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化神’ 박철우의 MY WAY

매거진 / 서영욱 기자 / 2020-07-25 19:51:43

 

코로나19같은 시대의 혼돈이 겹치면 세상 일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남자배구 간판스타 박철우도 만 35세 나이에 그런 운명을 실감했다. 박철우는 프로배구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한국전력이 내민 손을 잡았다. 10년간 머물렀던 삼성화재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하는 대신 만 35세 나이에 새로운 도전의 길로 나선 것이다. 그는 “한국전력으로 갈 흐름이었나 싶기도 하다”라고 했다. 배구코트를 뒤흔든 이적 후 두 달이 지났다. 박철우는 ‘한국전력맨’으로 새 장을 열 준비에 여념이 없다. 6월 경기도 의왕 한국전력 연습체육관을 찾아 이제 붉은색 유니폼이 어울리는 그의 배구 인생과 이적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혼신, 치열, 열정, 최선. 인터뷰 내내 이런 단어가 자주 나왔다.


‘한국전력’ 주장으로 보낸 지난 시간

인터뷰를 시작하며 삼성화재가 아닌 다른 팀 소속으로 지내는 그림을 예상했는지 물었다. “2년 반 전?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예상 못 했죠. 그래도 한국전력에 와서 많이들 반겨줬어요. 그리고 팀을 이적하고 나니 다시 표지도 맡게 되네요.” 박철우의 말처럼 예상하기 어려운 그림이었다.

이제는 붉은 유니폼이 눈에 익어간다. 가족들은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삼성화재 시절 팀 동료들이 잘 어울린다고 이야기해줬다고 한다. 프로 입성 당시 현대캐피탈 유니폼과 비슷한 부분도 있어 이 점은 익숙하다고 덧붙였다.

박철우는 이전보다 팀 훈련에 빨리 합류했다. 삼성화재 시절에는 익숙한 팀에서 익숙한 훈련 일정을 따라가면 됐지만 새 팀에 적응도 해야 하고 새로운 일정에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한국전력에 와서 한 달 정도는 감독님께서 배려해주셔서 체력훈련 위주로 했어요. 6월 들어 본격적으로 훈련했죠. 삼성화재 시절보다 한 달 정도 빨리 복귀했어요. 이전에는 오랫동안 같이한 선수들도 많았고 어느 정도 시간만 있으면 합을 맞췄지만 이제 새로운 팀이잖아요. 세트 플레이도 일찍 맞춰보려고 빨리 들어왔죠.”

삼성화재와 다른 팀 문화에 적응하는 과정도 필요했다. 익히 알려졌듯이 삼성화재는 특유의 다소 딱딱한 이미지가 강하게 박혀있는 팀이다. 이에 대해 박철우는 “삼성화재라는 팀 자체가 무거운 분위기라고 많이 이야기한다. 그 속에서 집중력과 팀 응집력을 키우는 게 삼성화재 문화이자 장점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한 후 “지금은 예전보다 약해진 부분이 있다. 한국전력은 삼성화재보다는 부드럽지만 훈련 자체는 매우 집중력 있게 진행한다”라고 비교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비시즌에 임하는 마음가짐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박철우는 “한국전력 선수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 봐서 그런 것도 있지만 운동할 때 더 열심히 하고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또 그런 모습을 장병철 감독이 원했기에 박철우는 더 열정적으로 임했다. 선수들과도 금방 친해져 적응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마음가짐이 달라진 이유는 또 있다. 박철우는 한국전력 이적과 함께 주장 역할도 맡는다. 베테랑으로서 선수들을 이끌어야 하는 주장이지만 한국전력은 처음이기에 적응이 필요했다. 다만 이적 자체는 처음이 아니었기에 자신감도 있었다고. “한국전력에서는 모든 게 낯설었죠. 삼성화재에서는 모든 시설이 어디에 있는지 알았지만 한국전력에 처음 왔을 때는 웨이트 트레이닝장이 어딘지도 확인해야 했어요. 팀 일정도 모든 면에서 많이 바뀌었고요. 그래서 처음에 더 어려웠어요. 출퇴근하는 길까지 모든 게 바뀌어서 걱정했는데, 그래도 현대캐피탈에서 삼성화재로 이적할 당시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이번에는 잘 적응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어요.”

