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외인’ 펠리페가 말하는 네 번째 시즌과 한국 생활

매거진 / 서영욱 기자 / 2020-11-27 23:53:40

 

한국과 보통 인연은 아닌 듯하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아니 세 번이나 버림을 받았다. 시간이 지나면 그가 생각났다. 또 다른 팀이 그를 불렀다. OK금융그룹 대체 외국인 선수로 합류한 펠리페 이야기이다. 묵직한 매력을 지닌 사나이는 어느덧 V-리그에서만 네 번째 시즌을 맞았다. 첫 시즌을 제외하면 이후에는 모두 대체 선수 합류다. 이제는 V-리그 외국인 역사에 빼놓을 수 없을 선수가 된 펠리페를 용인 OK금융그룹 연습체육관에서 만났다. 얘기를 나눌수록 매력에 빠져든다. 펠리페가 쓰는 ‘코리아 라이프’는 어떨까.


“비시즌 훈련은 어느 팀이나 힘들어”
펠리페가 다시 한번 한국 V-리그 코트에 섰다. 어느덧 V-리그에 네 시즌 연속 입학 도장을 찍었다. 그중 2020-2021시즌 포함 최근 세 시즌은 모두 대체선수였다.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선발된 선수들과 비교하면 시즌 준비가 늦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올해는 코로나19로 훈련에 합류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에 플러스 알파가 붙었다.

다시 V-리그로 돌아온 펠리페는 기회를 받았다는 점에 감사했다. 펠리페는 “우선 다시 한국에 돌아와 행복하다. 앞선 세 시즌을 거치면서 지금까지 내가 해온 것들, 경기에서 보여준 것들이 인정받고 증명했다는 걸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을 팀에서 믿어주는 것 같아 더 기쁘다. OK금융그룹으로 오게 돼 좋고 최선을 다해서 앞으로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 팀에 기여하겠다”라고 말했다.

펠리페는 네 시즌 연속으로 V-리그에 오면서 모두 다른 팀 소속으로 뛰었다. 같은 리그 내 팀이라고 해도 준비 과정에는 차이가 있을 만하다. 네 번의 비시즌을 겪은 펠리페는 생각보다 큰 차이를 느끼진 못했다고 돌아봤다.

“대체선수로 온 지난 두 시즌은 한국에 늦게 도착했죠. 팀에 적응하는 데 초점을 맞췄어요. 한국에서 첫 시즌을 보낸 한국전력에서는 비시즌 준비 기간을 처음부터 함께했어요. 당시 기억으로는 크게 특이점이라고 할 부분은 없었어요. 한국 배구는 항상 비시즌 훈련 기간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하죠. 훈련이 힘들어요. 그런 면은 어느 팀을 가도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펠리페가 국내 팀들 사이에서 느꼈다는 공통점은 동시에 해외 리그와 차이점이기도 했다. 펠리페는 비시즌 훈련 기간 초반부 훈련과 휴식 등에서 한국과 해외 리그 차이를 느꼈다고 덧붙였다. “우선 다른 리그와 한국 리그 차이점이라면, 러닝을 다른 리그는 한국보다 적게 하죠. 그리고 시간 활용에서도 다른 면이 있어요. 한국이나 다른 곳이나 모두 오전에는 웨이트 트레이닝, 오후에 볼 훈련을 하는 건 비슷해요. 다만 해외에서는 비시즌 준비 기간에 막 들어갈 때 비치발리볼처럼 모래에서 할 수 있는 걸 먼저 해요. 거기에 적응하고 부상 예방을 한 다음에 시작하는 부분이 있어요. 브라질에서도 휴식을 많이 취하는 쪽으로 하다가 준비 기간에 들어가는데 한국은 그런 시간이 좀 짧은 것 같아요.”

네 번째 V-리그를 준비하는 펠리페는 32살, 베테랑 반열에 접어들었다. V-리그 경력이 쌓인 만큼 다른 국내 베테랑과 함께 팀에서 중심을 잡는 역할도 해줘야 한다. 실제로 OK금융그룹에서는 진상헌 다음으로 나이가 많다. 펠리페는 시간의 흐름이 가져다준 ‘베테랑’ 칭호를 기쁘게 받아들이고 이를 위해 행동할 준비를 이미 마친 것처럼 보였다. 물론 베테랑으로서 마음가짐을 이야기하고 “아, 나이는 팀 내에서 베테랑 축이지만 아직 어리다고 생각한다”라는 재치있는 한마디도 잊지 않았다.

