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방울방울' V-리그 출신 외국인 선수들은 어디에? - ④

매거진 / 류한준 기자 / 2020-03-14 22:32:49


사진_GS칼텍스 시절 하께우

V-리그 여자부에 외국인선수 제도가 도입된 2006~2007시즌. 남자부는 외국인선수 도입 2년 차를 맞았다. 그리고 이때부터 외국인선수에 공격 비중이 몰리는 현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트랜드를 주도한 팀은 삼성화재와 대한항공이다. 2006~2007시즌은 변수가 있었다. 국제배구연맹(FIVB) 주최 세계선수권대회와 도하 아시안게임이 열려 V-리그 개막이 프로 출범 원년인 2005 겨울리그 이후 두 번째로 늦었다.

유럽 무대 MVP도 통하지 않았다, 팔라스카

2007~2008시즌 남자부에서는 기예르모 팔라스카(스페인)가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LIG 손해보험은 이란대표팀을 2002 부산 아시안게임 3위로 이끌었고 선수 시절을 포함해 해외배구 경험이 많은 박기원 감독(현 대한항공 감독)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팔라스카는 당시 V-리그에 진출한 외국인선수 중 가장 화려한 경력을 자랑했다. 윌리엄 프리디 이후 자국대표팀에서 베스트 라인업에 든 선수가 다시 한 번 V-리그 코트를 찾은 것이다. 그는 스페인이 유럽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하는데 일등 공신이 됐다. 스페인 남자배구는 팔라스카 형제로 전성기를 맞았다.

형인 미구엘이 세터, 동생인 기예르모가 아포짓스파이커로 나왔다. 기예르모는 유럽선수권대회와 유로리그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LIG손해보험은 당연히 팔라스카에 기대를 걸었다. LIG손해보험은 컵 대회에서 대한항공에 밀러 준우승했지만 팔라스카는 보비(대한항공)와 견줘 밀리지 않은 공격력을 자랑했다.

사진_LIG손해보험 시절 팔라스카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전체 1순위 지명권으로 김요한(은퇴)을 데려왔다. 기존 이경수에 팔라스카, 김요한까지 보유하며 LIG손해보험은 V-리그 최고의 화력을 갖춘 팀으로 꼽혔다. 하지만 시즌이 개막한 뒤 LIG손해보험은 흔들렸다. 시즌 초반 선전했으나 일정을 치를수록 삼성화재, 현대캐피탈. 대한항공에 힘에서 밀렸다.

팔라스카는 세터와 계속해서 손발이 맞지 않았다. LIG손해보험은 봄 배구 진출에 실패했고 팔라스카는 V-리그를 그렇게 떠났다. 외국인선수 최초로 2년 계약을 맺고 LIG손해보험 유니폼을 입었으나 한 시즌만에 이별을 고했다. 구단은 팔라스카와 계약해지에 합의했고 새로운 대체자를 찾기로 했다.

팔라스카는 V-리그에서는 결과적으로 실패 사례에 이름을 올렸으나 이후 성공적인 선수 커리어를 보냈다. 그는 2008~2009시즌 피아젠차(이탈리아)를 거쳐 앙카라(터키)를 거쳐 다시 이탈리아로 왔다. 볼리 포를리, 토노 칼리포에서 뛰었고 선수 생활 마지막은 프랑스리그에서 보냈다. 그는 나브론 유니폼을 입고 2012~2013시즌부터 2014~2015시즌까지 뛴 뒤 은퇴했다.

