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남지 않은 ‘배구여제 신기루’ 도쿄가 아니라 파리를 바라보라

매거진 / 김진회 기자 / 2020-04-04 08:03:08


한국여자배구의 인기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을 기점으로 상승기류를 탔다. 당시 성적은 시원치 않았다. 8강에서 탈락했다. 4년 전 런던올림픽 4강 신화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여자배구의 인기는 더 높아졌다. ‘배구 여제’ 효과가 컸다. 김연경(32·엑자시바시)이 코트에서 내뿜는 강력한 승부욕은 남성 팬심을 자극했다. 또 중성적 카리스마에 여성 팬심도 동요했다. 경기 중 내뱉은 욕설은 ‘식빵 언니’로 미화될 정도였다. 국가대표팀, 아니 정확히 말하면 김연경이란 매개체의 하늘을 찌를 듯한 인기는 여자프로배구 무대로 확산됐다. 여자배구는 더 이상 남자배구의 인기에 기대어 운영되던 곁다리가 아니었다. 남자부와 일정 분리, 동시간대 경기 진행 등 리그 운영 변화는 여자배구의 높은 인기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지난 3년간 남자부와 조금씩 격차를 줄여가던 여자배구는 2019~2020시즌 정점을 찍었다. 평균관중과 TV 시청률에서 남자부를 넘어섰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여자배구가 고공행진을 펼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특히 배구인들은 ‘거품’이 꺼질 날이 머지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겉은 멀쩡한데 마치 ‘속 빈 강정’ 같다고나 할까. 시스템이 준비되지 않으면 3~4년 안에 이 인기는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여자배구의 현주소와 도쿄올림픽 대신 4년 뒤, 아니 8년 뒤를 내다볼 수 있는 장기적인 프로세스를 갖추기 위해선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사진_여자배구 차기 주자 중 한 명인 강소휘

‘김연경 효과’ 언제까지 지속될까

우선 김연경의 나이를 생각해보자. 올해 만 서른 두 살이다. 도쿄올림픽은 사실상 김연경의 현역 시절 마지막 올림픽이 될 가능성이 높다.

김연경은 지난 1월 초 도쿄올림픽행 티켓을 따낸 뒤 “마지막 올림픽이라 간절함이 크다”면서 “이번에는 예감이 좋다. 마지막 도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라고 밝혔다. 배구인생에서 ‘마지막’이란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김연경이다.

그의 몸 상태도 체크해볼 필요가 있다. 김연경은 카자흐스탄과의 도쿄올림픽 아시아지역예선전을 치르면서 복근이 파열되는 부상을 했다. 안산 원곡중 시절 이후 처음으로 큰 부상이 찾아온 것. 30대의 나이를 무시할 수 없는 시간이 됐다.

무엇보다 김연경은 도쿄올림픽을 마지막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할 가능성도 높다. 게다가 김연경과 함께 10여 년간 대표팀 생활을 해온 양효진(31·현대건설)과 김수지(33·IBK기업은행) 한송이(36·KGC인삼공사) 김해란(36·흥국생명) 등 베테랑들도 김연경과 같은 결정을 내릴 공산이 크다.

이렇게 될 경우 여자배구대표팀은 전방위적으로 급격하게 세대교체를 이뤄야 하는 처지다.

이렇다고 해서 여자배구의 인기가 하루아침에 수그러들진 않을 전망이다. 김연경의 국내 복귀 카드가 남아있다. “배구인생의 마지막은 국내에서 할 것”이라고 밝힌 만큼 김연경이 2009년 일본 JT마블러스 진출 이후 국내로 돌아오게 되면 여자배구는 또 한 번의 부흥기를 맞을 수 있다.

무엇보다 세계에서도 통했던 언니들의 퇴장 이후 대표팀의 빈 자리는 이소영(26) 강소휘(23·이상 GS칼텍스) 이재영(24·흥국생명) 박정아(27·한국도로공사) 등 이미 V-리그에서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스타들이 채울 수 있다.

