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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한항공 임동혁이 그리는 오늘과 내일
"국가대표는 어릴 때부터 꿈…운동 싫을 때면 가족 떠올려요"
이정원(ljwon0523@hanmail.net)
기사작성일 : 2019-07-28 13:41
배구 팬들은 국제배구연맹(FIVB) 주최 2019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 한국 남자배구를 볼 수 없었다. 지난해 출전권을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남자배구는 내년 도쿄올림픽 출전 전망도 밝지 않다. 이같은 암흑기에 한가닥 빛을 밝혀줄 스타는 없을까. 최연소 남자국가대표 타이틀. 고졸 출신 프로 선수. 토종 아포짓 스파이커. 이 모두에 해당하는 선수가 있다. 바로 대한항공 임동혁이다. 프로 3년차에 접어들었지만 그의 나이 만 20세다. 한국 남자배구의 미래는 임동혁의 성장과 발전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동혁은 정말 한국 남자배구 기둥이 될 수 있을까.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대한항공 배구연습장을 찾은 이유다.

프로 3년차 선수가 된 ‘최연소 국가대표’
임동혁은 2017년 남자부 신인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6순위로 대한항공 지명을 받았다. 그 때 당시 임동혁은 갓 19살, 제천산업고 졸업반 선수였다. 

그가 선택한 길은 일반적인 행로는 아니다. 남자배구선수들은 대부분 대학 졸업 또는 대학 3, 4학년때 프로 무대를 밟는다. 2m가 넘는 신장에다 엄청난 잠재력을 품은 임동혁을 두고 많은 프로 구단이 러브콜을 보냈다. 결국 임동혁은 대학 대신 일찌감치 프로 무대로 나섰다.

이미 오래 전부터 임동혁은 많은 주목을 받았다. 될성부른 떡잎이라는 기대를 한껏 받으며 2015년 최연소 성인대표팀에 뽑히기도 했다. 여러 매체가 그를 ‘한국 남자배구 미래’라고 소개했다. 그 유망주는 벌써 프로 3년차 선수로 자랐다.

임동혁은 “어릴 때는 프로에만 가도 성공하는 거라 생각했다”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 프로에 온 것이 좋은 일임에는 분명하다. 그렇지만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이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음이 있고, 또 다음이 생긴다는 걸 알게 됐다. 안주하지 않고 다음 목표를 생각하고 있다.” 

꽤 지나긴 했지만 드래프트 진출을 결정했던 당시 생각이 궁금했다. 임동혁은 “프로로 곧장 가겠다는 생각이 크긴 했다. 그렇지만 주변에서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찬성하는 목소리도, 우려 목소리도 있었다”라며 “결정하기 힘들었지만 미래를 생각했다. 워낙 이전에 많이 때려 몸도 성치 않았다. 그렇게 대학에 가면 다시 많이 때릴 게 뻔했다. 프로에 가면 곧바로 주전으로 뛰지 않고 어느 정도 훈련 기간을 거칠 거라 예상했다”라고 했다.

이어 “다행히 운 좋게 박기원 감독님께서 지명해주셨고 대한항공에 오게 됐다”라고 덧붙였다. 임동혁은 고교 시절 상대를 두렵게 하던 특급 에이스였다. 그러나 프로 무대 벽은 높았다. 외국인선수와 경쟁해야 하는 아포짓 스파이커 자리는 결코 쉽지 않았다. 상대 블로킹도 고교 시절과 비교하면 한없이 높았다. 단순히 키로 하는 배구는 더 이상 먹히지 않았다. 이제는 블로킹을 보고 이용하는 노련함이 필요한 때가 왔다.

그는 “사실 이전에는 큰 차이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라며 그 때를 돌아봤다. “고등학교 때는 그저 때리기만 해도 안에 거의 다 들어갔다. 프로에 가면 뭐가 다를까 싶었다. 그런데 프로에 오고 팀에서 하는 첫 연습경기부터 모든 생각이 다 바뀌었다. 내 공격 그 어떤 것도 먹히지 않았다.”

