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 열정녀’ 루시아가 말하는 한국 생활과 아르헨티나 배구

매거진 / 서영욱 기자 / 2020-03-21 20:40:00


2019~2020시즌 흥국생명 외국인 선수 루시아 프레스코(등록명 루시아)는 영입 소식이 전해질 당시, 한국 배구 팬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최근 여러 국제무대에서 한국이 아르헨티나와 만났을 때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 소속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로 꽤 오랜 시간 활약 중인 루시아는 세계 곳곳을 다녀 보았다. 루시아와 인터뷰를 통해 지금까지 경력에서 느껴지는 그의 ‘개척자’로서 면모도 확인했다. <더스파이크>는 2월 흥국생명 연습체육관에서 루시아를 만나 그의 배구 이야기를 들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리그가 중단되기 전 진행된 인터뷰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V-리그와 한국 생활 해보지 않으면 모를 거예요”

2019~2020시즌 루시아는 프로 경력 처음으로 아시아 팀에서 시즌을 보내고 있다. 이전까지 아르헨티나와 유럽에서 프로 생활을 한 루시아는 ‘디펜딩 챔피언’ 흥국생명 소속으로 경쟁 중이다.

야심 차게 출발한 V-리그 생활이지만 시즌 진행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순탄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지난해 11월 중순 맹장염 수술로 2주가량 결장했고 올해 1월에는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로 조국의 2020 도쿄올림픽 진출을 위해 콜롬비아에 다녀왔다. 올림픽 예선 이후에는 이재영 부상 속에 공격에서 외로운 에이스로 팀을 이끌었다. 늘어나는 부담 속에 무리가 왔는지 아킬레스 건염 부상도 입었다. 한 경기를 결장하고 돌아와서는 팀의 7연패 탈출에 앞장섰다. 흥국생명이 연패를 끊은 2월 16일 한국도로공사전 5세트에는 블로킹 상황에서 점프도 제대로 못 할 정도로 몸 상태가 완전치 않았다. 시즌이 채 끝나지도 않았지만 웬만한 선수가 몇 시즌에 걸쳐 겪을 일을 한 시즌, 그것도 약 두 달 사이에 다 겪었다.

5라운드가 끝나기도 전에 진행한 인터뷰였지만 루시아는 “올 시즌은 일이 참 많았다”라며 마치 시즌을 소화한 듯한 감상을 전했다. 루시아는 “이런저런 사건도 있었고 부상도 있었다. 병원도 자주 갔다. 올림픽 예선에도 다녀와야 했다. 참 많은 일이 일어났던 시즌이었다”라고 돌아봤다. 루시아는 이런 순탄치 않은 시즌 진행에도 배울 게 많다고도 덧붙였다. 아울러 팀이 7연패를 당해 잠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팀이 다시 반등할 것이라는 믿음도 내비쳤다(실제로 흥국생명은 연패 탈출 이후 리그 중단 전까지 4연승을 달렸다).

“쉬운 시즌은 아니었지만 힘들었던 시간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는 게 있다고 봐요. 그리고 이제 우리 팀도 더 강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우리가 어떤 팀인지를 진정으로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이 온다고 생각합니다.”

아킬레스 건염과 함께 시즌 초 예상치 못하게 맹장염이 찾아와 수술을 받았다. 루시아는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동안 팀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생각에 죄책감도 들었다고 전했다. “맹장염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것이고 예방할 수 없잖아요. 제 잘못이나 실수는 아니지만 TV로만 경기를 보고 팀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생각에 매우 속상했죠. 또 아킬레스 부상으로 두 경기를 제대로 뛰지 못했어요. 경기에 나서지 못하면 그만큼 팀에 미안하고 죄책감이 들지만 제가 뛰는 경기에서만큼은 제가 왜 팀에 존재하는지를 보여주려 합니다.”

흥국생명과 루시아 입장에서는 정말 다행히도 팀 7연패를 끊은 이후 이번 인터뷰를 진행했다. 루시아로부터 긴 연패를 끊었을 당시 기분을 묻자 그는 “oh my god”이라고 운을 뗀 후 말을 이었다.