우연히도 박철우는 과거 본지와 표지 인터뷰를 할 당시에도 삼성화재 이적 후 첫 주장을 맡았다(2017~2018시즌). 주장을 맡은 과거와 이번 상황은 비슷한 면이 있다. 박철우가 삼성화재에서 주장을 맡기 바로 전 시즌 삼성화재는 창단 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분위기 반전이 필요하다. 지금 한국전력도 반전이 필요한 상황이다. 두 시즌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고 승수도 4승, 6승에 그쳤다.

박철우는 당시를 떠올리며 그때는 첫 주장을 맡아 부족한 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박철우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내가 주장이어서 성적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진 않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철우는 이를 두고 “그때는 주장이 처음이라 아무것도 모르고 했다. 처음이다 보니 책임감도 더 컸고 팀을 바꾸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박철우는 당시와는 주장으로서 마음가짐도 다르다고 설명했다. “주장이라고 해서 무언가 다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선수로서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팀을 잘 융합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물론 주장일 때나 아닐 때나 제 역할은 같고 지금도 똑같이 하고 있어요. 지금 팀을 크게 변화시키고 엄청 성적을 잘 내겠다는 생각보다는, 팀을 잘 융화해서 좋은 팀워크, 경기력을 발휘하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젊은 선수가 다수를 이루는 한국전력 분위기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도 많이 하고 있다. 박철우는 “제가 일단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 중이다. 주말에 나가면 맥주도 한잔하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다 보니 불편해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박철우는 나이 차이가 적다고 해서 너무 편하게 가는 것도 안 된다고 생각해 항상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친하게 지낸다고 전했다. 그래도 다른 인터뷰에서 표현한 것처럼 이제는 ‘아기제비’처럼 후배들이 보이진 않는다고. 한국전력 후배들을 처음 봤을 때는 젊은 선수들이 많아서 처음 만났을 때 감회가 새로워 그렇게 표현했지만 지금은 익숙해져 다른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고 돌아봤다.


‘푸른 피의 사나이’ 붉은 유니폼을 입다

2020년 FA(자유계약) 시장에서 가장 ‘놀라운’ 소식은 지난 4월 18일 전해졌다. 당연히 삼성화재에 잔류할 것으로 보였던 박철우가 한국전력과 계약할 것이라는 소식이었다(공식 발표는 4월 20일이었다). V-리그 남녀부를 통틀어 2020년 FA 시장 최대어는 여자부 이재영과 이다영, 남자부는 나경복이었다. 하지만 시장 최대어와 별개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소식은 박철우 이적이었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지금 그림을 예상 못 했다는 박철우의 말처럼, 이번 이적은 놀라움 자체였다.

실제 이적 과정도 갑작스러웠다. 박철우도 이적을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4월 16일, 한국전력으로부터 전화가 오기 전까지 말이다. 권영민 코치의 전화로부터 불붙은 ‘한국전력 이적 사가(saga)’는 긴박하게 전개됐다. 박철우 자신도 당시 한국전력이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오고, 또 빠르게 이적이 진행될 줄은 몰랐다고 돌아봤다.
 

 

“정말 예상 못 했어요.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삼성화재에 남았을 것 같아요. 하지만 코로나19라는 변수가 생겼고,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많이 생겼고 모든 과정 자체가 뒤로 밀렸어요. 삼성화재 감독님 선임도 밀렸고요. 물론 협상 시간을 더 끌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제 입장에서는 일주일 정도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할 수도 있었죠.”