그렇게 슬럼프가 시작됐다. 마음먹은 대로 운동이 되질 않았다. 무엇보다 자신감 상실이 컸다. 의욕도 붙지 않았고 자꾸만 주눅이 들었다. “형들과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실력 차이도 많이 나는 걸 안 순간부터 자신감이 줄어들었다. 배구 뿐 아니라 생활면에서도 어려움이 컸다. 아무래도 대학을 지내고 오면 조금 덜 할 텐데 그 과정을 생략했으니 부족한 점이 많았다. 지난해 새로 들어온 형들과 비교해도 그랬다.”

일찍 프로 무대를 밟은 탓에 임동혁은 여전히 팀 막내다. 임동혁 이후에 입단한 최진성(1996년생) 이지훈(1995년생), 이승호(1996년생) 모두 임동혁보다 나이로는 형이다. 임동혁은 “생활을 적응할 때 쯤 형들이 들어왔다. 그 때부터 또 다른 적응이 필요했다. 프로 연차는 내가 선배여도 나이는 한참 어렸다. 그래도 형들과 함께 막내 생활을 한다고 생각했다. 형들이 잘 챙겨준 덕분에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했다”라고 설명했다.

대한항공 특유의 자율적인 분위기도 적응이 필요했다. 고교 시절에는 감독, 코치 지시에 따르기만 하면 됐다. 그러나 프로는 달랐다. 알아서 부족한 것을 찾아야 했고 생활도 스스로 조절해야만 했다. 

임동혁은 “처음에는 ‘이렇게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자유로웠다. 훈련도, 생활도 그랬다. 그러나 점점 익숙해졌다. 훈련은 단순한 반복 훈련이 아닌 훨씬 다양하고 예측할 수 없는 훈련이었다. 매일 뭘 배울지 기대를 하게 했다. 다들 자유롭게 생활하면서도 지킬 것은 지키니 서로 트러블도 없고 오히려 훨씬 잘 돌아갔다“라고 말했다.



챔프전서 폭발한 잠재력에 자신감 충만
입단 후 맞은 슬럼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계기’가 필요했다. 임동혁은 그럴수록 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을 기회로 삼았다. 스스로를 단련하고 몸을 갖추는 시간으로 생각했다.

그는 “첫 해에는 ‘이렇게 해선 아무것도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죽어라 운동에 매진했다. ‘지금 당장이 아닌 내년을 보자’라는 마인드로 정말 열심히 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일깨울 터닝 포인트가 필요했다. 한 경기만 실전에 나서서 잘 하면 뭔가 풀릴 것 같았다”라고 이야기했다.

그 터닝 포인트는 아마 많은 배구 팬들이 알고 있는 그 경기다. 바로 지난 2018~2019 도드람 V-리그 남자부 챔피언결정 2차전, 대한항공과 현대캐피탈 경기였다. 임동혁이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전까지 아포짓 스파이커로 뛰던 외인 가스파리니가 체력 문제로 한창 힘들어할 때다. 다음 교체 선수인 김학민(KB손해보험)은 발목이 좋지 않아 제 컨디션을 내지 못했다. 박기원 감독은 주저 없이 임동혁을 투입했다.

임동혁은 2세트부터 가스파리니를 대신해 뛰었다. 초반엔 다소 주춤했지만 3세트부터는 달랐다. 3세트 초반 연속 서브에이스로 기세를 살린 임동혁은 지금껏 숨겨뒀던 공격 본능을 마음껏 폭발했다. 이날 임동혁은 서브에이스 2개를 포함해 20득점, 공격성공률 62.07%를 기록했다. 두 세트를 먼저 내준 대한항공은 임동혁 활약에 힘입어 세트스코어 2-2 동률을 맞췄지만 5세트까지 간 승부 끝에 무너졌다.

임동혁은 “생각을 바꿀 수 있게 된 계기였다”라고 그 때 경험을 설명했다. “고등학교 때 내 역할은 주 공격수였다. 내가 안 풀리고 무너지면 팀 전체가 무너지곤 했다. 그걸 3년 동안 했으니 ‘내가 해야된다’라는 마인드가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프로는 그게 아니었다.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할 수 있었다. 다른 형들은 나보다 능력도 좋고 구력도 높다. 부담을 내려놔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챔프 2차전 당일 아침에는 ‘마음을 비우자. 형들이 도와준다’라고 생각하면서 경기에 나섰다. 그래서 경기력이 좋게 나왔다.”