“제가 베테랑이 됐다는 사실은 기분이 좋아요. 제가 그간 배우고 익힌 것들, 제가 가지고 있는 걸 어린 선수들과 공유할 수도 있잖아요. 제가 어렸을 때 다른 선배들이 도와준 것처럼, 중요한 순간이 왔을 때 제가 선배가 돼서 어린 선수들에게 제 경험을 공유하는 등 도와줄 부분이 많아진 것 같아 좋아요.”

“제가 맡은 역할이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어요. 공격수로서 흐름을 끊어줘야 할 때 해줘야 하는 것도 제 역할이죠. 그런 게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지금은 제가 어떻게 경기해야 하는지 알고 있고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봐요. 예전과 비교하면 그렇게 어렵진 않으리라 생각해요. 즐기면서 할 수 있도록 해야죠.”

새 팀 적응도 그리 어렵진 않다고 한다. 일찍이 몇 차례 대결을 펼치며 얼굴을 익힌 선수도 많고 워낙 리그 분위기, 국내 팀 분위기가 어떤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와중에 송명근은 1년 전 인터뷰에 이어 다시 한번 ‘우수 외국인 도우미’로 언급됐다(<더스파이크> 2019년 11월호 인터뷰 당시, 레오도 송명근이 커뮤니케이션이 제일 잘 되는 동료라고 언급했다). 더불어 새 사령탑, 석진욱 감독에게도 여러 조언을 받고 있다고 한다.

“워낙 한국에서 보낸 시간이 오래돼서 선수들은 대부분 알아요. 그래서 적응에는 큰 문제 없죠. 지금 시점에는 다른 팀원과 함께 얼마나 화합하느냐가 중요하죠. 적응 자체에는 전혀 문제없습니다.”

“잘해주는 건 모든 선수가 잘해줘요. 그래도 잘 챙겨주는 선수 한 명을 뽑자면 송명근 선수입니다. 영어를 조금 해서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없고 가끔 코트 위에서 통역해줄 때도 있어요. 조언도 많이 해주죠. 송명근 선수가 그래도 가장 가깝게 지내는 선수라고 생각해요.”

“적응은 시간이 걸리는 문제이니 너무 급하게 하지 말고 시간을 갖자고 하세요. 공격 타이밍은 지금 스텝을 시작하는 지점보다 한 발짝 뒤에서 출발해서 때리고 공을 올라타면서 때려야 한다고요. 급하게 팀에 적응하려고 스트레스받지 말고 시간이 있으니 천천히 가자고 하세요.”


‘꿈의 무대’ 한국으로의 여정
‘전문 대체선수’보단 ‘장수 외국인 선수’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펠리페는 V-리그 역대 최초로 네 시즌 연속으로 뛴 외국인 선수가 됐다. 남자부 기준 합쳐서 네 시즌을 뛴 외국인 선수는 있었지만 네 시즌을 연속으로 소화한 선수는 없었다. 2020-2021시즌 포함 최근 세 시즌 모두 드래프트에서 곧장 선택받은 게 아닌 대체선수로 합류한 것이지만 계속해서 기회를 받고 온전히 시즌을 소화한다는 것만으로도 높게 평가할 만하다. 후술하겠지만, V-리그 감독들이 대체선수가 필요할 때마다 펠리페를 1순위로 찾는 데도 이유가 있다.

펠리페도 자기가 처음 한국 땅을 밟은 2017년만 하더라도 이렇게 오랜 시간 뛰게 될 줄은 몰랐다고 한다. 그것도 네 시즌 모두 다른 팀에서 말이다. V-리그뿐만 아니라 같은 리그에서 매 시즌 다른 팀에서 뛰는 건 흔한 일은 아니다. 프로 선수에게 흔하지도 않고, 힘들만도 한 상황이지만 펠리페는 이런 환경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에게는 이런 점 역시 ‘도전’이고 자신이 이겨낼 요소였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이렇게 오래 뛰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죠. 제 목표는 항상 최선을 다하고 더 나아지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어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목표로 열심히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봐요. 그게 매년 이어지면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거죠. 이런 점은 기분 좋은 일이에요.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하는 건 아니에요. 매 시즌, 한 시즌 최선을 다하면 또 다음 시즌 기회가 있는 거니까요. 단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지금까지 해온 셈이죠.”