하지만 박철우는 “시간을 끄는 건 삼성화재에나, 한국전력에나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저도 줄다리기하거나 저울질하는 느낌을 주고 싶지 않아서 최대한 빨리 결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라며 협상이 시작되고 빠르게 이적을 결심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박철우는 결과적으로 이렇게 된 게 운명이었던 것 같다는 말도 남겼다. 코로나19부터 밀린 삼성화재 감독 계약까지, 그 일련의 흐름이 이런 결과를 만든 것 같다는 게 박철우의 설명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런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내가 한국전력으로 올 흐름이었나 하고요. 운명처럼 말이죠. 뭔가 흐름이 그랬어요. ‘어어어’하다가 갑자기 한국전력에서 제의가 왔고, 저도 갑자기 마음을 굳혀서 이적했죠.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현대캐피탈에서 삼성화재로 이적할 때도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랬어요. 삼성화재에서 저를 원했죠. 이번에도 그런 느낌이었다고 봐요. 예전에 한 번 이적하면서 정신적인 면을 포함해 모든 부분에서 변화를 느껴봤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적응하기 쉬웠죠. 일주일간은 정신없긴 했지만 그 순간이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갈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지금은 팀과 훈련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박철우는 다른 인터뷰를 통해 계약 직전까지도 여러 감정이 교차했지만 계약서에 사인한 직후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다른 이유가 있기보다도, 뭐 이제 되돌릴 수가 없잖아요. 되돌릴 수도 없고 제가 마음을 쓴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고요. 오히려 더 마음 아플 수도 있죠. 삼성화재는 오랫동안 함께한 팀이니 신경도 더 쓰일 것 같아서 사인한 이후에는 마음을 접고 한국전력에만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죠.”

이번 이적을 두고 삼성화재 후배인 고준용과 얽힌 독특한 일화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박철우는 다른 인터뷰에서 고준용이 자신이 이적하는 꿈을 꿨다고 밝혔다. 박철우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느냐고 그랬는데 그러고 나서 오후에 한국전력에서 전화가 오더라”라고 회상하며 웃어 보였다.

이번 이적 과정에서 화제가 된 건 권영민 코치와의 관계였다. 박철우가 팀을 옮기는 데 시발점이 권영민 코치였기 때문이다. 권영민 코치는 박철우가 고등학교 졸업 후 프로 진출을 고민할 때 “함께 해보자”고 손을 내민 주인공이었다. 박철우는 현대캐피탈 입단 당시 많은 도움을 준 권영민 코치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코치님이 제가 어렸을 때는 잘 몰랐을 거예요. 현대캐피탈로 간다는 말이 나왔을 때는 저에게 와서 함께 삼성화재를 이겨보자고 하셨죠. 입단 후에도 정말 많이 챙겨주셨어요. 집에 갈 때도 10분 정도 더 돌아가야 하는데도 저를 태워주셨고요. 주말에는 같이 나가서 맥주도 사주시고요. 제가 훈련을 더 하고 싶어서 코치님, 그때는 영민이 형이죠. 영민이 형한테 가서 볼 좀 올려달라고 하기도 했어요. 귀찮을 만도 한데 선배이면서도 맞춰주셨어요. 저에게는 정말 고마운 존재죠. 선수로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좋은 요건 중 하나가 좋은 세터를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건 정말 선수에게 복이에요. 저는 프로 초창기에 정말 좋은 세터를 만났죠. 코치님도 저를 믿고 볼을 올려주셨고 제게 기회도 많이 왔어요.”

박철우는 이적이 확정된 이후에는 “고맙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박철우는 “코치님이 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나도 불러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코치님이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지도 이야기하셨다”라고 말했다. 이어 “가장 중요한 건 솔선수범하는 모습이었다. 그 기대에 부응하려 한다”라며 “하지만 그런 걸 너무 의식하면 자연스럽지 않다. 하던 대로, 삼성화재 시절이나 지금이나 선수로서 해야 할 몫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박철우는 “얼마 전 회식에서 감독님과 코치님이 내가 보여준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하시더라. 앞으로도 그렇게 해달라고 하셨다. 그래서 변함없이 하던 대로 할 생각이다”라고도 전했다.
 


