q__비시즌에는 국제대회에 많이 참가할 수 있지 않나요.
국제심판 자격이 있는 경우에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큰 대회가 아니라면 수입이 많지 않아요. 봉사 개념으로 가는 경우가 많죠.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나 올림픽, 월드컵 정도 되어야 적절한 수입이 생겨요. 저는 국제심판 C등급이어서 아직 큰 대회까지는 참가하지 못합니다. 비시즌 다른 심판들을 보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다른 직업을 잠깐 하는 경우도 종종 보여요.

 

Q__국제심판도 등급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A, B-, B, C등급으로 나눌 수 있죠. 국제심판의 경우에는 각 나라 배구협회 규모에 따라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배구는 유럽이 주로 하고 있으니 유럽 심판들이 높은 등급을 많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막혀있는 건 아닙니다. 본인 노력 하에 충분히 등급을 올릴 수 있죠. 우리나라에도 강주희 심판이 A등급, 성혜연 심판이 B등급을 갖고 있습니다.

 

Q__등급을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심판들도 매 경기 심판감독관에게 평가를 받습니다. 정심과 오심으로 평가를 받는 건 기본이고 그 외에 운영능력에 대해서도 평가가 내려집니다. 국제대회에서는 특히 언어능력을 중시합니다. 최근 비디오판독이 확대되면서 대화할 일이 많아 더욱 중요해졌죠. 아시아 쪽 심판들은 그 부분이 약해 등급을 받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한편 최재효 심판은 인터뷰 후에 열린 2019 신한금융 서울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에서 국제심판으로 활약했다. 특히 최 심판은 일본과 태국 간 결승전에서 주심으로 나서며 한국심판의 위상을 높였다.)


“심판에게 가장 중요한 건 ‘바른 심성’이죠”

Q__심판에겐 어떤 덕목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하시나요.
개인적으로는 ‘바른 심성’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심판은 본인을 내세우는 순간 바른 판정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양 팀이 편하게 경기를 할 수 있도록 정확하게 판정하고, 관중이 불편하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그러나 사람이다 보니 완벽할 수 없습니다. 그럴수록 주변 의견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게 필요하죠. 심판 대 선수, 감독이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다가가는 인격이 중요하죠.


Q__좀 더 자세하게 말씀 부탁드립니다.
심판 가이드라인에도 보면 ‘심판은 감독, 선수들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라고 적혀 있어요. 적절한 관계를 유지해야 서로 신뢰가 쌓입니다. 신뢰가 있어야 판정에 믿음을 갖고 따르죠. 또 심판이 실수를 하더라도 심판 스스로가 인정하고 사과한다면 선수들도 별 다른 항의하지 않고 넘어갑니다. 그런 점이 심성과 연관 있다고 생각해요.

 

Q__오랜 기간 심판을 하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나요.
(긴 고민 끝에) 아무래도 처음 주심을 봤을 때가 아닐까요. 정확한 연도는 기억 안 나지만 중고연맹 경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정말 다리가 진정이 안 되더군요. 어떻게 경기를 마무리하고 나왔는지가 기억이 안 날 정도입니다. 또 프로배구에서 처음으로 주심을 맡았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그건 아마 2008~2009시즌이었을 겁니다. 당시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이 구미를 홈으로 쓸 때였어요. 삼성화재와 경기였는데 그 때 간만에 다리를 떨었죠(웃음).

 

Q__그렇다면 기억에 남는 판정도 있을까요.
정심보단 오심이 기억에 남네요. 2004년~2005년 사이에 열린 아마추어 대회였어요. 소년체전을 앞두고 열린 대회에서 경북사대부중과 대전 중앙중이 결승전 경기를 펼쳤죠. 주심으로 올라갔는데 듀스 상황이었어요. 경북사대부중이 한 점만 올리면 경기에 승리하는 순간이었는데 제가 터치아웃을 선언해 다시 듀스로 돌입했어요. 당시 그 판정으로 인해 세트를 내주고 경북사대부중이 경기에 패했어요. 나중에 경기 끝나고 선수, 감독에게 물어보니 정말 안 맞았다고 하더라고요. 그 괴로움이 이후 6개월 정도 저를 괴롭혔어요. 감독님께서 괜찮다고 하셔서 한 시름 놨지만, 당시에는 ‘심판을 그만둬야 하나’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상황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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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__저는 정심을 잡아내 짜릿했던 기억을 말씀하실 줄 알았어요.
심판 초기에는 그런 경험이 짜릿했어요. 그런데 지금 후배들에게 조언하라고 하면 ‘그 짜릿함에 빠지지 마라’라고 하겠어요. 그 맛에 빠져들다 보면 상상판정을 할 수가 있어요. 심판은 매 순간 정확해야 하기 때문에 본 것 그대로 판단해야 하죠. 요즘에는 비디오판독이 워낙 잘 돼 있어서 좀 덜 하긴 하지만, 이런 맛은 주심만 볼 수 있는 것이네요.