“한국에 있는 동안 모두 다른 팀에서 뛰었는데, 이 점도 기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한 팀에서 계속 머무는 것도 제가 성장하는 데 한몫하겠지만 지금 상황도 제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고 봐요. 네 팀에서 뛸 수 있었던 것도 감독님이 저를 믿어주시고 기회를 줬기 때문이잖아요. 이런 게 제게 자신감으로 작용하고 또 배구를 더 열심히 하게 되는 동기부여도 된다고 생각해요.”

펠리페가 이처럼 인기가 많은 이유는 뭘까. 지금에 와서는 ‘검증된 선수’, ‘평균 이상은 해줄 수 있는 선수’라는 타이틀이 붙었지만 그런 수식어가 처음부터 붙는 건 아니다. 그간 펠리페가 여러 팀을 거쳐오면서 보여준 경기력, 훈련 태도가 이런 수식어를 만든 셈이다. 실제로 한국전력 감독으로 처음 펠리페를 지명했던 김철수 한국전력배구단 대외협력실장은 “정말 좋은 선수”라고 펠리페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펠리페 자신은 그 이유를 뭐라고 생각할까. 이번에도 도전과 성장이라는 단어는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유럽은 한국보다 편한 점은 있어요. 일주일에 한 경기 정도 치르고 휴식 시간도 더 많죠. 한국은 대부분 알다시피 훈련량도 많고 경기 수도 많아서 힘든 부분이 있어요. 매일매일 도전인 셈이죠. 시즌도 길고 같은 팀을 여러 번 만나니까 상대도 제가 어디를 공략할지 알아요. 저는 그럼 그 부분을 연구해야 하고요. 제가 더 성장할 수 있는 부분을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그런 부분에서 최선을 다하고 도전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걸 보고 뽑아주시고 기회를 주는 게 아닐까요.”

석진욱 감독 역시 이런 점을 언급했다. 석진욱 감독은 “함께 훈련해보니 왜 다른 감독님들이 펠리페를 대체선수로 찾는지 알겠다. 정말 열심히 한다”라고 밝혔다. 이를 들은 펠리페는 “나는 배구선수다. 배구를 잘하기 위해 열심히 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매일매일 내게는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더 나은 모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그게 배구선수로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답변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펠리페의 이런 마음가짐이 펠리페를 단순 대체선수 이상으로 만들어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네 시즌 연속, 세 시즌째 대체선수로 V-리그를 찾았지만 대체선수는 언제나 변수가 많다. 우선 드래프트에서 선발된 선수 중 이탈자가 나와야 하고 대체선수를 구하는 시기도 중요하다. 이미 다른 팀을 구하고 리그 개막 후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시점이면 선수가 원해도 가기 어려운 상황도 발생한다. 드래프트로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는 트라이아웃 제도에서는 역시 드래프트에서 곧장 뽑히는 게 선수 입장에서는 가장 좋다. 드래프트에서 뽑히지 않았을 때 마음에 동요가 생길 수도 있지만 펠리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OK금융그룹에서 영입 제의가 왔을 때는 정말 좋았다고. 아내와 당시를 회상하는 장면 중에는 사뭇 그 진심을 느낄 수 있을 만한 표현도 나왔다.

“드래프트에서 뽑히지 않은 게 크게 중요한 건 아니라고 봐요. 언제든 제게 전화가 올 수 있으니까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요. 연락을 기다리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었죠.”

“OK금융그룹 연락을 받았을 때는 정말 행복했어요. 너무 좋았죠. 그때 해변에서 아내랑 아침을 먹고 있었어요. 그리고 에이전트가 제게 보낸 문자를 아내에게 보여줬죠. 한국에서 연락이 왔다고. 아내가 제게 어떻게 하고 싶냐고 말했고 저는 한국에 가고 싶다고, 기회를 줬으니 다시 도전하고 싶다고 했죠. 저는 도전을 좋아하니까요. 아내도 제 인생에서는 도전이 항상 따라다니는 것 같다고 말했죠. 그렇게 한국행을 결정했어요.”