삼성화재에서 보낸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쌓은 익숙함을 벗어나, 박철우는 이번 이적을 새로운 동기부여로 삼을 생각이다. 익숙함을 벗어나 어찌 보면 불안정함을 택했지만, 박철우는 그런 선택에서 오는 장단점 모두 포용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항상 있던 팀에 있다 보면 1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예상이 되죠. 항상 보던 선수들과 사람을 보니 어려움이랄 게 크게 없죠. 생활 패턴에도 변화가 없고요. 익숙함과 편안함이 공존하는 거죠. 그런 익숙함에서 오는 단점이 있고 장점이 있어요. 한국전력으로 오면서는 불안정함을 택한 거죠. 제 앞길이 어떨지도 모르고 팀 성적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도 불확실한 상황이에요. 단점일 수 있지만 동기부여도 돼요. 새로운 설렘을 만들 수 있는 요건인 것 같아요. 댓글을 보다가 그런 말도 봤어요. ‘돈을 많이 받으니까 설레지.’ 속으로 ‘네, 맞습니다’라고 하긴 했어요. 그것도 맞는 말이죠. 한국전력에서 좋은 조건을 제시해주셨고 저는 선수로서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마음에 기분 좋았죠.”


박철우가 말하는 ‘프랜차이즈 스타’

박철우는 삼성화재에서 데뷔하지는 않았지만 10년간 팀을 지키면서 상징과도 같은 선수가 됐다. 현대캐피탈 문성민, 대한항공 한선수와 함께 V-리그 남자부에서 팀 이름을 대면 바로 떠오르는 선수 중 한 명이 박철우였다. 그 팀에서 데뷔하지는 않았지만, 박철우에게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이제는 한국전력에 집중하는 박철우지만, 오랫동안 함께한 팀을 향한 애정은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었다. 박철우는 “여전히 애정은 있다. 애정도 있고 신경도 쓰이는 그런 팀이다. 10년을 함께하면서 네 번의 우승을 이뤄냈다. 긴 시간 속에 좋은 결과물을 내니 전우애라고 할지, 그런 감정이 생긴다”라고 돌아봤다. 박철우는 그런 시간을 보내게 해준 삼성화재에 감사함도 마음속에 담아두겠다고 덧붙였다.

“삼성화재에서 보낸 시간은 제가 평생 감사히 생각해야 할 부분이에요. 가슴 한편에 남아있을 거고요. 그리고 삼성화재 팬들로부터 느낀 에너지도 감사해요. 이제는 그 감사함을 한국전력 팬들에게서도 느낄 수 있도록 제가 더 잘해야죠.”

그래서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박철우의 생각이 궁금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박철우는 당초 이적은 생각지도 않을 정도로 삼성화재를 향한 애정이 강했다. 하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졌고, 한국전력에서 파격적인 제안을 하면서 흐름이 바뀌었다. 여기에 박철우의 장인인 신치용 진천선수촌장의 조언도 있었다. 신치용 촌장은 박철우에게 “프로라면 가치를 인정해주는 곳으로 가는 게 중요하다”라는 식의 조언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장병철 감독도 비슷한 말을 남겼다. 그리고 박철우는 남자부 최고 대우를 해준 한국전력을 택했다.

‘프랜차이즈 스타’의 이적이었다. 과정은 많이 다르지만, 미국 프로스포츠에서 최근 종종 등장하는 이적의 한 모양새가 떠올랐다. 선수는 팀에 충성심을 보였지만, 팀은 그 선수를 트레이드하고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그런 이적이었다. 이런 움직임이 한 차례 지나가고 나면 결론은 “결국 프로는 비즈니스”라는 쪽으로 흐른다. 물론 이번 박철우 이적은 모양새가 전혀 다르지만 이에 관한 그의 생각도 궁금했다. 이에 대해 박철우는 “정답은 없는 것 같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팀을 떠난다고 나쁜 놈이고, 남아서 좋은 놈이라는 개념은 아니라고 봐요. 팀에서 열심히 뛰면서 좋은 성적을 내도록 이바지하는 게 좋은 선수인 거지, 경기에 못 뛰고 후보로 웜업존에만 있으면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할 수 없죠. 경기에 뛰면서 경기력을 보여주는 게 선수고 그게 중요해요. 선수는 충성을 다했는데 팀에서 인정해주지 않고 버림받는 선수도 많이 봤어요. 그런 일이 만약 생긴다면 선수 입장에서는 정말 마음 아픈 일이죠.”