그 전에는 원 포인트 서버 역할을 주로 했던 임동혁이다. 사실상 이번 챔프 2차전이 그에게는 첫 챔피언결정전인 셈이다. V-리그에서 가장 큰 무대에서 뛴 소감은 어땠을지 궁금했다.

“주말이고, 중요한 경기였다. 그래서 정말 많은 팬들이 계양체육관을 찾았다. 경기장에 딱 들어가는 순간 멍했다. 그러던 중 관중석에서 어머니가 계신 걸 봤다. 초등학교 때부터 함께 지낸 임성진, 조용석(이상 성균관대) 두 친구도 찾았다. 자리가 없어서 서 있는데 내가 들어가는 순간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부끄럽고 싶지 않았다.” 임동혁의 말에서 결연함이 느껴졌다.

계속해서 임동혁이 말을 이어갔다. “처음 들어갔을 때는 잘 안 풀렸다. 그런데 이후 (한)선수 형이 연속으로 올려준 게 득점으로 이어졌다. 거기서 자신감을 얻었다. 그 날 감독님께서 내게 무슨 말을 하셨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난다. 그만큼 많이 긴장했다. 그렇지만 하나 확실한 건 그 날이 내 터닝 포인트라는 점이다. 아마 나중에도 내 인생 경기를 꼽으라고 하면 그 날이 될 것 같다.”

단 하루, 몇 시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경험은 앞으로 임동혁 배구선수 생활에 있어 가장 커다란 자산으로 남을 것이다. 어두운 터널 속에서 조그마한 빛을 발견한 것처럼, 임동혁 마음속에서 ‘자신감’이라는 씨앗이 다시금 자라나기 시작한 날이었다.

임동혁도 이에 동의했다. “그 날 이후 정말 많은 분들에게 칭찬을 받았다. 마음 한 편에 있었던 불안감, 부담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날이었다. 비록 바로 다음 3차전에 투입돼 많은 모습 보여주지 못했지만, 그 모든 것이 다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챔프 2차전이 임동혁에게 특별했던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어머니다. 어머니께서는 아들 경기 때면 늘 찾아와 응원을 하셨다. 그렇지만 어머니가 함께 한 경기는 꼭 아들 경기내용이 좋지 않았다. “어머니께서 본인 때문에 지는 것 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징크스를 만들면 안 된다. 매일 꼭 오시라’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 경기가 챔프 2차전이었다. 그 날 비록 경기를 패하긴 했지만 경기를 잘 치러서 어머니 부담을 덜어드릴 수 있었다.”



소중한 가족, 그리고 특별한 친구들
임동혁에게 가족은 특별한 존재다. 지치고 힘이 들 때면 늘 가족을 떠올린다. 지난 2018년 2월 아버지가 지병으로 별세한 이후 임동혁은 집안 막내지만 가장 노릇을 하고 있다. 

임동혁은 “가족을 생각하면 늘 힘이 난다. 나를 일깨우는 존재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운동이 하기 싫을 때면 가족을 떠올린다. 프로에 오기 전부터 집안이 어려웠고, 다 같이 열심히 살았다. 어머니와 누나를 내가 챙겨야 한다고 생각하면 나태해질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께 전화를 드린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따뜻한 위로보단 냉정한 채찍질을 하신다고. “그럴 때면 어머니는 ‘힘들 걸 예상 못하고 간 거냐’라며 ‘어디를 가도 다 힘들다. 힘들다고 나태해지지 말고 즐겨라’라고 하신다. 주로 채찍질을 하신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 정신이 번쩍 든다.”

두 살 위 누나는 임동혁과 친구처럼 친한 사이다. “다른 형제들을 보면 서먹한 경우가 많은데 나와 누나는 그렇지 않다. 나이 차이가 많이 안 나서 그런지 어려서부터 친구처럼 지냈다. 그래서 요즘 힘들다고 하면 전혀 믿질 않는다. 그것마저 장난인 줄 안다(웃음).”