그런데 팔라스카는 지난해 큰 슬픔을 겪었다. 형인 미구엘이 2019년 6월 21일 세상을 떠났다. 미구엘은 2012~2013시즌 종료 후 선수 은퇴했고 지도자로 제2의 배구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베하토프(폴란드)를 거쳐 체코남자대표팀과 몬자에서 코치로 활동했다. 미구엘은 2018~2019시즌 종료 후 스페인으로 귀국한 뒤 친구 결혼식이 열린 이탈리아 몬자을 다치 찾았다가 현지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여자부 2007~2008시즌
외국인선수 승자는 하께우

2007~2008시즌 여자부 외국인선수는 남자부와 비교해 눈에 쏙 들어오는 거포는 없었다. 도로공사를 제외하고 나머지 4개팀은 모두 새로운 얼굴로 바꿨다. 지난달 ‘스파이크’ 지면을 통해 소개한 것처럼 도로공사는 레이첼(미국)이 시즌 개막을 코 앞에 두고 그만 부상을 당했다.

도로공사는 대체 선수로 케이티 존슨(미국)을 영입했다. 그러나 도로공사는 레이첼이 빠진 자리를 잘 메우지 못했다. 정규리그에서 11승 17패에 그치면서 4위로 봄 배구 진출이 좌절됐다.

미시간주립대 졸업반인 존슨은 V-리그가 첫 번째 프로무대였다. 대학시절 개인 기록은 나쁘지 않았고 191cm의 장신 윙스파이커로 높이에서 기대를 모았다. 그가 2006~2007시즌 V-리그 여자부 득점 부문 1위를 차지한 레이첼을 대신해 어느 정도는 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길 바랬다. 그러나 존슨은 팀과 잘 맞지 않았다. 엇박자가 났고 도로공사는 시즌 내내 어려운 상황을 견뎌야했다.

존슨은 배구 선수 생활을 오래 이어가지 않았다. 그는 일찌감치 학업을 계속한 것으로 알려졌고 지도자로 배구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주니어컬리지를 거쳐 현재는 고교배구팀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_한국에서 첫 프로 생활을 보낸 존슨의 도로공사 시절

현대건설도 외국인선수 덕을 크게 못봤다. 주전 미들블로커 정대영(현 도로공사)과 주전 세터 이숙자(은퇴, 현 KBSN스포츠 배구해설위원)가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GS칼텍스로 이적한 자리가 컸지만 외국인선수 쪽에서 공격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현대건설은 신장 193cm인 장신 윙스파이커 티파니 도드(캐나다, 등록명 티파니)를 데려왔으나 기대한 만큼 공격력을 보이지 못했다. 현대건설은 시즌 내내 빈약한 화력에 골머리를 앓았고 결국 4승 24패로 최하위(5위)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도로공사와 현대건설은 공통점이 있다. 대학 무대를 떠나 막 프로에 데뷔한 신인급을 외국인선수로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두 팀의 실패 사례로 V-리그 여자부 외국인선수 트렌드는 당분간 경험과 검증된 커리어에 초점을 더 맞추게 된다.

브라질 선수에 대한 선호는 여전했다. GS칼텍스, KT&G(현 KGC인삼공사), 흥국생명은 외국인선수 자리를 브라질 출신으로 채웠다. 세 선수 중 가장 성공작이 된 주인공은 GS칼텍스가 뽑은 하쿠엘 실바(등록명 하께우)가 됐다.

하께우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 브라질 대표팀 일원으로 참가했다. V-리그로 올 당시 전성기가 지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하께우는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에서 맹활약했고 KT&G의 페르난다 베르치 알베스(등록명 페르난다), 흥국생명 마리 헬렌 페드라 멘데스(등록명 마리)을 제쳤다. GS칼텍스는 봄 배구에서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하께우와 당시 팀의 주전 공격수 자리를 굳히던 김민지와 함께 공격을 책임졌다.

하께우는 챔피언결정전에서 제 몫을 했다. GS칼텍스는 봄 배구 마지막 상대로 정규리그에서 24승 4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1위를 차지한 흥국생명을 만났다. 흥국생명의 연속 우승을 예상한 이들이 많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왔다. GS칼텍스가 흥국생명을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제치고 V-리그 출범 후 첫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했다.