박철우는 현재 V-리그에서 ‘프랜차이즈 스타’에 관한 의견도 남겼다. 박철우는 지금의 V-리그는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개념이 완전히 자리 잡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밝혔다. “배구는 아직 다른 종목처럼 연고지 개념이 확실히 정착되지 않았잖아요. 숙소가 연고지에 있다거나 해당 연고에 태어난 선수가 있고, 드래프트에서 그 지역 선수가 입단하는 그런 문화가 잡혀있지 않죠. 그래서 배구는 아직 프랜차이즈 스타 같은 개념이 약하다고 생각해요. 야구는 연고지가 전국에 퍼져있고 연고 의식도 강하죠. 지역팀을 향한 팬들의 애정도 크고요. 그래서 프랜차이즈 스타도 자연스럽게 생기고 팀 성적이 안 좋을 때도 팀에서 인정해주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요. 배구는 아직 그런 열매를 맺기에는 환경이 부족한 것 같아요.”


장인어른 신치용 그리고 가족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가족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존재다. 박철우는 좀 더 특별한 연을 맺은 가족이 있다. 한때는 감독이자 은사였고 지금은 장인어른인 신치용 진천선수촌장이 그렇다. 이번 이적 과정에서도 신치용 촌장은 박철우에게 여러 조언을 남겼다. 정말 떼려야 뗄 수 없는 장인-사위 관계다.

계약 이후 신치용 촌장이 박철우에게 해준 말은 결정하기 전 했던 조언과 비슷했다고 한다. 박철우는 “말씀드렸듯이 선수로서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다. 한국전력이 모든 면에서 너무나도 좋은 조건을 제시해줬으니 그에 부응해야 한다고 하셨다”라고 말했다. 이어 “만약 그런 계약을 맺은 것에 만족하고 끝나면 그것밖에 안 되는 선수라고 하셨다. 팀에서 가치를 인정해주면 그만큼, 그 이상으로 보여줘야 하는 게 선수라는 말도 하셨다. 더 노력하고 동료를 위해 헌신하라는 이야기도 하셨다. 내가 20점, 30점을 하려고 하지 말고 10점을 올리더라도 동료들이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수가 되라고 말씀을 하셨다. 그 이야기가 가장 와닿았다”라고 덧붙였다.  

 


두 사람은 감독과 선수 관계일 때는 배구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치용 촌장이 배구계 일선에서 벗어난 지금은 배구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요새는 배구 이야기 많이 해요. 감독님일 때는 집에 와서 배구 이야기는 일절 안 하셨죠. 지금은 감독에서 은퇴하시고 촌장으로 가시기도 했고, 사실 단장님으로 계실 때도 배구 이야기는 정말 많이 했어요. 저도 많이 여쭤봤죠. 상황에 따라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서요. 제게는 정말 장인어른이라기보다 스승님과 같은 느낌이죠.”

두 딸 이야기가 나올 때는 인터뷰 어느 순간보다도 밝은 표정을 보인 박철우였다. 영락없는 ‘딸 바보’의 모습이었다. “그냥 가만히 옆에 있고 건강히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라고 말하는 박철우를 보며 가족이 얼마나 큰 힘이 되어주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박철우는 찰나의 순간순간 행복을 느낀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람이 행복함을 느낀다는 게 순간이잖아요. 제가 출근하거나 어디 나갈 때 첫째 딸이 와서 ‘아빠 잘 다녀와. 다치지 말고’라고 말해주고 돌아와서는 ‘아빠 고생했어’라고 이야기해줄 때 행복하죠. 경기장에 와서 경기에서 이겼을 때 코트로 내려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선수 생활 더 오래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 더 오랫동안 잘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요. ‘아빠가 배구선수였다, 그래도 나름 괜찮은 선수였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생겨요.”

최근 딸의 칭찬도 더 힘을 내는 원동력이라고 한다. 박철우는 “여태껏 한 번도 배구하는 걸 보고 멋있다고 안 하다가 첫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아빠, 좀 멋있는 것 같아’라고 하더라. 그 말을 들으니 많이 컸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 기분 좋았다”라고 회상했다.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고, 그 일터를 가보는 게 쉽지 않아요. 우리는 좀 독특하죠.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TV로도 볼 수 있고 훈련장에 와서도 볼 수 있고요.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가장으로서 동기부여도 되죠.” 박철우의 말에서 가장으로 느끼는 책임감이 크게 보이기도 했다.