 

Q__비디오판독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요.
처음 도입될 때는 불안했어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심판들이 ‘우리를 감시하는 게 아닌가’하고 생각했죠. 권위도 떨어지지 않을까 했는데 요즘에는 다들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 실수로 인해 손해를 보지 않아도 되니까요. 다들 좋은 제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국제배구연맹(FIVB)에서는 세트당 2개씩, 또 오심이 나오면 계속 쓸 수 있게 하고 있어요. 한국은 경기 지연 이슈를 들어 세트당 하나씩만 쓸 수 있게 하고 있죠. 그러다 보면 결정적인 경우에 문제가 생기곤 해요. 급박한 순간에는 심판들이 비디오판독을 하고픈 경우도 있어요. 실제로 FIVB에서는 심판이 무제한 요청할 수 있게 제도를 마련해 놨어요. 한국도 비디오판독 시스템이 잘 마련돼 있으니 좀 더 자주 쓸 수 있게 하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서로 억울함을 만들지 않을 수 있어 좋은 제도라 생각합니다.

 

Q__지난 KOVO 워크숍에서도 나왔던 이슈 중 하나네요.
그 때 의견을 들어보면 오히려 감독 분들이 ‘제도 바꾸지 말고 지금 그대로 하자’라고 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실제로 그런 상황에 맞닿으면 손해를 보는 건 팀이니까요. 저는 더 자주 쓸 수 있게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심판 지망생이 등장하길


Q__더 많은 사람들이 심판에 도전하셨으면 한다고 하셨어요.
배구장에는 꼭 필요한 구성원들이 있어요. 심판도 그 중 하나죠. 많은 사람들이 심판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도전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선수 은퇴 후에도 계속 배구장 위에서 생활하려면 심판만큼 좋은 직업이 없습니다. 노력만 한다면 국제심판도 할 수 있고요. ‘배구 발전에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라는 자긍심을 갖고 일할 수 있어 좋은 직업입니다. 좀 더 많은 분들께서 도전해주길 바랍니다.

 

Q__‘이런 부분이 좋다!’라고 어필 한 번 해주세요.
이런 건 정말 잘 이야기해야 하는데요(웃음). 심판은 자기 시간이 많은 직업이에요. 시즌 중에는 바쁘지만 8개월 정도 일하고 나머지를 자기 발전에 쓸 수 있죠. 또 전문직이기 때문에 경험을 충분히 쌓는다면 다른 사람이 쉽게 본인을 대체할 수 없죠. 능숙해진다면 만 58세까지 길게 할 수도 있습니다.
또 국제심판은 세계 여러 곳을 다녀볼 수 있어요. 유럽 내 많은 국제심판들이 그 부분을 굉장한 장점으로 꼽곤 하죠.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기회도 되고요. 

 

Q__감사합니다. 끝으로 스스로 설정한 목표 한 가지만 부탁드립니다.
심판으로 오래 활동하고 있지만 할 때마다 어려운 게 이 직업입니다. 더 완벽해지려고 애를 쓰고, 경기 끝나고 나면 복기를 하지만 그래도 쉽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심판이 되기 위해 더 노력하겠습니다. 또 국제심판으로서는 아직 전 병아리입니다. 더 발전하기 위해 나름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요즘 즐겁고 재밌습니다. 이런 재미를 보다 많은 분들이 알고 더 많은 심판이 나오길 바랍니다.  

 

 

글/ 이광준 기자  
사진/ 문복주 기자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9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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