대체 변수는 크지 않다. 다만 김연경이 대표팀에 버티고 있을 때처럼 ‘당연하게’ 국제대회 호성적을 바랄 수는 없다.

결국 국제대회 부진은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 한 배구인은 “프로여자배구의 경기력이 떨어져도 한참 떨어진다. 몇몇 팀을 제외하곤 고교배구 수준이다. 이러 경기력을 유지할 경우 여자배구의 높은 인기는 3~4년밖에 남지 않아 보인다.

김연경과 또래 선수들이 은퇴한 대표팀은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거품이 빠지게 되면 여자배구의 민낯이 드러날 수 있다”라고 꼬집었다.

사진_‘황금세대’로 불린 2018년 신인드래프트. 현상황에서는 당분간 이만한 신인 풀을 기대하기 어렵다.


유소년 여자배구가 처한 현실

‘오르는 건 힘들어도 내려가는 건 쉽다’라는 옛말이 있다. 여자배구가 인기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선 역시 ‘스타’가 계속해서 나와 줘야 한다. 그러나 정작 현실은 암담하다. 한국중고배구연맹에 등록된 여중부 팀은 총 20개다. 여고부 팀은 19개. 연간 대회는 춘계연맹전을 비롯해 대통령배, 태백산배, CBS배, 영광배 등 다섯 차례 열린다.

헌데 매 대회에 출전하는 여중부와 여고부 팀수는 총 등록 팀수에 미치지 못한다. 지난해 춘계연맹전만 봐도 그렇다. 여중부 13개, 여고부 6개 팀밖에 참가하지 않았다. 심지어 대통령배 여중부에선 네 팀밖에 나오지 않아 풀리그를 펼칠 수밖에 없었다.

장신은 커녕 선수 자체가 없다. 배구는 6명이 하는 종목이지만, 인천 부평여중 같은 경우 선수가 7명밖에 되지 않는다. 부산 경남여중도 상황은 마찬가지. 충북 제천여고는 딱 6명 뿐이라 교체선수도 없는 실정이다.

장신자 발굴은 물론 유소년배구의 저변 확대, 산하 단체 관리는 대한민국배구협회(이하 협회)가 해야 할 몫이다.

그러나 협회가 소위 ‘행정 식물인간’이 된 건 오래된 얘기다. 한국배구연맹(KOVO)에서 국가대표팀 지원 명목으로 6억원이란 돈을 받아쓰며 코앞에 닥친 도쿄올림픽 준비만으로도 벅찬 모습이다.

대한민국 4대 프로스포츠 중 하나의 주최 단체에서 자리만 꿰차고 있는 배구인들을 비롯해 관계자들은 유소년 여자배구 발전을 위해 어떠한 노력도 하고 있지 않다. 당연히 4년 뒤 또는 8년 뒤까지 내다보는 장기 프로젝트는 기대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반면 일본배구협회(JVA)에는 철저한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일명 ‘JVA Gold Plan’을 통해 배구에 입문하는 초·중·고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세 가지 형태의 배구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또 ‘배구 리더’를 위한 훈련 프로그램도 만들어져 있고, 유치원생 등 저변 확대를 위한 노력들이 가미돼 있다. 선수들은 계속 발굴, 육성되고 있고 결국 풀뿌리가 튼튼한 일본 여자배구의 높은 경기력과 비례한 인기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

그저 JVA가 부러울 따름이다. JVA는 한국의 경기력향상이사 격인 경기력강화위원장(테라마와리 푸토시)을 코칭스태프에 포함시켜 놓았다. 나카다 쿠미 감독과 협업을 통해 선수들의 경기력 강화가 주된 목적이다. 무엇보다 분석관과 기술 강화 코치 모두 전임제로 운영하고 있다. 대회 때마다 클럽 팀과 트레이닝센터에서 지원받아 임시 형태로 대표팀을 운영하고 있는 한국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국 여자배구 어떤 비전이 필요한가