“엄청난 기분이었어요. 연패가 계속되는 동안 5세트 승부도 정말 많았어요. 매 경기가 접전(tight)이었죠. 5세트까지 가서 지는 경기가 너무 많았어요. 그래도 연패를 끊을 때는 5세트까지 가서 이겨 정말 기뻤어요. 우리는 그럴 자격이 충분히 있는 팀이었어요. 훈련도 정말 열심히 했고 코트에서 최선을 다해 싸웠죠. 연패를 끊어서 아주 행복했습니다.”

시즌 초중반 인터뷰를 하는 외국인 선수들과 달리 루시아는 이미 흥국생명 소속으로 꽤 오랜 시간을 뛰었다. 그런 만큼 팀에 대해서도 더 많은 걸 느끼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흥국생명이 어떤 팀인지 묻자 루시아는 칭찬 일색으로 답했다. 그는 “올 시즌 전까지는 아르헨티나와 유럽에서만 뛰었다. 그래서 아시아 팀 선수들이 이렇게 친절하게 반겨줄 줄 몰랐다”라고 돌아봤다. 루시아는 “예상치도 못하게 너무 따뜻하게 대해줘서 놀랐다. 시즌을 치를수록 선수들도 나에게 더 긍정적인 분위기를 보내주고 나도 선수들을 향한 호감이 더 생겼다. 항상 좋은 에너지를 받고 있고 이 선수들과 매일 함께한다는 게 정말 좋다”라고 덧붙였다.

어떤 선수와 ‘케미’가 좋은지에 관해서는 도저히 한 명만 꼽을 수 없다고 말했다. 루시아는 “윤지(흥국생명 통역)!”를 가장 먼저 외친 후 “한비, 송화, 나희, 연경 모두 좋아한다. 우리 팀 모든 선수가 좋다”라고 웃어 보였다.

경기 외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들었다. 루시아는 처음 경험하는 한국 생활에도 매우 긍정적인 답변을 남겼다. 루시아는 “모든 게 잘 갖춰져 있다”라고 운을 뗀 후 말을 이었다. “모든 게 조직화가 정말 잘 되어 있어요. 그래서 여러모로 잘 돌아간다는 점이 좋아요. 개인적으로는 유럽 팀도 한국처럼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유럽에서는 뭔가를 하기가 더 어려웠어요. 제가 지내야 하는 집부터 제가 필요한 건 모두 준비돼 있었죠. 선수로서 오직 배구에만 신경 쓸 수 있는 환경이고 코트 위에서 어떤 퍼포먼스를 내야 하는지만 집중할 수 있었죠. 제 주변 사람들에게 제가 지금 받는 대접을 이야기하면 믿질 않아요. 아마 한국에 와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제가 이야기하는 것을 못 믿을 거예요.”

루시아에게 한국은 이미 특별한 나라가 됐다. 그는 올 시즌 개막전 이후 가진 수훈선수 인터뷰에서 “여러 리그에서 뛰어봤다. 모든 리그가 이렇지는 않다. 대표팀으로 올림픽, 세계선수권 등을 뛸 때는 관중이 정말 많은 경기를 많이 해봤다. 이런 분위기가 부담스럽지는 않다”라고 밝힌 바 있다(당시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여자부 개막전에는 2,901명의 관중이 들어차 매진을 기록했다). 그만큼 최근 V-리그를 향한 배구 팬의 열기는 뜨겁다. 늘어나는 팬만큼 선수들에게 전하는 ‘마음’도 다양한 형태로 향하고 있는데, 루시아 역시 많지는 않지만 팬들로부터 소중한 선물들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름은 모르지만 정말 친절한 팬이 한 분 떠올라요. 퇴근길에 만날 때면 저한테 매번 한국 전통문화가 깃든 자그마한 선물을 줬어요. 주신 선물 중에 컵도 있었는데, 그건 거의 매일 쓰고 있어요. 그 팬한테만 세 번 이상은 받은 것 같아요. 선물을 많이 받진 않았지만 저에게는 작은 선물 하나하나도 소중해요.”