GS칼텍스는 챔피언결정전 1차전을 내줬으나 2~4차전을 모두 이겼다. 하께우는 2, 4차전 각각 28, 20점을 올리며 팀내 최고 득점자가 됐다. 하지만 GS칼텍스는 하께우와 재계약하지 않았다. 봄 배구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보이긴 했지만 더 확실한 한 방을 갖춘 스파이커를 찾기로 했다. 1978년생이라는 나이도 재계약에 걸림돌이 됐다.

김연경-황연주와 함께 뛴
마리

흥국생명은 전 시즌과 다른 선택을 했다. 장신 스파이커 케이티 윌킨스(미국)를 대신해 단신 윙스파이커인 마리를 데려왔다. 마리는 신장 178cm로 역대 V-리그 여자부 외국인선수 중 가장 키가 작은 선수로 남았다. 2008~2009시즌 도로공사 유니폼을 입은 밀로그라스 카브랄(도미니카공화국, 등록명 밀라)이 V-리그로 올 때 신장 181cm로 등록됐기 때문이다(밀라는 180cm이 안되는 키로 실제 신장은 176cm로 알려졌다).

흥국생명이 마리를 데려온 이유는 분명했다. 당시 소속팀 뿐 아니라 V-리그를 대표하는 공격수로 자리잡은 김연경(현 엑자시바시)과 황연주(현 현대건설) 좌우 쌍포가 건재했기 때문이다. 공격력 보다는 수비와 리시브 그리고 배구 센스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마리를 영입하기로 했다. 김연경-황연주 조합은 당시 다른 팀 외국인선수보다 공격력에서 뚜렷한 우위를 점했다. 흥국생명은 단신 윙스파이커로 한 자리를 채우기로 했다.

사진_흥국생명 시절 마리

그러나 흥국생명은 챔피언결정전에서 GS칼텍스에 발목을 잡혔다. 마리도 결국 봄 배구 결과 때문에 흥국생명과 인연을 더 이상 이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마리는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2008~2009시즌 이탈리아로 건너가 2부리그 로마에서 뛰었고 브라질로 돌아가 한 시즌을 보낸 뒤 다시 유럽리그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는 디나모 뷰큐레시티(루마니아), 로코모티브 벨리세리(아제르바이잔), 아테네(그리스)에서 뛰었다. 2012~2013시즌에는 아제르바이잔에서 그리스로 시즌 도중 이적했다. 마리는 2012~2013시즌을 끝으로 해외리그에서 뛰지 않았다. 그는 브라질로 귀국해 2013~2014시즌부터 뛰었고 2017~2018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 오빠인 알베르토도 배구선수로 함께 활동했다. 1981년인 오빠는(마리는 1984년생이다) 올 시즌 브라질리그 아나폴리스 소속으로 여전히 코트에 나오고 있다.

페르난다도 신장 190cm인 장신 스파이커였다. 2007~2008시즌까지 V-리그 여자부 외국인선수는 마리를 제외하고 높이를 갖춘 윙스파이커가 대세로 자리잡았다. 당시 5개 구단은 전형적인 아포짓 스파이커가 아닌 리시브와 수비 능력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 외국인선수를 주로 찾았다.

페르난다는 전 시즌 대체 선수로 온 하켈리(브라질)보다는 나었다. 그러나 하께우, 마리와 견줘 공격력이 모자랐다. 소속팀이 원하는 만큼 결과가 코트에서 잘 나오지 않았다.

페르난다는 부상으로 선수 은퇴했다. 그는 2008~2009시즌 체세나와 계약하며 이탈리아리그로 진출했고 두 시즌을 보냈다. 2010~2011시즌을 앞두고 브라질로 돌아와 선수 생활을 이어갔으나 2011~2012시즌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페르난다는 배구와 인연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비치발리볼로 전향했고 여전히 브라질 국내 투어 및 국제배구연맹(FIVB) 주최 비치발리볼 투어 대회에 간간히 참가하고 있다.


글/ 류한준 조이뉴스24 기자
사진/ KOVO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3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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