점점 선수층이 얇아질 것이란 건 뻔히 보이는 미래다. 하지만 협회에선 장기 플랜에 대해 전혀 고민하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협회는 어떤 시스템을 마련해 한국 여자배구의 국제경쟁력을 유지해야 할까. 큰 그림에선 인사 개편과 조직 개편이 필요하다.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특히 여자경기력향상 파트에 대한 고민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역시 지원부분이 가장 큰 이슈다. 전력분석파트를 강화시켜야 한다. 일단 이 부분이 안 되고 있다는 건 상대 분석이 전혀 안 되고 있다는 얘기다. 분석데이터를 축적하고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또 다른 분석이 이뤄져야 하지만, 해외 영상에만 의존하고 대회 때마다 임시적으로 방송사와 구단 전력 분석원을 활용하는 건 아마추어보다 못한 행정이다. 전력분석팀 또는 센터를 구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이번 도쿄올림픽 아시아지역예선 때만해도 그렇다. 협회는 여자대표선수들의 소집을 일주일 앞당겼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각 구단들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일주일 조기소집에 반대하지 않았지만 디테일하게 뜯어보면 안하느니만 못한 꼴이 됐다. 라바리니 감독도 없는 기간 선수들은 쉬면서 자율적인 웨이트 훈련을 해야 했지만, 웨이트 훈련이 몸에 베인 선수들은 거의 없다. 때문에 조기소집된 기간부터 근육량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후 라바리니 감독이 대표팀에 합류한 뒤에도 경기 위주의 훈련을 진행하면서 선수들의 몸은 오히려 더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재영은 대회 기간 걷기조차 힘든 상황에서도 진통제 주사를 맞고 투혼을 펼쳤다는 후문. 한 배구 관계자는 “라바리니 감독도 조기소집보다 선수들이 구단의 관리 속에 경기를 뛰고 소집되는 것이 경기감각 면에서 더 낫다고 했지만 협회는 아무런 관리 프로그램 없이 조기소집을 진행했다”라고 비난했다. 결국 3회 연속 올림픽 출전에 성공했지만, 이재영(흥국생명) 김희진(IBK기업은행) 등 대표팀에 차출됐던 선수들의 몸은 고장나고 말았다.

협회는 KOVO와 적극적인 협조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KOVO가 협회에 6억원이란 지원금을 주는 건 일종의 관리차원이다. 소속팀보다 못한 시스템이 갖춰진 대표팀에 자산인 선수들이 차출되는 것에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지원으로 협회가 대표팀 운영을 잘해달라는 의미다.

그러나 협회는 이 지원을 당연한 듯 바라보고 있는 모양새다. 오히려 소속팀보다 더 좋은 시스템을 갖춰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대표팀에 가고 싶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협회가 할 일이다. 그래야 태극마크의 가치가 더 올라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협회는 어떠한 프로세스도 갖춰놓지 않은 상태에서 알량한 자존심만 내세우고 있다. 협회의 이 같은 행정에 연맹은 지원금을 끊겠다는 논의를 한 두 번 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2020년, 올림픽의 해다. 경기구는 협회에서 먼저 챙겼어야 하는 이슈다. 국제대회에선 일본 브랜드 미카사를 사용하지만, 한국에선 국산 브랜드 스타를 사용하고 있다.

계약관계에 대한 이행도 지켜야하겠지만 연맹과 논의해 선수들을 먼저 생각하는 발걸음이 필요했다. 그러나 협회는 경기구 반발력조차도 제대로 체크하지 못했다. 결국 리그를 치르는 선수들은 리시브 적응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협회와 연맹의 보이지 않는 불협화음, 피해를 보는 건 결국 선수들이다.


글/ 김진회 스포츠조선 기자
사진/ FIVB, 문복주 기자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3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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