축구의 나라에서 시작하게 된 배구

‘아르헨티나’하면 첫 손에 떠오르는 스포츠 종목은 단연 축구다. 그다음으로 떠오르는 종목을 말한다면 아마 농구이지 싶다. 아르헨티나 남자 배구가 세계적으로 상당한 강팀이지만 ‘아르헨티나=배구’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이런 환경에서 루시아는 어떻게 배구를 시작하게 됐을까. 사실 루시아도 처음에는 배구가 아닌 농구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루시아는 “사실 처음에는 농구가 하고 싶었다”라며 “근데 내가 사는 도시가 워낙 작은 곳이다 보니까 여자 농구팀이 없었다. 그래서 배구를 한번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는데 시작하자마자 곧장 배구와 사랑에 빠지게 됐다. 그때 당시가 아홉 살이었다”라고 배구를 하게 될 당시를 돌아봤다.

루시아는 뭔가 특정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닌 배구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고도 했다. 더불어 농구보다 덜 뛴다는 점도 당시에는 큰 메리트로 다가왔다고 덧붙였다. “저는 배구의 모든 게 흥미로웠어요. 뭔가 하나만 고르기는 어려워요.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팀에 들어가는 것부터가 새로운 경험이었죠.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경기하는 것 자체도 좋은 경험이었어요. 배구라는 종목 자체도 워낙 마음에 들었고요.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저는 뛰는 데는 별로 소질이 없더라고요. 그런데 배구는 농구와 비교하면 많이 뛰어다닐 필요는 없잖아요. 어떻게 보면 농구팀에 들어가지 못한 게 다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루시아는 커리어 초창기 이후로는 대부분 시간을 유럽에서 보냈다. 12살에 들어간 클럽 산타 로사 차하리에서 6년을 보냈고 이후 아르헨티나에서는 보카 주니어스에서만 뛰었다(2009~2011, 2019, 축구팀으로 유명하지만 보카 주니어스라는 이름으로 남녀 배구팀, 농구팀, 풋살팀도 운영한다). 루시아는 아르헨티나에서 보낸 시간도 얘기했다. 그는 보카 주니어스에서의 시간을 두고 “beautiful”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보카 주니어스에서 함께 뛴 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선수들이다. 그래서 자매 같은 느낌도 들고 매우 편하게 운동했다”라고 덧붙였다. 루시아는 두 강아지와 함께 사는 집에서 살면서 출퇴근했던 기억도 떠올렸다.

하지만 동시에 아르헨티나 배구계의 현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루시아는 “최근에는 아르헨티나도 배구 경기장에 더 많은 관중이 오고 소리 지르면서 열광해준다. 하지만 그 수가 한국 팬들만큼은 아니다. 한국과 비교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루시아는 “아르헨티나 선수는 배구 선수로서 미래를 생각하면 해외로 나가야 한다. 슬픈 이야기지만 아르헨티나 프로리그는 계약과 같은 면에서 좋은 상태는 아니다. 좋은 선수로 크고 싶다면 아르헨티나를 떠나야 하는 현실이다”라고 냉정하게 답했다. 루시아는 “해외에서 뛰는 게 내 꿈이었고 그러기 위해서 나에게 편한 안전지대를 벗어나고자 했다”라고도 돌아봤다.

자신의 꿈을 찾아 당도한 유럽 생활도 크게 보면 더 많은 걸 경험하고 싶었던 루시아 입장에서는 더없이 좋았다. 루시아는 “유럽에서도 여러 나라에서 뛰었다. 각기 다른 이야기와 음식을 비롯한 문화를 알게 된 것 자체가 행운이라고 느껴졌다”라며 “가장 좋았던 건 여러 다른 리그를 경험해봤다는 점이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행운이 넘치는 선수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루시아의 배구 인생에서는 국가대표도 빼놓을 수 없다. 루시아는 2009년부터 조금씩 성인대표팀에 모습을 드러내 지금까지도 아르헨티나 대표팀 주포로 활약 중이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이끌고 두 번의 세계선수권(2014, 2018)과 한 번의 올림픽(2016) 그리고 이 외에도 판-아메리칸 컵과 월드그랑프리,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까지 아르헨티나가 출전한 국제대회에는 대부분 출전했다. 한국 배구 팬들이 루시아에 대해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특히 2019년 국제배구연맹(FIVB) 여자배구 월드컵에서 한국을 상대하면서 더 익숙했다. 올해 1월에는 2020 도쿄올림픽 대륙별 예선을 소화하면서 아르헨티나의 2회 연속 올림픽 진출에 앞장섰다.