뜨겁게 다시 뛰는 박철우의 다짐
“모든 걸 불태워 봐야죠”


박철우는 한국전력 반등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삼성화재에서도 팀의 기둥으로서 역할을 하긴 했지만 이번에는 좀 더 짊어져야 할 짐이 많다. 한국전력이 최근 두 시즌 최하위를 기록하기도 했고 선수단도 젊은 선수 위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잠재력은 있지만 아직 그걸 다 터뜨리진 못한 상황이다. 박철우는 주장이자 베테랑으로, 그리고 또 주 공격수로 팀을 이끌어야 한다.

여기에 FA 고액 계약 후 첫 시즌인 만큼 부담은 더하다. 박철우는 현재 통산 득점 부문 1위(5681점)에 올라 있다. 지난 시즌 국내 선수 중 득점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전과 비교해 경기력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선수를 향한 압박은 더 강하게 들어온다. 박철우는 이런 부담감도 이겨내야 한다. 박철우는 이처럼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책임감을 드러내며 차기 시즌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는 젊은 선수로 채워진 팀 라인업을 언급하며 성장 가능성을 믿고 있다. 동시에 한국전력은 이제는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도 했다.

“성장 가능성이 아주 큰 팀이에요. 더 내려갈 곳이 없잖아요. 올라갈 일만 남았죠. 분명 좋아질 것이고요. 팀에 합류하고 얼마 안 돼서 한번은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너희가 지금 소화하는 훈련량 정말 많다. 대표팀을 비롯해 여러 팀에서 훈련을 해봤지만 훈련량 정말 많다. 그 훈련에 대한 믿음을 스스로 가졌으면 좋겠다’고요. 선수들에게 훈련을 많이 하고 있으니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도 했죠. 지금 좋아지고 있는 건 확실하다고 봐요. 그리고 또 하나 말한 건 더 높은 곳을 보라는 거였어요. 100 말고 200을 바라봐야 150, 120을 할 수 있으니 생각하는 것보다 더 높은 곳을 목표로 삼으라는 것이었죠. 분명 그렇게 될 수 있을 거예요.”

젊은 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다른 말이 있는지도 물었다. 박철우는 쉽게 답을 하지 못했다. 해주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2004년에 데뷔해 16년간 코트를 누빈 베테랑이기에 할 수 있는 고민이었다. 어린 선수들이 어떤 점을 힘들어할지, 어떤 부분에서 조언이 필요한지를 잘 알 수밖에 없었다. 고민 끝에 박철우가 남긴 조언은 생각보다 간단하면서도 꼭 필요하리라 생각된 내용이었다.

“너무 많은데요, 문득 드는 생각은 이거에요.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너무 걱정하지 말고, 너무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어요. 거기서 거기인 거죠. 너무 잘하려고 할수록 걱정이 생기고 두려워져요. 조금은 내려놓고 편하게 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대신 할 때는 열심히, 미친 듯이 하는 거죠.”

한국전력에는 박철우와 닮은 점이 꽤 있는 선수가 한 명 있다. 고졸 신인으로 V-리그에서 두 시즌을 보낸 이태호가 그 주인공이다. 두 선수 모두 고졸 신분으로 성인 무대를 밟았고 왼손잡이, 여기에 포지션도 아포짓 스파이커다. 실제로 박철우는 이태호를 보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태호와 한 팀이 돼 곁에서 지켜본 박철우는 이태호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운동에 대한 열정이 정말 강하다. 잘하고 싶은 마음도 강한 친구라 충분히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철우는 이태호가 어려서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게 아닌 클럽 활동을 하다가 엘리트 코스로 넘어온 경력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점에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이태호가 배구를 한 시간도 6년 정도였다.