보통 키는 유전이라고 하는데, 임동혁은 집안에서 혼자 독보적으로 크다. 어머니가 170cm정도로 그 시절에는 정말 큰 편이다. 그러나 친척을 둘러봐도 그리 큰 사람은 없다고 한다.

임동혁은 어렸을 때부터 개구쟁이였다. 늘 활발하고 장난을 많이 쳤다. 임동혁 스스로 “어렸을 때 공부를 못했다”라며 당시를 추억했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걱정해 일찍부터 운동을 하게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육상을, 그리고 2~3학년 때는 테니스를 쳤다.

문제는 쑥쑥 자라는 신장이었다. 초등학교 때도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컸다. 그 덕분에 당시 배구부가 있던 제천 의림초에 스카우트됐다. 배구를 하자는 제의를 처음 받았을 때만 해도 임동혁은 안 할 거라고 고집을 피웠다. 그러다가 주변 설득에 못 이겨 배구공을 잡은 순간, 맞춤옷을 입은 것처럼 즐거웠다. 그게 임동혁 배구의 시작이었다.

그 때 임동혁에겐 또 다른 힘이 될 친구들을 만났다. 바로 성균관대 윙스파이커 임성진과 리베로 조용석이다. 동갑내기 세 명은 함께 제천 의림초에서 배구를 시작해 제천중, 제천산업고로 다 같이 진학했다. 임성진과 조용석은 제천산업고 졸업 이후 함께 성균관대로 진학했다. 임동혁이 프로 진출하면서 뛰는 무대가 달라졌지만 여전히 가장 옆에서 서로를 응원하는 사이다.

임동혁은 “그 둘은 가장 친한 친구들이다. 대학에는 같이 못 가 아쉽지만 여전히 연락하고 지낸다. 지난 시즌 챔프 2차전 때 내 사진을 찍었던 게 이 두 명이다. 정말이지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사이다”라고 소개했다.

이어서 약간의 서운함도 토로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해 약 십 년을 한 팀에서 뛴 셈이다. 내가 프로에 오면서 헤어질 때는 정말 서운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자기들끼리 너무 잘 돌아다닌다. 그래서 섭섭할 때가 있다. 나도 좀 챙겨줬으면 좋겠다. 나중에는 꼭 세 명이 함께 프로 무대를 밟을 수 있길 기대하고 있다.”

고교 시절 임동혁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대형 선수였다. 압도적인 신장. 그리고 뛰어난 에이스 본능도 갖췄다. 득점을 책임질 줄 알았다. 임동혁이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제천산업고는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했다. 왼쪽에는 임성진, 오른쪽에는 임동혁이 버티고 있는 좌우 날개로 남고부를 위협했다. 남고부에서 전통 있는 강호 남성고와는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선 굵은 배구를 하던 제천산업고. 그리고 정 반대로 작은 신장의 선수들이 조직적인 배구를 구사했던 남성고 두 팀의 맞대결은 프로 팀 간 경기 못지않은 재미를 줬다.

고교 시절을 얘기하면서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임동혁은 “남성고와는 정말 자주 만나며 뜨겁게 경기했다”라며 당시를 돌아봤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늘 남성과 붙어 치열하게 싸웠다. 만날 때마다 경기 내용은 박빙이었다. 서로 만나면 누가 이길지 전혀 예상할 수가 없었다.”

사실 남성고 선수들과는 무척 친한 사이였다. 남성고 출신 최익제(KB손해보험), 강우석(성균관대), 김선호(한양대)는 임동혁, 임성진, 조용석 등과 함께 대표팀에도 자주 출전했다. 그렇지만 고교 경기 현장에서 그런 친근함은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더욱 진지하고 매서운 분위기에서 진행되곤 했다. 

임동혁은 “그래서 더 이기고 싶은 상대였다”라고 이야기했다. “대표팀에서 한 팀으로 싸울 때는 든든한 친구들이다. 그렇지만 운동이란 게 선은 꼭 필요하다. 다른 소속팀에서 만났을 때는 서로 적일뿐이다. 그래서 서로 경기할 때는 말 한 마디 섞지 않고 진지했다. 끝나고 나서 서로 수고했다고 이야기하는 정도였다.”