올림픽 남미 예선에서 루시아는 첫 두 경기에서 활약했다. 페루와 첫 번째 경기에서 팀 내 최다인 16점을 기록한 데 이어 베네수엘라전에도 18점으로 팀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올렸다. 올림픽 티켓이 걸린 콜롬비아와 마지막 경기에서는 2세트까지 3점, 공격 성공률 11.11%(2/18)에 그치며 부진했지만 20점을 올린 엘리나 로드리게스와 루시아 대신 들어가 18점을 기록한 다니엘라 불라이치의 활약으로 아르헨티나가 3-0으로 승리해 올림픽에 진출했다.

올림픽 진출 당시를 돌아본 루시아는 마지막 경기 부진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고 돌아봤다. 루시아는 “올림픽 진출이 확정되던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는 복잡한 감정이었다”라고 운을 뗀 후 당시 기분을 묘사했다. “당시 경기가 열린 콜롬비아 보고타 경기장이 고도가 높은 곳이었어요. 그래서 숨 쉬는 데 어려움이 있었죠. 예선 첫 두 경기는 잘했지만 마지막 경기에서는 못해서 자신에게 실망감도 느껴지고 슬펐죠.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슬픔은 잊어버렸어요.”

루시아는 이번 올림픽 진출이 아르헨티나 배구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2016년에 이어 2회 연속 올림픽에 진출하며 아르헨티나 배구 위상을 올리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루시아는 “우선 올림픽에 진출했다는 것 자체로도 대표팀에는 기쁜 일이다”라며 “우리에게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전까지 아르헨티나는 여자배구에서 사실 별것 없는 팀이었다. 하지만 올림픽에 2회 연속 오르면서 더 많은 성취감을 느끼게 됐다”라고 말했다.

대표팀 소속으로 뛰면서 느끼는 마음가짐은 대회마다 다르지만 나라를 대표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책임감이 크다고 돌아봤다. 루시아는 “대표팀에서 마음가짐은 어떤 대회인지에 따라 다르다. 올림픽 예선도 있고 월드컵도 있고, 배구계는 국제대회가 정말 많고 경기 수도 많다”라고 말했다. 이어 “자국 마크가 달린 유니폼을 입는 것 자체가 특별한 경험인 것도 사실이다. 책임감도 많이 느끼게 된다. 대표팀에서는 언제나 자신의 100%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이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루시아의 답변에는 대표팀 선수에게 요구되는 일종의 결연함도 느껴졌다.


외국인에겐 어려운 V-리그?
“어디에나 어려운 점은 존재해요.”

V-리그를 찾는 외국인 선수들에게 항상 궁금한 점 중 하나는 트라이아웃에 참가하게 된 이유다. 트라이아웃은 프로 스포츠에서 흔한 제도는 아니다. 대개 자유계약(FA) 시장에 따라 움직이는 것과 달리 트라이아웃은 선수가 신청서를 내고 그렇다고 해도 계약이 보장되지 않는다. 매년 20~30명의 선수가 트라이아웃에 참가하고 그중 선택받는 선수는 여자부 기준 여섯 명뿐이다.



V-리그는 금전적인 면에서 세계 최상위 리그를 제외하면 상당히 상위권에 속하는 리그다. 연봉 액수 자체도 적지 않은 편이고 외국인 선수를 향한 지원도 상당하다. 구단이 주택을 마련해주고, 팀 통역도 항상 도움을 준다. 무엇보다 임금 체불이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는 해외리그(가빈의 증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와 달리 한국에선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가 지날수록 트라이아웃에 이전만큼 이름값이 높은 선수들이 오지 않는 이유는 트라이아웃 시기가 맞지 않는다거나 드래프트로 선택받아야 하는 불안한 지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문화권이 서구와 전혀 다른 나라라는 점도 영향을 끼친다.