이에 대해 박철우는 “어린 나이에서부터 몸을 많이 쓰지는 않아 관리는 됐을 것이다”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다양한 경험을 쌓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 여러 선수와 겨뤄보면서 경험을 쌓고, 연령별 대표팀에 뽑혀서 해외 팀과 붙어보는 건 도움이 된다. 그런 경험을 많이 해보지 못한 게 아쉽다는 생각은 든다”라고 말했다.

지난 두 시즌 연속 최하위에 머물며 팀에 생긴 패배의식을 떨쳐내는 것도 차기 시즌 한국전력 과제 중 하나이다. 준비 과정에서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묻자 박철우는 조심스럽게 답했다. 그는 “내가 감독이 아니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다. 우선은 장병철 감독님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따라가는 게 중요하다. 감독님 의도와 생각을 잘 이해하고 수행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철우는 팀 내 연장자이자 주장으로서 해야 할 역할을 언급했다. “아무래도 정신적인 부분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게 제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니까요. 가장 좋은 전술은 팀워크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팀워크라는 건, 동료를 믿는 거죠. 경기가 안 풀릴 때는 경기장에 혼자 있는 것 같지만 잘될 때는 주변 동료가 잘 보여요. 안 풀릴 때일수록 옆에 있는 동료를 바라보는 게 팀워크에요. 그런 팀워크를 만들어서 힘들 때 서로를 바라보고 도와줄 수 있는 팀이 되면 좋겠어요.”

‘좋은 분위기’에 관한 철학도 얘기했다. 과거 박철우는 “분위기가 좋다는 건 그냥 밝고 웃는 게 아니라 경기에 치열하게 몰입하는 게 분위기가 좋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철우는 “사실 지금도 비슷한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고 있다”라고 웃어 보이며 “여전히 같은 생각이다. 코트에서 모든 걸 다 쏟아붓는 게 선수다. 운동선수라면 당연한 거다. 그렇게 하지 않는 선수에게는 선배건 후배건 한마디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박철우는 정신적인 면에서는 강하게 이야기했다. 그는 “선배라고 해서 봐주면 안 된다. 가장 싫어하는 말이 괜찮다는 것이다. 나는 괜찮지 않다고 이야기한다”라며 “괜찮게 여겨선 안 되고 더 노력해야 한다. 이 말을 가장 많이 한다. 마음은 편하게 가지되 코트에서는 미친 듯이 죽어라 하는 게 선수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이적 첫 시즌이 끝날 때 어떤 그림이었으면 좋겠는지 물었다. 박철우는 “폭죽이 팡팡 터지면 좋겠다”라고 운을 뗀 후 말을 이어갔다. “그런 기쁨의 순간은 상상만 해도 좋죠. 설사 그렇게 안 되더라도 시즌이 끝나고 모든 걸 다 뽑아냈고, 혼신의 힘을 다했다는 느낌을 받으면 좋겠어요. 저나 팀 모두요.”

박철우는 3년 계약을 맺고 한국전력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는 계약이 끝나는 3년 뒤가 아닌 당장 앞에 닥친 시즌만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3년 계약을 맺었지만 솔직히 그 3년을 보고 있지는 않아요. 이번이 마지막 시즌이라는 생각으로 임할 겁니다. 코치님이나 감독님은 아프면 안 되고 몸조리 잘해야 한다고 해요. 물론 아프면 안 되는 게 당연하지만 절대 적당히 할 생각은 없습니다. 좋은 훈련이 있어야 좋은 경기가 있는 법이니까요.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할 겁니다.”

마지막 인사에서도 박철우는 최선을 다해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로 가득했다. 그간 자신의 역할을 다해온 박철우의 말이었기에, 마지막 인사도 왠지 모를 믿음이 갔다. “좋은 경기력을 보여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프로다운 모습을 보이고자 노력할 것이고요. 선수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팬 여러분들도 경기장에 많이 와주셔서 에너지를 불어 넣어주시고 환호해 주신다면 제가 보여드리려고 한 것 이상을 펼칠 수 있을 것 같아요. 경기장에 찾아와서 한국전력 많이 사랑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글/ 서영욱 기자
사진/ 홍기웅 기자, KOVO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7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 더스파이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THE SPIKE SNS