이제는 국내 배구 팬도 내심 기대하는 바가 있다. ‘펠리페가 올 시즌에는 언제, 어느 팀 대체선수로 올까’라고 말이다. 펠리페도 가끔 SNS를 통해 이와 관련한 연락을 받는다고 한다. “브라질에 돌아가서는 따로 연락을 주고받거나 하진 않지만 SNS로 가끔 팬들이 연락할 때가 있어요. OK금융그룹이 외국인 선수를 바꾼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SNS로 팬들이 연락해서 돌아오라고 하기도 했어요. 다만 이제 그건 제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고 팀에서 결정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했죠. 저는 기다려야 하는 처지였고요. 팬들이 그렇게 연락해줘서 기분은 좋았어요.”

펠리페는 한국 리그에 상당히 우호적이다. 이전 우리카드 이적 당시도 그렇고 앞서 밝힌 이번 OK금융그룹 이적 때도 그렇고, 펠리페는 한국의 러브콜이 올 때면 언제나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맡겼다. 펠리페가 한국에서 첫 시즌을 준비하던 2017년 9월, 펠리페는 <더스파이크>와 인터뷰에서 “꿈에 그리던 곳에 왔다”라고 표현했다. 무엇이 한국을 그에게 “꿈의 무대”로 만들어준 걸까. 그 속에는 펠리페가 가진 가치관, 그리고 예상치 못한 과거 인연이 녹아있었다.

“한국을 꿈의 무대라고 표현한 이유는, 제가 도전을 좋아하기 때문이죠. 도전을 즐기는 제게 매일 도전할 수 있는 무대라고 생각해서 꿈의 무대라고 말한 것 같아요. 자기 전에도 ‘왜 이렇게 해야 하지, 내일은 뭘 하지’ 이런 부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요. 도전하면 또 성장할 수 있고요. 그게 꿈의 무대라고 표현한 이유입니다.”

“제가 18살 정도에 한국 리그를 처음 들었어요. 이야기해준 사람 중에는 삼성화재에서 뛰었던 레안드로도 있었어요. 당시 한국에서 뛴 선수들은 한국 리그가 좋다고 말했어요. 그때부터 한국 리그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한국 리그를 향한 제 인상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비슷해요. 팬들이 항상 경기장에 많이 와서 응원해주고 인사도 해주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그런 모습이 자주 나오잖아요. 그런 면에서 제가 생각했던 것과 비슷해요.”


펠리페 패밀리의 코리아 라이프
한국에서 3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는 사이 펠리페와 그 주변에도 변화가 많았다. 한국에 처음 올 당시 여자친구였던 나탈리아는 이제 아내가 됐다. 아들 베르나르도도 태어났다. 베르나르도는 어떻게 보면 태어나서 한국에서 지낸 시간이 고국 브라질에서 보낸 시간과 비슷할 정도다. 펠리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 두 명이나 한국에서 커리어를 보내는 사이 탄생했다. 아쉽게도 아직 나탈리아와 결혼식은 올리지 못했다. 법적으로는 이미 부부 사이지만 식을 올리지 못했다. 본래 펠리페는 2019-2020시즌을 마치고 브라질로 돌아가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로 무산됐다. 대신 펠리페는 내년 7월 24일(날짜는 이미 정했다고 한다) 웨딩 파티를 계획 중이라고 했다. 이에 관해 이야기하던 펠리페는 “꼭 이뤄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펠리페 배구 커리어로 보더라도, 다가올 시즌까지 소화하면 한국은 브라질과 함께(한국과 브라질 모두 네 시즌을 소화하게 된다) 커리어에서 가장 많은 시즌을 보낸 곳이 된다. 이제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올 한국이다.

“‘은총’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예요. 제가 한국을 향해 느끼는 감사함을 한 단어로 뽑자면 그래요. 그만큼 감사하죠. 가족도 여기 와서 생긴 셈이고요. 배구로 보더라도 성장한 측면이 있고 그럴 기회를 준 곳이니까요. 제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아내는 한국을 굉장히 좋아해요. 자기 집처럼 생각하죠. 안전한 나라이고 걱정 없이 다닐 수 있어서 편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한국어 커뮤니케이션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 식당에서 주문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고. 더 배우고 싶지만 한계는 있다고 한다. “식당 주문은 간단한 단어를 쓰면 되니까 가능해요. 한국인 친구도 한국에 있으니 한국어를 배우는 게 좋다고 매일 문장을 하나씩 보내줘요. 그것도 보고 있어요. 더 배우고 싶은데 일정이 빡빡해서 배우는 데 한계가 있어요.”