그렇다면 루시아가 트라이아웃에 참가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 질문에 루시아는 생각보다 솔직한 답을 남겼다. “에이전트가 한 번 도전해보자고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저는 ‘아무도 안 뽑을 것 같은데 나가서 뭐해요’라고 생각했죠. 제가 스스로에게 조금 부정적인 편이거든요. 딱히 긍정적이진 않았어요. 하지만 에이전트가 좋은 경험이 될 테니 한번 나가보자고 하더라고요. 좋은 선수들도 많이 있으니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말이죠. 그렇게 실제로 트라이아웃을 다녀와 보니 실제로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비록 현장에서 바로 뽑히지는 않았지만 트라이아웃 자체를 즐기고 왔어요.”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은 트라이아웃에서 줄리아 파스쿠치를 먼저 지명했다. 하지만 파스쿠치는 팀 합류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교체됐다. 이를 두고 박미희 감독은 “결과적으로는 더 잘됐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루시아는 이런 박미희 감독의 반응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루시아와 여자배구 월드컵에서 맞붙은 팀 동료 이재영과 김해란은 루시아가 팀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올 시즌도 우리가 우승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루시아는 트라이아웃 신청 당시 V-리그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루시아는 “물론 (V-리그에 대해) 알고 있었다.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라며 “이전에도 아르헨티나 선수가 뛰었다고 알고 있다. 그 선수에게 들은 내용은 긍정적인 이야기는 아니었다”라고 돌아봤다.

※ 조사 결과, 남녀부 통틀어 루시아 이전에 V-리그를 거친 아르헨티나 선수는 딱 한 명 있었다. 2011~2012시즌 한국도로공사가 영입한 조지나 솔레다드 피네도가 그 주인공으로 피네도는 당시 18경기(69세트)에 출전해 총 428점, 공격 성공률 41.1%로 나쁘지 않은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허리 부상으로 시즌 도중 팀을 떠났다. 당시 도로공사가 대체 선수로 영입한 선수가 다름 아닌 이바나였다. 피네도는 아르헨티나 대표팀 주장까지 역임한 선수였기에 루시아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해주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긍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듣지는 않았지만 루시아는 그보다 직접 부딪쳐보길 원했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들리는 이야기에 휩쓸리기보다는 기회가 왔을 때 도전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경험해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참가했다”라며 “실제로 트라이아웃에 참가했을 때나 팀에 합류했을 때 긍정적인 반응과 분위기에 깜짝 놀랐다”라고 긍정적이었던 첫인상을 전하기도 했다.

루시아가 흥국생명 일원이 된다는 소식이 전해진 건 지난해 9월 20일이었다. 아직 여자배구 월드컵이 한창 진행 중일 당시였다. 일본에서 소식을 들은 루시아는 당시 어떤 기분이었을까. 인터뷰 중 본격적인 답변에 앞서 한 마디 단어로 임팩트를 준 루시아는 이 질문에 대해서는 “Crazy”라는 말과 함께 말을 이었다.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당시에 월드컵 때문에 일본에 있었죠. 흥국생명으로 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많이 놀랐어요. 우선 일본은 한국과 가까우니까 바로 올 수 있어서 다행이었죠. 원래는 월드컵이 끝나고 아르헨티나에 다녀오려고 했지만 계획이 다 바뀌게 됐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뻤습니다. 한국은 배구를 잘하는 나라로 알고 있었고 그런 나라의 리그에서, 전 시즌 우승팀에서 뛴다는 것 자체가 좋았으니까요. 제가 그 정도 레벨의 선수가 됐나 싶은 생각도 들었고요.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시즌을 거의 끝마쳐가는 시점, V-리그에 오기 전까지 다양한 리그를 거친 루시아로부터 V-리그의 특징에 대해서도 물었다. 남녀부를 막론하고 V-리그를 거친 선수 대다수가 수비를 뽑는다. 루시아 역시 비슷한 답변을 남겼다. 질문을 듣고 고민하던 루시아는 “Defense”가 정말 좋다며 설명을 덧붙였다. “수비는 정말 다른 행성(planet) 이야기로 느껴질 정도예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죠. 잘한다, 잘한다 말만 들었지,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어느 정도인지 몰랐거든요. 실제로 뛰어보니 수비 수준이 정말 높아요. 더불어 수비뿐만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좋은 선수가 정말 많은 것 같아요. 키가 크진 않지만 다방면으로 기술을 갖춘 선수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V-리그는 외국인 선수들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리그로 꼽힌다. 금전적인 부분부터 지원까지 상당히 좋은 편이지만 그만큼 경기 내적으로 외국인 선수에게 요구하고 기대하는 바도 크다. 공격에서 많은 점유율을 소화해야 하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더 집중된다. 매 경기 체력적으로 쉽지 않은 환경 속에 일정도 빡빡한 편이다. 대륙간 대회나 컵 대회가 있지 않은 이상 매주 한 경기 정도만을 치르는 유럽과 달리 V-리그는 일주일에 두 경기를 치르는 경우도 많고 드물게는 세 경기도 소화해야 한다.