또한 “그런 라이벌이 있으니 운동에 동기부여가 됐고 경쟁 심리가 생겨 더 집중할 수 있었다”라고도 말을 더했다.



고졸 vs 대학진학? ‘서로 장단점 달라’
임동혁을 설명하는 여러 타이틀 중 하나가 ‘고졸 선수’다. 고졸 선수 중 곧바로 선발에 나서 경기를 뛰는 선수는 사실상 많지 않다. 많은 감독들이 고졸 선수를 뽑는 이유는 하나, 바로 가능성 때문이다. 그 가능성을 꽃피우기 위해서는 길고 긴 인고의 시간을 버텨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바로 주전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 확신하기도 힘들다. 가능성이 예상보다 낮을 경우에는 영원히 나서지 못할 수도 있다. 이는 비단 고졸 선수만이 해당되는 건 아니다. 수많은 신인 선수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고졸 선수들은 빠르게 프로에 와 배우며 적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대학에서 실전 경험을 쌓고 오는 것을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 그 경험의 시간을 고졸 선수들은 프로 팀 훈련으로 채워 나가는 셈이다. 

특히나 임동혁처럼 아포짓 스파이커 선수들은 더욱 힘들다. 대부분 경쟁 상대가 외국인선수들이기 때문. 그들과 경쟁에서 싸워 이겨내려면 조금의 노력으론 쉽지 않다.

임동혁은 고졸과 대졸 선수들을 비교하며 “서로 장단점이 다르다”라고 했다. “일찍 프로에 오면 연습을 하며 돈을 벌고, 나아가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만들어지는 과정을 거칠 수 있다. 그러나 정말 뛸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없고 버티지 못해 도태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반면 대학은 실전 경험을 쌓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렇지만 최근 대학교는 ‘C제로룰(학점이 C제로 이하인 경우 대회에 출전할 수 없는 법)’로 인해 운동과 공부를 병행한다. 그만큼 훈련 시간이 줄어든다. 그 점을 생각하면 바로 오는 것이 장점일 수 있다.”

임동혁은 바로 프로에 오지 않고 대학에서 생활 중인 두 친구, 임성진과 조용석을 떠올렸다. “두 친구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무래도 운동은 프로가 운동 쪽에만 초점을 맞추니 더 집중할 수 있다. 반면 대학에서는 운동과 함께 좀 더 다양한 경험을 한다.”

그렇다면 임동혁은 고졸 선수가 프로에 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포지션’에 따라 다르다고 했다. “만약 아포짓 스파이커라면 곧장 와도 좋다. 아포짓 스파이커는 공격에 초점을 맞추면 된다. 그러나 윙스파이커는 리시브, 공격, 수비까지 전부 다 신경을 써야 한다. 여러 가지를 대학에서 실전을 통해 배우는 게 낫다고 본다.”



대한민국 남자배구 미래를 책임지다
임동혁을 비롯해 최익제, 임성진 등 나이 대 선수들은 남자배구 미래를 책임질 세대다. 이들은 지난 2017년, 바레인 리파에서 열린 2017 FIVB(국제배구연맹) U-19 세계남자배구선수권대회에서 4위를 차지한 바 있다. 무려 23년 만에 달성한 4강 쾌거였다. 이들의 활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18년에는 U-20 아시아남자배구선수권대회에 출전, 이란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이 때 그들은 올해 열리는 U-21 세계남자배구선수권대회 출전권을 확보했다. 

그리고 이들은 7월 18일부터 바레인 마나마에서 열린 U-21 세계남자배구선수권대회를 7위로 마치고 지난 29일 귀국했다. 

임동혁은 이번 대회에서 U21 대표팀의 주포로 활약했다. 임동혁은 2017년 U-19 세계선수권에서도 대회 베스트 아포짓 스파이커, 그리고 득점왕을 차지했다. 팀 주포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보여줬다. 

그는 “국가대표는 어릴 때부터 꿈이었다. 어느 연령대 대표팀이어도 모든 건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나가는 것이다. 항상 나갈 때마다 자부심을 갖고 있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임동혁은 소속팀 대한항공에서는 막내 공격수지만 연령별대표팀에 가면 다르다. 막중한 책임감을 가진 주전 공격수다. 공격 비중이 늘어나니 그 동안 못 했던 공격을 마음껏 때릴 수 있다.