일상생활 중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묻자 펠리페는 꽤 오랜 시간 고민했다. 선뜻 떠오르지 않는 듯했다. 다행히(?) 통역의 도움으로 한 가지를 떠올렸다. 한국전력 시절 한국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소였던 경복궁은 이후 다시 방문했다고 한다. 그사이 추가된 인상 깊은 장소에 대해서도 들을 뻔했지만 ‘서울 종로구 와룡동 어딘가’라는 단서만 얻고 구체적으로 어딘지는 알아내지 못했다(이후 검색 결과 창덕궁 아니면 창경궁 중 한 곳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한국에서 지내면서 꾸준히 추억도 쌓아가는 펠리페였다.

“친구랑 어시장에 가서 킹크랩이랑 여러 한국 음식을 시켜서 먹은 적이 있어요. 둘이서 킹크랩만 5kg 정도 먹었어요. 보통 휴식할 때는 한국 음식도 먹고 가족,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요. 경복궁은 작년에 장모님, 아내와 함께 방문했어요. 그리고 다른 궁궐도 가봤는데,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식물도 구경하고 좋았어요. 부산에도 비슷한 장소를 본 것 같아요. 롯데타워도 인상적이었어요.”


끝내지 못한 임무 그리고 먼 훗날 목표
2019-2020시즌 펠리페는 V-리그에서 겪은 시즌 중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총 득점 자체는 세 시즌 중 가장 적었지만 공격 성공률은 가장 높았고(50.99%) 블로킹도 V-리그에서 보낸 세 시즌 중 가장 좋았다(세트당 0.5개). 팀 성적도 가장 좋았다. 정규리그 1위를 달렸고 챔피언결정전 직행도 노려볼 만했다. 그래서 마무리가 더 아쉬웠다. 네 경기를 남기고 2위 대한항공에 승점 4점 앞선 상황에서 코로나19로 리그가 멈췄고 그대로 조기 종료됐다. 5라운드 성적 기준으로 정규리그 1위 타이틀을 준다는 한국배구연맹(KOVO) 결정에 따라 펠리페도 V-리그 경력 중 처음으로 팀 타이틀을 얻었지만 봄 배구를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컸다. 펠리페 역시 최우선 목표는 우승이고 플레이오프에 다시 서는 게 2020-2021시즌 목표라고 거침없이 답했다.

아직은 먼 이야기지만, 좀 더 훗날 이야기도 듣고 싶었다. 은퇴 후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냐는 말에 펠리페는 열정과 근성을 강조했다. 인터뷰에서 그가 했던 이야기를 떠올리면 더없이 잘 어울리는 답이었다.



“제가 후에 돌아가고 나서 팬들이 펠리페라는 선수는 항상 열심히 하고 어려운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는 선수, 기회가 오면 항상 최선을 다하는 선수로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팀이 어려울 때 도와주는 그런 선수로 남고 싶죠.”

과거 펠리페는 은퇴 후 삶을 위해 물리치료 자격증도 공부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상파울루에서 대학 입학도 준비 중이다. 여전히 이 계획은 유효한 가운데 펠리페는 좀 더 큰 그림도 그리고 있었다. 고국 브라질에서 스포츠 선수를 돕는 시설을 만드는 것이었다.

“물리치료 자격증 공부는 지금도 하고 있어요. 코로나19 때문에 최근에는 조금 어렵지만 준비는 계속 하고 있어요. 장기적으로는 스포츠 선수 발전을 위한 센터를 하나 차리고 싶어요. 본격적인 비시즌 훈련하기 전 몸을 만들 때나 웨이트 트레이닝, 재활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시설이요. 브라질 정부는 스포츠 선수들에게 지원이 많지 않아요. 제가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을 만들고 싶어요.”

언제나 열렬한 응원에 감사함을 전하며 하루빨리 팬과 만나고 싶다는 인사와 함께 인터뷰를 마친 펠리페. 어느덧 V-리그에서만 네 시즌, 장수 외국인 선수 반열에 오른 그가 한국에서 네 번째 챕터는 어떻게 채울지 궁금하다.


글/ 서영욱 기자
사진/ 문복주 기자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11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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