루시아는 이런 V-리그 환경을 두고 “터프하긴 하다. 어렵다고 할 수는 있다”라면서도 “하지만 그간 거쳐온 다른 리그도 어려운 점이 있었다. 경기 일정이 따닥따닥 붙어있다고 힘들고 그렇지 않다고 덜 힘든 건 아닌 것 같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루시아는 유럽에서의 경험을 언급하면서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설명했다.

“한국은 일정은 빡빡하지만 이동 거리 자체가 긴 편은 아니에요. 제가 뛰었던 헝가리나 이탈리아에서도 힘든 점은 있었어요.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장거리 원정을 가려고 하면 무조건 비행기를 타야 했어요. 장거리 이동 자체도 많았고요. 이런 점이 힘들었죠. 그리고 저는 V-리그는 연맹 차원에서 일정을 그래도 잘 짰다고 생각해요. 해외에서는 리그 일정이 빡빡하진 않았지만 훈련 일정이 타이트해서 힘든 적도 있었어요.” 해외 여러 리그를 경험한 베테랑 루시아였기에 들을 수 있는 다양한 리그 이야기였다.




“올 시즌 목표? 당연히 우승이죠!”

시즌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 루시아가 바라보는 목표는 단연 우승이었다. “저 그리고 팀의 목표는 챔피언에 오르는 거예요. 지금 힘든 시기를 겪고 있지만 이 시기를 이겨내고 챔피언이 되는 게 목표입니다. 분명 지금보다 더 잘할 것이라는 확신도 있고요.”

2020 도쿄올림픽 목표도 함께 들었다. 루시아가 속한 아르헨티나는 중국과 미국, 러시아, 이탈리아, 터키와 B조에 이름을 올렸다. A조와 비교해 훨씬 난이도가 높은 조에 속했다. 루시아는 “러시아, 미국, 중국과 같은 세계적인 강팀과 한 조에 편성됐다. 당장 어떻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많이 이기는 게 목표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조에는 신장도 좋고 실력도 갖춘 슈퍼스타들이 많다. 쉽지 않겠지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루시아는 아르헨티나에서 배구로 꿈을 키우는 선수들에게 좋은 롤 모델이 되고 싶다는 각오도 덧붙였다. “저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최고의 선수가 되고 싶어요. 더불어 아르헨티나에서 배구하는 아이들에게 좋은 롤 모델이 되고 싶고요. 저를 보면서 꿈을 키울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끝으로 팬들에게 인사를 전하자 루시아는 “Thank you, thank you, thank you”라고 거듭 감사한 마음을 전하면서 활기찬 모습으로 메시지를 남겼다. “팬들에게는 정말 감사한다고 전하고 싶어요. 매번 많은 팬이 경기장에 찾아오시고 지지해주시죠. SNS에 ‘오늘 잘했어요’, ‘오늘 괜찮았어요’와 같은 좋은 메시지도 보내주시곤 해요. 신경 써주시고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서영욱 기자
사진/ 유용우 기자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3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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