“확실히 소속팀보다는 연령별 대표팀 친구들이 편하다”라고 말한 임동혁이다. 형들과 함께 훈련하는 분위기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니 당연한 말이었다. 그는 “그렇지만 그만큼 부담감도 커진다. 내게 많은 게 달리기 때문이다. 그런 책임감은 소속팀에서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것이다.”라고도 했다.

미래에 성인 국가대표를 이끌어야 할 황금 세대라는 말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일지 궁금했다. 임동혁은 쑥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모든 분들이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신체적 조건이나 실력을 봤을 때 우리 또래 친구들 모두 누구 하나 꼽을 것 없이 다 유망주들이다. 매년 이렇게 국가대표를 위해 모이는 것만으로도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 된다.”

이어 “아무래도 우리 세대가 운 좋게 프로에 있으니 그런 소리를 많이 듣는 것 같다.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게 성장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최근 남자배구는 국제무대에서 침체기에 있다. 지난해 2018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는 최하위에 머물며 결국 참가자격을 박탈당했다. 그 외에도 아시아 무대에서조차 순위권에 들지 못하며 부진한 상태다. 젊은 세대를 향한 기대를 키우는 이유다.

임동혁을 향한 관심이 큰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바로 최근 끊어진 토종 아포짓 스파이커 맥을 이어가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박철우(삼성화재), 문성민(현대캐피탈) 이후 한국 남자배구에는 그렇다 할 정통 아포짓 스파이커가 없다. 위에 언급된 선수들도 이제 모두 3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젊은 선수들 중 인재가 나와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임동혁은 “언젠가 국가대표 한 축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며 “이전부터 언론에서 좋게 봐주시는데 그 기대에 부응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 그 기대가 말로만 끝나지 않으려면 내가 잘 해야 한다. 나중에 그 말이 사실이 될지 아닌지는 내게 달렸다”라고 본인에게 달린 책임감을 또 한 번 강조했다.


프로 조기 진출의 롤 모델
임동혁은 일찍 프로무대에 나선 선수들의 모델이 됐다. 바라보는 눈이 많다. 그는 “나라는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스스로 얼마나 배우려는 자세로 임하느냐가 중요하다. 그것에 따라 다음이 결정될 것이다”라고 어른스럽게 말했다. 

이어 “지난 시즌에는 한 차례 성장 계기가 있었다. 이번에는 그 계기를 발전시켜 기회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그 때 기억에 안주하지 않고 더 많이 가다듬겠다. 믿음에 보답하는 선수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덧붙였다.

다행스럽게도 소속팀 대한항공에는 성공적인 롤 모델이 있다. 바로 윙스파이커 정지석이다. 정지석 역시 고졸 선수로 대한항공에 와 약 3년 만에 꽃피웠다. 지금 날아다니는 정지석도 2년 반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다. 임동혁이 서두를 이유는 전혀 없다.

임동혁은 정지석과 절친한 사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인터뷰 현장에서 가장 친근하게 대한 선수가 정지석이었다. 장난도 스스럼없이 치는 모습이었다. “평소에는 정말 장난기 많은 형이지만 경기에만 들어가면 집중력이 엄청나다. 자존심도 강해 경기에서 지면 아무 말도 안 한다. 공과 사가 제대로 구분돼 있다. 정말 배울 점이 많은 형이다. 포지션은 달라도 마음가짐에 대해 많이 배운다.”

임동혁은 훗날 ‘임동혁’하면 모두가 알아보는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다가오는 시즌을 향한 각오도 한 마디 더했다. “다음 시즌에는 더 많은 걸 보여주고 싶은 게 꿈이다. 지난 시즌 챔피언결정 2차전이 단순히 운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싶다. 좋은 경험이었지만, 이제는 내가 넘어서야 할 기억이다. 내가 성장했다는 걸 모두에게 증명하고 싶다.” 

글/ 이광준 기자   
사진/ 문복주 기자, 더스파이크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7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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